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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 “한·미FTA, ‘99%’에겐 햇볕 안 들어와” /주간경향947호

by 마리산인1324 2011. 10. 21.

<주간경향> 947호(2011 10/25)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3&art_id=201110181754271

 

 

[표지인물]“한·미FTA, ‘99%’에겐 햇볕 안 들어와”

 

 

ㆍ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일반적인 통상협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미 FTA는 무역 조건만이 아니라 법·제도의 직접적인 변경을 요구하는 포괄적 협정이다. 문제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법·제도만이 일방적으로 수정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법률이라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내용이 수정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한국 국회는 국내 법·제도의 변경을 수반하는 한·미 FTA의 글자 하나도 바꿀 수 없다. 국회는 오로지 찬·반만을 결정할 수 있다. 현행 법체계상 국회는 체결된 조약에 대한 비준동의권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48)가 한·미 FTA를 “낯설고 이상한 괴물”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송 변호사는 2002년 한·중 마늘 교역협정부터 본격적인 통상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 2006년부터는 한·미 FTA의 문제점을 파헤쳐 알리는 데 몰두했다. 지난 14일 그가 일하는 서울시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여당인 한나라당이 10월 내 국회 비준을 공언했지만, 송 변호사는 일차적으로 비준을 막아야 하고 비준된 후에라도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정 내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4대 선결조건이라는 게 있었잖아요. 쇠고기 수입 재개, 자동차 배기가스 관련 세율 조정, 스크린쿼터 축소, 의약품 가격 규제 정책 완화 등 네 가지인데, 우리와 협상을 하려면 이것들에 대한 우리 요구부터 먼저 들어달라고 한 거죠. 그때부터 사실 대등한 협상이 안 됐던 겁니다. 통상관료들은 협상 타결 자체가 성공인 것처럼 말해왔죠. 하지만 FTA로 피해를 보는 사회계층과의 소통이나 합의는 없었어요. 결국 통상관료의 일방적인 독주, 대통령의 통상독재였어요. FTA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 다음 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주느냐를 결정짓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미국의 이익이 곧 한국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통상관료들이 결정해버리고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는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한마디로 실패한 협상이라고 보시나요.
“그렇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협정의 비대칭성과 불평등성입니다. 미국은 사회제도를 법령 개정을 거의 하지 않고 관세율 수치를 조정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반대로 우리는 사회·경제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합니다. 게다가 그 개정이란, 미국이건 한국이건 이미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과 대자본에 대한 정당한 공공적 개입을 위축시키거나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의 개정입니다. 결국 미국은 제도를 안 바꾼다, 우리만 바꾼다, 그리고 그 방향도 한국과 미국의 강자를 위한 제도적 변경이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미 FTA 이행법안을 보면 이행법에서 특별히 규정한 경우 이외에는 어떠한 미국법도 개정되지 않으며 한·미 FTA가 미국법과 충돌하는 경우에는 효력이 없고, 주의 법률이나 규정이 한·미 FTA에 위반되더라도 그 적용을 무효로 할 수 없다고 나온다. 반면 한국에서 한·미 FTA는 헌법 제6조 1항이 규정하는 조약으로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데, 새로 만들어진 법률의 효력이 우선하므로 한·미 FTA에 위배되는 이전의 법률이나 명령은 개정해야 한다.

우리가 얻은 건 전혀 없습니까.
“얻었다고 선전할 부분이 없진 않아요. 자동차 업종, 자동차 부품 업종, 전자 업종 등이 그렇죠. 관세를 일부 철폐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기본적인 가치라면 얻은 게 있다고도 할 수 있겠죠. 문제는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느냐죠. 한·미 FTA는 우리 사회에서 경쟁력을 이미 갖고 있는 쪽의 숨통을 더 트이게 해준다는 거죠. 반대로 산업화 과정에서 약자였던 사람들, 요즘 말하는 ‘99%’에 해당하는 사람들한테는 햇볕이 들어오는 뚜껑이 닫힌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피해가 큰 부문은 무엇입니까.
“농업과 보건의료 시스템이죠. 우리 삶의 뿌리가 뒤흔들리게 됐습니다. 영리병원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협정 부속서에 들어가 있습니다. 약값 결정 시스템도 민영화했습니다. 지금은 제약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약값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면 정부가 재심을 하도록 돼 있는데, 협정에는 독립적인 민간기구가 하도록 돼 있어요. 한국 공무원은 이 기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약값 결정에서 공공성을 배제한 겁니다. 현행 협정에서는 이 기관이 검토결과를 심평원에 전달하고 재심은 심평원이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심평원의 재심 결과에 대해 미국 제약사는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 절차에 회부할 수 있습니다. 민간보험에 대한 규제도 굉장히 위축됐습니다. 앞으로 보건의료 분야가 대자본의 돈벌이 수단이 될 겁니다.”

영리병원 허용은 국민건강보험 체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사안입니다. 하지만 경제자유구역 내에서만 허용한다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경제자유구역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지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게 아니잖아요. 접근성을 따져봐도 가령 서울에서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죠. 게다가 경제자유구역 자체가 규모와 숫자가 확대되고 있어요. 경제자유구역 안에서만 허용하니까 괜찮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공공정책이 투자자의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희생되는 것이 한·미 FTA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이 문제와 직결된 제도가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인데, 파급력이 어느 정도라고 봐야 합니까.
“FTA가 발효되기 전에는 국가가 영리병원을 해보다가 문제점이 많이 드러날 경우 법령을 통해 없앨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정부 조치에 이의가 있는 투자자는 한국 법원에 제소를 하겠죠. 영리병원 설립자가 한국에서 돈을 벌어가는 사람이잖아요. 주권자인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만든 법령의 통제를 받고 한국 법원의 판결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한·미 FTA에서는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여기서는 ‘투자’에 방점을 찍습니다. 투자자가 한국 말고 다른 데도 투자할 수 있는 돈을 한국에 쓴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 투자하지만 한국 법령이나 한국 법원 통제는 안 받겠다는 겁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가령 영리병원의 부작용으로 한국 정부가 이를 없앨 경우 이 투자자는 한국 법원이 아니라 미국에 있는 투자분쟁해결센터의 중재인들에게 중재를 요청합니다. 그래서 FTA 위반이라는 결정이 나오면 한국 정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손해배상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미국 정부의 관세보복을 당합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투자자가 상대국의 정책·법률로 손해를 입었다고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중재를 신청하는 제도다. ICSID 집행위원장은 미국이 선출한다. 중재인으로 활동하는 법률가들도 대부분 미국인들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는 이 제도가 포함돼 있다. 호주는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농업 부문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대신 이 제도를 제외했다. 한·EU FTA에도 이 제도는 없다.

반대로 한국 투자자가 미국 정부를 제소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미국 기업과 한국 기업의 현실적 영향력에 차이가 있습니다. 삼성도 노동자를 제소할 수 있고, 노동자도 삼성을 제소할 수 있다고 해서 대등한 관계라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정부는 미국의 반덤핑 제도와 관련한 5개항의 요구조건을 내세워 그 중 4개항을 관철시켰다고 했습니다.
“정부 논리의 전제는 이전에는 못했는데 FTA를 통해 할 수 있게 됐다는 거죠. 그런데 미국의 FTA 이행법안을 보면 반덤핑 관련 법령은 애초에 바꿀 필요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정부가 얻어냈다고 자랑하는 건 FTA를 하기 이전에도 이미 가능했던 일입니다. 가령 우리가 얻어냈다고 하는 것 중에서 반덤핑 제소 사전통보, 즉 미국 자동차 업계가 반덤핑 제소를 했을 때 미리 한국에 통보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지금이라도 미국 해당 부처에 전화를 하면 알려줘요. 이걸 얻겠다고 FTA를 할 필요는 없었던 겁니다. 반덤핑 규제와 관련해서 가슴 아픈 일은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인 ‘제로잉’ 조항을 철폐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제로잉’은 수출 가격이 국내 가격보다 낮을 때는 그 차액을 덤핑마진으로 계산하지만, 반대일 때는 마이너스로 계산하지 않고 0으로 간주해 덤핑 관세율을 높이는 방법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가운데 미국만 시행해온 무역보복 관행이다.

정부는 무역구제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것은 성과라고 주장합니다.
“FTA를 통해 미국의 제도를 바꿨다고 정부가 말하는 것들이 대부분 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위원회 만드는 건 미국 제도를 바꾸는 게 아니에요. 가령 주택 구매 계약을 한다면 그 계약은 그 집을 갖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그 집을 살지 말지 논의할 위원회를 만드는 게 계약의 목적은 아니잖아요. 없는 것보다는 나은 정도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도중 송 변호사는 민주당 쪽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국회 법안심사소위에서 FTA 관련 끝장토론을 하기로 했으니 패널로 나와달라는 전화였다. 송 변호사는 거절했다.

왜 거절하셨나요.
“이런 종류의 토론은 철저한 진영논리가 지배해요. 정당이란 게 권력을 두고 정당한 경쟁을 벌이는 조직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아무리 적이라도 서로 접점을 만들려는 노력은 해야죠. 그런데 대립만 있고 이해는 없어요. 이런 상황이라면 외부 전문가는 정당을 대신해 대리전을 하는 수단이 될 뿐입니다. 국회가 자체적인 역량을 길러야죠.”

미국 의회와 비교해보면 한국 국회는 협상에서 아무런 민주적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국회가 민중의 대표자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민중에게 피해를 주는 한·미 FTA에 생명을 불어넣는 수단으로 전락한 상황입니다. FTA는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영리병원 등 민중의 삶을 위협하는 제도들이 FTA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는데 민중의 대표자인 국회가 이를 막기 위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죠. 지금까지는 한·미 FTA가 하나의 종이뭉치였지만 국회가 이를 비준하면 거기에 법적 힘을 불어넣어 종이를 칼로 만들게 됩니다.”

지금 재협상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저는 국회가 3개월만 비준을 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재협상에 응할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은 FTA가 발효되기를 원해요. 발효되려면 한국 국회가 비준을 해야만 하죠. 한국 국회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빼면 하겠다고 말한다면 미국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겠죠. 빼든지, 협정 자체를 포기하든지. 당연히 ISD를 빼고 협정을 발효하는 쪽을 선택하겠죠. 왜냐하면 ISD는 미국 의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거든요.”

국회 비준이 끝난 후에도 협정 내용을 수정할 수 있습니까.
“한국과 미국 정부가 합의만 하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을 보세요.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지만 결국 막았잖아요. 지금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향후 지속적으로 한·미 FTA의 근본적인 수정 또는 폐지를 요구할 수 있는 힘도 생기겠죠. 저는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거대한 흐름은 예전과 달라서, 자동차 몇 대 더 팔고 수출을 좀 더 한다고 해서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봐요. 그것이 우리에겐 중요한 동력이 될 겁니다.”

한·미 FTA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미국이 무엇을 왜 요구하는지, 그에 따라 바뀌어야 하는 한국의 제도는 무엇인지, 그 요구가 협정에 어떤 구조로 반영되는지, 관련된 세계무역기구(WTO) 조항은 무엇인지 등을 다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제가 전문가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많은 한계를 느끼죠. 가장 큰 어려움은 정부는 협상 과정을 다 알고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정부가 정보를 다 차단해버렸으니까요.”

정보공개가 잘 안 된다는 말이죠.
“네. 그래서 정보공개 관련 소송을 거의 끊이지 않고 해왔습니다. 지금은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취업비자와 관련해서 받았다는 서한 문제와 협정문의 번역 오류 문제와 관련한 정보공개소송을 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갖고 있는 협정문 책자도 소송을 해서 받은 겁니다. 이런 책조차 쉽게 구할 수 없어요. 이 책자는 정보공개소송을 하다가 정부가 증거로 제출한 겁니다. FTA 내용 분석이든 소송이든 혼자 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안에 올해 국제금융통상위원회를 만들었어요. 10여명의 젊은 변호사들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송기호 변호사는 인터뷰 당일 새벽 4시까지 한·미 FTA 분석보고서를 작성했다. 인터뷰 후에는 야당 쪽에 보내줄 FTA 대응책 관련 특별법 초안을 만든다고 했다. 그는 “상황이 엄중해 한동안 쉬었던 방송 출연과 언론 인터뷰에 계속 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획득한 지식과 명성을 사회적 실천에 사용하는 사람이 지식인이라면, 그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꼭 필요한 ‘지식인’들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