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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제국』: 맑스주의적 비판 /정성진(자율평론6호 20030930)

by 마리산인1324 2010. 10. 24.

<자율평론> 6호(2003-09-30)

http://jayul.net/view_article.php?a_no=345&p_no=1

 

 

 

『제국』: 맑스주의적 비판1)



 

- 정성진 -





 

네그리·하트의 『제국』은 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던 반세계화 운동의 시류를 타면서 출간과 동시에 전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제는 세계 진보 진영은 물론 세계 주요 대학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필수 교재로 되어있다. 세계 주요 인문사회과학의 잡지와 학술지가 『제국』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특집을 낼 정도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네그리·하트의 『제국』은 이론적으로는 그 동안 많이 논의되어 온 세계화론을 포스트구조주의 방식으로 재서술한 것에 불과하며, 실천적으로는 고전 맑스주의 전통을 명백하게 부정한 것으로서 개량주의 정치의 헤게모니에 봉사하고 있다고 비판할 것이다.


1.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의 부정

네그리-하트는 포스트포드주의 사회이론과 포스트모더니즘 방법에 기초하여 오늘 세계는 자본주의를 넘어서 탈자본주의·탈근대 단계로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네그리-하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맑스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는 양립할 수 없으며 심지어 경쟁적인 담론들이라고 종종 주장된다.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로 이러한 두 담론과 사조 사이에 어떠한 갈등도 볼 수 없으며 양자는 서로 접촉함으로써만 풍요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맑스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간의 연계를 넘어서 우리는 유물론적 정치사상에 흥미를 갖고 있는데, 이는 스피노자와 마키아벨리로까지 소급 확장될 수 있다"(Hardt and Negri, 2002: 185). 네그리·하트는 오늘 서비스화 정보화에 따라 이른바 '비물질적 노동'(immaterial labor)의 중요성이 증대한다고 주장한다. 네그리-하트는 비물질적 노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서비스의 생산은 어떠한 물질적 및 내구적 재화를 결과시키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생산에 수반되는 노동을 비물질적 노동이라고 정의한다. 즉, 서비스, 문화, 지식, 의사소통과 같은 비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이 비물질적 노동이다"(Hardt and Negri, 2000: 290). 네그리-하트는 이와 같은 비물질적 노동의 의의가 결정적으로 되면서 맑스의 노동가치론과 가변자본 개념은 이제 유효성을 상실하게 되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비물질적 노동은 즉각적으로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업을 수반한다. 다시 말하여 비물질적 노동의 협업적 양상은 종전의 노동형태들처럼 외부로부터 부과되거나 조직된 것이 아니다. 비물질적 노동에서 협업은 노동활동 그 자체에 완전히 내재적이다. 이러한 사실은 노동력을 '가변자본'으로 간주하는, 즉 자본에 의해서만 가동되고 일관적으로 될 수 있는 힘으로 간주하는 (고전파 정치경제학과 맑스정치경제학에 공통적인) 낡은 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Hardt and Negri, 2000: 294). 즉 IT와 서비스가 경제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는 이른바 '신경제'에서는 "사적 소유가 점차…무의미하게 되며" 생산에 들어가는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양을 측정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Hardt and Negri, 2000: 302, 354-359).

네그리-하트는 비물질적 노동의 비중 증대에 따라 소외된 노동이 아닌 "감정노동"(affective labor) 혹은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가 말하는 "상징분석가" (symbolic analyst)의 비중이 증대할 것이기 때문에 정보화의 진행 자체가 자본주의의 극복 및 공산주의의 도래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오늘날 생산성, 부 및 사회적 잉여의 창조는 언어적, 의사소통적 및 감정적 네트워크를 통한 협업적 상호작용의 형태를 취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창조적 에너지를 표현하는 비물질적 노동은 자발적이고 초보적인 공산주의의 잠재력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Hardt and Negri, 2000: 294).

그러나 이상과 같은 네그리-하트의 주장은 21세기 세계의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다. 우선 정보화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비물질적 노동은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에 한정된 현상이며, 세계적 범위에서는 물질적 노동이 여전히 압도적이라는 사실이 지적되어야 한다. "네그리와 하트는 오늘 미국에서도 트럭 운전수 수가 컴퓨터 기술자 수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모른다"(Henwood, 2001). "미국에서도 정보기술 직종은 2010년에 가서도 직업 전체의 2.4% 이하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Panitch and Gindin, 2002: 34에서 재인용).

같은 자율주의자인 다이어-비데포드(N.Dyer-Witheford)도 네그리-하트가 '제국'의 노동의 상층부의 비물질적 노동을 특권화하면서 여전히 '제국'의 노동의 저변에서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물질적 노동'(material labor)과 '궁핍노동'(immiserated labor)의 현실을 무시하고 있는 점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지구 노동자들의 다양성을 범주화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우리는 매우 도식적으로 '비물질적 노동'에 대한 강조가 다른 두 집단의 노동자, 즉 '물질적' 노동과 '궁핍노동'에 대한 동등한 강조로 균형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일단 우리가 지구적 노동을 이런 집단들로 구별한다면, '비물질적 노동'의 투쟁이 하트와 네그리가 주장하듯이 다른 두 집단의 투쟁이 '수렴'될 정도로 중심적인 것인지는 결코 분명하지 않다"(Dyer-Witheford, 2001: 76). 또 '상징분석' 노동 혹은 '감정노동' 등 소외되지 않은 노동은 극히 일부에 국한되며 이들의 소외되지 않은 노동, '감정노동'은 압도적 다수의 소외된 혐오스런 노동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변혁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오늘날 사적 소유가 무의미하게 되고 있다는 네그리-하트의 주장도 얼마 전 냅스터 사태에서 보듯이 '신경제'에서도 지적 재산권을 중심으로 한 사적 소유 문제기 여전히 결정적임을 감안한다면 옳지 않다.

네그리-하트는 오늘날의 세계화를 고대 로마 제국에 비유하면서, 세계화의 자본주의적 본질을 부정한다. 그래서 네그리-하트는 오늘 '제국'에서 작동하고 있는 가치와 공황의 메커니즘도 부정한다. 그들의 『제국』에는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의 핵심인 공황론이 전적으로 부재하다. '제국'의 세계는 위기가 없다.

그러나 네그리-하트가 주장하는 것처럼 오늘 세계는 맑스의 노동가치론의 경계를 넘어 선 세계, 즉 자본주의를 넘어 선 세계가 아니다. 오늘 세계화가 무엇보다도 자본의 세계화이기 때문에 세계화 조건의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모순의 문제설정으로, 즉 자본과 노동의 모순 관계로 분석해야 한다. 실제로 세계화와 함께, "국가는 '침식'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발전 프로젝트에 따라 재구조화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나라들이 희생되면서 사적 이윤이 증대되고 있다. 세계화는 자본의 세계화로서 고삐 풀린 국제금융자본의 운동이 지구를 휩쓸면서 자본의 논리를 세계 인민에게 강요하는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의 분석으로서 맑스의 노동가치론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비판적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2. 맑스주의 제국주의론의 부정

네그리-하트의 『제국』은 그 자체로 맑스주의 제국주의론의 명시적 부정이다. 오늘 세계를 이해하는 개념으로 제국주의 대신 제국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맑스주의의 통상적인 용어법에서는 제국은 제국주의와 대동소이한 용어로 취급되지만, 네그리-하트는 현 국면의 세계를 '제국'이라고 명명하고 이는 제국주의를 넘어선 단계의 세계라는 점에서 제국주의와 구별된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는 국민국가의 주권에 기초했으며, 기본적으로 국경을 넘어선 주권의 확장으로 구성되어있다"면, "제국은 전적으로 상이한 형태를 취하며 상이한 유형의 주권을 통해 작동하며 민족과 국경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제국은 미국 제국 같은 것으로는 될 수 없는데, 이는 영국 제국주의 프로젝트가 영국적이고 프랑스 제국주의 프로젝트가 프랑스적인 것과 다른 점이다. 왜냐하면 제국은 국민국가의 주권에 기초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제국은 어떤 중심도 없고 어떤 외부도 없다.… 제국은 외부를 갖지 않으며 미국이 그 중심이 아니다"(Hardt and Negri, 2002: 180).

네그리-하트는 실제로 고전 맑스주의 전통의 제국주의론의 타당성을 명시적으로 비판한다. 네그리-하트가 주장하는 제국은 제국주의간 경쟁과 전쟁 경향의 소멸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ultra-imperialism)으로 통한다(Chingo and Dunga, 2001; Callinicos, 2002). 그들이 말하는 제국에서는 국민국가와 국민국가 내부의 권력관계가 "새로운 주권적 초국민적 세계 권력"에 의해 침투되어 "몇몇 제국 권력들간의 갈등과 경쟁은 중요한 측면에서 단일한 권력 개념으로 대체되어, 이것이 그들을 모두 중층결정하고, 통일적 방식으로 구조화하며, 또 이들을 결정적으로 포스트식민주의적이며 포스트제국주의적인 공통적 권리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다"(Hardt and Negri, 2000: 9-10).

네그리-하트의'『제국』에서 국가에 의한 매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발전은 지구적 수준을 획득하면서 다중과 매개 없이 직접 대면하게 된다. 그리하여 변증법, 혹은 현실적으로 한계와 그 조직의 과학은 증발해버린다. 계급투쟁은 국민국가를 그것이 폐지되도록 몰고 가면서 국민국가에 의해 설정된 경계를 넘어서 제국의 헌법을 분석과 갈등의 장소로 제안한다. 그 경계가 없어지면, 투쟁의 상황은 완전히 개방된다. 자본과 노동은 직접 적대적 형태로 대립한다. 이것은 모든 공산주의 정치이론의 기본조건이다"(Hardt and Negri, 2000: 237).

네그리-하트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핵심인 '가장 약한 고리'의 이론도 거부한다. 그들은 모든 것이 다 같이 지구적으로 되는 제국의 시대에는 레닌이 말한 '가장 약한 고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제국의 헌법에는 더 이상 권력에 대한 어떠한 '외부'도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떠한 약한 고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모든 투쟁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제국의 심장, 그것의 강한 부분을 공격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은 어떤 지리적 지역에도 우선권이 주어져 있지 않다.…제국의 가상적 중심은 어떤 곳에서든 공격할 수 있다"(Hardt and Negri, 2000: 58-59) 그러나 "지구의 상이한 부분들은 자본에 대해 상이한 중요성을 갖는다.…트로츠키가 '불균등결합발전'이라고 부른 과정은 현대자본주의에서도 작용하며, 체제의 특정 지점에 부와 권력을 거대하게 집적시킨다. 이러한 불균등성은 적의 취약점을 우리의 주요한 강점을 식별하기 위해 전략적 분석과 논쟁을 요청한다"(Callinicos, 2001: 55). 2001년 9.11 대미테러,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의 봉기, 2003년 2월 부시의 이라크 침략 등의 사태는 오늘 세계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엄연히 존재함을 입증한다.

세계체제론자인 아리기(G.Arrighi)의 경우 부분적으로는 네그리-하트의『제국』을 비판하지만, 제국주의 국가간 갈등의 부재를 이유로 맑스주의 제국주의론을 기각한다는 점에서는 네그리-하트와 동일하다.2)

네그리-하트의'『제국』은 그들이 기각하는 레닌의 제국주의론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발전의 특정 단계에 대한 이론화, '패러다임화'를 시도한다. 네그리-하트의 『제국』의 단계론적 '패러다임화'에 대해서는 같은 '자율주의' 그룹에 속하는 홀로웨이(J.Holloway)의 다음과 같은 비판이 적절하다. "자율주의적 충동(autonomist impulse)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실증주의 이론의 중압 때문에 거의 질식될 지경이다. '패러다임' 개념 속에 계급투쟁과 계급구성에 관한 실증주의적 개념이 집약되어 있다.…패러다임화된 접근은 불가피하게 시간을 동결시킨다"(Holloway, 2002b: 83, 86). "『제국』은 자율주의적 충동을 배반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체를 구조 속에 감금했으며, '함'(doing)을 '존재'(being)에 종속시켰으며, 조절이론의 방법을 '좌파적'으로 비틀어 확장했기 때문이다.…지배의 패러다임이라는 관념 자체가 자본가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는 사실, 즉 자본의 존재는 항상적이며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투쟁이라는 사실을 은폐한다. 가장 나쁜 점은 아마도 '다중' 개념을 전개하면서 '함'의 중심성이 완전히 몰각된 것이다"(Holloway, 2002c).

 

3. 미국 제국주의 지배 현실의 부정

맑스주의 제국주의 개념에 입각할 때, 오늘의 세계는 미국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로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른바 세계화는 미국 제국주의의 세계적 지배의 확장과정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네그리-하트의 제국에는 중심적 헤게모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 따르면 제국의 권력은 일종의 "네트워크 권력"이다. 네그리-하트는 맑스주의 제국주의 개념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미국 제국주의 지배의 현실도 부정한다. 그들은 오늘 세계에는 어떤 중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늘 "제국주의와 달리 제국은 어떠한 영토적 권력의 중심도 설정하지 않으며, 고정된 경계나 장애물에 기초하지 않는다. 제국은 개방되고 확장되는 경계 속으로 전 지구 영역을 점진적으로 포함시켜가는 탈중심화되고 탈영토화된 규칙의 기구이다.…이러한 스무드한 제국의 공간에 권력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권력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 동시에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국은 유토피아라는 단어의 어원이 뜻하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non-place)이다"(Hardt and Negri, 2000: xii, 190).

네그리-하트는 미국 제국주의 지배의 현실을 명시적으로 부정한다. "오늘 미국은 그리고 어느 나라도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중심을 형성하지 못한다. 제국주의는 끝났다"(Hardt and Negri, 2000: xiv.). "미국 제국주의는 현대의 지구적 질서를 이론화하기 위해 적절한 개념이 아니다"(Hardt and Negri, 2002: 191). 네그리-하트는 미국이 설사 제국주의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약화되고 있고 곧 제국의 질서에 포섭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곧 제국주의적이기를 중지할 것이며 제국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Negri and Zolo, 2003: 27).

오늘 세계에 아무런 중심이 없다는 네그리와 하트의 핵심 주장은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다. 오늘 세계화가 미국 자본의 지배력의 세계적 확장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제국』은 구체적인 역사적 분석이라기보다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의 응용이다"(Callinicos, 2001: 51).


4.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진보성의 부정

제국주의 개념의 현실성을 부정하는 네그리와 하트는 당연히 민족주의 혹은 제3세계 개념의 의의도 모두 부정한다.

네그리-하트는 제국의 시대에는 제1세계·제2세계·제3세계와 같은 구별이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제3세계는 "제1세계 안으로 들어가 그 중심에 게토, 판자촌, 슬럼으로 자리 잡았으며" 제1세계는 "제3세계에 이전되어 주식거래소, 은행, 초국적기업, 돈과 명령의 마천루 형태로 되었다.…중심과 주변, 남과 북은 더 이상 국제질서를 정의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서로 가까이 접근했다"(Hardt and Negri, 2000: 254, 336). 그러나 이는 오늘 세계의 양극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1999년 이전의 '제3세계'의 1인당 평균 소득은 이전의 '제1세계'의 1인당 평균 소득의 4.6% 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1960년(4.5%)과 1980년(4.3%)의 수치와 거의 같다.…따라서 남북 분할의 소멸이 진행되고 있다는 하트와 네그리의 주장은 틀렸다"(Arrighi, 2002: 7).

네그리-하트는 제국의 시대에는 제3세계가 현실적으로 소멸했기 때문에 제3세계주의 혹은 민족해방운동의 진보적 역할도 소멸했다고 주장한다. "제3세계주의적 전망은 종전에는 좀 쓸모가 있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완전히 무용지물로 되었다. … 우리는 민족국가의 권력에 향수를 느끼는 것, 혹은 민족을 찬양하는 정치를 부활하는 것은 중대한 실수라고 생각한다. … 민족국가의 권력 쇠퇴와 국제질서의 해체는 '제3세계'라는 용어의 효과성을 결정적으로 종식시켰다"(Hardt and Negri, 2000: 264, 336, 333).

나아가 네그리-하트는 제국의 시대에는 국민국가 자체가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에 세계화에 대해 국민국가를 대립시키는 것은 반동적이라고 주장한다. "혹자는 생산적인 '생정치'(biopolitics)의 세계가 이에 대한 어떤 지배형태를 여전히 요청한다고, 또 현실적으로 우리는 거대 정부를 파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 수중에서 통제할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토록 오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전통을 괴롭혔던 이러한 환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Hardt and Negri, 2000: 349).

네그리-하트는 제국의 세계는 국민국가들과 경쟁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세계와 비교한다면 거대한 진보이기 때문에 제국의 경향을 거부하는 것은 반동이라고 주장한다. 네그리-하트는 제국의 헌법에 대항하여 국민국가의 역할을 다시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고 유해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다.

미국 제국주의 지배의 현실을 부정하는 네그리-하트는 반미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네그리는 최근 다닐로 졸로(Danilo Zolo)와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반미주의와 국민국가에 대한 신앙은 항상 같이 붙어 다닌다. 이것은 제3세계주의적 사회주의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최근의 진흙탕이다. 나는 이것은 소비에트 맑스주의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일탈이라고 생각한다. … 반미주의는 미국이 이탈리아나 남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세계시장에 삽입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부시의 정책이 다국적 자본주의의 지구적 귀족정 내에서의 소수의 정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반미주의는 위험한 정신 상태이며 이데올로기로서 분석적 데이터를 신비화하고 집합적 자본의 책임을 은폐한다"(Negri and Zolo, 2003: 26, 27).

 

5. 세계화의 찬양

네그리-하트가 말하는 '제국'은 세계화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 이는 네그리가 최근 제국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 데서도 분명하다. "제국은 지구적 자본의 도구들 ―이 도구들에는 주권적·경제적·군사적·문화적 등의 도구들이 있다 ―이 지향하는 극한이다. 이 국면에서 제국은 근본적으로 제도적 비장소성(non-place)과 집합적 자본이 사용하는 일련의 지구적 도구들간의 커다란 긴장으로 특징지어진다"(Negri and Zolo, 2003: 26).

물론 네그리-하트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제국' 개념은 세계화 국면보다 오늘 세계의 질적으로 새로운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또 세계화의 정치적 측면, 즉 세계화가 주권에 미친 결정적 영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세계화 개념과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Hardt and Negri, 2002: 181), 두 담론의 차이는 본질적이라기보다 수사학적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종종 초세계화론자(hyper- globaliser)의 관점이라고 불리는 것을 수용한다. 즉, 경제적 세계화가 국민국가를 지구적 자본의 단순한 도구로 전화시킨다는 관점을 수용한다"(Callinicos, 2001: 48).

네그리-하트는 세계화의 대안을 미국 헌법 정신의 실현에서 찾기조차 한다. 또 그들은 진보진영이 세계화의 흐름에 맞설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한다. "제한된 국지적 자율성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로는 제국에 저항하지 못한다. … 자본의 세계화에 저항할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가속시켜야 한다. … 제국은 오직 자신의 일반성의 수준에서 그것이 제공하는 과정을 현재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압박을 가함으로써만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다. 우리는 세계화의 흐름을 수용하여 글로벌하게 사고하고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계화에는 '대항-세계화'(counter- globalization)로 대처해야 하고 제국에는 '대항-제국'(counter-Empire)으로 대처해야 한다"(Hardt and Negri, 2000: 206-207).

네그리-하트는 제국을 찬양하기조차 한다. "우리는 제국이 다중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전의 권력 패러다임에 비해 덜 나쁘다고, 혹은 더 좋다고 생각한다"(Hardt and Negri, 2000: 353). 네그리-하트에게서 "네트워크라는 은유법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다소 변호론적 설명을 위해 많이 사용된다. 왜냐하면 네트워크라는 은유법은 위계와 권력의 집중의 부재를 암시하는 데 봉사하기 때문이다"(Callinicos, 2001: 48). 네그리-하트는 제국은 베스트팔렌적 주권 국가 체제에 대한 긍정적인 지양이라고 주장한다. 제국은 국가들과 민족주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종지부를 찍고 사해동포주의적 전망을 열었기 때문에 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제국은 "근대적 권력의 잔혹한 체제들을 제거"했으며, "창조와 해방을 위한 더 큰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전 시대에 비해 "더 좋다"고 주장한다((Hardt and Negri, 2000: 218). 네그리-하트는 제국에서는 전쟁 경향이 억제되므로 전쟁광 부시의 갱들에 비하면 제국이 훨씬 좋다고 주장한다. 네그리-하트는 다국적기업은 부시 갱들을 타도하는 것에 이해관계를 가질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오늘날 부시의 갱들을 몰아내는 유일하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도는 다국적기업의 귀족정적 권력을 통하는 길뿐이다. 이것은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지구적 다중의 운동에게 제국 내에서의 민주적 권력의 형성 과정을 진전시키 위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Hardt and Negri, 2003: 29). 이로부터 네그리-하트는 제국에 대항하는 것은 제국의 길에 동참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로부터 네그리-하트의 '제국론'의 실천적 함의가 미국 제국주의가 주도하는 세계화의 승인과 투항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6. 노동자운동의 중심성 부정

자본주의·제국주의와 같은 맑스주의의 핵심 개념의 현실성을 부정하는 네그리-하트가 맑스주의 정치의 핵심인 노동자운동의 중심성을 부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오늘 우리는 19세기와 20세기 주요한 부분을 통해 발전해온 제도적 노동자 조직들과 같은 전통적 저항 형태들이 힘을 잃고 있음을 본다. 다시 한번 새로운 저항의 유형이 발견되어야 한다"(Hardt and Negri, 2000: 308). 그들은 전세계 노동자운동이 새로운 공세로 전환하는 획기로 이야기되는 1990년대 후반 프랑스와 한국에서의 총파업도 다음과 같이 폄하한다. "파리와 서울에서의 총파업은 우리를 대공장 노동자 시대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 같다. 이는 죽어 가는 노동자계급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 같은 형국이다. 이들 투쟁은 처음부터 이미 늙었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인다"(Hardt and Negri, 2000: 56).

네그리-하트는 '제국'의 변혁의 주체로 노동자계급이나 인민이 아니라 이른바 '다중'(multitude)을 주장한다. 네그리-하트는 '다중'은 제국의 시대에서 세계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해방의 기회를 포착했는데, 그 중 중요한 것은 이민이라고 주장한다. "속박에 대한 다중의 저항 - 민족, 하나의 정체성, 민중에 노예처럼 귀속되는 것에 대한 투쟁, 따라서 주권과 그것이 주체성에 부과하는 제약으로부터의 도망 - 은 전적으로 긍정적이다.…오늘날 제3세계 해방의 진정한 영웅은 구래의 그리고 새로운 경계를 파괴하는 이민자들과 인구의 흐름이다"(Hardt and Negri, 2000: 361-3).

 

그러나 '다중' 개념으로 계급분석을 대체하려는 네그리-하트의 시도에 대해서는 자율주의에 대해 친화적인 맑스주의자들로부터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레즈닉(S.Resnick)과 울프(R.Wolff)는 네그리-하트의 '다중' 개념이 다중 내부에서 계급적 차이의 문제를 경시했다고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우리는 하트와 네그리가 제국이 생산하는 다차원적이고, 무정형적이고, 끊임없이 변하는 주체들을 강조하려 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복잡성을 단순성으로 환원할 어떤 의도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계급적 차이가 누락된 것에 항의한다. 왜냐하면 계급적 차이는 다중과 제국에 반대하는 효과적 통일을 위한 다중의 능력을 분석하는 데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다중'에 대한 제국의 이론화는 너무 집계적이어서 다중 내부에서 계급적 차이의 문제가 극소화되거나 주변화되었다"(Resnick and Wolff, 2001: 68, 69).

홀로웨이도 네그리-하트가 노동자계급 개념을 다중 개념으로 대체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아마도 가장 나쁜 사태는 '다중' 개념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함'(doing)의 중심성이 완전히 몰각된 것이다. '노동자계급'이라는 개념은 그 모든 문제점, 그 모든 물신숭배적 왜곡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인간의 합목적 활동, 사회적 함(social doing)의 중심성을 우리에게 환기해 주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다중 개념에는 이것이 완전히 빠져있다. 만약 '함'이 우리 사상의 중심에 있지 않다면, 남는 것은 모두 반대일 뿐이며 희망은 없을 것이다"(Holloway, 2002c).3)

네그리-하트의 다중 개념의 절대화는 조직노동계급의 중심적 의의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에서 그들의 다중 개념이 1970년대 말 자율주의 운동 쇠퇴기에 그들이 주장한 '사회적 노동자'(social worker) 개념 ―이는 자본주의의 억압을 받는 모든 사람들, 피고용자와 실업자 모두를 포함한다 ―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네그리-하트의 다중 중심 변혁 전략은 반자본주의 운동에 기여하기는커녕 "지구적 정의를 위한 새로운 투쟁의 장기적 성공을 위해 결정적인 반자본주의 청년과 노동자 대중 간의 연대 구축에 관한 진지한 전략적 사고를 방해한다"(Post, 2002)


7. 개량주의 정치로의 전락

네그리-하트는 고전 맑스주의 전통의 자본주의 분석과 함께 그 혁명론도 거부한다. 네그리-하트는 고전 맑스주의 혁명론의 핵심인 레닌주의 정치를 거부한다. 네그리-하트는 운동에서 조직과 지도의 개념을 거부한다. 그들은 조직과 지도가 취약한 것은 운동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될 수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예컨대 그들은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력은 다른 선진국 노동자들의 그것보다 강한데 그 이유는 미국에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고 노동자 정당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는다.

네그리-하트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대항문화 운동을 찬양하고, 강령 없이 행동하고 조직적 중심과 규율 있는 전위를 결여한 다중을 찬양하고, 아나코생디칼리즘적 조직이었던 IWW를 운동 모델로 치켜세우는데 여기서 그들의 아나키즘적 편향이 분명히 드러난다(Nimtz, 2002: 54).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의 불균등성과 노동자계급 의식 상태의 불균등성 때문에 자본주의의 혁명적 변혁운동은 혁명적 조직을 필요로 한다는 레닌의 당조직론은 21세기 세계화 국면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4)

네그리-하트의 급진적 아나키즘의 수사학은 실제 대안을 제시하는 단계에 이르면 상투적인 개량주의 정치로 합류한다. 네그리-하트가 결론에서 제안하는 이른바 제국에 대한 세 가지 대안 즉, ① 세계시민권, ② 사회적 임금수령권, ③ 지식정보 공유권은 실제로는 이들이 부정하는 국민국가를 전제 혹은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도 없는 것들이다.5) 무엇보다 이들 요구는 제국에 전혀 무해한 체제내적 요구들이다. 즉, 이 요구들은 맑스주의적 사회주의적 대안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적 개량주의 프로젝트일 뿐이다.

네그리-하트를 비롯한 자율주의 정치의 개량주의적 본질은 홀로웨이의 최근작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에서 분명하게 보여진다. 홀로웨이는 "우리 자신의 세계 (즉, 사회주의필자)가 단지 혁명 이후에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만약 우리가 "자본의 조건에 따라 자본과 씨름하지 않도록" 주의한다면 지금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6)





* 본 원고는 자료집 인쇄 일정에 맞춰 제출된지라, 채 완성을 보지 못한 상태입니다. 필자 및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 미주

1) 이 글은 정성진(2003) 중 네그리·하트의『제국』비판 부분을 보완한 것이다.

2) 아리기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20세기 전반기의 추세를 예측하는 데서 매우 성공적이었던 '제국주의' 이론들은 이제 완전히 무용지물로 되었다. 제국주의론이 무용지물로 된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헤게모니 하의 세계자본주의가 더 이상 자본주의 열강들간의 전쟁 경향을 낳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Arrighi, 2002: 10).

3) 그러나 홀로웨이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이해 역시 고전 맑스주의 전통의 그것과는 다르다. 예컨대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노동자계급은 정의됨으로써 특정한 인간 집단으로 식별된다. …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는 노동자계급에 '속하는가'? 맑스와 레닌은? 치아파스의 반란군은 노동자계급의 부분인가? 동성애 운동 활동가들은 노동자계급의 부분인가? 경찰은 어떤가?" 홀로웨이는 노동자계급에는 "축적에 의해 그들의 삶이 뒤집혀진 사람들(치아빠스의 원주민들, 대학 강사들, 석탄 광부들, 사실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포함된다(Holloway, 2002a: 145). 그러나 이처럼 상이한 사회계급들을 뭉뚱그려 모두 노동자계급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실제로는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4) 지젝(S.Zizek)은 네그리-하트의 『제국』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제국』은 전맑스주의적(pre-Marxist) 책이다. 하지만 아마도 해결책은 맑스로 되돌아가는 것, 맑스의 분석을 반복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며, 레닌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 오늘날 '레닌주의'의 핵심적 교훈은 다음과 같다. 즉 당의 조직 형태 없는 정치는 정치 없는 정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단지 (아주 절절하게 명명되었듯이) '신사회운동'만을 원하는 이들에게 대한 대답은 자코뱅이 지롱드주의적 타협자들에게 한 대답과 같다. '당신들은 혁명 없는 혁명을 원한다'"(Zizek, 2001: 193, 198).

5) "이러한 요구들의 문제점은 예컨대 사회적 임금 요구에서 보듯이 그것들이 국민국가의 정부에 대해 요구될 때에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한편에서는 국민국가가 투쟁의 장소가 될 수 없다고 기각하면서, 다른 한편에서 국가 수준에서의 입법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요구를 제출하는 것은 모순이다" (Proyect, 2001).

6) Holloway(2002a)에 대한 상세한 비판으로는 D'Amato(2003), Gonzalez(2003)을 참조할 수 있다.

 

[참고문헌]

정성진, 2003, 「21세기 미국 제국주의―맑스주의적 분석」, 『사회경제평론』, 제20호.
Arrighi, G. 2002, "Lineages of Empire," Historical Materialism, vol.10. no.3.
Callinicos, A., 2002, "Marxism and Global Governance," in D.Held and A.McGrew eds., Governing Globalization, Polity.
Callinicos, A., 2001, "Toni Negri in Perspective," International Socialism, no.92.
Chingo, J. and G. Dunga, 2001, "Empire or Imperialism?," Estrategia Internacional, no.17.
D'Amato, P., 2003, "The Powerlessness of Anti-Power," International Socialist Review, no.27.
Dyer-Witheford, N., 2001, "Empire, Immaterial Labor, the New Combinations, and the Global Worker," Rethinking Marxism, vol.13 no.3/4.
Gonzalez, M., 2003, "Crying out for Revolution," International Socialism, no.99.
Hardt, M. and A. Negri, 2002, "The Global Coliseum: on Empire", Cultural Studies, vol.15 bo.2.
Hardt, M. and A. Negri, 2000, Empire, Harvard University Press(윤수종 옮김, 『제국』, 이학사, 2001).
Henwood, D., 2001, "Blows against Empire," Left Business Observer, no.96, February.
Holloway, J., 2002a, Change the World without Taking Power, Pluto Press(조정환 옮김,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갈무리, 2002)
Holloway, J., 2002b, "Going in the Wrong Direction; Or, Mephistopheles-Not Saint Francis of Assisi," Historical Materialism, vol.10 no.1.
Holloway, J., 2002c, "Time to Revolt: Reflections on Empire," The Commoner. www.commoner.org.uk .
Negri, N. and D.Aolo, 2003, "Empire and Multitude," Radical Philosophy, no.120.
Nimtz, A., 2002, "Class Struggle under 'Empire': In Defense of Marx and Engels," International Socialism, no.96.
Panitch, L. and S. Gindin, 2002, "Gems and Baubles in Empire," Historical Materialism, vol.10 no.2.
Post, C., 2002, "Empire and Revolution," International Viewpoint, no.341.
Proyect, L., 2001, "Hardt-Negri's 'Empire': a Marxist Critique," July 10, http://www. marxmail.org.
Resnick, S. and R. Wolff, 2001, "Empire and Class Analysis," Rethinking Marxism, vol.13 no.3/4.
Zizek, S., 2001, "Have 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Rewritten the Communist Manifesto for the Twenty-First Century?" Rethinking Marxism, vol.13 no.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