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2013.03.15 07: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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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노무현 대통령기록 잔혹사’ (상)
[한줌의 미디어렌즈]그때 그들은 “쓸 만한 기록이 없다”고 했다
김상철 ‘야만의 언론, 노무현의 선택’ 공저자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한 기록물 1088만 여건 가운데 비밀기록이 한건도 없다고 한다. 참여정부가 이관한 비밀기록은 9,700여건이었다. 최대 15년간(사생활 침해와 관련된 것은 30년) 공개할 수 없도록 한 지정기록물도 24만 건으로 참여정부 34만 건보다 10만 건이 줄었다. 이명박 정부가 업무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해서 비밀기록이 단 한건도 없고 지정기록도 팍 줄었을까. 민간인 불법사찰만 떠올려 봐도 그럴 리는 만무해 보인다. 기록을 남기지 않았거나 파기했거나, 둘 중 하나겠다.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 세상을 그들이 만들었으니까.
▲ 조선일보 2008년 6월 12일자 기사 |
2008년 촛불시위 와중에 나온 기록물 유출 시비
시계를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 기록물 유출 시비가 일던 2008년으로 돌려보자. 촛불시위의 열기가 여전히 뜨거웠던 2008년 6월 기록물 유출 의혹이 처음 제기됐다. 발신지는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6월 12일 <盧정권 청와대 직원들, 내부자료 불법 유출 / “정권 말기, 조직적으로 200만 건 이상 컴퓨터 복사”> 기사를 단독으로 내보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취재원이었다. 이명박 청와대의 이 핵심 관계자는 기사에서 “노무현 청와대의 일부 직원들이 올해 초 청와대 내부 컴퓨터 업무망인 ‘이지원(e知園)'에서 200만 건이 넘는 자료를 복사해 불법 유출했다”, “유출된 자료의 상당수가 대통령기록관이 아닌 다른 곳에 옮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한 달 뒤에도 이어졌다. 동아일보는 7월 11일 <靑자료 유출 파문 확산 / 청와대가 파악한 노 전 대통령 측 자료유출 전모> 기사에서 “노 전 대통령 측이 청와대 자료 중 상당 부분을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고, 봉하마을로 가져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청와대 측 주장”이라고 중계를 계속했다.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방침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때 무슨 의도로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조선일보에 그런 얘기를 흘렸는지 모르겠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받아 적은, 말도 안 되는 보도였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참여정부의 대통령기록물 인수를 완료했다고 공식 발표한 때가 2008년 2월 20일이었다. 조선일보 보도가 나오기 4개월 전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명박 청와대 발(發)로 유출 시비가 제기된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의혹을 부풀려나갔다. 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지 않고 다른 데로 빼갔다는 주장으로 시작해 아예 ‘하드를 통째로 가져갔네’, ‘유령회사를 동원했네’ 하는 기사가 이어졌다. 이명박 청와대가 제기하고 이들 신문이 부풀린 의혹들은 채 한 달이 못가 사실무근임이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이들 신문이 인용해놓은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을 환기할 필요가 있겠다.
▲ 중앙일보 2008년 7월 7일자 기사 |
국정 위한 자료는 남겨놔야 한다던 ‘이명박 사람들’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는 출범 때부터 “청와대 인트라넷 망에 남아 있는 전 정부의 기록물이 형편없이 적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청와대가 남긴 자료 중 쓸 만한 게 없다”는 취지의 고민을 주변에 털어놓았었다. 청와대 직원들은 “기껏해야 청와대 내부 전산망 ‘이지원’의 매뉴얼 책자 정도만 남아 있더라”란 얘기를 쏟아내기 일쑤였다. (중앙일보 2008년 7월 7일)
청와대 관계자는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자료는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노 전 대통령 측이 현 정부에 남긴 1만6000여 건의 자료는 ‘치약은 이렇게 짜라는 식의 생활안내문’ 수준이며,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라고 재반박했다. (동아일보 7월 10일)
기사를 보면 “지난 청와대가 남긴 자료 중 쓸 만한 게 없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자료는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던 인사들이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청와대 관계자들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5년간 비밀기록 한건 남겨놓지 않았다. 비밀기록은 정권과 상관없이 대통령, 국무위원 등 인가권자가 열람할 수 있는 중요기록이다. ‘하는 말 따로, 하는 짓 따로’다. 그런 사람들이 지난 5년을 책임졌다.
“노 전 대통령 측이 현 정부에 남긴 1만6000여 건의 자료는 ‘치약은 이렇게 짜라는 식의 생활안내문’ 수준”이라는 이명박 청와대 관계자의 멘트도 기억해두면 좋겠다. 참고로 참여정부 청와대는 2007년 5월 차기 정부 인계인수계획을 세우고 최초로 업무 인계인수시스템을 구축해 작업을 진행했다. 참여정부 청와대로서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에 인계하면 될 일이었으나 별도의 업무를 수행한 것이다. 당시 청와대브리핑은 이를 “차기 비서실이 빠른 시간 내에 업무를 파악하고 현안업무를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대통령비서실장과 차기 비서실장 내정자의 서명을 거쳐 완료되는 인계인수 작업은 그나마도 마무리되지 못했다. 새로 들어설 이명박 청와대에서 굳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기록’ 폄훼하던 그들과 언론은 지금
실제 ‘치약 사용법’ 수준이었건 아니었건, 인계 받은 측에서 자료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를 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퇴임 9개월 전부터 계획을 수립해 인계인수시스템까지 구축하며 공을 들였고, 법제도 정비를 통해 대통령기록물 생산·이관·보존을 체계화한 참여정부 청와대가 들을만한 평가였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궁금하다. 그때 그렇게 이명박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을 열심히 받아 적으며 의혹 키우기에 힘썼던 그때 그 언론들은 지금 무슨 말을,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말이다. “지난 청와대가 남긴 자료 중 쓸 만한 게 없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자료는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질타하던 이명박 청와대 인사들이 비밀기록 하나 남겨두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결과적으로 그런 ‘지적질’ 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란 게 확인됐지만, 유감스럽게도 노무현 대통령기록에 대한 이들의 대접은 그 정도의 ‘박대’로 끝나지 않았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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