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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협동조합, 자본주의 대안으로 뜬다 /경향신문20130105

by 마리산인1324 2013. 6. 11.

<경향신문> 2013-01-05 16:00:5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1051600571&code=940100

 

 

협동조합, 자본주의 대안으로 뜬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2013년 새해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경제민주화 바람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대안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2011년 12월 19일 국회 본회의 통과)이 발효되면서 전국 지자체에 협동조합 설립 신청 건수가 밀려들고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그가 생활협동조합 조합원으로 참여한 것은 우연이었다. 그는 1993년 서울 방학동 주택조합 아파트(20가구 이상 무주택 가구주가 모여 조합을 만든 뒤 직접 땅을 사서 공급하는 아파트. 사업구역 토지의 80% 이상 확보하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에 살면서 아이 친구의 엄마 소개로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등록했다.

한살림 조합원이 되고, 생협 소식지를 보면서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여름 날씨가 너무 더워 농작물이 타죽을 지경이어서 농약을 조금 뿌렸다는 농부의 이야기, 작황이 좋지 않아 농작물 모양이 좋지 않아도 이해해달라고 말하는 생산자의 사연을 보는 것이 그에게는 충격이었다. 생협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신뢰감을 가질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사는 조합원끼리 자연스럽게 모이면서 마을공동체도 만들어졌다. 그는 생협이 마련한 생산자 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농부가 얼마나 힘들게 농산물을 생산하는지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는 조합원 활동을 통해 ‘사람이 우선’이 아닌 ‘자연과 사람이 하나’라는 것을 실감했다

 

생협을 통해 얻은 귀중한 경험은 지금 그의 인생에서 전부가 됐다. 그는 2000년 서울 도봉지부 지부장, 2007년 서울 북부지부 지부장을 지냈고, 지금은 한살림서울소비자생활협동조합 (비상임) 이사장으로 생협 활동에 투신하는 활동가로 변했다. 협동조합은 사회는 물론 개인의 인생까지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본주의의 여러 모순 협동조합은 해결”

곽금순 한살림 서울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이사장의 이야기다. 평범한 주부에서 조합원 16만명을 이끄는 협동조합 이사장까지 맡게 된 것은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직접 느끼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곽 이사장은 “생협의 출발은 사회적 경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 안에서 드러난 여러 모순을 협동조합은 해결하고 있다. 생협은 오래 전부터 농수산물의 유통거래를 단순화해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일하고 싶은 조합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세상을 바꾼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협은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곽 이사장의 사연처럼, 협동조합은 평범한 시민을 사회와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리더로 만든다. 이런 분위기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1일 발효된 협동조합기본법의 영향으로 협동조합 설립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AP통신, FC바르셀로나, 알리안츠생명, 썬키스트, 몬드라곤 등 세계적인 협동조합이 한국에서도 나올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12월 29일,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협동조합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5명 이상의 발기인이 모여 창립총회를 갖고 등록하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는 취지의 법이다. 53년간 지속됐던 협동조합 개별법(농협·수협·엽연초조합·산림조합·중소기협·신협·새마을금고·소비자생협 등 8개 형태의 협동조합은 그때그때 제정된 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됐다) 시대를 마감하고 협동조합기본법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획재정부 협동조합운영과는 협동조합기본법 발효 후 1개월 뒤(2012년 12월 31일) 협동조합 신청 현황을 조사했다. 비영리법인 혜택을 받게 되는 사회적 협동조합 인가 신청은 17건, 일반협동조합 설립신고 신청은 서울시·부산시·대구시 등을 포함해 14개 지자체에 119건이 들어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기획재정부 협동조합협력과 박창환 과장은 “초반부터 이렇게 많은 신청이 들어올 것은 예상치 못했다. 이런 추세라면 3~5년 지나면 8000개의 협동조합이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2012년 유엔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라는 것이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비영리 목적 사회적 협동조합도 가능

일반협동조합 설립신고 신청 현황을 보면 대리운전기사의 복지를 위해 만든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재활용 사업을 하기 위해 만든 ‘성북의류자원순환협동조합’, 도시농업을 위해 만든 ‘씨앗들 협동조합’, 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만든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설립 신청을 했다. 교육, 카페운영, 주택, 의류, 문화 등 사회 전 분야에서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함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일반 기업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있다. ‘화평동 왕냉면’ 브랜드를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기업 ‘해피브릿지’는 지난 연말 주식회사 해산 총회를 열고 1월 중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여성민우회 생협에서 만난 6명의 조합원은 ‘감좋은공방협동조합’이라는 봉제 소품공방 설립을 준비 중이다. 감좋은공방협동조합 김양순 이사는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좋다”면서 “우리가 만든 제품을 여성민우회 생협에 팔아보려고 시작했다. 협동조합끼리 도움을 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소비자협동조합 설립을 신청한 홍호영씨는 “라식이나 건강검진 등 각종 비급여 항목을 저렴하게 이용하려는 협동조합”이라며 “의료기관에 근무를 했던 경험을 살려 사업 아이템으로 쓰려고 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이윤을 포기하고 조합원에게 혜택을 주려는 생각으로 협동조합 설립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한 사연과 이유로 협동조합 설립을 신청하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에서 정의하는 협동조합이란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업조직’이다. 어떤 분야든 협동조합을 만들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협동조합기본법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사회적 협동조합’을 따로 분류해놓은 것. 사회적 협동조합은 ‘지역 주민들의 권익·복리 증진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거나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협동조합’이다. 공익적인 활동을 위주로 하는 협동조합까지 보장하는 셈이다. 사회적 협동조합의 인가 결정은 기재부, 농림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에서 한다.

설립기준 인원 낮아져 소규모조합 가능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다는 기준은 협동조합의 대중화를 불러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지금까지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면 지역농협은 1000명 이상, 생협의 경우 300명 이상이 모여야 설립이 가능했다. 이런 설립 기준은 소규모 협동조합의 설립을 막는 걸림돌이었다. 자본금 제한 규정도 없다. 일반 주식회사는 ‘1주 1표’의 의결권을 가지지만, 협동조합은 출자금이 얼마든 모든 조합원이 ‘1인 1표’의 의결권을 가진다. ‘협동조합’의 운영방식을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민주주의 교육의 현장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배당금도 출자금의 10%를 넘길 수 없다. 협동조합은 이윤 창출이 최고의 가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의 약점을 보완하고 일자리 창출은 물론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통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을 신청한 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 대표는 “협동조합은 새로운 경제체제다.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대안의 경제체제”라며 “이런 면에서 협동조합이 부각이 되는 것이다. 일반 기업은 자본이 중심되지만, 협동조합은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사업이다”라고 설명했다.

협동조합기본법 국회 본회의 통과는 기적?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협동조합이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편 이명박 정부에서 마련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협동조합기본법이 정치권에서 만들어지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기적’이라는 평가가 높다.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이들은 경실련 사무총장 출신의 박병옥 전 청와대 서민정책비서관(현 심평원 감사),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김성식 전 새누리당 의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다.

2011년 8·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은 ‘공생발전’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정부는 이 대통령의 공생발전을 뒷받침할 정책이 필요했다. 박병옥 당시 비서관은 ‘공생발전과 협동조합’이라는 서류를 임태희 당시 대통령실장에게 보고했다. 임 실장이 힘을 실어주면서 기획재정부와 함께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TF팀’이 만들어졌다. 박 비서관이 팀장을 맡았다. 협동조합을 관할하는 부처로 기재부가 선택된 것.

경실련 출신의 박재완 기재부 장관은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협동조합기본법 탄생에 큰 도움을 줬다. 박병옥 전 서민정책비서관은 “당시 손학규 대표와 이정희 대표도 협동조합기본법을 발의한 상태였다. 정부와 야당이 모두 협동조합에 관심이 높았던 상황”이라며 “정부 입법으로 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해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의 김성식 의원을 통해 발의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신속하게 정리되고 다듬어졌다. 본회의 통과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2011년 11월 22일 당시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안 날치기 처리를 하면서 국회 활동이 모두 정지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국회의 문을 다시 열게 만든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었다. 2011년 12월 19일 김 위원장의 사망이 알려지면서 국회가 문을 열었고, 협동조합기본법이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협동조합기본법을 만드는 데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은 본회의 통과를 모두 ‘기적’이라고 평가한다

 

2012년 5월 지자체 기초단체장들의 모임인 희망제작소 목민관클럽의 특별좌담에서 당시 이대중 기획재정부 협동조합팀장(현 외교통상부 한중일협력사무국 정무팀장)은 협동조합기본법이 전격적으로 제정된 배경에 대해 “내부적으로 시민단체나 협동조합 활동가들의 요구뿐만 아니라 국회와 정부 등에서 시대적 필요와 요구가 있었다”면서 “우리나라 정부 차원에서 협동조합을 주목한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 창출과 취약계층 복지 측면이다. 유엔의 자료에 따르면 협동조합이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기본법이 급하게 만들어진 탓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법이 급하게 만들어지면서 민간 진영의 의견이 다양하게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과, 협동조합기본법을 악용할 수 있는 가짜 협동조합에 대한 대책이 법조문에 부족하다는 것이 지적됐다. 박병옥 전 비서관은 “무늬만 협동조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걱정이다. 협동조합 설립에 큰 돈을 투자하는 것은 안 된다”면서 “정부나 지자체가 협동조합 분야에 재정지원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을까 걱정된다. 협동조합은 자율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 협동조합 경제가 시작되면 우리나라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