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의 소도시 '마리날레다'에 대하여
녹색평론 132호에 게재된 것 중에 두 편의 글을 소개한다.
〈살아있는 '로빈 후드'의 도시〉,소피 매카덤, 녹색평론 132호(2013년 9-10월호), 150~154쪽
소피 매카덤(Sophie McAdam) - 프리랜서 작가, 저널리스트. 이 글의 출처는 미국의 뉴스 웹 사이트 'Salon', 2013년 7월 26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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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볼 때 스페인의 소도시 마리날레다는 그 지역의 다른 곳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림 같은 캄피나 계곡 안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이 도시의 주위는 온통 녹색 구릉들과 몇 마일이나 뻗어있는 올리브밭과 황금빛 밀밭들이다. 아름답고 조용한 이 도시는 스페인의 가장 가난한 남쪽 지역인 안달루시아의 전형적인 작은 도시이다.
또한 그것은 민주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도시이다. 그곳 시장은 상점을 털라고 가르치고 있다.
2008년에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마리날레다는 명성이 드높아졌다. 동시에 그 특출한 시장 후앙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는 '스페인의 로빈 후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직접행동을 통한 항의운동으로 작년 8월에 몇몇 슈퍼마켓에서 기초 필수품을 값을 치르지 않고 들고 나오는 행동을 조직하고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그들은 지역 푸드뱅크로 가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서 식용유와 쌀, 콩 등을 카트에 잔쯕 싣고, 계산대 직원이 무력하게 바라보는 가운데(어떤 직원은 울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상점을 빠져나갔다. 이 사건 뒤 한 인터뷰에서, 1979년 이래 계속해서 민주적으로 시장으로 선출되어온 고르디요는, 그것은 절도가 아니라 비폭력적 불복종 행동이라고 말했다. "먹는 것조차 마련할 수 없는 가정이 허다합니다. 21세기에 이것은 치욕스런 현상이죠. 먹을거리는 기본적 권리이지 투기 대상이 아닙니다."
고르디요는 정치적 면책권 때문에 기소되지는 않았다. 그는 몇백만 명의 인간이 굶주림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슈퍼마켓들이 음식을 버리고 있는 현실에 분노한다. 그리고 그는 대규모 슈퍼마켓 때문에 소농민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슈퍼마은 농민들에게 지불한 값의 704%나 되는 높은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팔고 있습니다."
보통의 정치가들과 달리 회색 수염이 덥수룩한 고르디요는 피댈 카스트로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만든 목도리를 언제나 어깨에 걸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명성을 별로 즐기지 않고, 작년 여름 슈퍼마켓을 공격할 때보다 좀더 마르고, 피곤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로빈 후드'식 활약은 안달루시아에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렸다. 안달루시아는 스페인의 긴축재정 정책과 엄청난 실업사태로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만 은행부채 때문에 69만 가구가 주택에서 퇴거를 당했다. 그러나 마리날레다의 주택 상황은 예외이다. 왜냐하면 고르디요 시장의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마리날레다에서는 누구든지 자기 집을 짓고자 원한다면 무료로 지을 수 있다. 시청에서 주택 건설에 필요한 물자와 기술을 가진 노동자들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192평방미터라는 꽤 넓은 부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주거공간은 널찍하게 된다. 그러한 주택을 평생 월 15유로(22,000원)만 내면 죽을 때까지 소유할 수 있고,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 다만 그 주택은 사적 이익을 위해서 매매할 수는 없도록 계약을 맺는다.
"나는 집은 인간의 권리이지 상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르디요는 설명한다. 고르디요는 지난번 선거에서 73%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4년마다 시생되는 선거에서 9차례나 연속적으로 선출되었다. "지금의 위기는 은행과 부동산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뜨려야 합니다. 마리날레다는 자본주의의 바깥에서 전혀 다른 경제모델로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제공해왔습니다."
안달루시아의 실업률은 지금 37%이다(젊은이들의 실업률은 55%나 된다). 그러나 인구 2,700명의 마리날레다에는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가 실현되어 있다. 도시협동조합 시스템을 통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게 월 1,200유로(180만원) 정동의 급료를 받는다. 평균 3명 중 1명이 실업상태인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이것은 결코 가벼운 성취가 아니다.
마리날레다의 상황은 독특하다. 고르디요의 집무실에는 체 게바라의 사진이 액자에 담겨 걸려있지만, 스페인에는 공산당이 없다. 고르디요 시장은 자신은 리버테리언(libertarian)이라고 부르며, 통합좌파(Izquierda Unida)당의 대표로서 안달루시아 주의회에 의석을 갖고 있다. 공식적으로 이 도시는 협동적 원리 위에 세워진 사회민주적 '자유도시'로서 자신을 정의하고 있다.
거리와 광장들은 라틴아메리카 혁명가들의 이름을 따서 불리고 있다. '비너스 프로젝트'로 유명한 미래주의자 자크 프레스코의 큰 초상이 시청을 장식하고 있다. 해마다 며칠 동안 주민들은 공동체 전체를 위해 모여서 자발적인 작업을 한다. 이 '적색 일요일'은 사람들이 함께 나무를 심고, 수리작업을 하거나 밭일을 하는 데 바쳐진다. 고르디요는 이러한 자발적인 일들로 주민들의 능력이 강화되고, 강한 연대감이 생겨나며 서로서로를 보살피는 잘 결속된 공동체가 유지된다고 믿는다. 이것은 이 도시의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범죄율에 반영되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도시라면 4~7명의 경찰관이 있어야 하지만, 고르디요는 경찰을 없앴고 그 결과는 좋았다. "우리는 여기에 경찰이 있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고 그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다른 모든 스페인의 지방도시처럼 마리날레다도 안달루시아 지방정부로부터 현금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지원금은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가도록 사용된다. 매주 열리는 주민의회에서 그 돈을 어떻게 쓸지 발언할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있다. 그 결과로 마리날레다는 자신의 텔레비전 채널을 갖게 되었고, 수영장, 극장, 유치원, 스포츠센터를 갖게 되었다. 이 모든 시설을 사용하는 것은 무료이다.
직접민주주의의 힘
고르디요는 1952년에 마리날레다에서 태어났다. 그 무렵 스페인은 프랑코의 독재로 질식할 것처럼 억압되어 있었다. 생활은 미국의 대공황기 때와 비교할 만했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 스페인을 떠났다. 계속 머물러 있던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살아남기 위한 고통스러운 싸움이었다. 수많은 토지 없는 농장노동자들은 일을 찾아서 한 번에 몇 달씩 가족들을 떠나 있었다. 이런 현실을 목격하면서 고르디요는 정치적으로 매우 의식적인 인간이 되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처럼 오늘날에도 안달루시아에서는 2%의 엘리트가 경작 가능한 토지의 50%를 소유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1975년 프랑코의 죽음은 민주주의의 회생을 알리는 신호였다. 마리날레다 사람들은 이 새로운 자유를, 버려져 있는 귀족 소유의 토지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의 기회로 이용했다. 농장노동자 조합과 직접민주주의의 집회가 출범하였고, 토지와 그 위에서의 노동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인판틸 공작에게 속해있는 인근의 광대한 땅에 대한 점유눈동으로 시작되었다. 조합원들을 쫓아내고 체포하기 위해서 경찰이 올 때마다 그들은 강해졌고, 마드리드를 향해서 북쪽으로 300마일을 행진하면서 주요 공항을 침범하고 폐쇄시키기도 하며 도로통행을 저지하고, 심지어 '굶주림에 저항하는 단식투쟁'도 결행하였다. 고르디요는 일곱 번이나 감옥살이를 했고, 우익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암살 기도를 두 차례나 모면하면서, 1992년에 중요한 승리를 쟁취했다. 마리날레다가 마침내 1200ha의 토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난해에 이 급진적 시장은 안달루시아 전역을 통한 투쟁을 시작하여 이 지역의 다른 시장들을 규합하여 행진을 벌였다. 작년 7월에 그와 다른 조합원들은 인근 폐쇄된 군사기지를 점령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국방부의 토지를 작물을 기르는 땅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르디요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영웅이지만, 갈수록 많은 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난달, 스페인 고등법원은 군사기지 점유에 대해서 고르디요와 53명의 그의 동지들에 대한 재판 절차에 들어갔다. 같은 주에, 우익신문 <라라존>은 고르디요를 흠집 내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고르디요는 어럿광대이며, 정치가로서 봉급을 받는 위선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르디요는 자신의 소득은 다른 조합원들과 똑같고 나머지 수입은 자선기관에 보낸다면서 신문의 주장을 반박했다.
최근 같은 신문은 고르디요의 가족과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그의 명예를 더럽힐 수 있는 이야기를 강요하며 괴롭힌 끝에, 시장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리날레다 주민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면서 나 역시 같은 인상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그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고르디요을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진실이 무엇이건, 고르디요와 마리날레다는 보다 공평하고 보다 평등한 사회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게 사실이다. 쿠바나 중국 혹은 스탈린의 러시아에 강요되었던 공산주의는 잊어버려도 좋다. 마리날레다의 성공이 가능했던 숨겨진 요인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직접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 소비주의 사회, 돈과 이기심과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가치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고르디요는 말한다. "마리날레다는 하나의 작은 예입니다. 우리는 이 경험을 세계 전역으로 확장하고 싶습니다."
〈기적의 자유도시〉,리사 로스, 녹색평론 132호(2013년 9-10월호), 155~161쪽
리사 로스(Lisa Roth) - 노르웨이인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멕시코 사파티스타, 와하카(Oaxaca) 등 원주민 자치운동에 관한 글을 써왔다. 이글의 출처는 웹매거진 'New Compass', 2013년 3월 29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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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에 남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를 방문했다. 나는 거기에 저널리스트이자 친구로서 갔다. 나는 지난 2~3년간 유럽을 유린해온 금융위기 이후에 스페인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좀더 알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이 있는지 찾아보려 했다.
2012년 11월 15일 스페인에는 총파업이 있었다. 나는 코르도바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불만에 찬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 거리의 시위에 참가했다. 그날 저녁에 우리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심각한 충돌이 있었다는 뉴스를 볼 수 있었다. 뉴스에선 경찰이 한 어린 소년을 때려 피가 흐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찰서장은 저런 시위가 벌어지는 거리에는 어린 소년들이 나와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하려 했다. 그의 말은 경찰의 구타행위가 소년의 잘못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스페인은 내가 지난번에 왔을 때에 비해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유럽연합과 라조이 스페인 총리에 의해 강요되고 있는 긴축정책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뇌하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일자리를 얻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서른셋의 나이에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그들은 조부모에게 얹혀서 사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언제쯤 좋아질 것인가? 스페인에서 어떤 대안적인 삶의 길이 있을 수 있을까?
도착한 지 몇 주가 지난 뒤 나는 안달루시아의 한 작은 도시 마리날레다에 관한 기사를 읽고 매료되었다. 나는 스스로 '평화를 위한 유토피아'라고 자부하는 이 자율적 소도시야말로 꼭 한번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결정했다.
토지를 위한 투쟁
1979년에 후앙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이가 마리날레다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당시는 독재자 프랑코의 시대가 끝났을 때이고, 스페인 농업은 괴멸상태에 있었다. 토지가 농사를 위해서 사용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농민들은 넌더리가 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엘 우모소'라고 불리는 귀족 소유의 거대한 장원(莊園)의 일부를 무단점유했다.
그 후 10년간 경찰과 마리날레다 주민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충돌이 일어났다. 그들은 부유한 지주들에 항의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경작할 토지가 없는 수많은 농민들을 위해서 코르도바와 세비야의 거리를 행진했다. 정의를 위한 그들의 절규는 온 세계로 퍼졌고, 마리날레다는 저항의 본보기가 되었다. 고르디요 시장은 가는 곳마다 논란을 불로일으켰다.
1992년, 마침내 '땅은 경작하는 이들에게'라는 오래된 구호가 마리날레다에서 현실이 되었다. 1,200ha의 토지가 이 소도시 주민들에게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농업협동조합이 되었다. 협동조합의 주된 생산물은 올리브, 돼지감자, 고추이다.
마리날레다를 만나다
마리날레다의 인구는 2,700명이고, 코르도바에서 한 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도시로 들어가면 올리브밭이 곧장 눈에 들어온다. 나와 내 친구들은 흰빛의 비교적 새 건물인 시청에 도착했다. 입구에 한 덴마크 저널리스트가 있었는데, 그에게서 우리는 어제 한 러시아 저널리스트가 다녀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리날레다는 온 세계의 저널리스트들에게 흥미로운 장소이다. 시장은 출타 중이었다. 그는 또한 정치가이고 안달루시아 의회의 의원이기 때문에 여행을 많이 한다.
마침내 시장의 보좌관 한 사람이 우리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돌로레스였다. 그년는 우리를 시장 집무실로 안내했다. 그 방은 세계 전역에서 온 사람들에게서 받은 선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세 개의 깃발이 있었다. 마리날레다 깃발, 안달루시아 깃발 그리고 스페인공화국 깃발.
돌로레스의 설멸에 의하면, 스페인(왕국) 깃발은 마리날레다 어는 곳에서도 볼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왕정을 찬성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청사 바깥에 그 깃발을 걸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 결정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지만, 설명을 하면 대개 수긍합니다. 우리는 깃발을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청사 바깥에 팔레스타인 깃발을 걸어놓고 있는데, 그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지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西)사하라 깃발을 걸어서 모로코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지지해왔습니다."
돌로레스는 계속해서 이 도시의 다른 소소한 그러나 중요한 세부에 관해서 얘기했다. 나는 이 도시로 들어오면서 거리에 체 게바라, 살바도르 아옌데, 리베르타드(자유) 등의 이름이 붙어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녀는 그 거리의 이름들은 자신들이 가장 먼저 변경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장군이나 왕들의 이름을 따는 것을 거부하고 '진정한 영웅들'의 이름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리날레다 거리 어디서나 저항을 표상하는 벽화와 슬로건 - 주로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유래된 - 을 볼 수 있었다.
식량, 주택 그리고 직접민주주의
나는 마리날레다가 어떻게 운영되고, 현재의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왔는지를 돌로레스에게 물었다. 돌로레스는 자기들은 마리날레다를 '스페인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자율적인 도시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스페인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베네수엘라에 수출까지 합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경찰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돈이 절약되어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갑니다. 주민들은 누구든지 결정의 주체로 참여하고, 일상생활에서 직접민주주의가 실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급을 하고, 위기 때에도 먹을거리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위기 때에도 먹을 거리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협동주의' 시스템을 갖고 있고, 지금 10개의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노동자의 수는 작물에 따라 계절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또 농산물 가공공자이 있고, 거기서 올리브기름을 생산합니다. 그 자체로 큰 수익이 되는 사업은 아니지만 마리날레다 공동체를 위해서는 이익이 됩니다. 고용문제를 해결하니까요. 우리는 수익이 생기면 그것을 다시 공동체 전체를 위하여 투자합니다."
해마다 몇 차례, 마리날레다에는 '적색 일요일'과 '녹색 일요일'이 있다. 이런 일요일에는 주민 모두가 도시를 가꾸고, 전체를 위해서 협력이 필요한 일에 참가한다. 적색 일요일에는, 예컨대 집에 페인트를 칠하거나 배관을 수리하거나 포장도로나 기타 공공시설을 개선하는 등, 도시를 가꾸는 일을 한다. 녹색 일요일에는 모든 사람이 농작물을 수확하고, 포장을 하는 등 밭일을 하는 데 참가한다. 이 무상으로 행하는 작업들은 마리날레다 주민 모두에게 혜택을 준다. 돌로레스에 의하면, 주민들 간의 연대와 통합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리날레다 주민들은 전원이 일자리를 갖고 있고, 거의 모두가 적절한 주택을 갖고 있다. 주택정책은, 2년간 마리날레다에 거주한 사람이라면 자기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물자를 무료로 얻을 수 있다. 주택은 매매는 불가능하지만, 자녀나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게 물려줄 수 있다. 이런 집들이 최근 몇년 동안 300여 채나 지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 스페인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매우 특이하다. 부채 때문에 퇴거를 강요당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내가 스페인에 머물고 있는 동안 미디어에서 연속해서 보도되고 있었다. 자기가 살던 집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스페인 가정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이라고 내 친구들은 말했다. "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됩니다."
돌로레스는 협동조합과 거기서 일을 조직하는 방법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명했다. "누구든지 작업시간을 길게 갖지 않습니다. 그래야 모두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많이 벌려는 경쟁은 여기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는 모두 집단적 승자에 속해 있습니다."
비판과 미래
영웅인가 악당인가? 마리날레다 시장 산체스 고르디요는 30년 이상 그가 일관되게 지켜온 신념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하고, 찬양을 받기도 한다. 최근에 그는 인근 도시의 큰 슈퍼마켓에서 기초 필수품을 약탈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행동를 조직했다. 미디어는 그를 현대의 '로빈 후드'라고 부르고, 정치가들과 기타 사회지도층은 그를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행동은 시장이나 정치가로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를 범죄자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산체스 고르디요는 이러한 비판에 개의치 않는다. 그는 인민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일이든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일곱 차례 감옥에 갇혔고, 두 차례나 암살 위기를 겪었다.
어떤 비판자들은, 시장이 주민들을 자신에게 의존적인 존재가 되게 만들어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고르디요 시장이 마리날레다를 착취하여 개인적으로 호사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고르디요 시장은, 마리날레다에는 4년마다 자유로운 선거가 열리고 그 자신은 1979년 이래 호황기든 불황기든 연속적으로 선출되어왔다고 답변한다. 돌로레스는 "우리는 비판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개의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작은 도시는 지금 잘 운용되고 있고,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가까운 장래에 위기가 해소되리라는 전망이 없는 스페인에서, 마리날레다는 대안적 삶의 길을 표상하는 것인가? 최근에 미디어는 '잃어버린 세대'에 대해서 언급하고, 스페인으로부터 라틴아메리카, 미국, 유럽으로 빠져나가는 '두뇌유출'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실업상태나 '집 없음'으로 인한 불안을 느끼고 있는 위기의 한가운데서 연대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돌로레스는 마리날레다의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 그들은 그 모든 권리를 누리고 있일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서 젊은이로 산다는 게0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누구든지 노동과 교육과 주거와 음식을 대등하게 누릴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신념을 위하여 투쟁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그들도 자본주의시스템에 끌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스페인이 강력한 자본주의시스템을 위한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았고, 결국 실패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작은 도시를 떠날 때에 내 친구들은 마리날레다식의 시스템이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인근 도시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반드시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들과 연대를 맺고, 서비스를 나눈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스페인 전역을 통해서 사람들은 지금 서로서로 돕고 있다. 국가가 국민보다 은행을 돕는 일에 더 열심인 상황에서 달리 어떻게 하겠는가? 마리날레다는 캄캄한 위기상황 속에서 맛보는 한줄기 상쾌한 바람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것을 실행해보도록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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