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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 2013.03.15  09:08:45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626

 

다시 보는 ‘노무현 대통령기록 잔혹사’ (하)

[한줌의 미디어렌즈] 먹이 찾는 하이에나처럼, 기록을 헤집다

 

김상철 ‘야만의 언론, 노무현의 선택’ 공저자  

 

개인적인 경험담 하나. 필자는 2005년부터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임기 5년차인 2007년이었다.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전에는 없던 새 일이 떨어졌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기록물을 이관하는 작업이었다. 물론 그 자체로 전례가 없던 일은 아니다. 근데 실무자 입장에선 좀 심하다 싶었다. 사정은 이랬다.

참여정부 청와대 업무시스템 ‘이지원’이 정착되기 전인 임기 초에는 더러 문서로 업무를 보고하고 정리했던 모양이었다. 기록을 이관하는 과정에서 임기 초 노무현 대통령의 일정기록은 있는데 이와 관련한 담당 비서관실의 보고자료 등이 누락된 경우가 나왔다. 대통령기록관에 알맹이 없이 일정기록만 이관할 수 없으니 관련 자료를 찾아 채워 넣으라는 지시였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다. 한가한 임기 5년차를 보내고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무실의 서류철을 뒤지고 청와대를 먼저 나온 전임자한테까지 연락해가며 문서자료를 찾아 시스템에 등록했다. 어찌 보면 기록에 대한 ‘집착’으로 비칠 만큼, 참여정부 청와대는 기록물을 정리·보존하고 이관했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기록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이 그랬다. 칭송이냐고? 아니. 실제로 그랬다.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캡처

 

없던 일까지 만들어 기록 보존·이관한 대가는

일례로 노 대통령은 임기 3년차였던 2005년 10월 4일 국무회의에서 기록 관리에 대해 언급했다. “기록 관리를 100% 완벽하게 해야 한다. 기록 중에 필요 없는 기록도 있겠지만 100% 기록을 남긴다는 원칙을 가져가지 않으면 아주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서 모든 기록들이 사멸되어버리고 결국 기록문화는 유지할 수 없다”는 요지였다. 그런 대통령 ‘때문에’ 당시로선 유례없는 825만여 건의 대통령기록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했다. 거기에 34만 건의 지정기록, 9,700여건의 비밀기록도 포함됐다. 자의적으로 기록을 없애는 짓 하지 말자고, 기록문화를 살리자고 한 일이다.

 

2007년 4월 제정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도 그런 취지가 담겨있다. 기록물을 제대로 생산하고 충실히 보존하려면 이를 위한 보호장치가 필수다. 다음 정부가 손쉽게 들춰보고 정치적 의도를 갖고 악용할 수 있다면, 그 같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기록물을 생산·이관할 정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기록물을 차기 청와대가 아닌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고 중립적 관리 강화를 위해 대통령기록물관리위원회를 설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런 보호장치의 핵심이 지정기록물 제도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군사·외교·통일에 관한 비밀기록물’, ‘정무직 공무원 등의 인사에 관한 기록’ 등 공개할 경우 국가적 혼란을 초래하거나 개인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기록들은 대통령이 지정하면 최대 15년간(사생활 침해와 관련된 것은 30년) 비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 고등법원의 영장 제시 등으로 열람 및 자료 제출 요건을 엄격히 제한했다. 그래서. 열심히 기록을 남긴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이후 양상은 참으로 야만적이었고 차라리 허망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정부여당과 몇몇 언론은 처음 접한 대량의 대통령기록을 들춰보고 싶어 몸이 달았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첫해도 지나지 않아 노 대통령의 지정기록물은 두 차례나 열렸다. 국회는 쌀 직불금 유용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지정기록인 ‘대통령주재 쌀 직불금 대책회의 회의록’ 등의 열람을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의결해버렸다. 노 대통령 퇴임 이후 기록물 유출 시비를 빌미로 고등법원이 영장을 발부해 검찰에서 지정기록을 또 열어봤다.

 

맘대로 들춰보고 제멋대로 비난한 ‘노무현 기록’

언론 스스로도 기록에 대한 무지를 마음껏 과시했다. 노 대통령이 이관한 기록 825만여 건 가운데 34만 건의 지정기록을 두고 <열어볼 수 없는 ‘노무현 청와대’>(조선일보 2008년 3월 12일), <전 대통령은 보는데 현 대통령은 못본다?>(동아일보 7월 12일)고 문제 삼았다. 심지어 한참 전에 끝난 참여정부의 대통령기록 이관을 두고도 <“노 정부 때 청와대 메인 서버 봉하마을에 통째로 가져갔다”>(중앙일보 2008년 7월 7일), <靑자료 유출 파문 확산 / 청와대가 파악한 노 전 대통령 측 자료유출 전모>(동아일보 7월 11일) 따위의 기사가 나왔다. 하드를 통째로 가져갔네, 청와대 자료 상당 부분을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고 봉하마을로 가져갔네 운운하는, 모두 ‘이명박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말을 받아 적은 것들이었다.

 

기억하다시피, 지난해 대선과정에서는 정부여당이 노 대통령의 NLL 관련발언을 정략의 소재로 삼았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배석자들이 수차례 NLL 관련발언이 없었다고 확인해도 정치공세는 그치지 않았다. 아무나 볼 수 없는 자료를, 볼 수 없는 사람이 봤다고 하고, 근거 없는 주장을 쏟아냈다. 급기야 지난해 10월 23일 조선일보는 1면 머리로 <盧 주재회의서 청와대 문건 목록 없애기로>라고 보도했다. ‘노 대통령이 2007년 5월 2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감한 문건은 폐기하라고 지시했다’는 이 기사는 당시 노무현재단이 곧바로 발표한 성명에서 보듯 일부 발언을 짜깁기한 명백한 날조였다.

 

 [노무현재단 성명] 조선일보 ‘노대통령, 청와대 문건 폐기지시’는 악의적 날조

 

더구나 조선일보가 입수했다는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회의록은 비공개 지정기록이었다. 짜깁기한 발언 일부라도 나왔다는 것은 누군가 노 대통령의 지정기록을 들춰보고 조선일보에 흘렸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들 언론과 정부여당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조선일보 보도를 놓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박자를 맞췄고 지금은 박근혜 정부 정무수석이 된 이정현 당시 공보단장은 노 대통령을 “5천년 내 최초의 역사 폐기 대통령”이라고 했다.

 

최초의 기록대통령, 최초의 역사 폐기 대통령

최초의 역사 폐기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을 한 달여 앞둔 2008년 1월 22일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기록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열심히 기록을 남긴 대가는 그 기록을 맘대로 파헤치고 멋대로 훼손하는 행태를 ‘겪는’ 것이었고 최초의 역사 폐기 대통령이라 낙인찍히는 것이었다.

 

그 5년을 지나 우리사회는 10만 건이 줄어든 지정기록, 그나마 비밀기록은 단 한건도 남기지 않은 이명박 정부를 떠나보냈다. 애초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겠나. 애써 기록을 남긴 사람이 피해보고 욕을 들어먹는 세상을 그들이 몸소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기록 잔혹사’의 귀결인 셈이다. 아니,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고 그렇게라도 끝나길 바라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기록문화, 적어도 대통령 기록문화에 관한 한 우리사회는 아주 먼 길을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궁금하다. 거기에 일조한, 기록문화 퇴행에 가담한 정치세력과 언론은 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나 보고 있는지 말이다. 반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니. 답을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묻고 싶다. 정말, 부끄럽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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