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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담서원의 새로운 실험 '작은 공간의 가능성' | ||||||||||||||||||||||||
[인터뷰] 박성준, 길담서원 서원지기 -최초의 발상에 누구나 참여하는..즉흥성과 공동체의 센스가 중요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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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복궁 근처, 통인동에 있는 길담서원을 찾았다. 우리은행(효자동지점)옆 작은 꽃집 골목에 들어서면, 이런 후미진 곳에 무엇이 있을까 싶지만, 골목 왼편 끝자락에 이르면 아늑한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길담서원'이다. 절친한 두집 아이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 씩 따와서 ‘길담’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데, 시골 고샅길 사이로 둘러쳐진 낮은 흙담장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편안한 곳이다. 말 그대로 '서원', 책방이라서 같은 '서원'을 운영하는 성바오로딸 수녀들이 이따금 찾아오곤 한다는 것이 서원 지기의 말이다.
"내가 열었다" 말할 수 없어... 나는 n분의 1일뿐 박성준 씨는 길담서원을 열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부터 의도나 목적을 세워두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이런 공간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서원을 ‘만들었다’기 보다는 작은 공간 하나를 그저 '열어놓은‘ 것이다. 어떤 공간이든 나름의 힘, 나름의 숨결과 향기를 가지고 있다. 또 공간은 사람들을 보듬는 ’품‘이기도 하다. 그 품 안에서 사람들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공간의 힘, 숨결, 품은 어느 한 사람이 만들 수 없는 것이고, 그 공간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더불어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박성준 씨는 길담서원의 성격에 관해 말하면서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거미가 쳐둔 ‘거미줄’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그런 공간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목적이 없는 게 목적"이 되고, "길이 없는 게 길"이라는 생각으로 살다보면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느덧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을 믿는다. 그는 2008년 2월 25일에 길담서원 오프닝(openning)을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오프닝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 "내가 열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하지 않고, "지금도 열어가고 있다.“ ”우리 함께 열어가자!"고 초대하는 공간이 길담서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길담서원이 의미있는 공간이 되는 것은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그 자신 역시 서원에서는 n분의 1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여러분이 오셔서 주인이 되어 주세요"하고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들이 이 열려진 공간에 와서 이 공간의 인격과 품을 만들어가기 바라는 까닭이다. 이곳에서 모두가 쉬고 위로를 받고 희망의 근거가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낡은 시대의 지도력으로 새로운 세대 끌어안을 수 없어..
박성준 씨는 길담서원이 하는 일이나 꿈, 아이디어, 모든 생각을 열어놓고 함께 하자고 청한다. 무슨 일을 하든 "처음 아이디어를 내는 단계에서부터 함께 하자"는 것이다. 뭐든지 ‘최초의 발상을 누가 했는지'가 중요하며, 최초의 발상에 내가 참여했을 경우 그 일 또는 생각의 주인이 ’나‘라는 자각을 갖게 되고 자기 안에서 신명이 솟아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길담서원에서는 되도록이면 발상의 단계에서부터 여럿이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며, 생각의 주체를 그 공간에 찾아오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두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각자 주인이고 주체인 참여자들의 안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신명은 길담공간을 ‘신명나는 문화놀이터’로 만들어 간다.
불탄 남대문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재건에 함께하는 국민적 참여의 과정은 소멸하여 버렸다. 가장 중요한 과정은 생략되어 버리고 관료적인 재건의 결과만 ‘짠’하고 전시될 것이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끼리 뚝닥거리고, 조만간 짠하고 결과만 선보일 것이다. 그렇게 재건된 남대문은 우리들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재건된 남대문은 이런 낡은 시대의 사고와 일처리 방식의 사례와 증거로서 길이 남게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즉흥성'(improvisation)을 존중하는 분위기다. 처음부터 어떤 사람이 주도적으로 의도하고 기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구라도 어떤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게 '느낌'이 썩 좋으면 카페를 통해 운을 띄워보는 것이다. 나와 우리에게 좋고 의미있는 일은 신명을 돋구어 준다. 미리 가진 용의주도한 생각이나 사상, 기획으로 조직하는 게 아니라,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떠오른 생각이나 그 생각의 실마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갑자기 뭔가 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해질 때 하나의 발상(idea)이 생겨난다. 즉흥성을 중시하면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인데 길담서원은 이런 즉흥성과 시행착오를 창조의 한 엣센스로 받아들인다. 자신들이 시작한 일이어서 결과에 상관없이 모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된다. "즉흥성, 느낌" 이런 말들은 박성준 씨가 퀘이커의 전통으로부터 배운 것이기도 하다. 퀘이커들은 350년 전부터 '센스(sense)'란 말을 중시한다. ‘공동체의 센스(sense of the meeting)'란 말인데, 공동체가 원하는 것을 함께 감지한다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내게 꿈이 있어요(I have a dream)'라고 말했을 때 그 '꿈'에 해당하는 말이 ’sense‘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이다. 그게 어떤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일 때 '참 좋은 일'이 된다. 예를 들어 청소년인문학교실도 그렇게 탄생했다고 한다. 중학교 1-2학년생이 어른들과 대등하게 준비 모임에 참석해 발언도 하고, 여기서 나온 이야기를 대표 집필해서 카페에 올리기도 한다. 함께 회의에 참석했던 어른들이 댓글로 청소년의 글을 격려해주고 보완도 해주면서 진행된다. 그래서 길담서원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은 모두 '과거와 다른 방식이 가능한지 묻고 찾아가는' 놀이이며 실험이고 연습이다. 그리고 이래야 재미가 있고, 좋은 내용의 기획이 나온다. 그 과정이 즐거운 놀이가 되고 우정의 공간이 된다. 이렇게 놀이와 축제의 요소, 즉흥성의 요소가 없으면, 창조는 일어나지 않는다. 주도면밀하게 기획된 프로그램엔 수동적인, 때로는 동원된 청중이 참가하지만, 거기엔 진정한 참여는 없고 신명이 없어서, 자기 생각으로 참여하고 창조의 주인이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누구나 틈입하고 주인이 되는 서원을 꿈꾸다
그런 의미에서 길담서원은 여느 책방과 다르다. '서원(書院)'이라고 이름 지을 때부터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서원의 의미와도 다른, 우리시대의 문화를 호흡하고 우리시대의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진지'라고나 할까.
박성준 씨는 "한 사람의 생각은 한 사람의 경험에 갇힐 수밖에 없으므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구상을 열어놓고 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수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서원을 통해 꿈꾸고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이도 많고 앞으로 서원에 오래 머무를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공간의 주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곳에 참여하는 사람이 주인이다. 그런 개방성이 중요한데, 누군가 용이주도하게 기획하면 이렇게 다른 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진다."
박성준 씨는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만남도 즉흥적으로 이뤄지고 갑작스럽게 모임이 만들어지는 그런 서원을 꿈꾼다. 그리고 이런 서원들이 우리 사회에 점점 많아질 때 우리사회가 새로운 꿈을 꾸기 사작할 것이라고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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