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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916호(2011. 3/15)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5&art_id=201103091810331

 

 

[신동호가 만난 사람]“국가규모 토목사업 행복한 경제 될 수 없어요”

ㆍ영화 <행복의 경제학> 감독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국내에서만 40만 부가 넘게 팔려 환경·생태 분야의 고전적 저작이 된 <오래된 미래>를 읽으면서 이유를 잘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인도 고산 오지 마을 라다크의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에 경애심이 우러났고, 그 행복하고 평화로운 공동체가 서구 자본과 문화의 유입으로 붕괴되는 모습에 애통한 마음이 들었다.

 


부끄러움의 실체는 분명히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여사의 섬세한 필치 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를 만날 기회가 찾아왔다. 자신이 직접 연출하고 제작한 <행복의 경제학>이라는 영화를 들고 방한한 것이다.

그를 인터뷰하기 전에 두 군데 시사회장에 가보았는데, 두 가지 점에서 기자를 놀라게 했다. 하나는 지루하게도 영화가 내레이션으로만 구성돼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석이 붐볐고 관객의 반응 또한 진지하고 뜨거웠던 점이다.

인터뷰하려고 마음먹고 그를 찬찬히 뜯어보니 평범하지 않은 생각과 행동만큼이나 행색도 남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생머리, 코트 아래까지 늘어뜨린 머플러, 무릎까지 올라오는 어그부츠…. 간단치 않은 나이(65세)인데도 상당히 도발적인(?) 차림을 하고 있었다. 저 나이에 보헤미안 스타일의 자유분방한 패션이 어울릴 수 있다니! 그를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또 있다. 흔히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 세계적인 여성 생태환경운동가로 소개되지만 이는 그의 일부를 규정할 뿐이다. 라다크와 관련된 활동 외에는 뜻밖에 그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다. 이름부터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기자도 ‘호지 여사’라고 부르는 실례를 범했다. 인터뷰는 2월 26일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 세미나실에서 환경재단 김영우 서울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의 통역으로 진행됐다.

노르베리와 호지 사이에 하이픈(-)이 있는데, 정확한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헬레나가 이름이고 노르베리-호지가 성이에요. 노르베리는 원래 타고난 이름이고요.”

서양식 명명법으로는 남편의 성을 따라 ‘헬레나 페이지’라고 해야 맞다. 노르베리가 미들네임이 아니니까 흔히 표기하는 ‘헬레나 호지’도 틀리는 것이 된다. 다음은 국적이다. 공식적으로 그는 스웨덴과 영국 국적을 갖고 있다. 좀 긴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는 스웨덴인이고 어머니는 독일인이며 미국에서 태어나 스웨덴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부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하고 영국과 프랑스에서 언어학자로 활동했으며 영국인과 결혼했습니다. <행복의 경제학>을 보니 라다크를 제1의 고향으로 삼는다더군요. 지금 주로 거주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아니, 어머니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스웨덴 사람이에요. 저는 부모님이 2차 세계대전 끝나고 나서 잠시 미국에 가셨는데 그때 태어났고요. 지금은 호주에 살고 있습니다. 소비문화가 그리 지배적이지 않은 곳, 사람들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지고 자연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에 있으면 오히려 그곳이 집 같다는 느낌이 들죠.”

그래도 스스로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서류상의 국적이 아닌 뜻에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세계화된 사람이라고 대답하죠. 굳이 말하면 고향이 스웨덴이어야 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많이 돌아다니고 활동을 하니까 특정 국가에 대한 소속감은 별로 없어요. 두 가지 문화를 다 경험한 사람, 특히 서양화된 사람이 시골 생활을 경험하는 경우 지역적인 삶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거든요. 반다나 시바(인도 환경운동가) 같은 분처럼 서양에서 공부했으면서도 시골이나 지역에 가는 경우가 많지요.”

세계인, 즉 국적 의식 없이 활동하는 그의 자유로운 기질이 그 특유의 ‘집시 룩’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런데 그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긴 머리, 긴 목도리, 긴 부츠 차림이 노르베리-호지 여사의 트레이드마크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추울 때만 그렇게 입어요. 늘 그런 건 아니에요. 헤어스타일은 제 나이면 짧게 하는 건데, 남편이 긴 머리를 좋아해요. (손으로 목덜미 쪽을 가리키며) 저는 이 정도로 짧게 하고 싶거든요.”

<행복의 경제학> 공동 연출자로서 이번에 함께 방한한 존 페이지가 그의 남편이다. 그가 호주 브리스번 남쪽의 바이런베이라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 살게 된 것도 남편 때문이라고 한다. 그곳을 남편이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행할 때 늘 남편과 함께 다니느냐는 질문에는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단호하게 “노”라고 짧게 대답했다. 남편 성을 따르지 않고 사회활동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적인 면모와 남편의 기호에 헤어스타일을 맞추는 ‘애부가’적 면모를 함께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또 한 가지 정리해야 할 것은 그의 활동이다. 원래 언어학자였던 그는 언어 연구를 위해 라다크에 갔다가 작가, 생태환경운동가, 에코페미니스트, 반세계화·반개발·탈중심화 운동가 등으로 불리게 된다. 다큐멘터리 감독 타이틀도 얻었다. <행복의 경제학>에는 경제분석가로 소개됐다.

자신을 지칭하는 여러 가지 직업명 중에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듭니까.
“그런 것 이상으로 경제라는 큰 틀에서 보고 싶습니다. 특히 세계화가 문화와 농업에 미치는 큰 영향들을 보는 사람 말이죠. 특정한 직업으로 국한되는 것보다 그것을 다 초월해서 전반적인 세계화의 영향들을 분석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싶거든요. 그런 것들이 라다크만 봐서 생기는 현상들이 아니라 전 세계에 일어나는 변화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겠어요.”

그는 7개국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5세까지 모국어인 스웨덴어를 비롯해 영어·독어·불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 등 6개 국어를 습득했으며, 노암 촘스키에게서 언어학을 배웠고, 라다크에 16년 동안 거주하면서 라다크어를 익혔다.

원래 언어학자였는데, 요즘 언어 연구는 안 합니까.

“지금은 언어학에 관심이 없습니다.”
서구 문명의 한가운데에 살던 언어학자가 서구 문명을 비판하고 힘들게 공부한 언어학까지 버린 계기가 라다크에서의 생활임은 잘 알려진 얘기다. 그는 지난 2월 24일 서울 종로구 씨네코드선재에서 가진 환경재단 주최 <행복의 경제학> 특별상영회에서 그 이유를 재확인했다.

“제가 처음 만난 라다크 사람들은 즐겁고 생기가 넘쳤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이었죠. 하지만 서구 자본이 들어오면서 변하기 시작했어요. 스스로 열등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죠. 눈 색깔이 달라서, 생김새가 달라서 말입니다. 비단 라다크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현대 문명이 자기혐오와 자기열등을 양산하거든요. 미디어에 나오는 서구 모델을 바라보며 자기가 바비 인형이 아니라서 속상해 합니다.”

<오래된 미래>가 라다크 전통사회의 미덕과 변화상을 다룬 것이라면 <행복의 경제학>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라다크적 변화’의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그는 문제의 근원이 세계화(globalization)에 있음을 지적하고 그 해결책을 지역화(localization)에서 찾았다. ‘행복한 경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줄이는 지역 단위의 ‘작은 경제’에 있음을 강조하고 로컬푸드 운동, 트랜지션타운 운동(탈석유 마을 운동), 지역소작농 운동 등 세계적인 지역화 운동의 사례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그런 내용과 메시지를 책이 아니라 영화로 전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특히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책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사람의 얼굴을 드러내는 거죠. 왜냐하면 세계화가 되면서 정형화된 이미지들이 있으니까 다양한 얼굴,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행복의 경제학>에는 그와 반다나 시바를 비롯해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인 삼동 린포체, ‘350캠페인’을 이끄는 미국 환경운동가 빌 매키번, 일본 슬로라이프 운동가 오이와 케이보(필명 쓰지 신이치), 트랜지션타운 운동 창시자 롭 홉킨스 등 30명 가까운 인물이 등장해 세계화의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고 지역화의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노르베리-호지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이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통해서이고 그 영향력이 컸습니다. 어떻게 보면 작가적 활동이 영화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활동하는 목적은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한테 좀 더 다가가기 위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다가갈 수 있는가를 궁리하다 보니까 책뿐만 아니라 영화까지 하게 된 거죠.”

유명해지거나 돈을 버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잖습니까.
“라다크에 대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 때 개발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전통문화에 대한 내용에 치중했다면 더 많은 책을 더 쉽게 팔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TV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에도 나오면서 유명해졌겠죠. 저는 그 부분을 희생하는 대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다루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특히 미국 같은 데서 먼저 유명해지고 나서 그 일을 했다면 또 달라질 수도 있었겠죠. 모금에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것도 아쉬운 점이고요. 영화를 만들거나 여러 부분에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행복의 경제학>에서 던진 핵심 메시지가 “경제 변화를 위한 운동에 동참하자”는 것 아닙니까. 경제의 지역화 운동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는 우리가 지역경제공동체를 강화하는 것이 탄소 배출을 낮출 뿐 아니라 삶의 질을 구체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풍족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이에요. 이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이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제일 많이 쓰는 단어 중의 하나가 탈중심화(decentralization)인데, 이런 운동이 지역에서 정부의 지원이나 후원 없이도 자발적으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요. 이것은 사람들의 요구일 뿐 아니라 자연의 요구이기도 합니다.”

노르베리-호지 여사는 1976년 라다크의 전통과 환경을 복원하는 ‘라다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학자에서 운동가로 나섰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1991년 ‘생태와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ISEC)를 창립, 지금껏 대표를 맡고 있다. <오래된 미래>의 인세도 이 조직으로 전액 기부된다.

이번이 다섯 번째 한국 방문인데, 어떤 인상을 받습니까. 또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변화가 있습니까.
“오래 머물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이 굉장히 지적이고 똑똑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전체적인 의미나 심오하게 깊은 측면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제게 질문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스트레스가 크고 근래에 자살률이 굉장히 높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미국이랑 비교해 볼 때 개인주의가 아직까지는 많이 발달하지 않았고 지역공동체도 살아 있기 때문에 경제의 지역화와 관련한 국제운동이 진행되면 한국이 굉장히 주도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한국은 인구 밀도가 높고 상당 부분 개발이 된 상태, 그것도 난개발이 된 상태인데 경제의 지역화 운동을 한다면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경제를 이해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경제학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라 경제의 시스템이라든가 구조적인 측면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경제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으면 예를 들어 유기농 상품이 대량생산된 상품보다 더 비싸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대기업이라든가 대량생산이 가지고 있는 허상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다면 ‘행복의 경제학’ 측면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정확한 내용은 잘 몰라요. 일반적으로 얘기하자면 국가 규모의 대규모 토목사업들은 기본적으로 제 책이나 영화에서 얘기하는 것과 맞지 않죠. 당연히 비용도 많이 들고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도 않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든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득 <오래된 미래>를 읽고 <행복의 경제학>을 보면서 막연하게 느꼈던 자괴감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라다크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산업화의 성공 신화를 자랑하고 세계화를 통한 선진화의 꿈을 구가한다. ‘바비 인형’이 아니어서 속상해 했고, 그 때문에 속상해 한 것을 생각하니 또 속상하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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