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해인> 통권 제343호(2010년 9월)
[피플 & 피플] - 최현태
해윤농장 대표 해진海鎭 김병근 거사
가을을 앞서와 피어난 코스모스가 충청도 괴산가는 길에 무리무리 피어나고 있었다. 경부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갈아타고 굽이굽이 돌아가며 만난 시골 길이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는 그 시골의 논길을 걸으며 들꽃과 눈을 맞추고 마을 이장일도 하고 농사꾼 된 삶을 충실히 살아내고 있는 해진 김병근거사를 만나러 가는 참이다.
출가, 삶의 쿠데타 그리고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근원적인 물음이 있어 예고 없이 감행하는 혁명 같은 것,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을 출가라 했다. 일상의 흐름에서 보자면 일탈과 파격이 분명한 그 쉽지 않은 결단이 있어 그이는 해진 스님으로 10여년을 산문 안에서 살았다. 그리고 농사꾼으로 10여년을 지나온 오늘 그이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질문하기가 조심스럽기 그지없지만 궁금증도 만만치 않다. 이 마음이 어디 나뿐이랴.
“입산을 결심하고도 봄꽃만 보고, 한여름만 지내고 하면서 속세정리 때문에 머뭇거리다 수 삼년이라는데 출가도, 환속도 해치웠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은데요.”
“그렇죠, 대학 졸업하고 남들 부러워하는 일류기업에 멀쩡하게 다니다가 사표 쓰고 출가하려고 한다니 이구동성으로 ‘너 실연했니?’ 였어요. 그 시절만 해도 연애 실패하면 머리 깎는다는 정서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어릴 적 동네형의 갑작스런 죽음과 장마철 강물에 떠내려가는 주검, 꽃다운 나이에 이승을 떠난 작은누이의 인연이 나를 출가사문으로 이끌었던 것 같애요.”
출가는 예약이나 정보가 필요 없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이의 지나간 세월 속에는 수업을 빼먹고 강원도 원주 1군사령부에 법문하러 오신 청담 스님을 뵙고자 하던 고등학교시절이 들어 있고, 월정사 한암 스님을 은사로 모신 할머니로부터 이어진 모태신앙이 스며있다. 출가를 하려면 해인사로 가라기에 가야산 행 버스를 타긴 했는데 노루꼬리만한 가을해가 저무니 아득해지는 마음에 앞좌석스님께 여쭈었다. 아직 해인사가 멀었느냐고.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그 스님이 16대 해인사주지를 역임하신 명진 스님이세요. 쓰러진 아버님을 간호하다 어머니마저 병석에 누우시자 가야청계토굴에서 부모님을 모시도록 해 주신 분도 은사스님이시구요.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큰절원주소임을 거쳐 해인지 편집실 사무국장소임을 보는 동안 3월불사만 끝내고 나가야겠구나 싶더군요. 지금은 입적하셨지만 망설이는 내게 ‘공부해서 한 소식하는 것이 금생인연이 아닐 수도 있지 않는가? 부모라 이름 짓지 말고 누구라도 공양한다는 마음을 내라’ 말씀해 주신 은사스님이 계셔서 아쉬움은 많았지만 몸만 하산 한다 생각했지요.”
몇 마디로 요약이야 되었지만 입산과 하산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래도 복잡한 사연은 여기까지다. 세간사에도 결혼보다 이혼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출가해서 10여년, 그리고 출 출가에 이르기까지 결단을 앞에 두고 몇 밤을 하얗게 새웠을지 짐작이 갈 일이다. 빛바랜 해인지 창간호와 해인지 지령300호 기념음악회 리플렛까지 찾아 꺼내두고 필자를 맞이한 해진 거사의 옛이야기에는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다. 해인사, 특히 해인지에 대한 그이의 애정은 각별해서 철학자들의 스토아학파니 플라톤학파 등에서 비롯된 것 같은 해인사 물레방앗간학파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물레방앗간학파의 면면은 이름만으로도 다 알만한 교계 실력자 스님들이다. 포교 원력으로 가득한 스님들과 물레방앗간에서의 해인지 편집회의는 상상만으로도 유쾌해진다.
이산혜연 선사의 발원문 그리고 ‘오죽하면’과 ‘아무리 그래도’
과수원에서 갓 따온 복숭아가 부드럽고 달콤하다. 한 조각 베어 물면서 봄이면 도발적으로 피어나는 복사꽃에나 홀려 다니던 마음이 민망해지고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이들의 은혜에 감사하며’ 뜬금없이 공양게송이 버무려진다. 사과, 복숭아과수와 옥수수, 배추, 고추 같은 밭작물에 논농사까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허둥지둥 바쁠 그이가 미루어 짐작이 된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우선 농장에서 무슨 일을 어떤 순서로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산혜연선사의 발원문을 떠올립니다.”
“역시 그러시군요. 수행자에서 농부로 바꿔 살고 계십니다. 농사꾼이라는 사실이 좋을 때는 언제인가요?”
“출가수행자라는 외형적 모습에 제약이 없어 좀 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경책을 더 해야 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농사일은 방일하지만 않으면 노력의 대가가 정직하게 나타나니 수확시기에 보람을 느끼죠. 또 땀 흘려 농사짓는 것이 수행의 연장이라 생각하면 행복합니다. 농사일과 수행이 여러모로 연계성이 있어요.”
“지금도 수행자의 자리에서 환속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마다 근기와 업연이 다르니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수는 없겠으나 어쩔 수 없어 하산을 하더라도 늘 초발심으로 삼보를 소중히 여기고 그간 스승의 가르침과 시은을 갚는다는 보살의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내가 하면 ‘오죽하면’이고 남이 하면 ‘아무리 그래도’ 라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동안 사중寺中일에 집중 못함을 저어하며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밀려들 적에 은사스님께서는 하산을 해도 내 상좌라 일러 주셨다. ‘오죽하면’이든 ‘아무리 그래도’이든 해진 거사는 하산하고 수년간 꿈을 꾸었다. 장삼만 입고 예불을 드리는데 ‘왜 나만 가사가 없지’ 하며 공허하고 당혹스러워 했던 시기가 있었다. 미련이나 집착이라 규정 할 수는 없지만 이즈음에도 새벽에 잠이 깰 때면 좌복 찾아 잠시라도 앉는단다. 선사께서 이르시길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하라지 않았던가.
긍정의 힘을 믿는 사람
우리는 여기 앉아 저기를 꿈꾸는 통에 불행해진다. 긍정의 힘을 믿는 사람 해진 거사는 지금 이 자리에서의 행복을 꿈꾸고 있다. 출가와 환속을 거듭한 그이는 자신을 두고 10년짜리 같다며 웃는다.
“의무교육을 빼고서 제가 학교공부를 10여년 했죠. 출가해서 10여년, 그리고 농사짓기도 10년이 넘었어요. 또 한 매듭이 지어 질 것 같애요. 요즘 농사규모를 줄이고 있거든요.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수행공동체공간을 만들고 불교포교와 상담을 해볼까 해요. 제 가까이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공부에 뜻을 둔 도반들이 있어 그래도 살만합니다. ”
마침 맞게 수계도반이 인근 전통사찰에서 수행하고 있고 그이가 언젠가 공부를 다시 하리라 맘먹고 따로 장만해놓은 시골집에 하나, 둘 귀농과 귀촌한 인연들이 모여 살고 있다. 금강경을 교재로 스터디를 시작했는데 그 공부가 새벽녘 플래쉬 들고 논두렁에서 벼이삭 패는 거 확인하던 것 이상으로 기쁨이 한량없단다.
“여전히 스님들만 보면 반갑고 가슴이 뛰어요. 시골길을 지나다가도 차를 세우고 어디까지 가세요? 태워드릴께요. 하고는 암말 안 해도 되련만 ‘저도 해인사에서 조금 공부 했거든요’ 한답니다.”
단오 날 축구며 장경각 영어안내특별소임 살던 가야산 품안에서의 수행자시절이 아련한 모양이다.
‘첫’은 언제나 가슴 떨리는 경이로운 일
첫사랑, 첫눈, 첫 만남. 이 ‘첫’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경이로운 일이다. 해인사 가려고 탄 버스에서 만난 스님 따라 해인사 산내암자 길상암에서의 첫 밤도 그랬다. 사미계를 받은 첫 날도 꼽을 수 있는 한 장면이다. 첫 만남에서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안겨준 새 생명 아들아이가 어느새 고3이다. 다 컸다. 이제 멀지 않았다.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공부하는데 무에 다를 게 있냐고 하지만 어디 모두가 그렇던가? 오롯이 앉아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그 첫 날이 또 얼마나 환희로울까.
살아갈 걱정에 머리가 지끈거리게 아파오는 세상을 저만치서 바라보며 그이는 자연과 하나 되어 일을 수행삼아 수행을 일삼아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 그 자리가 꽃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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