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16.01.2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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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사회, 한국-경제/농업 2] 6차산업화도 지역의 1차 가족농을 기본으로
- 정기석 -
지금 우리 농촌 들판에는 난데없이 6차산업화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 농업의 돌파구가 열린다며 정부는 홍보하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6차산업화를 추진하는 현장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곳에 농민은 없고 자본과 기업만 우뚝하거나 농업은 잘 안 보이고 공업과 서비스업만 무성하기 때문이다.
6차 산업화는 "농촌에 존재하는 모든 유·무형의 자원을 바탕으로 농업과 식품 ·특산품 제조·가공(2차산업) 및 유통·판매, 문화·체험·관광 서비스(3차산업) 등을 복합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으로 정의된다. 정부는 오늘날 농업 부가가치와 농가 소득이 정체되고 농촌의 활력이 저하되는 상황을 해소하려면, 농업에 2, 3차 산업을 접목하는 6차 산업화의 방법론을 채택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다. 6차산업화를 하면, 농업 부가가치와 농가소득도 증대되고, 일자리도 창출돼,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공동체 회복의 정책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1차 농산물 재배는 없고 2차 농식품 제조와 3차 농촌관광과 유통 서비스만 영위하는 사례가 눈에 자주 띈다. 그렇다면 1곱하기 2곱하기 3을 해서 6차산업이라는 공식을 성립되지 않는다. 0곱하기 2곱하기 3을 하니 도로 0차 산업의 공허한 모양새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2차 농식품 가공과 3차 농촌관광, 유통 직거래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해도 6차산업의 출발지점이자 바탕이 되어야 할 1차 농산물 생산이 비어있거나 모자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6차산업 정책이 추구하는 지역 내 연대(시너지) 효과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6차산업화는 통합적 관점보다는 개별 경영체·마을단위로 진행되는 게 특징이다. 지역 내 주체들 간의 연대를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에 구조적으로,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 실제 현장에서는 농산물, 식품, 체험·관광 위주로 사업이 진행되면서 지역의 문화, 역사, 음식 자원의 활용 및 서비스 산업화라는 융복합적 정책의 목표지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 강기갑 전 국회의원이 매실농사를 짓는 사천 흙사랑농장 - |
'6차산업화'도 지역의 '1차'에서부터 시작하자
지금 정부의 느닷없는 6차산업 드라이브 정책에 6차의 의미와 의도를 잘 알 수 없는 농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입을 모아 불신과 우려의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다. "농촌의 모든 유·무형의 자원을 제조·가공해 유통·판매·문화·체험·관광서비스와 연계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6차 산업에 대한 정의가 그저 막연하고 막막하다며 한숨을 쉰다.
무엇보다 '공동체농업과 농촌공동체' 방식을 '농정의 정도'로 알고 살아온 우리 농민들의 눈에는 왠지 옳고 바른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할 수 없는 남의 일처럼 들린다. 자본력과 기술력의 기업농을 내세운 6차산업화는 대다수의 소농, 가족농에게는 그림의 떡처럼 다가온다.
참여하고 싶어도 대다수에게 문턱이 높은 정책은 좋은 정책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름지기 올바른 정책이라면 자본이 모자라고 기술도 부족한 소농일지라도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정부가 좋아하는 표현대로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가진 자만 독과점할 수밖에 없는 정책은 정책이 아니고 어쩌면 특혜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6차산업화의 출발점이자 주체는 농민 생산자라야 한다. 1차 수혜자는 1차 농산물 생산의 주체이자 주력인 중소농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6차산업화 정책의 혜택이 대농, 기업농이 아닌 중소농에게 공평하게 분배될 수 있다. 아니면 중소농은 6차산업을 주도하는 농식품 가공업체에 대해 그저 단순 원료 공급자로서 '을'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중소농은 자본력, 기술력, 경영능력이 없어 기업화, 규모화에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중소농들이 6차산업의 당당한 주체로 정부의 정책에 동참할 수 있으려면 소규모 부업 수준으로나마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소규모 식품 제조·가공에 대해서는 별도의 완화된 시설 기준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 충남, 완주 등의 공동가공센터 사례처럼 행정적, 기술적 지원인프라도 지역 거점 마다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무엇보다 농민들이 현장에서 요구하는 '6차산업화'의 대안은 중소농 중심 '협동화사업' 모델이 적정할 수 있다. 6차산업화 정책은 농촌의 공동체 특성과 다기능성을 살리면서 추진되어야 마땅하다. 6차산업은 본질적으로 1차 농업 생산이 근간이기 때문이다. 이때 고용창출이라는 정량적, 직접적 목표보다는,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정신, 지속가능한 자원순환시스템 등을 통한 농촌 소득증대의 선순환 구조를 염두에 두어야 함을 물론이다.
근본적으로 인구 밀도가 낮고 생산인력이 부족한 농촌에서 6차산업화 같은 농산업의 사업화, 기업화는 시장 실패를 피하기 어렵다. 농촌지역에서 구조적으로, 환경적으로 충분한 규모와 지속가능한 기간의 상권형성도 어렵다. 이럴 때, 1차 농업의 주체인 지역의 중소농들이 돈과 힘을 모아 6차산업화를 위한 생산협동조합을 결성하면 시장실패의 가능성을 낮추는 유력한 자구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6차산업의 성공 사례 : 당진 백산올미마을 한과 가공장 |
'가족농'을 중심에 세우자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선진농업국에서는 기업농과 가족농의 구분이나 대립이 없다고 한다. 거의 모든 농가가 가족농이기 때문이다. '소금과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의 파이스테나우(Faistenau) 지방의 홀러 농장도 요셉 클라우스호퍼(Joseph Klaushofer) 농장주 부부가 공동으로 꾸려가는 가족농장이다. 약 7ha의 농지에 닭 50마리, 젖소 7마리, 그리고 벌을 키우는 게 전부다. 그런데 젖소 70마리를 기르는 다른 농가보다 소득이 높다.
이 가족농의 비결은 농식품 가공 등 6차산업으로 부가가치를 높였기 때문이다. 소농으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농식품 가공품을 개발해 100% 직판으로 판매한 전략이 주효했다. 근본적으로 일반적인 농가와 콘텐츠와 프로그램이 다른 특별한 농가로 스스로 자리매김을 했다.
심지어 남편인 요셉씨는 겨울철 농한기에도 쉬지 않는다. 스스로 설계, 제작하는 양봉틀, 가구 등 목공제품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농장주 요셉씨는 농장 안내를 하는 동안 입버릇처럼 되풀이해 힘을 주어 강조했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것처럼. "농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버틸 수 있는 다리를 찾아야 한다"고.
부인 브리기타씨도 부지런하기는 남편 요셉씨를 능가한다. 홀러 농장의 가공품 개발을 전담하는 연구원이자 공장장 역할을 맡고 있다. 어쩌면 남편보다 더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새로운 가공식품 연구와 개발을 위해 쉬지 않고 교육을 받고 인증을 받으러 다닌다. 그동안 50여 가지의 가공품을 개발했다. 그것도 정부의 지원은커녕 자기 돈과 시간을 투자해가면서.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 미에밍(Mieming)의 디스마스(Dismas)훈제생햄 맛 인증 농가도 전형적인 가족농이다. 20ha의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 마틴 알버(Martin Alber)씨는 직접 사육한 60여 마리의 돼지로 티롤 지방 전통방식의 수제 육가공품을 제조, 직판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농가 직판을 시작하고 2000년에 비로소 농가에 자가 도축장, 부분육 처리실 등을 마련해 훈제 생햄 등의 육가공품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작품을 만들듯 생산한 훈제 생햄은 오스트리아 최고 인증 지역농특산물에게 주어지는 '맛의 왕관(Gueness Krone)'을 수차례 수상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기업농도 아닌 일개 가족농 처지에 4성급 이상의 오스트리아 최고 수준의 호텔에 납품할 정도다.
농장주 마틴 알버씨는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한 육가공 분야 마이스터다. 마이스터는 농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자격이 부여된다. 농장주 마틴씨의 아들 역시 가업을 잇기 위해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정규학교 과정 이외에도 농업마이스터시험, 티롤 농업회의소의 육가공, 마케팅 등 정기보수교육과정 등을 이수한 어엿한 농부 자격증 소지자다. 30여 년 전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낙농업을 물려받았듯이, 아버지 마틴씨로부터 농사라는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전문 농업인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한국의 가족농은 1987년 180만호에서 2013년 110여만 호로 줄어들었다. 우리도 정부의 가족농 육성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족농을 육성하기 위해 전업농을 중심으로 규모 확대를 촉진하고, 젊은 후계 가족농을 양성하며, 규모화나 전문화가 어려운 가족농은 협동화를 유도하겠다"는 가족농 육성정책은, 이명박 정부에 의해 "2012년까지 기업형 주업농 20만 명과 1만여 개의 농업법인을 육성하겠다"는 농업선진화법에 가렸다. 대다수 소규모 가족농은 정부의 관심대상에서 소외됐다. 그리고 전문화, 규모화된 기업농, 대농들과 경쟁하느라 점점 해체되고 있다.
2014년은 UN이 지정한 '가족농업의 해(International Year of Family Farming)'였다. UN도 가족농이 식량안보와 영양개선, 빈곤과 기아 극복, 환경과 생물다양성 보전, 지역경제 유지 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국 93개국 전체 농가의 80%가 가족농인 것으로 밝혀졌다. 소규모로 가족들이, 가족노동을 주로 경영하고, 다양한 복합적 영농활동을 통해 전 지구적으로 '식량안보'와 '자연자원보호'를 선도하는 점을 가족농의 중요한 역할이자 가치로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농업의 살길, 그리고 식량주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가족농이라 할 수 있다. 정글같은 세계자유무역협정 시대에 미국, 호주 등의 글로벌 메이저 농기업과 겨루겠다고 농지 집단화, 수출 기업화 등 규모의 경제를 추진하는 정책은 비현실적이고 불필요하다. 소규모의 건강한 가족농을 중심으로, 지역의 전통 특화자원에 기반을 둔 친환경 지역순환농업이 최선의 자구책일 것이다.
▲ 봉화 비나리마을의 가족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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