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사회

기본소득제, 문제는 돈이 아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20130513

by 마리산인1324 2013. 7. 20.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6호] 2013년 05월 13일 (월) 14:18:28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9

 

 

기본소득제, 문제는 돈이 아니다

Dossier 기본소득제, 멀지 않은 유토피아

 

밥티스트 밀롱도 info@ilemonde.com

 

<숨겨진 이면의 장소에서> 시리즈,1973-제임스 쿠와나르

 

'누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달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을 조건 없이 받는다?'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만으로 이 주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정치적으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시행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아래 기사 참조).

 

기본소득제는 무엇보다 철학적 측면에서 만만치 않은 문제를 제기한다. 완전고용을 포기하고 임금노동을 하지 않고도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급진적 사상가들과 자유주의자들이 새로운 개념의 기본소득제를 주장하고 있다(16면).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그리고 최근 인도에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실험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14면).

 


 

"재원 마련이 불가능하다!"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되는 보편 소득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반대편에서 가장 먼저 하는 소리다. 가장 설득력 없는 소리이기도 하다.

 

국내총생산(GDP)을 따져보면, 프랑스는 오늘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잘사는 나라다. 2010년 가처분소득(총소득에서 사회보장 납입금과 직접세금을 제하고 남은 소득)은 어른과 아이를 포함해 국민 1인당 월 1276유로에 달한다. 다시 말해 프랑스에는 총가처분소득을 균등하게 분배해서 국민 모두에게 매월 1276유로씩 지급할 수 있는 돈이 있는 것이다. 이래도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좌파에서 주장하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제 (Unconditional Basic Income)를 시행할 돈이 없다고 말할 것인가? 현 빈곤선(중간소득의 60%)(1)인 성인 960유로, 미성년자 320유로를 기준으로 삼으면 개인 가처분소득은 최소 평균 820유로가 된다. 1276유로도 가능한데 820유로는 말할 것도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프랑스에는 전 국민에게 적어도 빈곤선과 동일한 소득을 보장해줄 수 있는 재원이 있다.

 

재원이 문제라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에서 실제 많은 문제가 있다. 중립성이나 객관성 문제가 제기되고 방식에 따라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 사회 변화와 부의 분배에 미치는 영향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좌파에서 주장하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에는 빈곤 타파와 불평등 해소라는 두 가지 중요 목표가 있다. 하지만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에 따라 첫 번째 목표만 달성될 위험이 있는데, 특히 몇몇 경제학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통화 발행(2)이 그렇다. 그중에서 은행에 대규모 대출을 해줘 새로운 통화를 발행하는 임무를 맡기자는 욜랑 브레송의 제안으로는 불평등 해소를 기대하기 힘들다.

 

재원?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기본소득제를 시행하기 위한 재원 조달 방식을 검토할 때 불평등 해소뿐만 아니라 신중성, 영속성, 적합성, 일관성, 타당성 등의 원칙도 고려해야 한다. 기본소득제를 통해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것은 좋은데 그 과정에서 빈곤층의 상황이 오히려 더 악화되거나 노동자가 싸워서 획득한 사회적 권리가 침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조건 없는 기본소득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나아가 반감을 표시하는 것도 기본소득제 시행으로 사회보장제도가 축소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왔다.

 

특히 자체 재원 조달 방식을 논의할 때 사회보장제도 축소 우려는 더 거세진다. 이미 사회보장연금·보조금·장학금 등의 형태로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조건부로 지원되고 있어서 기본소득제가 부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건 없는 기본소득제가 시행되면 몇몇 정책은 폐지될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있기 때문에 사회보장제도가 필요 없다는 자유주의자의 주장에 현혹되지만 않는다면 사회보장제도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회보장제도를 얘기할 때 두 가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은퇴연금·국민연금처럼 납입금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사회보험과, 납입금 없이 세금으로만 충당하는 국민의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한 공공부조다. 사회보험은 단순히 빈곤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기본소득제로 대체돼서는 안 된다. 반대로 공공부조는 완벽하게 대체될 수 있다. 아니 더 유리한 방향으로 대체될 수 있다. 조건 없는 기본소득의 액수가 적어도 프랑스의 기초생활수급제도인 '적극적 연대수당'(RSA)이나 교육장학금같이 사라지게 될 수당과 동일한 수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민건강보험, 성인장애인수당 등 목적이 분명한 제도는 존속돼야 한다. 그럼에도 사회보장제도를 다시 손보면 예산 변경같이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일부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조정 범위, 기본소득의 액수에 따라 제도 시행에 드는 비용의 3분의 1 이상을 자체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체 조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다른 재원 발굴이 필요하다. 목적세를 신설하거나 부가세 혹은 소득세, 재산세 인상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개인의 특정 행동 양식을 격려하거나 제한하는 세금이 있다. 환경세, 금융거래세인 토빈세,(3) 증권거래세인 케인스세, 임금 및 소득 상한선(최고임금제) 등이 있는데 종종 조건 없는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논의된다. 이 방식에는 두 가지 중요한 장점이 있다. 먼저 과세 대상이 되는 납세자 수가 제한적이어서 세금 신설로 고통받는 국민의 수가 적고 환경오염, 자본투기, 불평등하고 터무니없는 고액 연봉 같은 비난 여론이 비등한 행태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에 기대는 것은 참으로 위험스럽다. 예를 들어 토빈세를 기본소득의 일부 재원으로 사용한다면(3) 기본소득제는 혐오스러운 자본가들의 탐욕과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환경세도 마찬가지다. 마치 교통위반 범칙금으로 교통사고 예방 정책을 지원하기 때문에 운전자가 법을 어기기만 기다리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정책과 그 정책의 예산을 마련하는 방법 사이에는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교통위반 범칙금을 교통사고 예방에 쓰는 것처럼 말이다. 목적세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세가 임시적 재원에 불과함을 말하려는 것이다. 목적세는 한시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부가세(VAT)를 인상해서 재원으로 쓰는 방식은 스위스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기본소득, 문화적 충동>(4)에 소개돼 잘 알려졌다. 감독 다니엘 하니와 에노 슈미트는 소득이 아니라 소비에만 과세하는 근본적 세제개혁을 제안했다. 이 방식에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먼저, 모두가 소비자이기 때문에 모두가 과세 대상이다. 그릇이 클수록 과세율은 낮아진다. 부가세는 제품 가격에 포함돼 있어 목적세나 직접세보다 눈에 덜 띄어 조세저항이 적다. 그리고 소비세만으로 단일 과세하면 탈세를 막을 수 있다. 오로지 지하경제에서만 탈세할 것이다. 하니와 슈미트는 일정한 세율을 적용하는 비례세(부가세)와 정액수당(기본소득)을 조합시키면 재분배 성격의 누진세를 신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부가세가 불평등하고 역진적 세금이라고 비난받는 만큼 이 논리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기술적으로, 부가세를 올리면 물가가 오름에 따라 빈곤 척결이 어려워진다. 그러면 물가가 오르면 기본소득도 올려야 하는가? 아니면 기업이 제품 가격을 올리는 대신 부가세 인상분만큼 임금을 내릴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두 번째 가정을 선호했다.

 

제도 성공의 핵심은 일관성

 

더욱 중요한 것은 일관성의 문제다. 특히 반생산주의를 표방하는 좌파와 소비세에 기초한 기본소득제는 서로 충돌한다. 투기가 탐욕으로 생긴 수익(토빈세, 케인스세)과 환경에 대한 시민의 비양심적 태도(환경세)에 의지하는 것도 부족해서 이번에는 열심히 소비하라고 소비자를 부추겨야 하는 것인가? 기본소득제를 실시할 돈을 마려하려면 소비가 효용성이 있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부가세·기본소득 조합이 누진적이라는 주장 역시 의문스럽다. 실제 누진적인지 모호할 뿐 아니라, 논란의 여지도 많다. 진정한 누진세가 되려면 생필품, 일반 소비재, 사치품에 서로 다른 세율이 적용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소비 행태와 저축 수준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소득 전체가 아니라 소비된 소득만 다루면서 누진세에 대한 질문을 회피했다. 부가세를 얘기할 때 저축에 대해 간과하는 것이,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접근할 수 없는 조세의 사각지대이고 부가세는 없으면서 이자소득은 생기는 이중의 이익이 창출되는 곳이라 한다. 결국 또 다른 불평등이 만들어진다. 일관성을 확보하려면 조건 없는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을 통해 소득이 가장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한다.

 

법인세 인상을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베르나르 프리오(5)와 임금노동자 네트워크가 제안한 사회기금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들이 제안하는 것은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평생임금'이다. 여기서 평생임금의 장단점을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지만(6)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프리오는 영리 목적의 사유재산에 반대하고 기업이 창출한 부 전체를 공동기금으로 만들 것을 주장한다(이를 통해 기업의 영리 목적은 사라지게 된다). 이 기금은 한편으로는 평생임금을 지급하는 데 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에 상호부조 형식으로 투자된다. 프리오의 주장은 분담·갹출이라는 강한 사회적 상징성과 역사적 유산에 기초하고 자본소득이 근로소득을 점점 잠식해가는 지금의 경향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가치를 지닌다. 기금 관리에서도 국가의 통제를 부분적으로 벗어나 민과 관이 공동 관리한다는 장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소득세다. 물론 지금까지 소개한 방식이 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보다 각 방식의 장점을 조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득세의 장점은 확실한 누진세고 개인의 소득세로 재원을 마련하기 때문에 물가 상승 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이다(법인 관련 세금을 없앤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대대적인 세제개혁과 과세율의 대폭적 인상이 선결돼야 한다. 경제학자 마르크 바스키아(7)가 진행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좌파에서 주장하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실시하려면 과세율을 평균 30~50%포인트 인상해야 한다.

 

하지만 인상 규모를 상대화할 필요는 있다. 먼저 세금 인상을 임금소득·자본소득·재산소득·양도소득 등 모든 소득에 적용하면 인상 규모를 낮출 수 있다. 게다가 인상분은 균등하게 모든 납세자에게 배분될 것이다. '불평등 해소'라는 원칙에 비춰보면 몇몇 학자(8)가 주장하는 비례세(Flat Tax) 도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누진세에 역점을 둬야 한다. 고소득자에게는 높은 과세율을 적용해서 세금을 더 많이 물리고 소득 상한선을 두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단순한 재원 마련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기대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차상위계층에 소득세가 인상되지 않도록 재산세 인상을 생각할 수 있다. 소득 불평등도 문제지만 자산의 불평등은 더 심각하다. 재산세를 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소득세법을 개정해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세금은 오르는데 기본소득이 있으면 사람들은 일을 덜하게 될 것이고, 경제활동이 축소되면 기본소득 재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원리는 간단하다. 경제활동이 줄어들면 기본소득의 재원이 흔들리고, 결과적으로 수령하는 기본소득액도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일을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기본소득제 때문에 생산활동이 줄어든다면 오히려 잘된 것이다. 기본소득의 근간이 되는 반생산주의 원칙이 실현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현 시스템의 결함을 봤을 때 경제활동 축소는 불가피하고 우리는 그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구성원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구성원의 기본소득이 줄어들게 되면 구성원 각자는 소득을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필요뿐만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필요도 만족시키면서 말이다.

 

*

/ 밥티스트 밀롱도 Baptiste Mylondo 경제학자. 저서로 <조건 없는 기본소득>(Utopia·Paris·2012)이 있다.

 

번역 / 임명주 myjooim@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왜 책을 읽는가> 등이 있다.

 


 

(1) 중간소득은 국민을 정확히 반으로 나눈다. 한쪽은 더 많이 받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덜 받는 사람들이다.
(2) 통화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흔한 말로 ‘돈을 마구 찍어내고 있다’. 예금보다는 대출을 더 많이 하는 은행들 때문이다.
(3) 장마리 모니에와 카를 베르셀로네가 임시 재원 조달 방법으로 제안했다. ‘1차 소득원으로서의 사회보장소득 재원 조달 방법: 방법론적 접근법’, <Mouvements>, Paris, 2013년 2월호.
(4) Daniel Hani et Enno Schmidt, <Le Revenu de base: Une impulsion culturelle>(기본소득, 문화적 충동), http://le-revenu-de-base.blogspot.fr, 2008.
(5) Bernard Friot, ‘La cotisation, levier d’émancipation’(사회분담금, 해방의 수단),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2월호 기사와 저서 <L’Enjeu du salaire>(임금의 문제·La Dispute·Paris·2012) 참조.
(6) Baptiste Mylondo, <Pour un revenu sans condition>(조건 없는 기본소득·Utopia·Paris·2012), pp.59∼70에서 베르나르 프리오의 주장에 대한 비판을 읽을 수 있다.
(7) Marc de Basquiat, ‘Un revenu pour tous, mais ? quel montant. Comment le financer’(모든 사람을 위한 소득, 얼마나 소요될 것이며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Mouvements>, 2013년 2월호.
(8) Anthony Atkinson, <Public Economics in Action: The Basic Income/ Flat Tax Proposal>,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혹은 <Objectif oïkos>, Eyrolles, Paris, 2012에서 Marc de Basquiat 기고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