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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네그리의 제국·다중·공통체, 그리고 한국사회 /조정환(르몽드 디플로마티크66호)

by 마리산인1324 2014. 3. 1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6호] 2014년 03월 03일 (월) 13:51:12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4

 

네그리의 제국·다중·공통체, 그리고 한국사회

 

조정환

 

 
<A Place of Selling>, 2013-신지효

 안토니오 네그리의 주요저서 중의 하나인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가 한국에 소개된 지 정확히 20년이 되었다. 이 책은 40대 중반에 이른 네그리가 30대 후반의 마르크스가 독학으로 수행한 정치경제학 비판 작업을 역시 독학으로 수업한 책이었다. 이 수업은 <혁명의 만회>, <지배와 사보타지> 등에 표현되어 있는 1960~70년대 오페라이스모(이탈리아 노동자주의 운동-편주) 시기의 사상과 실천을 재평가하고 오늘날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사회역사적 조건에 적합한 형태로 삶과 실천을 재정향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수업은 스피노자가 40대에 수행한 윤리학, 신학, 정치학에 대한 연구서인 <야만적 별종>을 생산하면서 네그리가 거의 50세에 이르기까지 감옥에서 고독하게 계속되었다.
 
 역시 감옥에서 (가타리와 함께) 쓴 <자유의 새로운 공간>은 그간의 오랜 수업시기를 마치고 ‘통합된 세계자본주의에서의 혁명의 지속’이라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일종의 포스트-오페라이스모 선언문과 같은 것이었다. 그 새로운 전망은 1994년 <디오니소스의 노동>에서 시작되어 20여년 동안 지속된 마이클 하트와의 공동 저작활동을 통해 구체화된다. <제국>(2000/2001), <다중>(2004/2008), <공통체>(2009/2014) 3부작과 2011년 전 지구적 반란과 오큐파이 운동에 대한 이론적 개입서인 <선언>(2012/2012)의 완간으로 이제 우리는 그의 새로운 전망의 윤곽만이 아니라 구체적 실체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네그리 사상에 대한 본격연구서인 <아우토노미아>(조정환, 2003)와 <네그리 사상의 진화>(마이클 하트, 2008)를 이으면서 네그리 사상의 더 총체적인 윤곽과 일관된 핵, 그리고 사유 변천의 궤적을 그려낼 새로운 연구활동을 기대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게 되었다.
 
 또 이제 우리는 그의 사상을 우리의 삶과 실천의 필요에 비추어 조명하고 응용하며 역사가 요청하는 새로운 실천의 필요 속에서 그것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놓인 삶정치적 실천의 지평에서, ‘네그리는 누구이며 그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우리 각자가 그에 대한 대답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할 때가 왔다.
 
 제헌권력과 결정적 추상: 비판철학을 넘어서
 
 네그리의 주요저작 중에 한국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책이 있다. 그것은 <제헌권력>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제정권력에 대항하는 제헌권력의 역동적 발현의 결과로 이해하면서 영국, 미국, 프랑스 등에서 역사적으로 출현했던 제헌의회들의 경험을 고찰하고, 그 속에서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다중의 제헌권력을 추상하는 방법으로 서술되어 있다. 네그리가 이해하는 제헌권력은 당위(Soll)의 질서인 제정권력과는 달리 존재(Sein)의 질서이다. 그것은 규범이 아니라 사실이며,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지평이다.(1)
 
 제정권력은 제헌권력을 인과적 기초로 삼지만 그 인과적 연계가 즉각적으로 끊어진다. 이 때문에 제정된 법체계는 그 자체가 절대적으로 자율적인 것처럼 나타난다. 즉 제정권력과 제헌권력은 배제적으로 이접된다. 그 후 제정권력은 다단계의 메커니즘을 통해 제헌권력을 체제에 내재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런 절차를 통해 제헌권력은 제정권력에게 자신의 창조적 독창성을 박탈당하면서 그것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수동적 위치에 놓인다. 이렇게 제정권력은 제헌권력을 자신의 원인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개의 동력으로 삼는다.
 
 그래서 네그리는 제헌권력 개념을 정치적 존재론의 핵심이라고 단언하며 오늘날 그것이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2) 이러한 탐구노선의 설정은 한국에서도 지배적이고 주류적인 탐구노선, 즉 자본의 운동, 권력의 행동 등 제정권력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에 우선권을 부여하면서 제헌권력을 그것에 종속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탐구노선과 결정적으로 대립하는 것이다.
 
 제헌권력은 사실과 실재의 질서이지만 그것이 직접적으로 만질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소박한 방법론들은 일반적으로 현실화된 것, 구체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추상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네그리는 마르크스를 따라, 구체적인 것을 결과로 받아들인다. 구체적인 것은 많은 결정들의 집중체이며 다양성의 통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오직 결정적(determinate) 추상 혹은 결정하는(determining) 추상을 통해서만 도달되는 것이다.
 
 결정하는 추상의 방법은, 첫째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둘째로 의지와 지성, 그리고 인간적 실천을 통해 추동되는 것이고, 셋째로 추상적인 것의 결정, 결합, 집중을 통해 구체적인 것을 발견하고 발명하는 과정이며 넷째로 그 추상의 힘으로 나머지 다양한 것들을 조명하고 채색하고 결집하고 변형하는 집합적 지성과 실천의 과정이고, 다섯째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방법은 비판의 방법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을 구축하는 투쟁의 과정이다. 요컨대 결정적 추상의 방법은 단순한 것과 복잡한 것 사이에, 주어진 것과 구축될 것 사이에, 기초와 기획 사이에 관계를 설정하는 역동적인 인식론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제헌권력 개념은 소박한 사실, 이미 현실화되어 있는 소박한 실재를 재현하는 개념이 아니라, 마치 마르크스가 사람들의 무수히 다양한 노동행위들로부터 추상해 낸 추상노동이라는 개념처럼, 결정하는/결정적 추상의 방법에 따라 구축된 비판적이고 발명적이며 구축적이고 기획적인 개념이다. 가장 일반적인 추상으로서의 제헌권력의 개념적 추상은 <제헌권력>의 연구분석이 보여주듯이, 어떤 특수한 형태에서 추출해 낸 ‘하나’가 아니라, 매우 풍부한 사실들의 구체적 발전의 한 가운데에서 아주 많은 것에, 아니 모든 것에 공통된 것으로 나타나는 역동적인 ‘하나’의 추상이다. 이제 이 추상개념은 다양한 것들의 결합을 통해 코뮤니즘적 방식으로 구체적인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잠재력(즉 경향)을 갖게 된다.
 
 네그리가 결정적 추상의 방법을 ‘방법론상의 코뮤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구체적인 것을 구축하는 역동적 요소이자 주체적 힘으로 되기 때문에, 네그리는 이것을 ‘실천하는 진리’라고 부른다.진리에 부여된 이 주체성과 실천성은, 네그리의 지적 활동을 현대 세계 및 한국 사회의 다른 지식인들 및 지식양식들로부터 구분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많은 경우에 지식은 주어진 것들에 대한 재현으로 이해되거나 정식화되어 주어진 공리들의 묶음으로 이해된다. 대학들과 연구소들에서 생산되는 많은 지식들은 이러한 성격을 띤다.
 
 이러한 지식양식의 입장에서 보면 네그리의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진리개념이 오히려 주의적인 것으로 간주되겠지만, 네그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객관화된 재현적 지식(개념)이야말로 운동적이고 창조적인 생명성이 박탈된 박제화된 지식, 상품으로서의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상품적 객관진리와는 다른 실천적 지식양식에 대한 추구는 때로는 객관화된 지식에 대한 ‘비판’의 이름으로 수행된다. 하지만 네그리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보면서 비판으로서의 진리 개념을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결정적 추상의 방법론의 내적 요구이기도 한데, 결정적 추상에 입각한 비판은 주어진 것을 해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추상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감으로써 새로운 사태를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이제 이 비판과 구성의 이중운동이 네그리에게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그의 3부작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주권형태 비판: 국가형태론, 제국주의론, 종속이론에서 제국론으로
 
 <제국>은 비판의 책이다. 그것은 ‘국가형태 비판’이라는 <디오니소스의 노동>의 주제를 전 지구화된 신자유주의의 문맥 속에서 계속한다. <디오니소스의 노동>에서 네그리는 제헌권력의 코뮤니즘을 자신의 국가형태 비판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도달점으로 설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작업은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라는 국민국가적 틀 안에서 수행되었다. 케인즈주의 국가 비판, 이탈리아 노동헌법 비판, 개혁주의 공공지출론 비판 등이 20세기 국가형태들에 대한 발본적 비판을 수행하지만 그것들은 공통적으로 국민국가적 틀 속에서 수행된다. 그가 제시하는 제헌권력과 코뮤니즘의 구상이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와 비교할 때 약 10년 뒤에 출간된 <제국>의 문제설정은 세계, 지구를 직접적인 분석대상으로 삼는 동시에 전 지구적 주권의 형성을 논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국가형태 비판, 즉 일국적 주권형태 비판은 전 지구화된 네트워크 주권형태에 대한 비판이라는 틀 속으로 용해된다.
 
 한국과 세계의 좌파운동이 오랫동안 견지해왔던 제국주의론과 종속이론은 세계를 분석대상으로 삼을 때조차 일국의 국가와 자본을 분석의 중심에 놓았다.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1990년대 말까지 변함없이 유지되던 관점이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미국 제국주의가 취하는 일종의 대외정책으로 인지되었다. 네그리는 1991년 사회주의의 붕괴 직후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선언된 ‘새로운 세계질서’가 바로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의 주권 이행을 표시하는 신호탄이었다고 파악한다. 제국주의가 식민지의 침탈 혹은 지배를 통해 국민국가의 경계를 외부로 확장하는 주권형태였다면, 제국은 더 이상 침탈할 외부가 없는 조건에서, 미국을 정점으로 하여 구축된 피라미드적이면서도 네트워크적인 전 지구적 주권형태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구를 무대로 귀족제와 민주제를 군주제 아래에 정합하는 정치구성으로서, 정보화라는 새로운 기술적 조건을 기초로 다중의 삶정치적 생산능력을 흡수하는 제정권력이다.
 
 현재의 세계질서에 대한 이 새로운 인식지도가 그려짐으로써,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인식의 여러 유형들은 더 이상 확고한 진리로서 기능하기 어렵게 된다. 한국에서도 이 새로운 인식지도는, 1995년을 전후하여 급속히 전개된 정보화 체제,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가속된 WTO-FTA 질서, 1990년대 중반 이후 민주노조의 위상과 성격의 급속한 변화, 2001년 9.11 사태 이후 한국에도 도입된 테러에 대한 전쟁, 2003년의 2차 이라크 전쟁 파병, 2005년 부안 방폐장 건설반대 투쟁을 통해 드러난 세계적 핵질서 등에 대한 전 지구적 시야와 효과적인 조직적 실천적 접근법을 갖도록 도왔다.
 
주체구성론: 노동계급, 민중, 시민에서 다중으로
 
 <다중>은 자기의식의 책이다. 이 책은 제2차 이라크전쟁의 전운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내재적 주체성의 발생과 그 운동적 실재성을 직시한다. 그런데 만약 네그리가 제국의 질서를 규명하는 데 멈추었다면, 그의 이론은 비판성에도 불구하고 억압적인 것으로, 즉 다중이 희생될 수밖에 없는 숙명적 틀을 제시하는 것으로 남게 되었을지 모른다. 6부작 플랜을 세우고도 자신의 생애기간에 그것의 일부밖에 완성하지 못했던 마르크스는 불운했다. 그 미완성의 불운으로 인하여 <자본론>은 20세기 내내 산 노동의 주체적 운동보다는 자본의 운동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 전도의 역효과를 발휘하곤 했다. 만년인 67세에 <제국>을 출간했지만, 네그리는 더 나아가 제국에 대항하는 주체성의 실재를 밝히는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것은 4년 뒤에 <다중>으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여기서 다중은 민주주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 주체성으로 그려진다. 이미 말한 바처럼 제국은 이미 민주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의적인 것으로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지배를, 즉 불평등을 원리화하는 제도였다. 또 이것은 정치적인 것들로부터 몸과 살을 제거하는 제도였다. 대의되는 사람들의 지각, 쾌와 불쾌의 감정, 행함의 의지들은 주어진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지지의 기호로 형해화된다. 또 대의행사가 끝나자마자 그 기호는 대의되는 사람들에게 행사될 공권력으로, 제도화된 폭력으로 역전된다.
 
 시민과 노동자들의 항쟁으로 1987년에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져온 일련의 대의정치의 진보적 진화는 대의제에 대한 지지와 믿음을 고취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그만큼 대의제의 한계에 대한 비판, 그것의 위험성과 반다중적 성격에 대한 주장은 무시되거나 억압되었다. 하지만 2007년 보수파인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이러한 정치적 경향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한글판 <다중>은 바로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때를 같이하여 2008년 2월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불과 3개월 후 청계천 광장에서 시작되어 전국적 운동으로 번진 촛불집회는 대의제가 제거해 왔던 몸과 살의 직접성을 민주주의 속에 재도입하려는 시도로써, 한국을 넘어서는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북아프리카를 휩쓸고, 지중해를 건너 서유럽의 광장들에서 실질민주주의의 즉각적 실현에 대한 요구로 비화되었고, 다시 대서양을 건너 제국의 핵심부인 미국의 월스트리트에서 모든 것을 점거하기 위한 집단운동으로 발전했던 전 지구적 반란들. 이는 한국 촛불집회의 연속이자 확장일 뿐만 아니라 <다중>에서 이미 그려진 절대민주주의, 즉 모든 사람들에 의한 자기지배를 향한 전 지구적 1차 기동의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로써 <다중>은 이론이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항상 역사적 사건을 뒤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앞설 수도 있다는 것을, 사건에서 멀리 떨어져서 사건을 관조하고 반영하는 것만이 아니라 행동하는 진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요컨대 역사적 사건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전제로서도 기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개념으로서의 다중은 개념으로서의 제헌권력이 그렇듯이, 직접적으로 만질 수 있는 경험적 실재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실천 속의 개념’이며 실재적 추상의 산물인 개념인 동시에 사건을 적대적 경향 속에서 결정해 나가는 추상개념이다. 초기의 네그리가 마르크스를 따라 ‘산 노동’이라고 불렀던 이 주체적 힘은 스피노자의 정동과 상상 개념의 재독해를, 그리고 들뢰즈-가타리로 대표되는 포스트 구조주의적 다양체 사유와의 해후를 거친 후, 유기체와는 다른 유형의 사회적 신체, 기관 없는 내재성의 신체(즉, 살)로써의 다중으로 구체화된다.
 
 지성화, 정보화, 정동화되어 대상적 상품보다는 소통적 생명활동과 인간 자신을 생산하는 것으로 기능하는 다중의 비물질노동과 삶정치적 생산이 측정불가능하며 척도를 넘어서는 잠재력이라는 점은 이미 <제국>(4부)에서 강조된 바이다. 제국은 에너지와 가치의 새로운 원천을 창출하는 다중의 역량으로부터 원기를 끌어내면서 다중을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기생체다. 그래서 제국적 명령은 순전히 부정적이며 수동적이다. 그것은 어떤 존재론적 가치도 생산하지 못한다. 다중이 저항과 자기결정의 방향으로 나아감에 따라, 제국이 부패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쇠락하고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의 기생적 위치 때문이다.
 
장치론과 제도론: 제도장악, 제도개혁, 반제도에서 혁명적 제도구축으로
 
 <공통체>는 구성의 책이다. 이 책은 2008년 금융위기의 지진 속에서 지진의 단층선을 따라 그것의 깊은 진앙지를 더듬으면서 다중의 반란과 혁명적 제도화의 방향을 사유한다.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다수의 좌파 경제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예단하면서 거품경제를 걷어내고 실물경제를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복지강화 주장이 이 주장을 뒤따랐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위기 속에서, 시카고 학파가 추방했던 케인즈와 사회민주주의를 다시 불러내는 좌파적 방식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네그리는 위기의 진앙을 거품과 실물의 갈등 속에서 찾는 케인즈적 관점을 거부한다. 오히려 그는 위기를 공통적인 것과 소유 사이의 적대에서 찾는 마르크스의 문제틀을 다시 환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물론 그의 관심은 마르크스의 소유 비판을 재생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유 공화국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적 신체, 즉 공통체의 현상학을 발전시켜 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고 성찰하고 느끼고 욕망하고 활동하고 사랑하는 것으로써의 신체를 말소하는 경향이 있는 철학들, 즉 생기론의 초월적 추상이나 하이데거의 현상학, 그리고 각종의 근본주의들을 비판하면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주체성을 재구축하는 후설의 지향성론, 타자성의 경험을 가로지르면서 공통적인 것의 구축을 탐구하는 메를로-퐁티의 내재성론, 그리고 신체들의 저항 속에서 주체성의 생산을 탐색하는 푸코의 현상학 등을 대안근대성의 방향을 가리키는 철학들로 제시한다.
 
 네그리에게서 공통체의 현상학은 일관되게 공통적인 부에서 출발한다. 그 부는 공기, 물, 땅과 같은 자연적 물질세계의 공통적 부만이 아니라 지식, 언어, 코드, 정보, 정동처럼 사회적 생산물 중에서 이후의 생산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해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포함한다.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이로운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로운 것(예컨대 공해, 악성코드 등)도 있다. 그래서 공통적인 것들 중에서 이로운 형태들을 장려하고 해로운 것을 제한할 필요가 발생한다. 그리고 공통적인 부를 유지하고 생산하고 분배하는 문제도 날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바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정치적 제도화의 형태로 제시되는 것이, ‘국가’(그것이 공화국이라 할지라도)를 대체할 ‘공통체(commonwealth)’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현실에서는 다양한 소유의 제도, 소유의 장치들이 공통적인 부에 달라붙어 그것을 흡혈, 착취, 수탈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통체의 현상학은 공통적인 것의 저항과 반란이라는 실재하는 운동에서 출발하여 그것들의 교차와 평행정렬, 그리고 제도화로 나아가는 경로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 좌파로부터 자주 네그리는 국가를 회피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실 이러한 비판은 사회주의 좌파의 상상력이 국가라는 역사적 제도형식에 얼마나 단단하게 붙들려 있는가를 역으로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안적 정치제도의 상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비판이 네그리의 생각을 반제도주의와 동일시하도록 만드는 일정한 효과를 발휘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를 의식하면서, 네그리는 <공통체>에서, 국가제도와 관련한 사회주의 좌파들의 근대주의적 비판에 대안근대적 입장에서 응답한다. 그는 일체의 제도화 시도에 거부적 반응을 보이는 아나키즘적 조류로부터도 거리를 두면서도, 계약에 기초해서 제도를 사고했던 근대적 제도론과는 달리, 갈등에 기초를 둔 내재적 장치론과 혁명적 제도론을 제시한다.
 
맺음말: 네그리가 이룬 전진
 
 역사적 대타협의 시대였던 1963년에 네그리는 이탈리아 사회당과 결별하고 <자본론>의 마르크스로 돌아갔다. 이후 ‘노동 거부’로 표현된 그 돌아감이 ‘자본이 아니라 노동이 우선적이다’는 계급관점의 역전을 수반한 한 그것은 나선형적으로 전진하는 귀환이었다. 1977년을 전후하여 네그리는 <자본론>의 마르크스에서 <정치경제학 비판요강>의 마르크스로, <에티카>의 스피노자에서 <신학정치론>의 스피노자로 한 발 더 돌아갔다. 그 돌아감이 미래로서의 코뮤니즘이 아니라 실재적 운동으로서의 현재적 코뮤니즘에 대한 확인을 수반하는 한에서 이 역시 전진하는 귀환이었다.
 
 1990년대에 네그리는 마르크스의 ‘산 노동’을, 모든 존재에 형식을 부여하는 불로써의 ‘디오니소스의 노동’으로 다시 불러내며 이것을 ‘제헌권력’으로, ‘구성적 힘’으로 명명했다. 2000년대에 그는 이 힘을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힘으로 설정하며, 공통적인 것에 기초한 다중의 공통되기를 자신의 정치현상학의 중심에 놓았다. 제국이 이 공통적인 것에 기생하는 기생체로서 쇠퇴와 몰락의 경향을 갖는다면, 공통적인 것을 상생적으로 관리할 사회정치체, 공통체가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공통체는 구래의 공동체들과는 달리, 전 지구적 수준에서 공통적인 것을 관리하는 내재적 장치다. 그렇다면 공통체에서 다중은 다중으로 머물 수 있을까? 3년 뒤에 출간한 책 <선언>에서 네그리는 2011년 이후의 전 지구적 반란의 경험과 그것의 한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소유공화국의 공통체로의 전화(轉化)는 반란에서 혁명으로의 전진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은 다중에서 공통인으로의 전화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피력했다.
 
글·조정환 amelano56@gmail.com
도서출판 갈무리 대표,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겸 상임강사로 안토니오 네그리 철학을 오랫동안 대중강연을 통해 설파해 왔다.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1988), 월간 <노동해방문학> 주간 역임(1989~1990). 저서로 <인지자본주의>, <카이로스의 문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크랙 캐피털리즘>, <선언>, <다중> 등이 있다.
 
(1) Antonio Negri, Le pouvoir constituant, puf, 1992, p. 6.
(2) 같은 책, p.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