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 1970년 12월
<이문동사람들>에서 가져옵니다...
어떤 예수의 죽음
- 고 전태일씨의 영전에
(월간지 『기독교사상』 1970년 12월에 개재된 글. 전태일의 죽음은 한국의 종교계에 하나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논쟁은 크게 떠들썩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기독교를 위하여 매우 중요한 신학적 및 역사적 의의를 갖는 논쟁이었다. 이른바 '보수교단'에서는 그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하여 '교리'에 위배된다고 매도하였고, 일부 교회에서는 전태일 추도예배를 갖자는 청년신도들의 제의를 거부한 일도 있었다. 여기에 수록된 글은 이러한 보수교단의 율법주의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에 섰던 한 기독교인의 눈에 전태일의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비쳤던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 글을 통하여 우리는 최근 수년간 한국기독교 일각에서 발전되어 나오고 있는 민주민권운동의 신학적 기초에 접하게 된다.)
- 오재식 -
예수.
내가 너의 나이를 아는 것은 설흔세 살뿐. 남 같으면 장래의 포부로 부풀었을 때에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 거리를 지나던 그 나이밖에는.
아무리 우둔했어도 몸 하나 사릴 만한 지혜는 들었을 나이에 조소와 모멸 속으로 걸어야 했던 미련을 몰랐었네. 예루살렘에 안 갈 수도 있었지 않았는가? 아끼던 제자들도 말리지 않았던가? 너 하나 그런다고 해서 질서가 달라질 것도 아니었는데. 종교도 이미 안전을 도모하고 사람들은 통치자 로마의 눈치를 살피던 중인데도, 천군만마를 거느린 것도 아니요, 대중의 지지를 얻은 것도 아닌 주제에 무슨 계산으로 그렇게 함부로 말을 뇌까렸단 말인가.
맘 하나 잘 먹었다면 전통 있는 로마의 향연에 참여했을 것이고, 눈 한번 딱 감았다면 수레에 높이 앉아 흙이 묻을세라 호강했을 터인데도.
너는 천민의 친구로, 그들의 무리로, 그들의 아들로 그렇게 장터에서 뒹굴고 거리에서 서성대고, 들에서도 다짐했었다.
눈이 먼 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상한 자를 만지고, 찢긴 자를 위로하고, 억울하고 지치고 병들어가는 이웃을, 그들을 생각하다가 그만 사랑에 빠졌었겠지.
신음소리를 들을 때 네 가슴이 메어지더냐, 어린 생명이 병들어가는 것을 볼 때 울화가 치밀더냐, 목이 메이고, 하여 굶었으리라. 다짐으로 배를 채운 나날들.
왜 너는 초연하지 못했더냐. 어느 세상에나 희로애락은 있는 법, 있고 없는 것이 하늘의 뜻이려니 할 일이지. 비참한 현실도 눈을 감으면 아름다운 추상의 세계. 로마의 통치가 끝날 날이라도, 왜 그 날이라도 못 기다렸느냐. 삶은 차디찬 머리로 꾸밀 것이지 가슴으로 재어서는 안 되는 법. 분명한 종말에다 몸을 던진 너는 자살자(自殺者)가 아니냐? 너는 네 죽음을 스스로 택한 것이다. 그것이 자살이 아니라면 너는 사기꾼! 누군가가 위대하게 죽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직장에서 죽으면 순직이요, 집에서 죽으면 자연사밖에는 안 되는 세상인데, 너는 그런 무리를 믿게 하기 위해서 쇼를 했단 말이냐? 너는 가야바 법정 빌라도 앞에서 네 죽음을 유예할 수 있었다. 너는 바리새인들의 심산을 짐작했으면서도 인간을 위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었다. 너는 얼마나 괴로운 길인가를 알면서도 그것을 택했었다. 너는 도피하려고 여러 번 망설이다가도 결국은 그러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냐. 그 길을 가기로 작정한 그 때, 네 죽음은 시작되었다. 누구 손에 죽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로마제국의 병졸이거나 교권주의자들의 앞잡이거나 어차피 네 뜻의 하수인들이 아닌가. 세계의 제국 로마의 총독에게는 식민지의 백성이야 쓰레기지. 위대한 종교인들이야 너같은 악마의 제자를 처치하는 것은 신의 섭리고. 이 무시무시한 법정 앞에서 네 무기는 오직 하나, 자유. 네 길을 택할 수 있는 자유로 섰었다. 네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자유로 섰었다. 정신착란에서가 아니고, 순간적인 흥분에서가 아니고, 삶을 비관해서도 아니고, 사랑의 상처 때문도 아니고, 너는 오랫동안 네 마지막을 내다보았었다. 너는 그리고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너는 죽을 때 "목이 마르다."라고 했다. 이미 죽는 마당에 물은 찾아서 무슨 소용인가? 무식한 병졸들은 식초를 타다 주었다지만 "내가 목이 마르다"라고 수천 년을 들려오는 소리. 인류의 폐부를 뚫고 지나는 음성, "내가 배가 고프다" 이것은 네 푸념이 아니라 샤만을 통해서 들려오는 무리의 합창이 아니겠는가. 그 절박한 시간에 마지막 힘을 깡그리 모아, 들려주는 말 "목이 마르다. 배가 고프다" 네 주검을 끌어안은 여인의 젖은 말라 있었다. 거칠은 손끝은 떨고 있었다. 저녁놀 광우리에 길어 오던 떡덩이, 하고한 날 큰맘 먹고 못 해먹인 햅쌀밥, 30리 걸음걸음 아껴 모은 풀빵들, 밥상에 앉으면 그 음성이, 찻잔을 들고도 그 음성이, 진열장의 진미가, 뒤안길 요정의 상다리가 다 목을 놓아 부르짖지 않는가. "내가 배가 고프다."
네가 운명한 후에도 통치자의 졸병들이 네 옷을 서로 가지려고 제비를 뽑았었다. 옷은 네 자유를 덮었던 주검. 주검은 핏기 없는 회백색의 옷자락이 아닌가. 그 주검을 서로 빼앗으려고 곤두박질한 군대들, 다투어 꽃다발을 보내고 그리고 너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팻말을 붙이더라. 막달라 마리아 먼 발치에서 울고, 따르던 제자들은 얼씬도 못하게 되었는데, 너를 죽인 자들이 너를 추모하고 너의 죽음을 너의 끝장이게 하였다. 피를 쏟고 죽어버린 네 주검을 두려워 떨며 지키던 병사들, 합법적인 절차로 종말이 집행된 네 몸뚱이 옆에서 불안해 하던 로마의 용사들. 그들은 죽어버린 너를 죽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는 갸롯 유다의 배신을 알았었다. 모든 것을 팽개치고 너를 따르던 그가 너를 위해서 살기로 했고, 너 때문에 산다던 그가 너도 모르는 사이에 치부해가고 있음을 알았었다. 스승이라 부르던 그 입술로 흥정을 하고 있었다. 햇빛 아래서는 너와 울고 별빛 밑에서는 그들과 웃었었다. 권력자의 편에 서서 네 목숨을 은전으로 헤이고 있었다. 권력자의 앞에서 유다는 너의 대변자, 너의 감정, 의지, 또 너의 무리들을 대변하기에 침이 말랐으리라. 유다의 혓바닥을 통해 본 너는 피래미지. 언제든지 신호 하나로 처치될 수 있었던 쓰레기가 아닌가. 권력자와 쓰레기들 중간에 서서 쓰레기들의 대변인이 된 유다. 그 직함으로 행세하던 그를 너는 왜 모르는 체했는가.
그 유다가 네게 와서 입을 맞출 때 너는 이미 유다의 통곡 소리를 들었으리라. 은화 설흔 냥에 팔려서 네게 와 "스승이여 평안하소서"할 때 유다는 이미 통곡하고 있었다. 로마의 병졸을 매복시켰던 그가 오히려 떨었으리라.
네가 그렇게 무모하게 살아버린 것을 교회는 얼마나 힐책한 줄 아는가.
가난하면 그런대로 기도하고,
괴로우면 그런대로 감사하고,
억압자를 사랑하고, 부자를 사모하며
때리면 웃어주고 협박하면 주를 찾아
범사에 감사하며 은혜롭게 살 것인데,
왜, 선동하고 허가 없이 모이고, 불온한 것을 가르치고, 하여 목숨을 단축시켰느냐. 교회는 비굴한 미소로 연명하여 상처없이 죽은 무리를 성도로 추서하는 장소였다. 교회는 흠없는 성도들의 사교장이요, 너같은 쓰레기가 상면하는 것만으로 수치를 느낄 것이다.
네가 장터에서 선동을 하고 네 목숨을 내어 맡길 때 교회는 철문을 굳게 잠그고 취침시간을 엄격히 지키고 있었다. 보드라운 잠옷에 경건한 마음으로 교회의 영광을 기도했으리라. 제 목숨 하나 살피지 못하는 천민이야 쓰레기통 옆에다 팽개친들 무슨 상관이냐.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야 저 명부에 올라있는 계꾼들이지. 너도 행여 다시 나거든 그 명부에다 등록을 하라. 요람에서 묘지까지 보장받는 보험회사에 가입하라.
너는 잡히기 전날 밤에,
예수, 너는 친구들을 모아 놓고 "이것은 내 살이니 받아 먹고 나를 기념하라", "이것은 내가 쏟은 피니 마시고 나를 잊지 말라", " 내 삶을 기념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네 죽음이 왜 모든 것의 마지막인 것을 몰랐던가. 네 죽음 뒤에 새로운 세상이 오리라는 생각은 황당했다. "내 하나가 죽으면 달라지겠지" 너는 네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새로운 시작을 본 것이다. 시작을 한 것이다. 시작으로 산 것이다. 벽 뒤의 세계를 보았기 때문에, 그 세계가 오리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벽을 뚫을 수 있었다. 이 시작을 죽음이 막지 못한 것이다. 죽음은 생명의 탈바꿈이 아닌가.
네가 죽은 후, 예수여!
엉뚱한 사람들이 수근거리고, 생면부지가 헌화를 하는구나. 네 이름이 입에서 입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발에서 발로 번져갔다. 네가 네 몸을 달구던 그 자리를 가보고, 네 음성을 들으려 하고 너를 만지려 했다. 만져서 그리고 다짐하려 했다. 살아있는 것처럼 그렇게 육박해오는 죽음이었기에 가슴속으로 꿰뚫는 진폭이 있었다. 네 초상화가 복사되고 네 생애가 돋보이고, 드디어는 네가 스승으로 되어 가고 있었다. 죽음의 벽이 당분간은 누리를 덮었었지만 그 밑으로, 고동소리, 희망이 그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고뇌에 쪼들린 마음 속에는 암흑을 벗겨버릴 분노가 서리고, 눌리고 헐뜯긴 가슴이지만 죽음을 이길 만한 자유는 있어, 하여 죽은 너는 다시 무리 속에 살아서 흐르지 않는가. 새 역사의 여명이, 부활의 아침이 급박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예수
너는 죽어서 많은 예수를 낳고 그 예수들이 다 같이 예루살렘 거리에 서는 날, 너는 우리에게 부활의 의미를 가르칠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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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오재식 박사는 1933년 제주도 출신으로 서울 중앙중학교,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예일대학교 신과대학을 졸업하고, 한국YMCA전국연맹 대학생부 간사·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총무·교회협 선교훈련원장·세계교회협의회 개발국장 등을 역임했다. 1990년대에는 참여연대 창립대표·한국 월드비전 회장·대북지원민간단체협의회 초대회장·아시아교육연구원 원장 등을 맡으며 대외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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