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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2.04.03 12:18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6504.html

 

 

“오죽하면 출마했겠어요” 유세도중 끝내 눈물

 

녹색당 박혜령 후보가 30일 아침 강구항에서 뱃사람을 상대로 유세를 펼치고 있다.

4·11 총선기획 이변을 향해 뛴다

③ 녹색당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군의 박혜령 후보의 24시
17년 농사짓다 원전 막으려 출마 …지지자 점차 늘어

막 어둠이 걷히고 귀항한 어선들이 풀어낸 생선 경매가 시작된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항. 지난달 30일 아침 6시30분께 강구항에 도착한 녹색당 박혜령(43) 후보가 거친 바닷가 사나이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대면대면하게 맞이하는 보수적인 이곳 중년 남성들의 반응에 주눅들지 않고 씩씩하게 명함을 돌리며 17년간 농사를 짓던 자신이 출마한 까닭을 밝힌다.

 

“오죽하면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제가 선거에 나서겠어요. 이번 선거에서 막지 않으면 핵발전소를 막을 방법이 없어요.”

 

대학(이화여대 법대) 졸업 뒤 1996년 결혼한 뒤 농사를 짓고 싶어하던 남편과 함께 귀농한 박 후보는 ‘영덕핵발전소 유치백지화 투쟁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12월 영덕군이 삼척시와 함께 신규 원전지역으로 선정되자 원전 건립을 막기 위해 생전 처음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고리원전이 있는 부산 해운대구·기장을 선거구에 출마한 구자상(53·환경운동가) 후보와 함께 녹색당의 ‘유이한’ 지역구 출마자인 박씨는 “여러분의 협조와 도움이 필요하다”며 호소하다 목이 메여 잠시 유세를 중단했다.

 

“저 매일 울어요”라며 감정을 수습하던 그는 다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처음 어색하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우리 지역에 원전은 안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도 한두명씩 나타났다. 경매사 홍용표(65)씨는 “원전은 대체 에너지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면서 “표가 덜 나오더라도 앞이 있지 않느냐”고 박 후보를 격려했다. 선주라는 40대 남성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역 반경 20㎞ 지역에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이재민들이 돌아가지 못하잖아요. 수억원의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원전이 우리 집앞에 들어와서는 안된다”며 “뒤에서 돈을 대라면 대겠다”며 박 후보에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녹색당 박혜령 후보가 30일 오전 영덕군 영해시장에서 마을 사람을 우연히 만나 반갑게 포옹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유치에 따른 지역발전 논리를 거론하며 박 후보에 냉소적 반응을 보이거나 심지어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었다. 해장술을 마셨는지 불콰한 얼굴의 한 50대 후반 경매사는 후배 경매사 강태선(47)씨가 박 후보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거슬렸는지 “녹색당에 녹아나네”라며 태클을 걸어왔다. 이 남성은 한마디만 하겠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거의 70~80%가 핵물질을 안고 산다”면서 “그런데 왜 (원전유치를) 싫다고 하느냐. 대체 에너지가 생길 때까지 이거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강씨는 “형님, 녹색당 녹을만하네요”라며 받아넘겼다. 박 후보는 “그런데 정부는 대체 에너지를 할 생각이 없잖아요”라고 차분하게 설득 겸 반박을 했다.

 

그러나 ‘원전유치=지역발전’이라는 논리는 일부 주민들 사이에 넓게 퍼져 있어 박 후보가 좀처럼 뚫기 힘든 두터운 벽처럼 다가왔다.

 

“저도 초등학생 6학년 딸을 둔 평범한 주부이지만 애들 생각해서 길게 내다보고 같이 생각하는 인생도 중요하다”라는 박 후보의 호소에 “일제시대 독립투사 같구먼” “우리가 사는 동안 편안히 살면 된다”고 노골적으로 빈정대는 반응도 나았다. 영덕군과 이웃한 울진군은 원전을 유치한 덕분에 “누구는 20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5만원짜리 땅이 50만원으로 올랐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당장의 선거이슈로 다가오지 않은 듯했다.

 

박 후보는 “탈핵은 근본적인 삶의 방식과 태도를 바꾸는 문제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낙관적 태도를 잃지 않았다. 실제 그는 강구항에서 주민들과 만나면서 어려운 이론을 이야기하는 운동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이웃집 아줌마처럼 친근감과 친밀함을 가지고 접근하려는 모습이었다.

 

“영덕사람들은 1988년, 2003년, 2005년 세 차례 핵폐기장 반대운동 과정에서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어요. 서울에서 운동하시는 분들은 생활과 분리된 이념의 문제, 가치의 문제를 우선해서 이야기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생존의, 삶의 터전의 문제이거든요. 가치의 문제만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이분들에게 가혹한 일이거든요.”

 

녹색당 박혜령 후보가 30일 오후 영덕군 영해시장에서 상인들을 상대로 탈핵을 호소하고 있다.

 

2시간에 걸친 강구항 유세를 끝나고 돌아가는 선거 차량에서 선거사무장 김영숙(46)씨는 심한 감기로 박 후보의 목 상태가 심상찮다고 판단한듯 인근 병원에서 주사라도 맞을 것을 권유했다. 그러고 보니 선거공고물에 찍힌 사진보다 얼굴이 홀쭉한 상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병원에는 의사가 없어 그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창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진보정당 후보로 조직도 자금도 빈약한 상태에서 처음 선거에 도전한 박 후보로서는 몸과 마음이 고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정치인의 변신과정을 착실히 걷고 있다는 느낌이 그의 말 속에 묻어났다. 선거과정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느냐고 묻자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을 얻는 일인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개인의 평범하고 안온한 삶보다는 이웃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박 후보의 삶의 태도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인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학년 가을 무렵 학교 교문 옆 재개발지역에서 철거용역들이 집을 마구 부수는 장면을 보면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철거지역 주민들이 기본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인권이 없었어요. 그 장소에서 4학년 선배가 울면서 도움을 호소하는 것을 보면서 사회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법철학을 공부하면서 “법의 기능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유지되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그는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해” 몸이 많이 상했다. 오빠 결혼식 참석차 귀향했다가 그대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졸업 뒤 귀농을 꿈꾸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농촌에 내려갈 결심을 했다. 1996년 귀농 이후 남편 시댁 근처인 경북 군위군에 살다 10년 전 지금 사는 곳인 영덕군 창수면으로 옮겨 담배, 고추, 배추 등 7000여 평의 농사를 짓고 있다.

 

녹색당 박혜령 후보가 30일 아침 강구항에서 “핵발전소를 막자”고 호소하다 목이 메여 유세를 중단한 뒤 눈물을 흠치고 있다.

 

농약을 덜 치는 방식을 고집하다 담배와 고추 등의 소출이 다른 농가에 견주어 반도 되지 않았지만 굴하지 않고 어렵사리 17년째 밭을 일구어왔다. 남편 김종혁(45)씨는 현재 영덕군 창수면 갈천2리 이장을 맡고 있으며, 박 후보도 2007~2009년 부녀회장을 맡아 시골사람 속에 부대끼며 그들 속에 뿌리내리는 삶을 살아왔다.

 

부녀회장으로서 그는 산골마을이라고 무시하는 행정당국에 맞서 영덕군청이 생긴 이래 최대의 주민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동네 상수도가 고갈돼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했으나 제대로 대응해주지 않자 2007년 10월 전 주민인 50여명을 이끌고 군청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고 국민권익위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반년 이상 식수투쟁을 주도했다. 이때 행정당국 간부들로부터 “너희들 가만히 안 두겠다”는 협박을 받는가 하면 “골짜기에 사는 죄다”라는 터무니없는 ‘이지메’를 경험하기도 했다.

 

핵발전소 건립 반대운동에 뛰어들기 전에는 자신이 사는 인근 영양군에서 추진하는 풍력발전소 건설로 자연이 훼손되는 현장을 목격하곤 건립반대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이런 주민운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절차의 민주주의 과정을 생각했다고 한다. “나누면 100원을 가질 수 있는데 혼자 50원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남은 못 가져도 나는 갖는다는 기본적인 정서를 바꾸는 일이 만만찮았어요. 그래서 동네에 작은 절차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녹색당 박혜령 후보가 30일 오후 선거차량 위에 올라가 유세를 펼치고 있다.

 

그는 작은 일이라도 회의를 통해 나누는 작업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회의를 너무나 잘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공동체 실험은 결국 선거전에 뛰어드는 원동력이 됐다. 박 후보가 뛰어든 영양·영덕·봉화·울진군 선거구는 면적만 서울의 4배 크기로 전국 선거구 중 가장 넓은 지역이다. 이렇게 넓은 지역을 법이 허용하는 선거운동원의 10분의 1 수준인 10명 남짓한 인원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박 후보와 선거사무장 김영숙(46)씨, 회계 책임자 한영숙(44)씨 등 선거 3인방이 모두 여성인 점도 두드러지는 점이다. 박 후보는 “전국 선거구 중 선거 핵심 3명이 모두 여성인 것은 우리가 최초 아닌가 싶다”고 자부심을 드러낸다. 선거사무장 김씨는 지난해 대구 동구청 구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22%의 득표한 풀뿌리 운동가이다. 자전거를 이용한 밀착형 선거운동으로 주민들의 마음을 얻은 김씨는 현재 녹색당 대구시당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오전 10시 30분 인터뷰가 끝난 뒤, 박 후보가 향한 곳은 영덕군 영해시장. 새벽 강구항보다는 주민들의 반응이 더 좋다. 60대 한 남성은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봤다”며 박 후보를 반갑게 대했다. 이틀 전(3월28일) 포항 문화방송 토론회에서 박 후보가 울진 주민들에게 나눠준 방독면을 들고 나와 사용기한 10년이 넘은 것임을 폭로하고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들고 나와서 서민들의 삶을 아느냐고 후보를 공박한 것이 주목을 받은 것이다.

 

“방독면 아줌마네” “살이 다 빠져버렸네”라며 살갑게 대해주는 유권자도 적지 않았다.

 

영해시장 유세를 마친 박 후보는 낮 12시 대구 평화방송에서 대구·경북 지역에 출마한 여성후보자 5명을 연쇄 인터뷰하는 기획프로그램에 전화로 출연하기 위해 유선전화가 있는 영해성당으로 향했다. 그곳에 박 후보의 남편 김종혁씨가 선거홍보 차량을 끌고 나타났다. 김씨에게 “부인이 선거 때문에 고생하느라 얼굴이 많이 여윈 것 같다”고 하자 “처녀 때 몸매로 돌아가는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부인의 출마를 반대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적극 나서라”고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후보가 명예욕이나 권력욕으로 출마한 것이 아니예요. 지역의 벽에 부닥쳐 반핵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차에 녹색당 차원에서 지역구 후보를 낸다고 해서 선거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반핵·탄핵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생각에서 출마를 적극 권유했어요.”

 

김씨는 티브이토론 과정에서 6명의 출마자 중 4명이 원전유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을 보면 지금까지는 성공한 셈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의 국회의원 선거 출마는 당락의 문제 이전에 탈원전, 탈핵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확보라는 절박한 문제라는 설명이다. 2005년 현재의 군수가 추진한 핵폐기장 유치에 반대운동을 펼치는 데 성공했던 주민들은 이후 음으로 양으로 관으로부터 탄압을 받아 지난해 원전 유치과정에서는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박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는 이병환(57)씨는 2005년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주도했으나 그 이후 “친구 자녀들의 결혼식에도 초청받지 못하고 있다”고 영덕군에 몰아친 살벌한 분위기를 전했다.

 

“공무원들이 나서서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식당을 가지 않거나, 지역특화사업 지원금을 주지 않는 등 탄압이 극심했요. 반면 반대운동에서 찬성 쪽으로 돌아 선 사람들 중에는 23억원의 지원금을 받은 사람이 있는 등 당근과 채찍으로 지역 주민들을 회유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12월30일 영덕군수가 원전유치 신청을 한 사실이 알려진 뒤 박 후보와 이씨는 반대운동을 펼치기 위해 과거에 활동했던 사람들을 모으려고 했으나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반대운동한 결과 무엇이 남았느냐”고 참여하기를 꺼려 대책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불과 10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점심식사를 끝낸 박 후보는 선거홍보 차량 유세에 나섰다. ‘생명과 평화의 땅을 아이들에게!’라는 홍보 문구 아래 박 후보가 아이와 함께 바닷가를 달리는 장면을 담은 박 후보의 홍보차량은 백마디 말보다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했다. 지나가는 차량에서 손을 흔들며 지지하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차량 유세를 마친 박 후보는 상점가 순례를 시작했다. 200여m 거리에 늘어선 상점가 한 곳 한 곳을 빠짐없이 들렀다. 어느 곳에서는 20분 이상 머물기도 했다. 1시간가량 걸렸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는 방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지치지 않고 제대로 하는지 유권자들은 보는 것 같아요. 20대 같았으면 벌써 나가 고꾸라졌을 거예요.”

이곳 상점가 순례는 벌써 네 번째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20대에는 사람 만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사람 만나는 거 잘한다고 그러더라구요. 40대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라고 아줌마 예찬론을 펼친다.

 

읍·면만 25곳이나 되는 방대한 선거구에서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고 조직과 돈도 부족한 박 후보가 얼마만큼 선전할 수 있을까? 녹색당은 7~8일 ‘탈핵버스’를 이용해 당 차원에서 지원사격을 벌인 방침이다.

 

박 후보 남편 김씨는 “득표율 15%를 넘어서 기탁금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박 후보는 “설령 정당득표가 2%에 미달해 녹색당이 해체된다고 해도 다시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목표치가 무엇이 됐든 박 후보의 싸움은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농민후보가 지역밀착형 진보정치의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적지 않은 의미를 전해준다. 서울 중심의 중앙정치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한국 진보정당의 현실에서 녹색정치의 실험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하고 있는 듯하다.

 

영덕/글·사진 김도형 선임기자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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