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us> 2013.01.04 08:24:23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71
뒤늦은 ‘안철수 대망론’으로 야권 쇄신 가능한가
‘선수 탓’ 촌평이 가리고 있는 정치적 문제들
법륜 스님이 지난 2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선거를 졌으며 만일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 되었다면 충분히 이겼을 거란 취지의 발언을 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는 민주당이 안철수 후보가 경쟁력을 가졌던 중도층을 장악하지 못해서 패배했으며, 친노 인사 임명직 거부 선언이나 새로 만들어질 국민정당에서 민주당의 기득권 내려놓기 선언 등 중도층 유권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하지도 못했다고 비판했다.
'친노 책임론' vs '안철수 책임론'의 무의미한 격돌
법륜 스님은 청춘콘서트의 게스트 중 한 명이었고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 많은 교감이 있는 사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철수 후보에게 정치를 권한 사람 중 하나가 법륜 스님이란 얘기도 있다. 그렇기에 법륜 스님의 발언은 안철수 후보 캠프나 그 주변 사람들의 심리를 대변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선거 이후 문재인 캠프 일각에서 ‘안철수 후보가 제대로 도와주지 않아서 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상황에 대한 불만의 표시일지도 모른다.
법륜 스님의 비판에도 맥락은 있다. 문재인 후보의 선거를 사실상 총괄한 친노세력들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민주당에게 “만일 친노 인사 임명직 거부 선언을 한다면 지지율을 1~2% 가량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제언했지만 ‘그런 선언 없이도 이길 수 있다’는 답변을 들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선 직전에도 안철수 캠프 출신들이 민주당에 대해 비슷한 요구를 했지만 묵살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정황들은 문재인 후보 주변의 몇몇 친노 인사들이 정권교체보다 계파이익에 충실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소위 ‘친노’ 세력에게도 할 말은 있다. 최근 친노계로 분류되는 핵심 참모는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 정도로 득표한 것은 우리의 성과가 아니냐”라고 분통을 터트렸다고 한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제대로 돕지도 않았던 이들이 웅크리고 있다가 패배 이후 나와서 문제제기를 하는 상황이 적반하장으로 느껴질 것이다.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은 법륜 스님의 발언을 한 라디오 방송에서 비판하면서 “안철수 후보로 냈으면 무조건 이겼고 문재인 후보가 된 것 자체가 패배를 이미 예정한 것이라고 하는 건 대단히 주관적인 평가”이며 “안철수 후보 측의 그런 인식이 바로 단일화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던 원인 중에 하나”라고 지적했다. 역시 새겨들을 만한 얘기다.
지난번 기사에서 분석했듯, ‘안철수 거품론’이나 ‘문재인 필패론’은 꼼꼼하게 검증할 경우 그다지 근거가 없는 ‘설’이었다(관련 기사 링크). 특히 ‘문재인 필패론’을 전제로 한 ‘안철수 대망론’의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에 드러난 문제를 안철수 후보가 해결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는 데에 있다.
문제는 '선수'가 아니라 '전략'
안철수 후보의 명확한 강점은 '청춘콘서트'의 인기에서 보듯 청년세대의 지지를 잘 이끌어낼 수 있었기에 ‘세대분화 선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이것만큼은 매우 잘했고 사실 그것 외엔 별로 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패배했다. 청년층이 야권의 한 후보에 대해 이 이상의 투표율과 지지율을 보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패배한 것은 세대의 인구구성이 청년층에게 불리하고 청년층에 대해 감각적으로 접근하는 유세 방식이 다른 세대를 소외시켰기 때문일 수 있다(관련 기사 링크).
물론 이러한 청년층의 결집은 문재인 후보의 역량이 아니라 안철수 후보의 지원유세 탓이었을 수 있지만, 그렇기에 ‘안철수 후보로의 선수 교체’가 1백만표의 표차를 반전하기는 어려웠다 볼 수 있다. 그리고 상황을 이렇게 판단해야 ‘안철수가 움직이지 않아서 졌다’라는 일부 친노 인사들의 볼멘소리를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
사실 ‘안철수가 나갔으면 이겼다’는 주장의 근거는 ‘안철수가 더욱 열심히 움직이지 않아서 졌다’라는 주장의 근거와 같다. 안철수라면 얻을 수 있었던 표를 문재인이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참여정부와 친노에 대한 반감 때문에 차마 문재인 후보를 찍지 못했던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만으로 100만표의 표차가 반전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의 상당수가 박근혜 지지로 돌아섰으며 50대의 경우 그 경향성이 더욱 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대분화 선거'를 기획할 때 민주당은 십 년 전 40대일 때 노무현 후보를 찍었던 50대를 자신들의 편으로 믿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던 셈이다. 내일신문 기사의 분석에 따르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35%가 박근혜 후보 지지로 돌아섰고 특히 50대의 경우 그 비율이 47.1%에 달한다(링크).
그리고 50대들의 이러한 표심은 ‘참여정부와 친노에 대한 반감’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이들 중 상당수는 노후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종부세’를 낼 위험을 지느니 있는 재산을 지키며 경기를 부양시켜줄 후보를 택하고자 했다. 안철수 후보가 주도적으로 내세웠던 ‘새정치’란 구호 역시 이들을 공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새정치'의 구호에 반감을 느껴 '민생'을 전진배치했던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는 증언도 나오는 실정이다.
즉 만일 안철수 후보가 나왔다 하더라도 이들의 삶의 문제를 배려하는 어떤 정책적/전략적 접근 없이는 이 세대의 표심을 잡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문재인 후보 역시 문재인 후보였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선거전략에서 그러한 접근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안철수 지지자들은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의 이미지와 강점에 가장 근접했던 민주당 후보였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민주당은 새누리당을 이기기 어렵지만, 기타 정치세력이 새누리당과 경쟁하는 민주당의 위치를 점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 내부에서의 쇄신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제3정치세력이 정당을 만들어 민주당을 대체할 가능성을 따져볼 때에도 그러하다. 현재 민주당 내에서 친노세력 퇴진을 주장하는 이들이 친노보다 더 무능한 이들이라는 객관적 현실이 문제를 꼬이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민주당의 주류가 된 친노세력의 자기 혁신이 필요할 텐데, 친노세력은 문제제기를 한 이들의 무능함을 근거로 자기 혁신을 거부하는 중이다.
딜레마를 넘어설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따라서 민주당의 혁신이나, 민주당을 대체할 다른 정당에 대한 고민 등은 ‘선수교체’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단일화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잡음이 있었지만 엄연한 절차적 과정을 통해 선출된 정당후보가 국민후보를 자처하는 기반이 없는 후보에게 양보한다는 게 대단히 힘든 선택이었다는 점을 안철수 지지자들은 인정해야만 한다. 결국 실질적인 ‘선수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민주당 내부에 들어가 투쟁을 하거나 다른 정당의 몸집을 키워 민주당을 대체하도록 하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제 와서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되었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민주당의 혁신이나 다른 정당을 통한 민주당의 대체가능성, 즉 야권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과 방법들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다음 선거에서도 ‘쇄신을 말하는 이들은 민주당을 이기지 못하고, 그 민주당은 새누리당을 이기지 못하는’ 딜레마를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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