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15.01.22 21:54
세 대법관은 '내란 혐의 전부 무죄'라고 했다
[해설] 이인복·이상훈·김신 대법관이 내란 선동죄까지 '무죄'로 본 이유
▲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법원의 최종 선고 공판이 열리고 있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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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다'와 '처벌받아야 한다'는 다르다. 당연한 말 같지만 둘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자칫 그 경계선이 흐릿해지면 법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헌법과 법률이 '엄격한 증명을 거쳐 법이 정한 대로 처벌해야 한다'와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한다'는 대원칙을 정한 이유다.
이인복·이상훈·김신 대법관(아래 세 대법관)은 22일 열린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사건에서 유독 이 원칙을 강조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특히 1심부터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법원의 판단이 달라지지 않았던 이석기 전 의원과 김홍열 전 경기도당 위원장의 내란 선동죄까지 무죄로 봤다.
법률상 내란 선동은 내란 음모의 전 단계다. 그런데 형법은 내란 음모죄의 경우 '두 명 이상의 합의'를 기본 요건 중 하나로 정하면서도 내란 선동에는 별다른 기준을 두지 않았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이 때문에 내란 선동죄는 내란 음모죄보다 성립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할 우려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말'만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또 형법이 내란 선동죄와 내란 음모죄를 동일한 법정형(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으로 정한 만큼 내란 선동죄는 내란 음모죄 정도로 위험할 경우에만 범죄로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험해서 처벌한다? 엄격한 증명 있어야
▲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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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대법관은 다른 대법관들이 이 지점에서 내란 선동죄를 너무 쉽게 인정, 처벌 범위를 지나치게 넓혔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다수의견도 내란범죄 실행의 합의까지 이르지 않거나, 합의했더라도 내란으로 나아갈 실질적 위험성이 없는 경우 내란 음모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며 "같은 경우 내란 선동죄로는 처벌할 수 있다는 다수의견의 결론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자신들이 '공소사실은 진실하다'고 믿을 만큼 검사가 충분히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소수의견은 '말의 위험성'에도 주목했다. 세 대법관은 이석기 전 의원과 김홍열 전 위원장의 2014년 5월 10일과 12일 합정동 모임 발언을 일부만 떼어놓고 판단하면 쉽사리 위험하다고 인정할 수 있음을 경계했다.
내란 선동죄는 '폭동을 일으키자'고 하는 일이므로 이 사건에선 이석기 전 의원 등의 발언이 그에 해당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두 사람은 당시 상황이 전쟁이 임박한 시기로 보고 사상전과 선전전 등 물질·기술적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고, 대법원 다수의견은 이 말들을 '폭동을 일으키자'로, 즉 위험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세 대법관은 이석기 전 의원 등의 발언을 '폭동을 일으키자'고 보기에는 그 내용이 추상적이라고 했다. 이들은 이 전 의원의 강연 후 이어진 참석자들의 토론 역시 '다양한 물질·기술적 조치를 마련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자'는 수준이라고 봤다. 세 대법관은 "피고인들이 5월 10일과 12일 회합 전에 조직적으로 폭동을 모의·준비했다거나 회합 이후 폭동 실행을 위해 추가 논의를 했다고 볼 증거도 없다"며 "이석기 등이 폭동을 선동했다는 공소사실은 (법관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세 대법관은 이석기 의원 등의 발언이 위험하냐를 따질 때에도 엄격한 잣대를 강조했다. 그 결과 이들이 내린 결론은 '내란 선동죄로 처벌할 만큼은 아니다'였다. 세 대법관은 "피고인 이석기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고, 피고인 김홍열은 정당의 지역위원장이었음을 고려하면 그들의 행위는 비난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이들을 처벌하려면, 그들이 한 행동만큼의 법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국가보안법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표현의 자유는 양보할 수 없다'는 소수의견
"피고인들의 행위가 대한민국의 정치체제와 헌법이념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내란 음모죄와 내란 선동죄의 구성요건을 완화하거나 확정하여 해석·적용하거나 엄격한 증명 없이 내란 음모죄와 내란 선동죄로 단죄해선 안 된다. 피고인들이 북한을 찬양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했다고 해도 국보법 위반죄로 처벌하는 것에서 나아가 내란 음모죄와 내란 선동죄를 적용,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과 표현의 자유와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양보하는 선례를 만들어선 안 된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자신감을 이야기했다. 세 대법관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방안은 내란 관련 범죄의 성립을 완화하거나 확장해 인정함으로써 불온하거나 불순한 사상과 태도, 행동을 쉽게 처벌하는 데 있지 않다"며 "우리 헌법과 형법이 지향하는 죄형법정주의, 책임주의, 비례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 헌법이 보장한 양심과 표현의 자유 등이 부당하게 위축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 전문(前文)이 천명하고 있는 것처럼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수호하는 합당한 길이다."
이 같은 소수의견의 마무리는 "민주주의야말로 바다와 같아서 다양한 생각들을 포용해 가는 것을 그 제도의 본질로 한다"며 유일하게 진보당 정당해산에 반대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의 의견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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