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12-12-05 오전 8:11:32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1205080519§ion=01
안철수 정치실험은 왜 실패했나?
[기고] 쿨하게 문재인 돕고 긴 호흡으로 쇄신해야
고원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
새로운 정치를 향한 안철수 후보의 실험은 야권단일화 과정에서 안 후보가 사퇴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난 거대한 에너지에 비해 현실정치의 실험은 결과적으로 너무 싱거웠다. 안철수 후보는 출마선언 이후 줄곧 문재인 후보의 단일화 공세에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했으며, 사퇴까지 1%의 지지율도 올리지 못했다. 반면에 문재인 후보는 당내 경선승리 직후부터 사력을 다해 민주당을 통합했으며 안 후보를 민주당에서 격리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문재인 후보는 호남과 40대를 중심으로 관망 층으로 남아있던 유권자들을 흡수하여 지지율을 10% 이상 끌어올렸다.
단일화 과정의 승패에는 문재인 후보 측의 선전(좋은 의미+나쁜 의미)도 있었지만, 안철수 후보 진영의 정치적 미숙함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세는 조직과 세력의 절대 열세에도 불구하고 1년 동안이나 흔들림 없이 지속될 정도로 매우 견고한 것이었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안철수 후보는 진보성향, 호남, 20~40대의 다양한 연령의 유권자 층에서 문재인 후보보다 더 강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 진영은 자신의 강점을 하나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말았다.
안철수 후보 진영의 한계와 오류는 가치·노선, 조직·리더십, 전략의 세 가지 차원에서 짚어볼 수 있다.
▲ 캠프 해단식에 나타난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
스타일리시 중도?
첫 번째, 안철수 후보 측은 가치·노선을 확고하게 정립해내지 못했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은 진보에서 중도, 부분적으로는 합리적 보수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다. 지지층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은 누구보다 폭넓은 정치세력을 형성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지만, 이질적 세력들을 통합해내지 못할 때 심각한 정체성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약점이기도 했다. 그것은 이미 열린우리당의 실패가 우리에게 보여준 바였다.
문제는 이질적 세력들을 어디에 '중심'을 두고 통합하느냐에 있었다. 내 견해로 그 중심이란 '새로운 진보'였다. 안철수 후보의 정책노선이 진보적으로 가야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우리 사회의 산적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노무현정부와 민주당의 불철저한 노선까지도 극복하고 더 혁신적인 내용의 구체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새로워야 하는 이유는 진영논리, 패권논리, 기득권논리에 사로잡혀 절박한 민생의 문제를 외면해 온 여야의 낡은 정치 틀을 과감하게 깨는 근본적 정치혁명을 요구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후보는 출마선언 직후 중도에 방점을 두는 행보에 치중했다. 안철수 후보는 "좀 더 중도로 이동하라"는 내외의 권유를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 먼저 정책의 측면에서 '혁신경제'라는 차별화된 담론을 내세운다는 것이 그만 경제민주화를 분리해냄으로써 참여정부의 '성장동력 육성정책'을 연상시키는 기술주의적 한계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렸다. 이 때문에 과감한 사회경제적 의제가 한 동안 거의 제기되지 못했다. 이런 관성은 막판 TV토론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출마선언 직후 안철수 후보의 행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스타일리시'였다. 진보적 정책과 의제를 충분히 깔지 않은 채 스타일만 앞세우다보니 자연스럽게 중도가 되어버렸고, 문재인 후보보다 개혁성이 뒤처지는 것으로 비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 후보의 행보는 우선순위가 뒤바뀐 면이 있었다. 또 초기에 '덧셈의 정치', '통합의 정치'와 같은 담론들이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었다. 정치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려면 권력, 선거, 정당의 패권, 특권, 기득권 구조의 타파를 요구하는 것이 옳았다.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여야 정치권의 무능과 배신을 질타하고 국회에서 당장 필요한 입법조치를 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새로운 정치에 훨씬 가까운 것이었다.
물론 안철수 후보가 이런 문제들을 완전히 간과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시점부터 안철수 후보는 혁신경제의 담론이 갖는 한계를 인식했으며 경제민주화의 담론으로 다시 복귀하기 시작했다. 재벌개혁위원회의 설치나 계열분리명령제의 도입, 막판에 나온 노동공약은 문재인 후보보다 진보적인 위치로 자리매김 되었다. TV양자토론에서 문재인 후보가 계열분리명령제 도입 공약을 두고 "재벌해체 아니냐?"고 물었을 때는 역공의 찬스였다. 하지만 타이밍이 많이 늦은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의제의 초점이 정치혁신으로 옮겨진 상태에서 그 같은 변화는 별로 커다란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도 안철수 후보는 적어도 정치개혁공약만큼은 계속 중도적 태도를 유지했다. 그래서 일각으로부터 '반정치' 아니냐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정치권의 기득권·특권을 내려놓자는 문제제기는 안철수 후보 아니면 생각해 내기 힘든 매우 정확한 방향 설정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총론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구체적 방법론에 있었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는 정치쇄신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제기하지 못했고, 단일화 협상과정에서 제대로 관철시키지도 못했다. 오히려 '의원정수축소'나 '반값선거비용' 같은 비본질적 문제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특히 이 문제를 가지고 진보적 지식인·언론·시민운동세력과 불화구조를 형성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안철수 후보가 진보개혁진영 내부에서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모습에 많은 야권성향 지지자들이 충격을 받고 급격히 동요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문재인 후보는 지속적으로 노동, 일자리, 복지 등 경제민주화의 영역을 공략해 나갔다. 진보의제는 어느 사이 조금씩 문재인 후보의 브랜드로 굳어가고 있었다. 문재인 후보에게 '진보개혁'의 영역을 스스로 내준 것은 나쁜 선택이었다. 아직도 한국의 많은 정치전문가들은 선거승패의 최종적 관건은 중도적 유권자를 잡기위한 싸움이라고 믿고 있다. 안철수 캠프 역시도 중도적 무당파 유권자들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전략운영의 커다란 비중을 할애했다.
그러나 한국의 중도층은 양극단을 끌어당기는 중위투표자라기보다는 좌우 양쪽의 세력에 의해 견인되는 스윙보터의 성격이 더 강하다. 한국의 선거정치에서 진보적 세력이 외연을 확대하는 가장 유력한 전략은 자신의 핵심지지자들을 결집시켜 그들에게 열정을 불어넣고, 이슈와 바람을 만들어 투표율을 높이는 데 있다. 이는 민주화 이후 치러졌던 수많은 중대선거에서 하나의 법칙처럼 입증된 결과였다. 이슈와 바람이 있을 때는 민주진보가 승리했고, 그것이 소멸되었을 때 보수가 승리했던 것이다.
이렇게 의제를 다루는 데서의 중도주의적 편향, 스타일 정치의 함정을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안철수 후보는 지지기반의 응집성과 결집력, 내구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에 환호했던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대부분 등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이런 요인들은 결국 야권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 측이 압박을 가해 왔을 때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단일화 프레임을 얕봤다
두 번째로는 전략의 한계였다. 안철수 캠프의 지도부는 전략플랜을 갖고 있지 않았다. 즉흥적으로 그때그때의 상황에 대처해 나갔을 뿐이다. 그것을 만들려는 의지도, 능력도 갖고 있지 않았다. 자신들의 능력부족을 메우기 위해 인적 자원을 보강한다든지 하는 생각 따위는 더더욱 없었다. 무엇보다 단일화 프레임의 위력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다. 필자가 그것의 위력에 대해 5년 전 나름의 경험에 근거해 선제적 대응의 중요성을 누누이 역설했으나 지도부는 안일했다.
안철수 캠프의 지도부는 대중의 정권교체 열망을 과소평가했다. '새로운 정치'와 '정권교체'의 담론을 정교하게 양립시키지 못해 혼선을 빚은 결과 정권교체를 바라는 대중들의 의구심을 사게 되었다. 단일화 전략과 관련해서 안철수 후보는 양극단을 오가는 모양이었다. 초기에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에 대해서 너무 늦게 반응했고 방어적으로 대했다. 그러는 사이에 호남, 40대 유권자들이 문재인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고, 안-문간의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압박을 느낀 안철수 후보는 결국 11월 5일 광주방문에서 전격적 후보회동을 제의했고, 11월 6일에는 후보등록 전 단일화에 합의했다.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수용은 안 후보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무장해제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을 제어할 수 있는 어떤 장치도 없었으며, 후보단일화 시점을 못 박아버린 것은 스스로의 발목을 옭아매는 결과가 되었다.
단일화 프레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안철수 후보 측이 일찌감치 '새로운 정치'를 작동시킬 수 있는 상위 프레임을 만들어야 했다. '미래권력론'과 '정당혁신론'으로 새누리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까지도 기득권 정치의 틀로 묶어놓고, 민주당에 강력한 쇄신압력을 가해야 했다. 문재인 후보와 정책과 정치혁신에서 적극적으로 차별화하면서 최대한 세게 압박하고, 주도권에서의 명백한 우위를 유지해 나가야 했다.
그런 연후에 다음 단계에서는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민주당과 손잡고 함께 가는 것이 불가피함을 중도 및 무당파층에게 설득하면서 민주당과의 융합을 시도해야 했다. 융합의 방향은 낡은 체제를 넘어 새로운 체제로 가기 위한 수권 가능한 미래권력의 형성을 과감하게 제기하는 것이어야 했다. 미래권력의 형성은 정치쇄신-정당쇄신의 기반 위에서 민주당과 안철수 후보 진영이 결합하는 새로운 미래정당 건설에 합의하는 것이었다. '미래'와 '새로움'이라는 키워드 위에서 민주당과 안철수의 장점을 결합하는 정치세력의 형성이야말로 미래권력을 창조하는 유일한 방안이었다. 이렇게 하면 안철수 후보는 새로움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에 대한 주도권을 잡고 민주당의 테두리에 갇혀있는 야권성향의 지지층에 효과적으로 사다리를 놓을 수 있었고, 동시에 조직과 세력이 없는 불안한 후보라는 이미지를 일거에 걷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 측은 시종일관 민주당에 지나치게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했다. 민주당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매우 신중한 태도로 일관했는데, 후보야 좀 점잖게 할 필요가 있었다 치더라도 참모들까지도 후보와 똑같은 수준의 태도를 취했었다는 것은 정말 문제였다. 핵심참모들은 민주당에 거칠게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민주당에 반감을 갖고 있었지만 민주당을 잘 모르는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민주당 쇄신이라는 목표를 일관되게 지향하면서 유연하고도 단호하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또 안철수 캠프는 민주당에 정당쇄신을 요구하면서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제기하지 않았고, 사실 제기할 능력이 없었다. 정치·정당분야 공약을 끝내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이를 입증했다. 막판에 전남대 강연을 통해 새로운 정치를 통한 '국민연대'라는 방향을 제시하기는 했으나 그것을 강제할 어떤 장치도 없었고, 너무 추상적이었다.
캠프 핵심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세 번째로는 조직·리더십의 한계였다. 안철수 후보 진영의 조직·리더십은 현장 및 대중의 흐름과 유리되었다. 일반적으로 정치조직은 크게 리더십을 형성하는 코어집단, 활동조직, 추종세력으로 범주를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집단은 바로 코어집단이다. 코어는 철학적 원칙, 역사적 비전과 지식, 기본노선, 실행능력을 공유하는 훈련된 리더십집단이다. 그래서 코어는 철저하게 검증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개인의 명망을 앞세우는 사람, 자신의 권력을 키우는 데 몰두하는 야심가, 직업적 브로커들을 멀리해야 한다. 미국식 유행을 따라 한국에서도 기본전략을 정치컨설턴트들에게 많이 의존하는데, 그들은 조직의 철학·역사적 원칙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만일에 코어가 잘못 짜이면 확장 과정에서 반드시 균열이 생겨 자체의 무게로 인해 쓰러지고 만다. 반면에 활동조직이나 추종집단은 여러 가지 재능과 역할의 필요성을 기반으로 구축된 집단이기 때문에 다소간의 이질성이 불가피하고, 윤리적 수준도 코어집단에 비해 순도가 훨씬 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코어만 튼튼하면 좀 순도가 떨어져도 용인될 수 있다.
그런데 안철수 캠프에서는 코어와 활동조직·추종집단 간의 관계가 다소 역전된 듯이 운영되었다. 먼저 안철수 캠프의 지도부는 구성의 원칙과 기준이 무엇인지가 불분명한데다 구성되기 이전이나 이후에도 능력을 제대로 검증받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지도부는 캠프 내외의 비판에서 빗겨나 관대한 대우를 받았고, 반면에 활동조직이나 추종집단은 엄격한 잣대를 요구받았다. 순도가 떨어지거나 생각이 좀 다르다 싶으면 구태정치라고 인식하는 습관이 강했다. 이런 태도는 능력 있는 사람의 진입을 차단하는 결과를 빚기도 했다.
이런 행태는 캠프가 민주주의적 조직운영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였다. 캠프의 핵심으로 통하는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전문가와 활동조직이 오랜 시간 동안 토론하고 고민해서 올라간 의견은 정반대의 이상한 물건이 되어 최종안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결정하는 윗부분과 토론하고 작업하는 아랫부분이 따로 놀았다.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한편 출마선언의 지연은 가치·노선의 정립과 코어의 팀워크 구축에 필요한 최소한의 절대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추석 이후 전략기조와 지도부의 신속하고 과감한 교체 내지 보강이 필요했으나 시간적 임박성과 대체 자원의 결여 때문에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었다.
출마선언 이후 안철수 후보가 펼친 정치실험에서는 그가 그전에 가다듬어 놓은 생각들이 대부분 굴절되고 증발되어 나타났다. 안 후보 역시 자신의 생각과 현실이 자주 괴리되어 나타나고,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현실이 발전되어 나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본성적으로 선한 사람인데다 완벽성, 완결성을 추구하는 강렬한 습관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자신이 했던 말이 대중들에게 빈 말이 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매사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몸속에 깊이 각인된 것으로 보인다. 의원정수축소 문제에 대해서 그가 강한 태도를 보인 것도 이런 태도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신당 창당 유혹에 흔들릴 게 아니라...
안철수 캠프에 참여했던 나의 지인이 얼마 전 안철수 후보가 DJ와 무척 닮은 것 같다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안 후보가 DJ와 다른 점도 있다고 했다. 즉 DJ가 현장의 전문가, 이해당사자들과 끊임없이 토론하면서 결정을 해나갔다면, 안철수 후보는 그에 대한 노하우와 네트워크가 시간적, 경험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상당히 적절한 지적이 아닐까 싶었다. 바로 그런 점이 안철수 후보의 정치실험에 나타났던 한계와 오류를 신속하게 정정하지 못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철수 후보가 짧은 시간의 정치실험을 통해 보여준 잠재력은 적지 않은 것이었다. 객관적 현실여건에 비해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틀린 것은 아니다. 정치와는 전혀 거리가 멀게 살았던 데다, 사회과학적 인식능력을 훈련할 시간과 기회도 없었던 사람이, 아무리 대중의 열망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해도, 대통령선거에 뛰어들어 이 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그것도 조직화된 세력의 뒷받침 없이 거기까지 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정치를 꽤 해보았던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했던 숱한 실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그는 노무현 후보에 비해 너무 정적이고 추상적이며 미괄식 화법을 쓴다는 약점도 갖고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으로 당분간 가치·노선, 전략, 조직·리더십의 전면적 쇄신을 위해 성찰과 정진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정치실험에서 보여준 것으로는 당장에 어떤 정치실험을 재개해도 기존의 한계와 오류를 반복할 것이다. 앞으로 그의 주위로부터 대선 후 신당을 만들자는 등의 여러 유혹들이 밀려들 것이다. 이런 유혹들에 그가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야권이 정권교체에 실패했을 경우 그런 유혹은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감히 그에게 제언하건대 당장의 남은 대선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를 쿨하고 화끈하게 도와주는 것 말고는, 자기성찰과 쇄신의 시간들을 가지면서 때를 기다리는 긴 호흡의 계획들을 짜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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