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08-10-10 오후 07:23:01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15295.html
참한 학자, 성난 전복자…젊은 네그리의 두 얼굴 | |
제자이자 동지 마이클 하트가 본 ‘변증법 넘어선 절대부정’ 진화과정 실천 앞세운 레닌 딛고 헤겔 극복 | |
고명섭 기자 | |
〈네그리 사상의 진화〉 마이클 하트 지음·정남영 박서현 옮김/갈무리·1만6900원
마이클 하트(미국 듀크대 교수)는 아우토노미아(자율) 이론가 안토니오 네그리와의 공동작업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1990년대 이후 그의 지적 동지이자 스승인 네그리와 함께 <디오니소스의 노동> <제국> <다중>을 집필함으로써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네그리 사상의 진화>는 하트가 93년에 쓴 박사학위 논문 가운데 후반부를 번역한 책이다. 60년대부터 70년대 말까지 젊은 네그리의 이론적·실천적 투쟁을 추적한 것이 이 책이다. 하트의 박사학위 논문 전반부는 <들뢰즈 사상의 진화>(갈무리)라는 이름으로 먼저 번역돼 나온 책에 소개됐다. 이 부분도 역시 질 들뢰즈 사상의 형성 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의 박사학위 논문이 두 권의 책으로 나뉘어 나온 셈인데, 그런 만큼 두 책을 묶어 함께 읽는 것이 하트의 문제의식을 이해하는 데 더 유용하다.
하트가 들뢰즈와 네그리의 초기 작업에 공통으로 주목한 것은 두 사람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헤겔 변증법’에 대항할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니체를 통해서, 네그리는 레닌을 통해서 헤겔 변증법 극복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왜 이들이 반헤겔·반변증법의 기치를 올렸는지는 <들뢰즈 사상의 진화> 서론에 간명하게 서술돼 있다. 헤겔의 변증법은 어떤 ‘부정’도 부정 자체로 놔두지 않고 지양을 통해 종합에 합류시켜 버리는데, 이 사실이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지배체제를 부정해도 결국에 또다른 지배체제로 포섭되고 마는 변증법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 변증법적 부정에 맞서 들뢰즈와 네그리가 공히 내세우는 것이 ‘비변증법적 부정’이다. “비변증법적 부정은 더 단순하고 더 절대적이다.” 이 비변증법적 부정을 하트는 ‘절대적 부정’ ‘총체적 부정’ ‘근원적 부정’이라고 부른다. 종합으로 지양되지 않고 부정 그 자체로 끝나는 부정, 완전한 파괴·소멸·폐허만 남기는 부정, 그리하여 그 빈터에서 새로운 존재의 구성으로 이어지는 부정이 네그리와 들뢰즈가 말한 부정이다.
하트는 네그리가 이 비변증법적 부정의 지평을 발견한 것이 레닌을 재해석한 결과라고 말한다. 새롭게 해석된 레닌은 이론 자체보다 혁명 주체의 실천을 앞세우는 레닌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때의 레닌이 니체와 다르지 않다는 하트의 해석이다. “니체와 레닌 사이의 유사성은 주체의 힘이 모든 논점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점에 있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모든 것은 주관적일 뿐이다’라는 초라한 표현을 쓰지 말고, ‘그것은 또한 우리의 작품이다’라고 하자.” 주체가 기존의 세계를 없애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니체와 레닌은 "파괴적 계기, 곧 그 파괴적 힘이 너무나 격렬하여 사물의 현재 상태를 완전히 깨부수면서 현재의 지평 전체를 무너뜨리는 힘"을 제시한다. 이런 레닌적 국면을 거쳐 네그리는 이후 아우토노미아 운동으로 나아간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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