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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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에 맞서 이성적 사유의 복권을 꾀하다 | ||||||||||||||||||||||||
[연재] 21세기의 사유들 ⑧ 비토리오 회슬레 - 나종석 강사 (연세대ㆍ철학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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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통해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회슬레는 이성의 억압성과 폭력성에 주목하는 포스트모던적 사상의 흐름과는 근본적으로 관점을 달리한다. 그는 니체, 하이데거 등 독일 철학자들이나 이들에게 큰 영향을 받은 푸코나 데리다, 들뢰즈 등과 같은 프랑스의 현대 사상가들이 내세우는 이성에 대한 총체적 비판의 토대가 튼튼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는 몇 가지 예외적 흐름을 제외한다면 현대의 다양한 철학적 사조들은 ‘이성과 도덕적인 가치 및 의무에 대한 믿음’을 회의하고 파괴하는 경향 확산에 커다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흐름들이 지속되면 인간의 비판적 정신이 완전히 마비되고, 시대가 제기하는 도전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파괴될 것이라고 염려한다. 따라서 그는 총체적 이성 비판에 대해 강력히 반론을 펼치면서, 이성과 객관적 진리의 추구라는 전통적 서구 철학의 담론을 이어받고 있다.
회슬레의 철학은 민주주의, 환경위기, 시장 경제, 종교 등 21세기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과제들에 대해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적 사유가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민주적 합의보다 객관적 진리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이 다양한 견해들을 억압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철학과 민주주의의 독자성을 오해하는 데서 생긴 것이다. 회슬레가 보기에 철학과 민주주의는 서로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 비판적 사유를 포기하지 않는 철학은 민주주의적 결정의 정당성을 되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건전한 민주주의와 더불어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다수가 어떤 규칙에 동의했다고 해서 그것을 정의롭다고 보는 여론 독재로 흐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이들 사이의 토론을 통해 더욱 건전하고 옳은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을 견지하는 민주주의를 철학적 사유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슬레는 21세기가 생태적 세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환경위기를 초래한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여타 생명체의 가치를 동등한 것으로 바라보는 심층생태주의적인 사고도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는 인간만이 내적 가치를 갖고 있고 다른 생명체는 인간의 목적 실현을 위한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 있다. 이와는 달리 심층생태주의는 인간뿐 아니라 여러 생명체들 또한 내재적 가치를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이 관점은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적절하게 해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모든 자연적 존재들이 동등하게 가치가 있다면,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심층생태주의는 자연과 생명의 위대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왜 지구에 인류가 존재해야 하며, 왜 우리는 미래 세대뿐 아니라 여타 생명체를 존중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회슬레는 세계화가 가져오는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보편주의자인 그는 세계의 여러 지역들이 서로 만나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세계화가 초래하는 부와 빈곤의 양극화 및 환경파괴의 심화 현상을 크게 염려한다. 따라서 시장이 스스로 움직이는 자기 완결적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국가의 개입을 금하는 것은 허구적이라는 점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가치관을 전제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시장경제를 정의의 관점에서 재조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회슬레는 이성의 과잉이 아니라 정의와 도덕의 보편적 원칙에 대한 사유를 추구하는 이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 현대 사회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보면서, 현대의 위기를 극복할 이성적 사유의 복권을 역설한다. 이성의 본질을 억압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만 보고 이와 전면적 결별을 선언하는 포스트모던적 사유는 급진적 외양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도구적 합리성과 동일시하는 이성에 대한 편견의 표현이 아닌가? 또한 편협한 시야에서 이성에 접근하고 그것을 해체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우리들에게서 건전한 비판적 사유의 싹 자체를 앗아가 우리를 현존 질서에 순응케 할 독버섯은 아닌가?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가를 토론하고 논증하고 반박하는 이성적 사유와의 작별이 우리가 취해야 할 사유의 길인가? 회슬레의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독일 에센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차이와 연대』, 역서로 『비토리오 회슬레, 21세기의 객관적 관념론』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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