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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지속가능한 협동조합을 위하여 /희망제작소20130403

by 마리산인1324 2013. 6. 11.

<희망제작소> 2013/04/03 11:00

http://www.makehope.org/4349

 

 

지속가능한 협동조합을 위하여

 

 

작년부터 협동조합 강좌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협동조합 7원칙이나 국내외 사례를 빠삭하게 파악한 시민들 중에는 본격적인 실행 방법에 궁금증을 던지기 시작했다. 작년 9월, 희망제작소에서 진행했던 <제1기 협동조합 창업 아카데미 Let's Coop>(이하 Let's Coop)이 태동하게 된 이유다.

 

<Let's Coop> 강연 중 서울시 동작구의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이하 희망동네)의 사례는 수강생들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강의 중 하나로 꼽혔다.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협동조합을 추진하기 위해 밟아야 할 단계를 차근차근 집어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속가능한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유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방향을 제시해 준다.

 

희망동네 유호근 사무국장의 발표 내용을 중심으로 한국 협동조합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지속가능한’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다져야 할지 가늠해 보고자 한다.

 

1. 관계 형성(협동)과 신뢰관계 구축

 

협동조합을 추진해온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속가능한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으로 말하는 것이 ‘관계 형성’과 ‘신뢰관계 구축’이다. ‘조합’ 이전에 ‘협동’을 중시하는 목소리와 같은 맥락이다.

 

현재 협동조합의 중요 사례로 꼽히는 서울시 동작구는 2004년만 해도 지역기반의 시민활동이 전무한 곳이었다. 지역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꿈꾼 유호근 사무국장은 2004년부터 지역 내 자원을 발굴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구청에 좋은 사업이 있으면 이곳저곳 전화해서 알려 주거나 함께 하자는 제안을 던졌다. 고운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다. 첫 2년 간은 사기꾼 취급을 받을 뿐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같은 제안을 반복하고 나서야 주민들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다. 다양한 소모임이나 마을 축제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들이 있어 가능했다. 결국 희망동네의 협동조합 1호가 만들어지기까지 6년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안성의료생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80년대 초반부터 지역 주민과 대학 학생회가 연계하여 추진한 농활이 물꼬를 열었다. 87년부터는 주말 진료소 활동이 시작됐고 그 흐름이 이어져 약 8년 후인 1994년이 돼서야 안성의료생협이 출범할 수 있었다. 의료혜택이 열악한 농촌지역에서 펼친 꾸준한 노력은 농민들의 동참을 이끌어 냈다.

 

관계 형성 이후 중요한 것은 신뢰관계 구축이다. 희망동네의 경우, 협동조합에 참여하려면 출자금 300만 원을 내야하며 운영위원에 참여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 배당금은 일체 주어지지 않으며 수익금 전액은 지역복지기금으로 적립한다는 규정도 동의해야 한다. 조건은 까다롭지만 2010년 12월에는 협동조합 ‘마을카페 사이시옷’, 2011년 3월에는 2호점 ‘성대골별난공작소’를 그리고 2012년 6월에는 3호점 ‘우리동네 마을상담센터’ 문을 열 수 있었다. 최근에는 협동조합 4호 ‘우리모여 청소년센터’와 5호점 단체급식협동조합 ‘노나매기’도 연달아 탄력을 받고 있다. 까다로운 조건에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사업을 이끌어 가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업의 가치에 대한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많은 오해와 의심이 있었지만 ‘중간에 포기하거나 배신하지는 않을 사람’이라는 신뢰가 튼실한 뿌리가 되었다고 한다.

 

2. 미션과 비즈니스 모델 수립 

 

관계 형성과 신뢰 쌓기만큼 중요한 것이 명확한 미션 수립과 비즈니스 모델 수립이다. 현재 협동조합 신고를 거친 기업들이 보안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Let's Coop> 강사로 초청됐던 최혁진 본부장도(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본부장, (전)원주 사회적경제네트워크 전무이사)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강조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끄집어내어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살림이라는 철학적 기반이 튼실한 한살림도 첫 시작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일본의 예를 보고 유기농산물 매장을 개장했지만 실패했다. 도농복합지역인 원주는 시민들이 따로 유기농산물을 살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이후, 서울에서 고객을 발견하고 시장을 확보하고서야 운영이 원활해질 수 있었다.

 

물론 비즈니스 모델 수립에 앞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미션 수립’이다. 제공하는 서비스가 영리기반일 경우 협동조합으로서의 미션이 명확하지 않다면 일반 기업과 다를 바 없이 운영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프랜차이즈 업체 ‘해피브릿지’는 국수나무, 화평동, 왕냉면 등 전국 가맹점이 400여 개가 있고, 2012년 매출이 311억 9,000만 원에 순익 11억 7,000만 원을 기록한 회사다. 최근 이 업체가 주목받는 이유는 3년 이상 근속 직원 67명을 조합원으로 하는 노동자(직원)협동조합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창립 멤버 절반이 이사에서 평조합원이 됐으며, 평조합원이 이사가 됐다. 주식회사 때와는 달리 잉여금 처리도 달라진다. 오랫동안 품었던 미션, '직원과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업'을 구현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이 미션이 흐릿해지는 순간, 협동조합의 의미도 퇴색해 버리고 말 것이다.

 

3. 조합원 조직하기

 

위 요소들을 완성했다고 해서 협동조합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 소모임, 정보공유를 통해 끊임없는 조합원 조직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가치와 정보를 공유하는 작업은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보다 원활하게 하는 데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희망동네의 경우 지역 주민들과 함께 협동조합 학습 소모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1천만 원의 손해를 보면서까지 보험을 해약하는 이들도 생겼는데, 공제조합과 같은 협동 조직에 출자하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빈집’(미등록 주거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주거협동조합 운영을 가능케  하는 ‘우주생활협동조합 빈고’도 조합원들과의 끊임없는 정보 공유와 소통을 통해 생명력을 유지한다. 각 집의 출자자들은 집 회의를 통해 새로 오는 식구들에게 빈고와 빈집의 가치를 설명하고 출자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 점차 문화가 되고 있다. 이를 통해 함께 사는 것의 가치를 공유한다.

 

서울의 쪽방촌 중 하나인 동자동에 공제조합도 교육과 소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공제조합을 만들기 위해 쪽방 주민들이 스스로 주민들을 조직화하는 과정은 눈물겹다. 자활공제협동조합 아카데미 교육을 수강한 후 결성된 25명의 조합 설립 추진위원들의 헌신성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공제조합의 가치를 합의한 이들은 5천 원씩 걷어서 회의를 진행하고 마을행사를 조합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폐지를 주워 모으는 열정을 발휘하며 지금의 동자동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을 형성해 왔다. 2013년 2월 기준으로 조합원 330명에 출자금이 5,000만 원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도 교육을 통해 조합원을 조직화하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어느 청년의 호소

 

최근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협동조합 운동을 무던하게 추진하던 이의 탄식이었다. 그들은 관계를 형성하고 신뢰를 쌓아가며 미션과 비즈니스 수립을 위해 애쓰는 건 즐겁게 감수할 수 있는 요건이라 했다. 그들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협동조합의 속도를 참아내지 못하고 성과를 요구하는 제 3자의 간섭이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1, 2년 아래 만들어 낼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그들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만 것이다.

 

연일 협동조합 신고 사례가 보도되고 있다. 내부 현황을 들여다보면 조합원들 사이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걸 넘어 ‘부재’하다는 사실을 접하곤 한다. ‘협동조합 =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착한 기업’이라는 인식도 강하다.

 

위에서 언급한 요건을 만들어 가기에 앞서 ‘협동조합’의 근본적인 필요성과 가치를 되물어야하지 않을까. 필자도 늘 조심스럽다.

 

글_ 배민혜 (사회적경제센터 연구원 jwain@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