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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아나키즘

中國 아나키즘 硏究의 現況과 課題 /조세현

by 마리산인1324 2010. 10. 14.

중국사연구회 발행 <중국사연구> 제13집(2001년)에 실린 글입니다

 

 

조세현-중국 아나키즘 연구의 현황과 과제.hwp

 

中國 아나키즘 硏究의 現況과 課題



曺 世 鉉 (釜慶大)



근대 중국 사회에 유행한 여러 가지 사회 사조 가운데 아나키즘(Anarchism)은 매우 독특한 역사적 위치를 점한다. 우선 그 이유로 아나키즘은 마르크스주의가 전파되기 전에 중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사회주의 사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주의 운동의 출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나키즘은 신해혁명부터 5․4운동에 이르는 20세기의 전반기에 정치 분야에 제한하지 않고 경제 문화 전 영역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일찍부터 중국의 아나키즘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중국과 대만 양쪽 학계 모두 정치적 이유를 내세워 연구를 기피한 결과, 80년대 이전까지는 이렇다 할 연구 성과가 없었다. 연구 성과가 부진한 이유로 정치적 원인이외에도 두 가지 정도 더 지적할 수 있을 듯 싶다. 하나는 아나키즘 연구 자체에 내재된 어려움1)을 들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자료 부족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아나키즘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조차 그 개념이나 범주에 대해 일치하는 견해가 없기에 이 주제에 대한 접근은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단지 연구자들은 아나키즘은 본래부터 사상의 다양성을 특징으로 삼기 때문에 이 사상을 연구할 때에는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은 금물이며, 개방적인 접근 태도와 섬세한 분석 방법을 가지고 다루어야한다는 원칙에만 동의할 뿐이다. 아울러 중국의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는 한 때 자료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근접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분야였다. 아마도 중국이나 대만 학계가 이 주제에 대한 자료 수집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관련 문헌의 소개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몇 가지 자료집을 출간하면서 연구 환경은 크게 개선되었다. 더욱이 국외 연구자들이 직접 당안관(檔案館)이나 도서관을 방문해 새로운 사료들을 발굴 이용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자료 부족의 탓만 하기에는 곤란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중국 내외를 막론하고 아나키즘에 대한 상당한 분량의 연구 성과가 나왔다.

 

필자는 21세기의 새로운 길목에 서서 한 번쯤 중국 아나키즘의 연구 현황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시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이 글을 준비하였다. 이 논문은 매우 간단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우선 1990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근대 중국의 아나키즘 연구 현황을 소개할 것이다. 다음으로 마지막 부분에서는 결어를 대신해 아나키즘 연구와 관련해 앞으로 진행해야 할 한 두 가지 과제를 제시할 것이다. 만약 이 글이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필자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1. 90년대 이전의 연구 현황


1949년 공산 혁명 이후 중국 학계의 아나키즘에 대한 기본 관점은 아나키즘이란 소부르주아 계급의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의 하나이며, 마르크스주의와 대립되는 적대적인 정치 이념이라는 것이다. 이런 전제아래 초기의 아나키즘 연구는 대부분 아나키스트 사상과 운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했으며, 그 평가 또한 예외 없이 감정적인 비난으로 일관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이르러 극치에 다다랐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문혁 시기에 아나키스트란 용어가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개념으로 종종 사용한 데 반해, 거꾸로 문혁 이후에는 오히려 문혁을 주도한 사인방(四人幇)의 사상에 아나키즘 색채가 농후하다는 평가 아래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아나키즘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서로의 정적을 공격하기 위해 아나키즘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연구했다는 것은, 이 주제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인가를 잘 보여준다. 

 

중국 학계의 아나키즘 연구는 등소평의 개혁 개방 정책이 구체화된 80년대 이후에 비로소 시작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일부 연구자의 노력으로 몇 가지 자료집이 출판되어 아나키즘 연구의 돌파구가 마련된 것이다.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나온 《辛亥革命前十年間時論選集》,《辛亥革命時期期刊介紹》,《五四時期期刊介紹》,《五四時期的社團》등은 전문적으로 아나키즘 관련 문서를 모은 것은 아니었으나,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에 관련한 유용한 정보들이 많이 담겨 있다. 그리고 곧이어 나온 《無政府主義批判》, 《中國無政府主義資料選編》, 《無政府主義資料選》, 《無政府主義在中國》, 《中國無政府主義和中國社會黨》, 《無政府主義思想資料選》(上․下) 등은 본격적으로 아나키즘에 관한 주요 문헌들을 수록한 자료집들이다.2) 이 자료집들도 여전히 근대 중국의 아나키즘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판했다고는 하지만 연구자들의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갈무춘․장준․이흥지 등이 편집한 《무정부주의사상자료선》(상․하)은 대륙 학계에서 나온 대표적인 아나키즘 자료집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무정부주의비판》, 《중국무정부주의자료선편》, 《무정부주의자료선》, 《무정부주의재중국》 등은 앞의 자료집에 미치지 못하고 서로 중복하는 문헌이 많지만 그래도 연구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또한 중국 제2 역사당안관에서 펴낸 《중국무정부주의화중국사회당》은 민국 초기 아나키스트 운동과 중국사회당 활동에 관한 정부 문서 모음집으로, 앞의 자료집과는 성격을 조금 달리한다. 비록 많은 정부 문서들이 누락되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출판한 당시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기획임에 틀림없다. 그밖에 80년대에는 사회주의 수용 과정에 관한 연구도 시작했는데, 임대소․반국화나 강의화 등이 편집한 사회주의 수용 관련 자료집에도 아나키스트의 문헌들이 여러 편 실려 있어 참고할 만 하다.3)

 

이처럼 자료집의 출판이 계속 이루어지자 동시에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 성과들이 꾸준히 증가하였다. 중국 공산당사 위주의 현대사 연구라는 제한된 틀 내에서 연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나키즘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유지되었으나,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에 수용되기 이전 시기에 제한해 아나키즘의 근대 중국 사회에 대한 역할을 긍정하는 해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주로 신해혁명 시기에 아나키스트들이 가장 격렬하게 전제주의와 봉건주의에 대해 공격했다는 역사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이런 새로운 경향을 대표하는 저작으로는 먼저 장개원․임증평이 주편한 《辛亥革命史》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작자는 신해혁명 시기의 혁명파 가운데 국수주의자와 아나키스트의 활동을 언급하면서, 공화주의가 혁명의 주류라면 국수주의와 아나키즘은 혁명의 두 가지 지류로 이해하고 있다.4) 신해혁명에 관한 저명한 개설서에서 혁명 과정 중의 아나키즘 역할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80년대 초 중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아나키즘의 역사적 위상을 크게 높인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해 간행한 호승무․김충급의 재프랑스 중국인 아나키스트 그룹 신세기파에 대한 연구,5) 양천석․왕학장의 재일본 중국인 아나키스트 그룹 천의파 및 일본 내 중국동맹회에 대한 연구,6) 장준의 중국사회당 내 아나키즘에 대한 기초 연구,7) 장뢰․여염광의 민국초 사복의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8) 등과 기타 다수의 논문들은 비록 단행본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중국 학계의 아나키즘 연구에 대한 초창기 열기를 반영한다. 그 가운데 양천석에 의해 천의파의 ‘사회주의강습회’ 자료가 소개되고, 장뢰에 의해 사복문집에 빠진 일부 자료들이 발굴된 것은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80년대의 중국 학계는 아나키즘의 중국으로의 전파 시기, 아나키즘의 발전 과정에 관한 시대 구분 및 아나키즘이 중국 사회에 광범하게 전파된 이유 등에 대해 처음에는 이견이 있었으나, 점차 연구를 진행하면서 대체적인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우선 아나키즘의 수용 시기 문제는 대략 20세기 초로 하는 것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는데, 이즈음 중국 내에 아나키즘을 소개하는 단편 문장들과 번역서가 출현했다는 고증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1907년 《天義》와 《新世紀》 등 아나키즘을 전문적으로 선전하는 잡지가 나타나는 것을 기점으로 아나키스트가 집단적으로 등장했다고 본다. 또한 아나키즘의 발전 단계 문제에 관해서는, 1) 신해혁명 이전 중국에 아나키즘이 전파하는 시기 2) 민국 초 아나키즘이 점차 성장하는 시기 3) 신문화운동 시기(혹은 5․4시기) 아나키즘이 전성기를 누리는 시기 4) 1920년대 초 이른바 아나키즘․볼셰비즘 논쟁 이후 운동이 몰락하는 시기 등으로 구분하는데 대체로 동의하였다.

 

한편 중국 사회에 아나키즘이 광범위하게 전파된 원인과 관련해서는 크게 국내 요인과 국외 요인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경향을 보였다. 국내 요인으로는, 중국 사회의 경제 구조를 살피면서 자본주의가 미성숙해 노동자 계급이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는 현실을 강조하는 것 이외에도 중국인의 전통적 사유 방식과 아나키즘간의 사유 구조의 유사성을 가지고 설명하는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소농민 위주의 중국 농촌 사회의 의식 구조가 아나키즘과 무척 유사하다든지 혹은 유가 중심의 윤리 정치가 아나키즘과 친밀성을 가진다는 것 등이 그러하다. 여기서 말하는 아나키즘이란 중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윤리학 중심의 크로포트킨주의를 가리킨다. 좀 더 직접적인 사회 배경으로 청왕조에 대한 지식인들의 절망감과 이에 따른 새로운 변혁 수단의 탐색 과정에서 아나키즘의 수용 원인을 찾기도 한다.

 

국외 요인으로는, 유럽 일본 등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및 노동 운동의 영향을 강조하거나 혹은 러시아 허무당의 암살 폭동 풍조의 영향을 강조하면서 수용 원인을 설명한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은 모두 전제주의 국가였고, 따라서 양국의 정치 문화적 환경이 유사했기 때문에 근대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쉽게 러시아의 아나키즘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본다. 또한 일본의 영향을 강조하는 논자들은 대부분의 서양 사조가 일본을 통해 중국 사회에 들어온다는 사실에 주목해 그 직접적인 사상 교류의 문제에 주목한다. 사실 근대 중국의 신사조를 설명하는데, 일본 사상계의 동향을 살피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90년대 이전 중국 학계의 아나키즘 연구 현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아륭의 <最近の中國におけるアナキズム硏究の動向>, 장준과 이흥지의 <建國以來中國近代無政府主義思潮硏究述評>, 판정양사의 <近年の中國アナキズムの硏究おめぐって> 등과 같은 연구사 논문들이 도움이 되며,9) 아나키즘 자료 현황을 소개한 글로는 장준의 두 논문 <辛亥革命前有關無政府主義的書刊資料述評>과 <外國無政府主義論著漢譯目錄>을 참고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이 시기 대만에서는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이자 저명한 국민당 원로인 오치휘 이석증 장정강 장계 등의 문집이나 연보, 전기 등을 골고루 출판되었다. 나아가 그들의 정치 활동과 학술 활동에 대한 몇 권의 연구서10)도 나왔는데, 주로 아나키스트로서의 활동보다는 국민당 원로로서의 정치적 위상을 고려해 접근한 글들이 많다. 대륙 학계가 아나키즘을 적대적인 사회주의 이론의 하나로 비판했다면, 대만 학계는 반공의 입장에 서서 이들의 아나키즘 활동을 의식적으로 축소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대만에서의 국민당 원로에 대한 자료 정리 작업은 아나키즘 연구에도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미국 학계의 경우, 60년대 초 스칼라피노와 조오지 유가 공저한 《The Chinese Anarchist Movement》야말로 아마도 중국의 아나키즘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색한 최초의 연구서일 것이다.11) 이 책은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에 대해 개괄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파리에서 활동한 신세기파의 중요성을 먼저 주목한 점은 연구자들의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다. 비록 적은 분량의 단행본이지만, 지금도 중국의 아나키즘을 간단히 이해하려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좋다. 그리고 버넬의 연구 《Chinese Socialism to 1907》은 중국의 혁명가들과 일본 사회주의자와의 관계에 대해 체계적인 논증을 시도한 책이다.12) 그의 연구는 동경에서 활동한 천의파의 기원을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작자는 천의파와 신세기파의 등장이 1905년을 전후한 국제 노동 운동 특히 아나르코 생디칼리즘(無政府工團主義)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기도 하고, 1906-1907년 전후의 중국 사상계는 아나키즘이 마르크스주의에 비하여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도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의 저작은 몇 몇 문제에서 오류를 범해 훗날 다른 연구자에 의해 비판받았다.13) 그밖에도 이 시기 미국 학계에서는 재미 화교 연구자를 중심으로 오치휘 채원배 사복 등에 관한 박사학위논문과 이석증과 같은 중국 아나키스트에 의해 주도된 유법근공검학운동(留法勤工儉學運動) 등에 관한 박사학위논문들도 나왔다.

 

일본 학계의 경우, 보통 옥천신명의 저작 《中國の黑い旗》가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에 대한 최초의 개설 연구서로 알려져 있다.14) 하지만 그는 이미 70년대 중반에 《中國アナキズムの影》이란 단행본을 출판한 바 있다. 여기서 작자는 중국 사회에 아나키즘이 수용하게 된 배경, 전통 사상과 아나키즘의 관련성,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의 개요, 중일 아나키스트의 교류, 모택동의 중국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의 관계 등에 관련한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 시기 그의 저작이 비록 체계적인 구성을 갖추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얼마 후 다시 《中國の黑い旗》를 간행함으로서 좀 더 풍부한 내용을 갖춘 개설서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옥천신명은 아나키즘 연구자인 동시에 아나키스트 운동에 깊이 개입한 인물로, 그의 저서는 중국 아나키스트의 활동이나 특히 중일 아나키스트의 교류 등과 관련해 우리에게 적지 않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같은 시기 저명한 중국 근현대사 연구자인 환산송행은 유사배의 아나키즘에 대한 몇 편의 논문15)에서 유사배의 강권에 대한 반대 주장은 당시의 배만 민족주의를 단순한 만주족에 대한 복수 심리나 종족주의로부터 해방시켜 명확하게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것으로 발전시켰다고 보았다. 더구나 유사배의 반엘리트주의는 그의 평등론을 철저히 진행시킨 결과 나타난 것으로 그 역사 의의를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환산송행은 민국초의 사복을 5․4시기의 진독수에 필적할 만한 인물로 높이 평가하는 한편, 만일 중국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가 깊이를 더해 간다면, 중국 근대 사상사가 다시 쓰여질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고 있다. 그의 연구서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다.16)

 

그밖에도 진화론 수용의 맥락에서 아나키즘을 연구한 유전화부의 글,17) 사복의 아나키즘에 관해 연구한 천상철정의 글,18) 파금의 아나키즘을 중심으로 연구한 판정양사의 글이나,19) 중국 사회주의 수용 과정 및 사복과 운대영의 아나키즘에 대해 연구한 협간직수의 글20) 등은 중국의 아나키즘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읽어야 할 논문들이다.

 

일본 학계의 특징이라면, 우선 이른바 민성파의 지도자 사복과 천의파의 지도자 유사배를 중심으로 아나키즘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인 사복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할 수 있으나, 유사배에 관한 연구가 유난히 많다는 것은 아마도 그가 일본에서 아나키스트 활동을 했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 싶다. 또 다른 연구의 특징이라면 전통 사상과 아나키즘의 관계 문제를 다룬 글들이 많고, 근대 중국의 아나키즘에 대한 역사 평가가 매우 높았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일본 학계는 5․4운동 연구 분야에서 아나키스트가 이 운동을 주도했는가 라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전개된 적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21) 그곳 연구자들은 어느 지역의 연구자들보다 중국 근현대사에서 아나키즘의 역사 의의를 높이 평가하는 듯하다. 사실 5․4시기의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유법근공검학운동을 포함) 논문은 나라를 불문하고 그 분량 면에서 가장 많은 분야이며, 그 성과들을 하나 하나 열거하기조차 번거로울 정도이다. 

 

한편 국내 학계에서도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중국의 아나키즘을 연구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등장하였다. 김태승 박제균 등의 석사학위논문이 그 출발점에 위치하며, 곧이어 천성림 김세은 등의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기 시작하였다.22)

          


2. 90년대 이후의 연구 현황


중국 학계는 80년대 연구 성과의 기초 위에 1990년을 전후하여 아나키즘에 대한 4권의 전문 저작, 즉 《中國無政府主義史》, 《中國無政府主義史稿》, 《中國近代的無政府主義思潮》,《中國無政府主義硏究》23)이 잇달아 쏟아져 나왔다. 이런 연구물들은 한마디로 80년대의 연구 성과를 총 정리한 것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분명 그들 저작은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의 연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업적이지만,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이 4권의 저작 가운데 탕정분의 《중국무정부주의연구》를 제외하면, 저서의 기본 구성에서부터 아나키즘에 대한 역사 평가에 이르기까지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당사(黨史) 위주의 역사관에 따라 여전히 아나키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더욱 풍부한 자료를 인용하면서 역사 사실을 비교적 충실하게 기술하려는 태도도 엿보인다. 이 가운데 장준과 이흥지가 함께 쓴 《중국근대적무정부주의사조》는 다른 책들에 비해 체계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장준과 이흥지가 오래 전부터 아나키즘 관련 사료를 꾸준히 수집한 전문 연구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아나키즘 관련 저작물이 쏟아지자 그 영향은 근대 사상사의 개설서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특히 근대 중국의 사회 사조에 관한 저서에는 거의 예외 없이 아나키즘에 관한 항목을 상당 분량을 할여해 책을 구성하였다. 예를 들어, 《海市蜃樓與大漠綠洲》(제4장과 제6장), 《淸末社會思潮》(제8장), 《中國近代社會思潮》(제9장) 등이 그러하다.24) 이는 중국 아나키즘 연구가 이제 일부 연구자의 관심사를 넘어서 중국근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역사 비중이 확고부동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만한 현상은 아나키즘 자체의 연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점차 다른 사상과 아나키즘의 관련성에 주목하기 시작하고, 나아가 아나키즘을 다른 인물이나 사건과 연결시켜 분석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지면서 연구가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한 예를 들자면, 90년대 들어와서 이른바 국학열(國學熱)에 편승한 청말 민국 초의 국수주의 사조에 대한 연구 붐은 아나키즘 연구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국수주의와 아나키즘은 외면상 하나는 민족주의․전통주의의 색채가 짙고 다른 하나는 국제주의․반전통주의의 색채가 농후해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듯하지만, 신해혁명 시기를 전후해 거의 동시에 등장한 이 두 사조는 실제로 서로 공유하는 영역이 많았다. 심지어 한 인물에게서 이 두 가지 사상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천의파의 유사배이다. 바로 그런 미묘한 사상사적 위치로 말미암아 유사배에 대한 연구는 국학열과 더불어 90년대에 다시 한번 연구자들의 주의를 끌었다.25) 최근 대륙학계에 나타난 《劉申叔先生遺書》의 재간과 몇 가지 문집의 간행, 그리고 평전의 출판26) 등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존 연구자들이 전통과 혁명의 결합이라는 유사배의 ‘중국식’ 아나키즘에 전혀 주목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27) 혹자는 이미 국수주의와 아나키즘이 결합하는 독특한 상황이야말로 근대 중국 사상계의 복잡성을 대변한다고 지적한 바 있었다.28) 아울러 근래에 장병린 경매구 오치휘 등과 같이 국학과 아나키즘 사상이 혼재해 있는 인물들의 평전이 계속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기본적으로는 국학열 때문이지만 동시에 이 현상은 아나키즘 연구의 진전과도 깊은 관련을 가지는 것이다.29)

 

90년대 초 미국 학계에서도 딜릭과 자로우에 의해 중국의 아나키즘에 대한 두 권의 연구서가 출판되어 아나키즘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딜릭은 이미 그의 유명한 저서 《The Origins of Chinese Communism》에서 5․4시기 전성기를 맞이했던 아나키즘 운동과 1920년대 전반기부터 사회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던 공산주의 운동간의 상호관련성에 주목하여 아나키즘을 중국 공산주의의 기원의 하나로 높이 평가한 바 있었다. 당시 딜릭은 서양 학계의 주류를 점하고 있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경향의 학자들이 주장한 중서문화 충돌론과 같이 이른바 지역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문화주의 해석을 비판하면서, 세계 변혁 운동의 맥락아래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의 역사 의의를 강조하였다. 그런 동기에서 꾸준히 쓰여진 몇 편의 논문이 《Anarchism in the Chinese Revolution》이란 제목아래 단행본으로 출판된 것이다.30) 이 책은 현재 학계에 통용되는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저서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 글에서도 그는 유감 없이 미국 학계 좌파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출판한 자로우의 연구 《Anarchism and Chinese Political Culture》는 앞의 딜릭의 저작과는 조금 성격을 달리한다.31) 자로우는 전통 문화와 근대 중국의 아나키즘과의 관련성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는데, 예를 들어 유교의 대동 사상, 도교의 무위 사상, 묵가나 불교의 몇 몇 관점들과 근대 아나키즘과의 계승 관계에 주의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초창기의 아나키즘 연구자도 주목하고 있던 문제이다. 만약 자로우가 중국의 아나키즘에서 정치문화와 같은 환경 요인을 중시했다면, 딜릭은 중국 아나키스트의 정치 사상과 운동 본래의 문제에 주목해 전통 문화와 아나키즘을 연결하려는 시도에 대해 회의를 표명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32)

 

최근 미국 학계의 또 하나의 연구 성과라면 크랩이 사복의 아나키즘에 대해 쓴 박사학위논문을 수정해 《Shifu: Soul of Chinese Anarchism》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33) 일반적으로 사복은 중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전형적인 아나키스트이자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만약 청말 천의파와 신세기파가 해외에서 아나키즘 이론을 선전했다면, 사복은 그런 이론을 국내에 전파했으며, 나아가 그 사상을 실천에 옮겨 운동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따라서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사에서 사복 연구는 필수적인 것이다. 크랩은 그의 글에서 사복의 일생에 대한 섬세한 조사와 아울러 그의 사상에 대한 조심스런 평가를 시도하고 있는데, 특히 그 가운데 사복 사상에 미친 불교의 영향을 언급한 부분은 주목할 만 하다. 근대 중국의 사상계에 미친 불교의 영향은 비단 사복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므로, 필자는 이 화두가 앞으로 근대 중국 전체의 사상계 동향을 탐색하는 데에도 무척 중요한 실마리라고 생각한다. 그밖에도 이 시기 미국 학계에서는 상해 노동대학에서의 아나키즘, 파금의 문학 작품에 나타난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서 등이 출판되었다.

 

90년대의 일본 학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중국 아나키즘 연구자라면 우선 차아륭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무려 10여 년에 걸쳐 ‘전통과 근대’라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청말 민국초의 아나키즘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으며, 그 발표 논문들을 묶어 90년대 중반에 《近代中國アナキズムの硏究》이란 제목으로 출판하였다.34) 차아륭의 글 가운데 청말 오치휘나 이석증이 아나키즘을 수용하게된 배경을 연구한 것이나 민국 초기에 그들의 아나키즘 활동에 대해 서술한 부분은 기존 연구의 공백을 메운 것이다. 또한 작자가 신세기파를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의 지적 기원으로 지적한 것이나, 그들이 민국 초기부터 신문화운동 시기에 이르기까지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은 기억할 만하다. 하지만 그는 스칼라피노나 딜릭과는 달리 오치휘 이석증 사복 등의 사상에 내재된 전통주의 요소에 주목함으로서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일본 학계의 또 하나의 성과라면 앞서 언급한 차아륭이 판정양사와 더불어 방대한 분량의 중국 아나키즘 자료집 《中國アナキズム資料集成》(전체 12권, 별책 1권)을 출판한 일이다.35) 이 자료집은 90년대에 중국 아나키즘 연구의 자료 수집 방면에서 성취한 최고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자료집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반부는 20년대 말부터 30년대 초에 걸쳐 출판한 《革命週報》의 영인본(제1권-제6권, 일부 누락)이며, 후반부는 기타 중국 아나키스트의 자료(주로 잡지)들을 영인(제7권-제12권)한 것이다. 그리고 별책은 이 자료집의 전체 목차를 수록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혁명주보》의 경우, 20-30년대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의 하나이자 가장 분량이 많은 것으로, 연구의 공백기인 20-30년대의 운동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자료이다. 그 밖의 자료들도 현재 중국에서조차 수집하기 곤란하거나 혹은 단지 목록만이 파악되었던 진귀한 사료들이 적지 않다. 《자료집성》이 과거의 자료집과 다른 점은, 이전의 것이 주로 개인 문집, 연보, 회고록이거나 혹은 아나키스트 잡지의 주요 문장을 선별해 묶은 것이라면, 이것은 일본에서 수집 가능한 자료의 전부를 그대로 영인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이 자료집을 기존에 공개된 자료들과 연결시켜 더욱 꼼꼼히 연구한다면 새로운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36) 한편, 이보다 몇 년 전 차아륭과 판정양사는 또 다른 아나키즘 연구자 옥천신명과 함께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에 관련한 기록(주로 회고록)들을 모아 일본어로 번역 출판한 바 있다.37)

 

90년대 한국 학계 역시 중국 아나키즘 연구에 관한 한 괄목할만한 발전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연구 성과로 우선 박제균의 박사학위논문 《中國 ‘파리그룹’(1907-1921)의 無政府主義 思想과 實踐》을 들 수 있다.38) 그는 오래 전부터 국내 학술지에 중국의 아나키즘에 관련한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고, 그의 학위논문에는 이런 연구 성과가 잘 반영되어 있다. 논문에서 작자는 신세기파의 사상과 활동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전통 사상과의 아나키즘의 연관성, 당시 여러 사회 사조와 아나키즘의 관련성, 중국적 아나키즘의 특성 등에 주의하면서 글을 전개하는데, 특히 유법근공검학운동과 같은 교육운동과 이석증 등 신세기파와의 관계에 주목해 그 행보를 추적한 것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우리 학계에서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사에서 사상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신세기파에 대한 전문 연구가 나왔다는 사실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천성림의 박사학위논문 《辛亥革命時期 國粹學派에 관한 硏究》도 아나키즘 문제와 일정한 관계를 가진다.39) 그녀는 국내 학계에서 가장 먼저 아나키즘 연구를 시작한 사람의 하나로, 비록 논문은 문화보수주의와 전반서화론의 대립 구도 아래 장병린 유사배 등 국수학파의 사상과 활동을 다루었으나, 논문의 후반부에는 장병린과 유사배의 아나키즘에 대해서도 적지 않게 언급하고 있다. 그밖에 중국의 아나키즘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김정화 역시 유사배 사복 등과 관련한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40)

 

한편 중국 유학 1세대인 도중만이 쓴 유사배의 국학 사상에 관한 학위논문이나 조세현이 쓴 청말 민국 시기 아나키스트의 문화 사상에 관한 학위논문도 우리 학계의 또 다른 연구 성과이다. 전자의 경우, 유사배의 정치 사상보다는 그의 학술 사상에 주목하여 ‘신사학’이라는 주제를 매개로 유사배 학술 사상에서의 중학과 서학의 상호 연결고리를 찾고 있다.41) 이와 유사한 연구는 국내 연구자 이원석에 의해서도 거의 동시에 이루어져 유사배의 국학과 혁명론에 관한 학위논문이 나왔다.42) 여기서는 논문의 전반부에 유사배의 학술관을, 후반부에는 그의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를 다루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유사배 연구는 기본적으로 그의 학술 사상에 주목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청말 민국 초기 아나키스트의 문화 사상이 신문화 운동의 기본 정신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그 직접적인 계승 관계가 있음을 논증하려는 글이다. 작자는 여기서 신해혁명 시기 아나키즘이 시대의 이단아가 아니라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가족 종교 교육 여성 문자 공자 등의 주제어를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43)       

 

이처럼 중국의 아나키즘에 관한 연구는 90년대 국내 학계에서도 무척 활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일반 독자가 쉽게 구해 읽을 수 있는 책은 드물다. 그런 이유에서 최근 출판한 조광수의 《중국의 아나키즘》과 조세현의 《동아시아 아나키즘-그 반역의 역사》 두 권의 책은 도움이 된다.44) 전자는 비록 몇 편의 논문을 모아 놓은 것이어서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나마 중국의 아나키즘에 대해 현재 단행본 형태로 출판된 유일한 책일 것이다. 후자는 일본 중국 한국의 아나키스트 운동을 정리하고 3국의 아나키즘을 간단히 비교 분석해 놓은 것으로, 비록 그 깊이는 없지만 중국의 아나키즘을 다른 주변 국가와 비교함으로서 약간의 참고 가치는 있다.



3. 맺음말을 대신하여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 아나키즘 연구는 이미 불모의 상태에서 벗어나 학술계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어떤 연구자들은 아나키즘이란 변혁 운동의 과도기에 잠시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 아나키즘 연구가 이제 충분히 연구된 주제라고 본다. 혹자는 동아시아의 아나키즘은 서양과는 달리 원론에서 크게 이탈한 기형적인 사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여 그 가치를 평가 절하한다. 하지만 정작 아나키즘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현재의 중국 아나키즘 연구는 그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여전히 중국의 아나키즘은 미개척 분야의 하나로, 아직도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믿고있다. 필자는 이런 입장들에 대해 본인의 견해를 밝히기보다는 단지 앞으로 진행해야 할 중국 아나키즘의 연구 과제를 몇 가지 제시하는 것으로 이 글의 맺음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자료의 수집과 분석에 더욱 힘써야할 것이다. 청말의 신세기파, 민국 초기의 사복, 5․4시기의 황릉상 구성백 등으로 이어지는 중국 아나키즘의 주류에 대한 것은 물론, 이른바 아나키즘의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장병린 태허 주겸지 강항호 등에 대한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들은 모두 근대 중국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아나키즘의 영향을 깊게 받은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장병린 태허 주겸지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근대 불교와 아나키즘과 관계를 밝히는 것은 중국 근대의 복잡한 사상계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또한 중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중국사회당에 대한 연구 역시 민국 초기의 아나키즘 연구에서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둘째, 1920년대 이후의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에 대한 연구가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비록 여러 연구자들이 이 시기를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 예를 들어, 파금의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라든지 상해 노동대학에 대한 연구 등 -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물론 이런 연구가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의 쇠퇴기를 연구한다는 시간상의 확대라는 의미도 가지지만, 20-30년대 아나키스트 운동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국민혁명 시기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어 중요하다. 이제는 아나키즘 연구가 그 자체만의 고립된 연구에서 탈피해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여러 방면의 문제들과 긴밀히 결합한 입체적인 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앞으로는 서양 아나키즘의 원론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가지고 중국의 아나키스트 운동을 연구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 아나키즘의 연구는 기타 동아시아 사회(예를 들어, 한국, 일본, 월남 등)의 아나키스트 운동과 비교 분석하는 연구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원래 아나키즘은 세계주의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사조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아나키스트 운동은 민족과 국경을 넘어선 국제적 연대를 그 주요한 특색으로 삼는다. 만약 우리가 각 지역과 국가의 아나키스트 운동을 폭넓게 이해한다면 중국 아나키즘에 대한 더욱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근대 동아시아 사회의 격변하는 모습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끝)   



1) 아나키즘이란 주제는 우선 개념의 정의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라는 번역어와 일치시켜 그 범주를 정하자니 여기서 해당하지 않는 인물들이 많고, 그 범주를 반강권주의(反强權主義)라는 번역어와 일치시켜 확대 해석하자니 경계선이 광범하고 또한 모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민국 초 중국사회당의 강항호나 5․4운동 시기의 채원배 및 30년대의 오치휘와 같은 인물을 중국 아나키스트 운동과 관련해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그런 사례일 것이다.


 

2) 이들 자료집을 좀 더 상세히 소개하면, 鐘離蒙․楊鳳麟 주편: 《無政府主義批判》, 遼寧大學出版社 1981年; 中國第二歷史檔案館 편: 《中國無政府主義和中國社會黨》, 江蘇人民出版社 1981年; 中國人民大學 中共黨史係 中國近現代政治思想史 敎硏室 편: 《中國無政府主義資料選編》, 中國人民大學出版社, 1982年; 高軍․王檜林․楊樹標 주편: 《無政府主義在中國》, 湖南人民出版社, 1984年; 葛懋春․蔣俊․李興芝 편: 《無政府主義資料選》(上․下), 北京大學出版社, 1984年 등이다.


 

3) 林代昭․潘國華 편: 《馬克思主義在中國-從影響的傳入到傳播》(上、下), 淸華大學出版社, 1983年; 姜義華 편: 《社會主義學說在中國的初期傳播》, 復旦大學出版社, 1984年.


 

4) 章開沅․林增平 주편: 《辛亥革命史》(中冊 제6장), 人民出版社, 1980年.


 

5) 胡繩武․金冲及: <二十世紀初年的中國無政府主義思潮>, 《從辛亥革命到五四運動》, 湖南人民出版社, 1983年(金冲及․胡繩武, 《辛亥革命史稿》제2권, 上海人民出版社, 1991年)에서도 여러 페이지를 할당해 아나키즘 문제를 다루고 있다).


 

6) 楊天石․王學庄: <同盟會的分裂與光復會的重建>, 《近代史硏究》, 1979年, 第1期; 楊天石 편: <“社會主義講習會”資料>, 《中國哲學》第1輯, 1979年; 楊天石 편: <“社會主義講習會”資料(續)>, 《中國哲學》第9輯, 1983年; 楊天石․王學庄: <論“天義報”劉師培等人的無政府主義>, 《近代中國人物》(一),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83年.


 

7) 蔣俊: <辛亥革命前有關無政府主義的書刊資料述評>, 《中國哲學》13, 人民出版社, 1985年; <外國無政府主義論著漢譯目錄>, 《中國哲學論叢》, 山東大學出版社, 1986年; <略論“極樂地”的政治思想和社會意義>, 《近代史硏究》, 1991年, 第1期 등. 


 

8) 張磊 정리: <劉師復外文>, 《中國哲學》第12輯, 1984年; 張磊․余炎光: <論劉師復>, 《近代中國人物》(一),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83年.


 

9) 嵯峨隆: <最近の中國におけるアナキズム硏究の動向>, 《アジア經濟》25, 1984年; 蔣俊․李興芝: <建國以來中國近代無政府主義思潮硏究述評>, 《近代史硏究》, 1985年, 第4期; 坂井洋史, <近年の中國アナキズムの硏究おめぐって>, 《中國社會と文化》, 東大中國學會, 1988年.


 

10) 예를 들어, 李文能: 《吳敬恒對中國現代政治的影響》, 臺北, 正中書局, 1977年 등이 있다.


 

11) R.A.Scalapino/George.T.Yu.  The Chinese Anarchist Movement. Berkeley University Press, 1961.


 

12) Martin Bernal.  Chinese Socialism to 1907. Ithaca/London: Cornell University Press, 1976.


 

13) 딜릭은 버넬의 연구를 평가하면서, 작자가 중국은 개인주의 전통이 없어 지식인들이 쉽게 사회주의를 선택했다는데, 이 때 버넬이 사회주의를 단순히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국가사회주의로 이해하면서 자유를 특히 강조하는 아나키스트의 출현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작자가 중국동맹회의 사회주의를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민주주의로 오해했다고도 지적하였다.    


 

14) 玉川信明: 《中國の黑い旗》, 東京, 晶文社, 1981年.


 

15) 丸山松幸: 《中國近代の革命思想》, 東京, 硏文出版, 1982年에 3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16) 마루야마 마츠유끼 저, 천성림 역: 《중국근대의 혁명사상》, 예전사, 1989.


 

17) 有田和夫: 《淸末意識構造の硏究》, 東京, 汲古書院, 1984年.


 

18) 川上哲正: <劉思復と辛亥革命>, 《呴沫集》3, 1981年; <民國初年のアナキズム-劉思復の社會主義論>, 《學習院史學》20號, 1982年; <中國における劉思復(師復)硏究の現在>, 《學習院史學》25號, 1987年 등.


 

19) 坂井洋史: <20年代の中國無政府主義運動と巴金>, 《猫頭鷹》創刊號, 1983年; <巴金を讀む>, 《季刊中國硏究》第16號, 1989年; <近代中國のアナキズム批判-章炳麟と朱謙之をめぐって>, 《一橋論叢》第101卷 第3號, 1989年 등.


 

20) 狹間直樹: 《中國社會主義の黎明》, 東京, 岩波書店, 1976年; <劉思復と“民聲”--民國初年における中國の無政府主義>, 《思想》 578, 1972年; <五四運動の精神的前提--惲代英アナキズムの時代性>, 《東方學報》第61卷, 1989年 등.


 

21) 앞서 소개한 坂井洋史, 《近年の中國アナキズムの硏究おめぐって》를 참고할 것.


 

22) 千聖林: <劉師培의 無政府主義革命論>, 《梨大史苑》24-25합집, 1989; 金世殷: <중국공산당 창립시기의 사상투쟁에 관하여>, 《成大史林》5, 1989 등.


 

23) 徐善廣․柳劍平: 《中國無政府主義史》, 湖北人民出版社, 1989年; 路哲: 《中國無政府主義史稿》, 福建人民出版社, 1990年; 蔣俊․李興芝: 《中國近代的無政府主義思潮》, 山東人民出版社, 1991年; 湯庭芬: 《中國無政府主義硏究》, 法律出版社, 1991年.


 

24) 楊奎松․董士偉: 《海市蜃樓與大漠綠洲》(제4장과 제6장), 上海人民出版社, 1991年; 吳雁南 등 주편: 《淸末社會思潮》(제8장), 福建人民出版社, 1992年; 高瑞泉 주편: 《中國近代社會思潮》(제9장), 華東師範大學出版社, 1996年 등.


 

25) 유사배의 국수주의에 대해서는 정사거의 연구를 참고할 만 하다. 그는 신해혁명시기의 유사배 장병린 등의 국수주의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으며, 특히 그들의 문화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鄭師渠:《晩淸國粹派-文化思想硏究》, 北京師範大學出版社, 1993年).  


 

26) 李妙根 편: 《劉師培論學論政》, 復旦大學出版社, 1990年; 鄭師渠: 《晩淸國粹派--文化思想硏究》, 北京師範大學出版社, 1993年; 李妙根 편: 《國粹與西化--劉師培文選》, 上海遠東出版社, 1996年; 方光華: 《劉師培評傳》, 百花洲文藝出版社, 1996年; 劉師培: 《劉申叔遺書》(全二冊), 江蘇古籍出版社 영인본, 1997年; 劉師培: 《劉師培全集》(全四冊), 中共中央黨校出版社 영인본, 1997年; 朱維錚 주편: 《劉師培辛亥前文選》, 三聯書店, 1998年 등.


 

27) 과거 유사배와 관련하여, 스칼라피노는 그가 아나키즘의 정당성을 논증하기 위해 중국의 전통사상을 광범위하게 이용하였고, 또한 서방의 급진주의 사조를 설명하기 위해 전통 지식을 적지 않게 동원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와 달리 환산송행은 유사배가 국학적인 사고를 통하여 서양의 아나키즘을 이해하였다고 설명한다. 즉 국학이 그의 사상이 핵심이라면 아나키즘은 하나의 도구라는 것이다.


 

28) 마루야마 마츠유끼 저, 천성림 역: 앞의 책, 1장 1절을 참고.


 

29) 姜義華:《章太炎評傳》, 百花洲文藝出版社, 1995年; 徐立亭:《晩淸巨人傳--章太炎》, 哈爾濱出版社, 1996年; 景克寧․趙胆國:《景梅九評傳》, 山西人民出版社, 1990年; 路小可:《民國大老--吳稚暉》, 蘭州大學出版社, 1997年 등.


 

30) Arif Dirlik. Anarchism in the Chinese Revolution. Berkeley: California University Press, 1991.


 

31) Peter Zarrow. Anarchism and Chinese Political Cultur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0.


 

32) 참고로, 최근 웨스틴의 한 연구 가운데 딜릭과 쟈로우의 중국 아나키즘 연구에 대해 평가한 구절이 있어 잠시 인용할까 한다. “딜릭은 중국 초기 아나키스트의 급진 사상을 강조하였으나, 그들의 이러한 사상과 행동 방식이 어떠한 세계관에 기초했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로우는 이런 문제-아나키즘과 비(非)유가주의 간의 관계-에 주의했기에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자로우도 자신의 문제와 전혀 상반되는 관점에 대해 그리 주의하지 않았다”((美)魏定熙: 《北京大學與中國政治文化》, 北京大學出版社, 1998年, pp.5-6).


 

33) Edward S. Krebs. Shifu: Soul of Chinese Anarchism, Rowman & Littlefield, 1998.


 

34) 嵯峨隆: 《近代中國アナキズムの硏究》, 東京, 硏文出版, 1994年.


 

35) 坂井洋史․嵯峨隆 편:《原典中國アナキズム史料集成》(全十二冊, 別冊一), 東京, 綠蔭書房, 1994年.


 

36) 덧붙이자면, 필자는 중국의 아나키즘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에게 중공중앙편역국 도서관을 추천하고 싶다. 이 곳에는 중국 사회주의 운동 관련 문헌이 대량 소장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천의》《신세기》《혁명주보》의 전체가 소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사회당 및 5․4시기 중국 아나키스트가 출판한 잡지와 저서들도 소장되어 있어, 다른 도서관들과 비교해 볼 때 가히 자료의 보고라고 말할 수 있다. 이곳은 중국 사회주의 운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37) 玉川信明․坂井洋史․嵯峨隆 편역:《中國アナキズム運動の回想》, 東京, 總和社, 1992年.


 

38) 朴濟均: 《中國 ‘파리그룹’(1907-1921)의 無政府主義 思想과 實踐》, 경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년.


 

39) 千聖林: 《辛亥革命時期 國粹學派에 관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년.


 

40) 金貞和: <辛亥革命時期 劉師培의 無政府主義 認識>, 《忠北史學》4, 1991; <民國初期 劉師復과 丹齋 申采浩의 무정부주의사상 비교>, 《丹齋申采浩硏究論集》(忠北大人文科學硏究所), 1994; <民國 初期 劉師復의 無政府主義運動>, 《忠北史學》8, 1995 등.


 

41) 都重萬:《劉師培對晩淸史學演進的貢獻及影響》, 北京大學 박사학위논문, 1998년.


 

42) 李元錫: 《劉師培의 學術과 革命論》,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년.


 

43) 曹世鉉: 《淸末民初無政府派的文化思想》, 北京師範大學 박사학위논문, 1999년.


 

44) 조광수: 《중국의 아나키즘》, 신지서원, 1998년; 조세현: 《동아시아 아나키즘-그 반역의 역사》, 책세상, 2001년.


 

조세현-중국 아나키즘 연구의 현황과 과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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