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6-02-11 20:21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730020.html
슬라보이 지제크. 사진 이택광 경희대 교수
“유럽은 난민들에게 ‘약속의 땅’ 아니다”
지제크 류블랴나 현지 인터뷰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가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67)를 인터뷰했다. 지난 5일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인터뷰에 응한 지제크는 유럽 최대의 당면 과제가 돼버린 ‘난민’ 사태와 관련해 주로 ‘발언’했다. 지제크는 다음달 초 <새로운 계급투쟁: 난민과 테러의 진정한 원인>(자음과모음) 한국어판 출간을 앞두고 있다.
류블랴나 공항에 내려 약속한 대로 전화를 걸었다. 전파를 타고 익숙한 목소리가 반가움을 전했다. 본격적인 인터뷰는 지제크의 아파트에서 이루어졌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난민 문제에 대한 질문을 단도직입해서 던졌다. 그는 이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복지제도의 혜택을 누리고자 난민들은 유럽에 오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유럽에서도 복지제도는 갈수록 붕괴하고 있다. 복지국가는 전후 합의가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다. 이 합의는 오래전에 깨어졌다. 유럽을 ‘약속의 땅’이라고 여기는 난민들의 꿈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을 보듯 빤하다. 재난적 국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못 오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재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누구도 이들을 저지하거나 이 사태를 막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 독일을 뒤흔든 ‘쾰른 사건’은 지제크의 우려를 현실화하는 것이었다. 극우파들은 평소 독일 내에서 비슷한 성희롱 사건이 빈번했다는 사실에 눈감고 “우리 여성들을 미개한 난민들로부터 보호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쾰른 사건이 ‘시기심’의 문제라고 이야기했던데, 무슨 의미인가?”
“자유주의자들은 난민을 받아서 훌륭하게 시민으로 교육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난민들은 유럽 문명을 모르는 미개한 집단인 것처럼 포장한다. 그러나 난민들은 이미 유럽 문명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잘 알기 때문에 유럽에 오고 싶어 하는 것 아닌가?”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자면, ‘시기심’은 자신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상대방이 더 많은 쾌락을 은밀하게 즐기고 있다는 믿음에서 발생한다. 지제크는 시종일관 난민들이 유럽인들과 다른 존재들이 아니라 동일한 욕망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지제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지리적인 분리에 따라 서로 바라보기만 했던 이들이 이제 동일한 공간에서 부대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상황은 분명 사소한 문제라고 말하기 어렵다. 북한이 붕괴해서 난민들이 남한으로 넘어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막연하게 ‘한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온정주의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지제크의 말이 이어졌다.
“파리에서 테러를 자행했던 이들은 중동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다. 유럽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이다. 사회 구조적 모순들이 이들을 키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문제는 난민들을 계몽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 계몽된 난민들의 자식 중에서 테러리스트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보증하나?”
저지·해결 불가능한 ‘재난적 국면’
남이 추구하는 가치 인정이 급선무
공개토론으로 ‘공존 기준’ 만들어야
-그러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나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염세주의적이다. 해결책이 없다. 다만 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해서 최소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유럽은 지금 공존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한국 역시 혐오에 기반한 ‘타자의 악마화’가 횡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제크가 염려하는 유럽의 미래는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지제크의 말이 이어졌다.
“무슬림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해를 전제하는 관용은 양가적인 것이다. 마치 미국의 백인 페미니즘 같은 것이다. 낸시 프레이저의 지적처럼 백인 페미니즘은 여성해방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명분으로 비서구의 가치를 멸시한다. 또한 반대의 경우도 있다. 보코하람 같은 이슬람극단주의자는 동성애와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것을 반제국주의적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자행하는 여성 학대를 고유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관용해야 하는가? 혹여 동성애에 적대적인 무슬림이 있다고 한다면, 무슬림이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그냥 둬야 하는가. 쾰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무슬림 지도자들도 유감을 표명하고 가담자들을 정죄했다. 그러나 ‘여성들도 옷차림을 조신하게 하지 않았기에 책임이 있다’고 말해서 물의를 빚었다. 이런 생각도 무슬림 문화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가?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들 역시 백인 페미니즘처럼 자신의 규범을 타인에게 강제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유럽에서 살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다른 가치를 참아내지 못하면 자신들이 꿈꾸었던 그 유럽은 사라질 것이다. 인식의 변화는 강제적인 통합을 통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좌파들은 아예 이런 딜레마 자체를 무시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짜 문제다. 이 딜레마와 정면으로 승부해야 상호이해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다.”
지제크는 해결책보다도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지제크는 최근 난민 문제와 관련해서 독일의 <슈피겔>과 한 인터뷰 때문에 ‘뉴라이트’로 전향했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포스트모던 좌파’라는 오해는 항상 그를 따라다니는 꼬리표이지만, 정작 지제크는 ‘포스트 이론’을 앞장서서 비판해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인터뷰는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끝났다. 아들에게 저녁을 챙겨줘야 하기 때문에 장을 봐야 한다고 했다. ‘철학계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불리는 슈퍼스타 철학자의 일상이었다. 아들을 깨워 아침을 먹여 학교에 보내고 곧이어 출근하는 아내에게도 아침을 준비해준 뒤에 하루를 시작한단다. “나는 좋은 옷을 사 입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 먹는 일 따위에 관심이 없다. 오직 글 쓰는 일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드리운 햇살이 겨울답지 않게 따사로웠다.
류블랴나/이택광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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