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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이완구랑 김치찌개 먹은 기자들은 왜 침묵했나 /미디어오늘20150209

by 마리산인1324 2015. 2. 11.

<미디어오늘> 2015-02-09  12:05:36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701

 

 

 

이완구랑 김치찌개 먹은 기자들은 왜 침묵했나

"취재 윤리 위반" 물타기 비난 논란… “취재용 아닌 외부 유출은 문제” vs "보도 못할 사정, 공익제보 차원"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언론사 압박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한 기자가 새정치민주연합에 넘긴 행위에 대해 일부 언론사와 기자들이 취재 윤리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공인의 발언을 녹취한 행위는 비판 대상이 아니며, 보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특정 정당에 녹취록을 넘겼다면 일종의 ‘공익제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후보자는 1월28일 4개 중앙일간지 기자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한 종합편성채널의 보도를 막았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의 말 한마디면 기자의 인사까지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자리에는 보수 성향 일간지와 중도 성향 일간지 기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고, 진보 성향 일간지 기자가 참석했다는 말도 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매체 기자가 이 후보자 발언을 녹취했고, 이후 이 녹취록은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실로 넘어갔다. 김 의원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후보자의 발언을 공개했고, 해당 녹취록은 KBS <뉴스9>를 통해 공개됐다. 앞서 이 후보자는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보도한 KBS 측에 전화를 걸어 해당 기사를 삭제해달라고 요구해 그 언론관이 도마에 오른 상태였다.   

KBS가 공개한 녹취록에서 이 후보자는 “OOO하고, ***한테 ‘야 유선 저 패널부터 막아 인마 빨리 시간없어’ 그랬더니 지금 메모 즉시 넣었다고 그래 가지고 빼고 이러더라. 내가 보니까 빼더라고”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KBS <이완구 “언론사 의혹 제기 막았다”…“사실무근”>)

이 후보자는 “윗사람들하고 다 내가 말은 안 꺼내지만 다 관계가 있어요. 어이 이 국장, 걔 안 돼. 해 안해? 야 김부장 걔 안 돼, 지가 죽는 것도 몰라요. 어떻게 죽는지도 몰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이완구 총리후보자가 일간지기자들과 점심을 먹으며 했다는 말 중 한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있는 언론노조 조합원이 9일 오후 열린 언론노조 기자회견에 참석중이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후보자의 언론관과 별개로 일부 언론과 기자들은 녹취록을 넘긴 기자의 행위를 비판하고 있다. 당사자 동의 없이 녹취한 행위와 이를 야당에 넘긴 행위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SBS 조성현 기자는 7일 <취재파일> ‘이완구의 민낯, 언론의 민낯’에서 “몰래 녹음한 것도 모자라, 이를 특정 정당에 건넨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오해를 사기 충분한 사안”이라며 “차라리 녹취를 정당에 넘기지 말고 자사 홈페이지에 올리고, 멋지게 단독보도를 했으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면 정당 보다는 제3의 중립적인 단체나 기관의 힘을 빌렸으면 어땠을까”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황대진 정치부 기자도 9일 기자수첩 <‘이완구 녹취록’ 보도과정 언론윤리에 맞나>에서 “공식 인터뷰 등에서는 정확한 사실 전달을 위해 녹음을 하지만 식사 자리 같은 사석에서의 녹음은 흔치 않은 일이다. 또 녹취를 했다면 그 용도는 보도에 국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국회 출입 기자는 “우리 언론사는 식사 자리 이야기를 녹취하지 않는다”라며 “녹취했다면 본인이 기사를 쓰면 될 일인데 특정 정당에 넘긴 건 정파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연합뉴스
 

 

이 후보자 녹취록을 야당에 넘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 중앙일간지의 국회 반장은 “금요일날이 소문을 들었는데 사실무근이다. 여당 출입기자 인력이 부족해서 야당 출입 기자를 보내서 이런 소문이 난 것 같다”면서 “이 내용를 보도하는 문제에 대해 식사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사화 하지 않는 게 맞겠다고 현장기자와 데스크가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다른 국회 출입 기자는 “그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의 논조가 있고 기자의 판단이 다르다면 해당 기자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야당에 제공한 것은 기자로서 할 수 있는 행동 아닐까”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회 출입 기자는 “기자라면 그 자리에서 문제제기하거나 보도를 통해 나가는 게 맞다고 보고, 왜 쓰리쿠션으로 새정치연합을 통해 녹취록이 나갔는지 답답한 면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 후보자가 소속 언론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 등으로 회사에 아이템을 낼 수 없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녹취록이든 워딩이든 일종의 공익제보를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기자의 행위에 대해 트집을 잡으려면 잡을 수도 있겠지만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세상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한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KBS 기자 출신인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자가 공인을 만나는 이유는 그에게 공적인 사안을 듣고 싶은 것이고 공인은 이를 항상 염두에 두고 언론을 접한다. 그게 김치찌개 먹는 자리였다고 말하는 건 공과 사가 구별되지 않은 무지한 한국사회의 타성적 사고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기자의 녹취 자체를 비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최 기자는 “상대방의 말 의도를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서라도 녹취는 필요하다. 모임에 참석한 당사자가 상대방 동의를 받지 않고 녹취를 하는 건 불법이 아니다. 또 사적인 의리를 강조하며 이후 취재가 안 될 거란 걱정은 수십 년간 한국 언론의 의례적 변명이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최 기자는 SBS <취재파일>을 언급하며 “이완구의 민낯과 더불어 언론의 민낯을 우겨넣는 진부한 낙종후기류가 또 다른 언론의 민낯을 드러낸다고 보지는 않나”고 비판했다. 

기자의 행위에 대한 비판이 이 후보자 언론관의 문제점을 흐리는 일종의 물타기라는 지적도 있다. 자신에 불리한 기사를 막고 기자 인사에 개입할 수 있다는 부적절한 발언이 공개되는 데는 이 기자의 녹취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기자 행위가 적절한가를 따지는 건 이 후보자 검증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는 것이다. 

또한, 언론의 민낯을 지적한다면 이 후보자의 발언을 녹취해 특정 여당에 넘긴 행위를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이 후보자의 문제적 발언을 듣고도 보도하지 않은 언론사를 비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밥 먹는 자리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보도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언론사도 적지 않았다. 이 후보자가 낙마할 가능성이 모호하고 앞으로 계속 취재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이 발언은 언론사 내부 정보보고 용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9일 오후 언론노조 지본부장들이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이완구 총리후보자의 언론개입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전국언론노동조합은 9일 낸 성명에서 “더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날 식사 자리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진 4개 언론사 중 어느 곳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 발언을 듣고도 보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완구 후보자가 자랑스레 말한 것처럼 실제로 언론 통제가 떡주무르듯 이뤄지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고 비판했다.    

한편 김경협 의원실 관계자는 “녹취부터 공개 과정까지 정당하지 않거나 불법적인 과정은 전혀 없었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문제도 없었다”고 말했다.

 

* 관련자료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737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