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전환기에 요구되는 심사숙고
요즈음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심사숙고라는 말처럼 절실한 느낌을 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오는 9월까지 진보통합당을 건설해야 하는 전환기에 처해있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심사숙고다.
무엇을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말일까?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라면 누구나 고심하고 있는 것처럼,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변혁을 전진시킬 힘있는 전선을 구축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민주주의변혁을 전진시킬 힘있는 전선을 구축하는 당면과업은 지금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로 추진되고 있다.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민주주의변혁노선에 맞게 건설하면 민주주의변혁이 한 걸음 더 전진할 것이지만,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좌우경적 오류를 저지르면 민주주변혁을 한 걸음 더 전진시키기는커녕 후퇴하거나 좌절할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과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제기된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 강화한 진보통합당을 건설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새로 건설한 진보통합당이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면, 외형상 당은 건설하였으되 당건설은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당건설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판별기준은, 대중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에 달려있다.
만일 새로운 진보통합당이 민주노동당보다 더 높은 대중적 지지기반을 갖지 못한다면, 민주노동당을 강화, 발전시킬 방도를 찾으면 되는 것이지 무엇 때문에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그토록 힘들여 건설하여야 하겠는가!
대중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하지 않고,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자기 정당 또는 자기 정파의 이해관계부터 따지는 것도 옳지 않고, 또한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면 자동적으로 대중적 지지수준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옳지 않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건설하려는 새로운 진보통합당은, 대중적 지지기반을 크게 확대, 강화하였다는 뜻에서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를 앞에 붙인 진보통합당이다.
민생경제 회생과 정권교체의 결부
각계각층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받으며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려면, 대중이 가장 절실하게 여기는 당면문제에 '감동적인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난 현안을 꺼내들고 대중의 관심사와는 무관한 논쟁이나 벌이면서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려는 것은, 대중의 외면을 자초하는 패착이다.
이를테면, 북측의 후계문제는 지금 남측 대중이 절실하게 여기는 당면문제가 아닌 데도 그 문제를 당건설의 중요쟁점으로 제기하고 집요하게 논쟁하는 것은, 대중의 외면을 자초하는 패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지금 일부 세력이 북측의 후계문제를 당건설의 중요쟁점으로 제기하여 논쟁하는 것은, 북측의 후계문제에 대해 자기들과 다른 관점을 가진 세력과 맞서려는 정치공학적 행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 행동이야말로 정파 이익에 집착하여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을 난관에 빠뜨리는 옹졸한 짓이다.
그렇다면 이 땅의 대중이 가장 절실하게 여기는 당면문제는 무엇일까? 대중에게 가장 절실한 당면문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과 생활권을 보장해주는 민생경제다. 다시 말해서, 파탄으로 기울어진 민생경제를 살리는 문제가 가장 절실한 당면문제라는 말이다.
이 글을 집필하는 시각,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벌어진 치열한 투쟁은 정리해고제를 철폐하여 민생경제를 살리는 것이 얼마나 절박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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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밤 영도조선소를 향해 행진하는 정당 사회단체 대표, 노동자, 시민들.
(민주노동당 진보정치 2011년 7월 10일 보도사진) |
민생경제라는 개념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배제하고 부유층과 특권층에게만 무한이익을 보장해주는 국가경제라는 개념에서 분리된다. 국가경제와 민생경제를 분리하여 생각할 때, 국가경제는 성장을 거듭하고 민생경제는 쇠락을 거듭하는 국부민빈(國富民貧)의 모순이 겉으로 드러난다.
새로운 진보통합당이 파탄으로 기울어진 민생경제를 살릴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면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지금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가한 여러 사회정치세력들은 파탄으로 기울어진 민생경제를 살릴 어떤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고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능력이란 민생경제를 살릴 정치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을 뜻하는데,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가한 여러 사회정치세력들 가운데 특히 좌파성향의 정치세력은 민생경제를 살릴 정치적 해결책을 신자유주의 극복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들의 설명법에 따르면, 신자유주의가 민생경제를 파탄시켰으므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면 민생경제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설명에서 신자유주의 극복과 민생경제 회생은 동의어로 등장한다.
그러나 주목하는 것은,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신자유주의 극복과 민생경제 회생을 등치시킨 설명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서울 한 복판에서 길거리를 지나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신자유주의가 무슨 뜻인지 설문조사를 실시한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응답자는 몇 명이나 될까?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에서 만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신자유주의는 생소한 '먹물용어'로 들린다.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민생경제 회생과 신자유주의 극복을 동일시하는 설명법에 익숙하지 못하다. 민생경제를 살리려면 신자유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설명은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 땅의 대중은 신자유주의에 대해 반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적극 추종하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 반감을 느끼고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민생경제를 파탄시킨 책임을 신자유주의에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가한 여러 사회정치세력들은 민생경제 파탄의 책임을 신자유주의라는 추상적 개념에 결부시켜 대중과의 소통을 힘들게 만들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을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이명박 정권이라는 투쟁대상에 결부시켜야 대중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다.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민생경제를 망쳐놓고 부유층과 특권층만 잘 살게 만드는 이명박 정권을 2012년 선거에서 갈아치워야 민생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좌파성향의 정치세력이 민생경제 회생과 신자유주의 극복을 결부시키고 있는 것에 비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민생경제 회생과 정권교체 실현을 결부시키고 있다.
정권교체로 민생경제를 살리는 것, 바로 이것이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절실한 심정으로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제기하는 정치적 요구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2012년 선거에서 이명박 정권을 갈아치우고 민생경제를 살려줄 정당이 출현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가한 여러 사회정치세력들은 바로 그러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요구와 기대를 적극 받아들이고, 그에 기초하여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국민참여당의 민주노동당과의 거리 좁히기를 바라보는 중도좌파의 시각
새로운 진보통합당이 신자유주의 극복을 자기의 정치강령으로 채택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새로운 진보통합당의 투쟁목표를 신자유주의 극복이라는 진보적 개념으로 추상화할 것이 아니라 민생경제 회복이라는 대중적 요구로 구체화해야 하며, 새로운 진보통합당의 투쟁대상을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이라는 실체로 정해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가한 여러 사회정치세력들이 반신자유주의 진보통합당의 모습이 아니라 반이명박-반한나라당 진보통합당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야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음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문제를 생각하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진보정치세력들끼리만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할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찬성하지 않는 비진보정치세력들과도 동반하여 대중적 지지기반을 더욱 확대, 강화한 폭넓은 진보통합당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제기된 문제의 핵심은, 신자유주의를 찬성하지 않는 비진보정치세력을 배척할 것인가 아니면 동반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그 쟁점에 서 있는 비진보정치세력이 국민참여당이다.
그 쟁점에 대한 좌파세력의 반응은, 국민참여당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노무현 정권의 정치노선을 계승한 자유주의 정당이므로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국민참여당이 참가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국민참여당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노무현 정권의 정치노선을 계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국민참여당이 정치적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최근에 공개적으로 발언한 몇 가지 내용들은, 그 당이 노무현 정권의 정치노선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면서 진보정치세력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변화다.
이러한 정치적 변신은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여한 여러 사회정치세력들이 환영해야 할 변화이지, "단순한 정치공학적 이유 때문에 이념적으로 거리가 너무도 먼 진보정당들에 추파를 던"지는 행위로, "정치공학적으로 잔머리를 돌"리는 행위로 비난할 문제는 전혀 아니다. 더욱이 공식직함도 달지 않은 실명을 거론하면서 "유시민이 (연석회의) 합의문에 서명하면 '정치적 사기'"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학술적 규정으로 보기는 힘들고, 옹졸하고 편협한 태도로 보인다.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이 국민참여당을 배척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의 정치성향은 좌파적이다. 민주노동당 안의 좌파성향 정파들이나 좌파성향 당원들도 국민참여당을 배척하고 있다. 그들이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 까닭은, 좌파가 민주노동당 같은 중도좌파와 통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좌파가 국민참여당 같은 중도우파와 통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이념적 문제도 개재되어 있지만, 좌파가 더욱 우려하는 것은 정치공학적 문제다. 만일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통합하는 경우, 그렇게 통합된 당 안에서 좌파는 존재감 없는 당내 소수파로 되어 발언권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좌파정당이 아니라 중도좌파정당이며, 민주주의변혁을 추구하는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좌파활동가들과 다르다. 중도좌파는 좌파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좌파와 달리, 중도좌파는 좌파와 중도우파를 모두 포괄하는 폭넓은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하며, 좌파나 중도우파가 자기 쪽으로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정치적 변신을 환영, 고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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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당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찬성 의사를 표명하고 연석회의 합의문을 공식 승인하는 경우,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그 당의 진보통합당 건설참가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 |
그러므로 중도좌파의 시각에서 보면, 민주노동당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국민참여당의 정치적 변신이 정치공학적 문제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참여당의 변신을 비난하는 좌파성향 지식인들 및 정파의 정치적 배척이 정치공학적 문제로 되는 것이다.
국민참여당이 민주노동당처럼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면 배격 의사를 강하게 표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찬성 의사를 표명하고 연석회의 합의문을 공식 승인하는 경우,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그 당의 진보통합당 건설참가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
중도좌파의 시각에서 보면, '신자유주의 상속의 원죄'를 질타하는 자극적인 언사를 동원하여 국민참여당을 배척하는 옹졸하고 편협한 태도를 취할 것이 아니라, 국민참여당이 신자유주의와 결별할 수 있도록 그 당과 소통하면서 진보정치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것이 천만번 올바른 태도다.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가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변신하고 있는 국민참여당은 좌파에게는 여전히 배척대상으로 보이겠지만, 민주노동당에게는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함께 할 전략적 동반자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한 국민참여당이 동참한 진보통합당 건설은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시야에 진정으로 새로운 진보통합당의 출현으로 인식될 수 있으며, 그로써 새로운 진보통합당은 자기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더욱 확대,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7월 1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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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t21> 2011-07-11
http://www.left21.com/article/9928
<당게토론방> 2011. 07. 11
http://kdlp.org/2946212
- 전지윤 -
한호석 씨의 글은 참여당을 진보대통합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을 교묘한 궤변와 비약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살펴보겠다.
첫째, 지금 “대중은 신자유주의에 대해 반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 이명박 정권에 대해 반감을 느끼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것은 마치 ‘대중은 바퀴벌레가 낳은 비위생적 결과가 아니라 바퀴벌레를 반대한다’는 주장처럼 궤변이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노동자 탄압, 비정규직 양산, 민영화, 구조조정, 부자 감세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감이 어떻게 분리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한호석 씨의 머릿속에서만 분리될 뿐이다.
둘째, “대중은 민생경제 회생과 정권교체 실현을 결부시키고 있다”는 주장은, 따라서 정권교체에 도움이 되는 참여당과 통합은 무조건 좋다는 뜻일 게다. 이처럼 단순한 삼단논법은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식이면 민주당과 통합은 더 좋은 일일 게다. 실제로 참여당과 통합을 추진하는 세력은 민주당과 통합도 마다하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참여당/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민생회복’을 가져온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민주당 집권 10년과 지금 민주당 지방정부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 강력한 증거다.
셋째, “비진보 정치세력들과도 동반”하여 “반이명박-반한나라당 진보통합당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 “대중적 지지기반을 더욱 확대,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대통합이 왜 제기됐는지 완전히 망각하고 쓰레기통에 처박는 주장이다. ‘진보대통합’은 ‘반이명박 연합’으로 충분치 않기 때문에 제기됐다. ‘반이명박’이긴 하지만 신자유주의나 제국주의 문제에서 한계가 있는 자유주의 세력과 분별 정립하기 위해 진보대통합이 제기됐다. 그런데 한호석 씨는 ‘비진보 세력’까지 포함하는 반이명박 연합’에다가 명패만 ‘진보대통합’으로 달면 된다는 식이다.
그리고 이것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할 것이라고? 그러면 독자성과 원칙을 지키면서 투쟁과 선거 속에서 대중적 지지를 넓히려던 노력은 뭐가 되지? 왜 지난 10년 동안 권영길 후보와 민주노동당 후보들은 왜 계속 독자 출마했던 거지? 어리석게도 대중적 지지기반을 버리고? 유시민의 ‘민노당 표는 사표’라는 비웃음도 참으면서? 한호석 씨의 한마디로 민주노동당 10년이 ‘삽질’로 정리되고 있다!
넷째, 한호석 씨는 참여당이 “진보정치세력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기울”이며 “긍정적인 변화”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유시민이 일부 ‘반성’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한미FTA는 옳았지만 나 같으면 노무현처럼 지지층까지 거스르며 추진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라는 ‘반성’을 했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정말 대단한 ‘반성’으로 들리지 않는가!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긍정적’ 변화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급진적 당 강령 폐기, ‘과거를 묻지 않겠다’며 공동저서 출판, 진보정치캠프에 유시민 초청 등. 이 정도면 참여당에서 보기에는 ‘거리를 좁히기 위한 긍정적 변화 노력’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참여당 대변인 이백만은 민주노동당 강령 후퇴에 대해 “엄청난 자기 혁신”이라고 기뻐했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이 참여당과 통합하기 위해 우경화하는 게 “긍정적 변화”란 말인가?
다섯째, 한호석 씨는 “좌파가 … 우려하는 것은 정치공학적 문제”라고 주장한다. “통합된 당 안에서 좌파는 존재감 없는 당내 소수파”가 될까 봐 참여당과 통합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나는 ‘정치공학’이라는 말이 이런 뜻인지 처음 알았다. 원칙도 없이 선거 득표와 집권을 위해 자본가 정당과 통합하자는 게 ‘정치공학적’인 태도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진보정당에서 우파적 목소리가 득세하고 좌파적, 투쟁적 목소리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게 ‘정치공학’이란다.
여섯째, 한호석 씨는 “중도좌파는 좌파와 중도우파를 모두 포괄하는 폭넓은 연합전선을 구축해야”하며 “국민참여당을 배척하는 옹졸하고 편협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는 좌파와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라는 이념적 스펙트럼만 말하고 ‘계급’이라는 문제를 보지 않는다. 중도좌파로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정당이다. 중도우파로서 참여당은 자본가 정당이다. 이런 계급적 차이 때문에 한미FTA, 민영화, 해외 파병, 노동자 투쟁 등에서 민주노동당과 참여당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것이다. 이것은 단지 이념과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의 토대인 계급의 문제다.
그런데 노동자당이 자본가당과 타협하고 통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옹졸하고 편협’하다고? 그러면 노동자가 자본가와 타협하는 게, 투쟁을 포기하는 게 ‘폭 넓고 대범한’건가?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참여당이 “전략적 동반자”라고 주장하면서 계급타협과 계급연합 전략을 정당화하고 결국 계급투쟁의 논리와 동력을 억누르고 갉아먹는 것이 한호석 씨와 반이명박 ‘사이비 진보대통합’, 따라서 결국 반이명박 계급타협 주창자들의 핵심 문제다.
이것이 지난 몇 년간 노동자 투쟁을 가로막고 삼천포로 빠뜨려 왔기 때문에 경제가 회복됐다는 지난 1년 동안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오히려 -4퍼센트로 떨어지고,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지도자들이 계급타협에 빠져들면서 노동자들이 김여진 씨나 ‘희망의 버스’에서나 투쟁의 희망을 발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참여당과 통합이라는 계급타협 프로젝트는 당장 중단돼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