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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강상중칼럼]한국 녹색당, 독일을 보라 /경향120308

by 마리산인1324 2012. 3. 9.

<경향신문> 2012-03-08 21:28:0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082128055&code=990000

 

 

[강상중칼럼]한국 녹색당, 독일을 보라

 

강상중 | 도쿄대학 대학원 교수

 

동일본을 습격한 미증유의 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을 앞두고 있다. 일본의 매스컴들이 대재난에 의한 피해상을 전하고 있고, 원전사고에 관한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도 제출됐다. 전후(戰後)의 일본을 뒤흔들고, 스리마일, 체르노빌과 함께 일약 후쿠시마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리게 된 ‘동일본대지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려고 한다.

한반도에서 보자면 적어도 근대 이후 100년 이상 일본은 마치 태양을 향해 날갯짓하는 이카루스처럼 융성과 번영으로 가득한 역사를 걸어온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일본의 근대사가 빛나면 빛날수록 인접한 한반도 역사는 종속과 굴욕으로 채워졌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가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만든 밀랍 날개로 크레타섬을 탈출하다 너무 높이 날아오른 나머지 햇볕에 밀랍이 녹아 바다로 추락하듯 일본도 1945년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다시 일본은 제2의 이카루스처럼 비상해 왕성한 경제대국으로 부활했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다시 일본은 태양열 대신 원자력의 열로 국토를 방사능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일찍이 군사도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공멸의 악몽을 예감하도록 했다고 하면 후쿠시마라는 일본 중추의 주변부에 설치된 원자력발전소의 파괴는 인류 에너지에 대한 사고방식을 근본부터 바꿀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그런 일본을 한국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국토가 분단됐지만 일본을 추격할 정도로 산업국가로 성장한 한국으로서는 제2의 추락이 불가피할지 모를 일본에 대한 시선이 복잡하지 않을까. 식민지지배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는 일본, 세계시장에서 항상 반발짝 앞서온 강력한 라이벌로서의 일본. 그런 일본이 미증유의 곤경에 처해 있으니 그 시선은 이중적이 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조금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면서도 비참한 재해에 대해 동정과 공감을 하게 되는, 그런 심경 아닐까.

다만, 확실한 것은 후쿠시마는 일본만의 후쿠시마로 머물지 않고 경우에 따라 한국의 후쿠시마가 될 수도 있다. 20기가 넘는 원전이 있는 한국에서 ‘후쿠시마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이런 점을 깨달은 이들이 한국에서 녹색당을 출범시킨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녹색당이라면 독일에서의 탈원전 운동이 떠오른다. 1980년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카르스르에에서 결성된 녹색당의 30년에 걸친 활동은 독일 내에서 원자력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대규모 사회운동으로 발전하면서 이데올로기 논쟁의 양태를 띠기도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였다. 체르노빌에서 멀리 떨어진 독일 남부지역이 오염됐고, 원전사고에 불안이 확산됐다. 유효한 대응책을 찾지 못한 채 정보 은폐 등을 되풀이한 주정부와 연방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증폭됐다.

독일은 낭만주의와 자연회귀의 전통이 있어 근대 이후에도 생태에 대한 관심이 넓게 정착돼 있었다. 이는 다만, ‘피와 대지’라는 인종주의적 슬로건으로 되면서 배타적인 차별의식을 조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좌우 다양한 세력이 망라된 녹색당 내에서의 논쟁 과정에서는 이런 편협한 의식이 사라졌고, 녹색당 활동은 사회운동 확산을 지속시키는 힘이 됐다. 이런 배경하에서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확산됐고 독일 사회민주당(SPD)도 탈원전으로 방향을 바꿨다. 녹색당은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이끄는 사회민주당과 연립정권을 세우고 탈원전과 자연에너지 개발, 생태학에 관한 국민적 계몽 등의 환경정책 전반에 책임을 맡게 됐다.

이윽고 2000년 연립정권은 전력회사와 ‘탈원자력합의’를 도출하고 2년 뒤 원전폐지의 법적근거가 된 원자력법 개정안을 시행하게 됐다. 탈원전 법제화 및 시행을 늦춘 중도우파 연립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2022년까지 원전을 폐지하기로 방침전환을 선언했다. 메르켈의 ‘개종(改宗)’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의회선거에서의 녹색당 약진이다. 독일에서 보수적이지만 가장 부유한 주가 후쿠시마를 계기로 탈원전의 의지를 명확히 표시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독일은 탈원전으로 향하는 ‘루비콘강’을 건너게 됐다. 자연에너지 개발을 바탕으로, 중규모 첨단기술 네트워크를 통한 지산지소(地産地消)형 에너지와 산업으로 성립된 지역사회가 분권방식으로 연결되는 사회. 이것이 독일이 지향하는 탈원전사회의 미래다. 게다가 독일은 인접국가로부터 전력을 자유롭게 수입해 부족한 전력을 보충하는 체제를 정비하는 등 에너지 공동조성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이런 독일의 대응은 한국의 미래를 구상하는 데 큰 참고가 될 것이다. 원전사고 이후에도 탈원전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본을 대신해 한국이 동북아 지역에서 독일의 역할을 물려받아야 한다. 한국 녹색당의 향배를 지켜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