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2023.06.20 08:51
‘마늘의 민족’답게…요즘 추세는 마늘 신품종 키우기
비타민·무기질 풍부 면역기능 강화
건기식·의약품 활용 1인당 7.1kg 소비
국내 최초 전국 재배 가능 ‘홍산’개발
기능성·트렌드 변화 맞춘 육종 박차
홍산마늘 끝 초록색 항암·당뇨에 효과적
홍산 마늘이 처음부터 사랑받았던 것은 아니다. 유통 초기 일반 마늘과 다르다 는 이유로 소비자들이 꺼려했다. 홍산 마늘은 다른 마늘보다 인편 끝 초록색이 도드라지는 특성이 있는데, 이는 클로로필 성분이 많기 때문이다. 클로로필은 항암 작용, 당뇨 완화, 조혈 작용, 간 기능 개선 등에 효과가 있는 성분이다. |
[헤럴드경제=(정리)김영상 기자·양정원 웰니스팀장] 한국인의 식탁에서 마늘을 빼놓을 수 있을까? 마늘은 대부분의 전통 한식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피자·파스타 등 해외에서 유입된 음식에도 마늘로 맛을 낸 이색 메뉴가 많다. 우리나라는 ‘마늘의 민족’이라는 애칭이 있을 정도로 마늘 소비량이 많다.
생산·수출·소비 부문에서 보면 중국이 1위라고 할 수 있지만, 2021년 기준 생산량(30만8532톤)과 비교해 국내 1인당 소비량(7.1㎏)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만큼 마늘을 많이 먹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마늘이 우리 민족과 닮았다?=마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는 단군신화다. 단군신화는 모두 7개의 이야기로 엮어져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곰이 호랑이와 함께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가 곰만 사람이 된 것이다. 인간이 되고자 소망한 곰과 호랑이는 ‘마늘과 쑥을 먹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되리라’는 명을 받는다. 하지만 호랑이는 이를 지키지 못하고 곰은 그대로 지켜내 곰만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했다는 이야기다.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이 건국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마늘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친밀한 식품이다.
마늘은 양파, 파, 부추 등과 함께 백합과 알리움(Allium)속에 속하는 채소로 원산지는 중앙아시아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1~2세기경 진나라의 장화가 쓴 박물지에 따르면 한나라의 장건이 서역에서 큰 마늘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마늘은 이때 도입된 것으로 짐작된다.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해 볼 때 우리나라에는 기원전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는 ‘입추(立秋) 후에 산원(蒜園)에서 후농제(後農祭)를 지낸다’고 기술돼 있는데, 이때 ‘산(蒜)’이 바로 마늘을 뜻한다. 이러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마늘은 통일신라 때 이미 재배됐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550년 경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충치로 인한 통증을 제거하거나 동물에게 물린 상처를 치료하고, 심장병을 회복하는 데에 마늘을 처방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선수들이나 검투사들도 마늘을 씹었고, 로마시대에는 군인과 항해사에게 강장제로 마늘을 공급했다는 기록도 있다.
특유의 향과 독특한 매운맛을 얻기 위해서 마늘은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야 한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야 건강에 좋은 각종 기능성 물질과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하게 생성되기 때문이다.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고 비로소 자신만의 향과 맛을 뿜어내는 것이 우리 민족성과 상통하는 작물이라 여겨진다.
▶마늘의 변신은 무죄=마늘은 고추, 배추, 무, 양파와 함께 우리나라 5대 채소로 꼽힌다. 가장 중요한 양념채소로 우리 식탁에서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조미료이다. 마늘 소비는 지표로도 드러난다. 국민 1인당 매일 13.7g의 마늘을 먹고 있으며, 마늘을 소비하는 형태도 점점 다양해지는 추세다. 과거에는 양념채소나 조미료 수준에서 소비했지만, 현재는 마늘을 활용한 다양한 가공식품도 사랑받고 있다.
마늘 소비가 확대된 이유 중 하나는 국민들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마늘은 비단 양념 개념에서 벗어나 인체 생리활성 조절, 면역기능 강화 등 기능성 식품으로 이용되는 소비패턴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의서로 고려 때 간행된 ‘향약구급방’에 마늘이 등장하는 것처럼 현재의 마늘 역시 조미료를 넘어서 의약품, 건강보조식품 등으로 활용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소비량 역시 꾸준히 증가하는데, 2016년 1인당 마늘 소비량은 6.6kg이었던 것이 2021년에는 7.1kg으로 상승했다. 마늘 엑기스, 마늘 잼, 흑마늘 등의 가공식품을 포함한다면 소비량은 더욱 높게 계측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조만간 1인당 마늘 소비가 10kg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 총소득이 늘면서 소고기, 돼지고기 소비도 크게 늘고 덩달아 마늘 소비 또한 촉진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소비량이 가파르게 느는 것이 바로 깐마늘과 다진마늘이다. 깐마늘의 구매 비중은 2015년 17.6%였던 것이 2021년 36.7%로 크게 증가했으며, 2021년 다진마늘의 구매 비중은 전년 대비 2.7% 증가한 16.1%를 기록했다. 소포장 판매, 조리의 간편함 등의 이유로 깐마늘과 다진마늘의 선호가 확대되면서 구매 행태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다양한 마늘품종=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마늘은 크게 재래종, 도입종, 육성품종으로 나뉜다. 재래종은 오랜 세월 우리나라 기후와 환경에 적응한 것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 민족의 건강을 지켜온 약초이자 채소로 손꼽힌다. 재래종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추운 기후에 적응한 한지 재래종과 따뜻한 기후에 적응한 난지 재래종이 바로 그것이다. 한지 재래종은 중부내륙지방 같은 추운 지역에 적응한 종으로 서산종, 의성종, 단양종, 삼척종 등이 대표적이다. 휴면이 길고 발아가 늦어 가을 파종 후 뿌리만 발육하고 월동 후 싹이 난다. 쪽수는 6~8쪽 정도로 알이 굵은 편이며, 우리 입맛에 잘 맞아 선호도가 높다. 또한 저장성이 좋다는 것 역시 장점으로 꼽힌다.
난지 재래종은 남해안 지방이나 제주도와 같이 도서지방의 따뜻한 기후에 적응한 종으로 고흥백, 남해백, 제주재래 등이 있다. 한지형과 달리 휴면타파가 빠르며 발아도 빨라 잎이 나온 상태에서 월동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겨울철 온도가 비교적 높은 남쪽 지방에서 재배한다. 쪽수는 8~10쪽으로 많은 편이다. 그러나 현재 난지 재래종은 수량과 병해충 저항성 등 다양한 이유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재배되지 않고 있다.
도입종은 외국에서 들여와 우리 땅에 적응한 품종이다. 우리나라 풍토에 적응한 마늘들로 토종은 아니지만 국산 마늘에 속한다. 중국의 마늘을 개량한 ‘남도’ 마늘, 스페인 마늘을 개량한 ‘대서’ 마늘 등이 대표적이다. 남도종은 1976년 중국에서 도입된 ‘가정백’을 남해, 해남, 제주 등 3개 지역에서 생산력을 검정하고 선발 증식한 것이다. 1983년부터 ‘남도’ 마늘로 명명하여 농가에 보급하게 됐다. 대서종은 1983년 경남 창녕 지역 농민들이 재배하던 스페인 마늘을 경남농업기술원에서 품종 비교 시험한 결과 성능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1986년 극조생종 ‘대서’ 마늘로 명명하고 시범사업을 통해 보급한 품종이다. 이 두 품종은 수확 시기가 빠르고 수량성이 높아 재배면적이 점차 증가하게 됐다. 현재 국내 마늘 재배면적의 80%를 차지하는 난지형 마늘의 대표 품종이기도 하다.
육성품종은 일정한 목표에 따라서 인위적으로 육성된 품종을 뜻한다. 사실 마늘은 품종육성이 어렵다. 영양번식 작물인 마늘은 꽃이 피지 않거나 꽃이 피어도 불임이라 열매를 맺지 않아 교잡에 의한 품종육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품종육성 초기에는 도입과 선발육종, 돌연변이 유발을 통한 육종을 수행하였으나 뚜렷한 성과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듭된 연구를 통해 마침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냈다.
▶마늘품종 육성을 향한 연구의 길=농촌진흥청에서는 1986년 꽃피는 마늘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교배육종을 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마늘종 끝에 달린 총포(꽃 밑동을 싼 조각)에는 주아와 꽃이 함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마늘 품종은 유전적으로 불임이라 교배를 통한 새로운 품종 개발이 어려웠다. 이에 국내외 수집 유전자원에 관한 연구를 통해 재래종 마늘의 불임 원인을 밝히고 임성이 확인된 재료를 이용하여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교배육종을 통한 마늘 신품종 육성은 2000년대 이후 활발히 이루어져 현재 12개의 품종이 등록됐다.
주요 육성 품종에는 바이러스에 강한 ‘다산’과 ‘풍산’, 항암 활성을 향상시킨 기능성 마늘 ‘화산’,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6쪽 마늘 ‘천운’, 한지형 마늘로 대주아를 생성하는 ‘대주’, 마늘종 수량이 높고 식감이 우수한 ‘산대’를 비롯해 한지·난지 겸용 품종인 ‘홍산’이 있다. 그중 홍산은 2003년에 교배해 선발·증식 후 지역적응시험을 거쳐 2015년 품종 출원을 했고, 2016년 품종 등록을 마쳤다.
홍산 마늘은 이름에 넓을 홍(弘) 자가 들어갈 만큼 국내 최초로 전국 재배가 가능한 마늘이다. 한지형으로 구분돼 있기는 하지만 난지에서도 재배가 가능하며, 난지 재배했을 때 남도종보다 숙기가 15일가량 늦으나 수량이 15% 높다. 또한 한지 재배의 경우 숙기는 단양종과 유사하나 수량은 30% 높다.
농가에서 마늘을 심을 때는 기계를 이용하더라도 캘 때는 손으로 한다. 홍산 마늘은 당기면 쉽게 뽑히기 때문에 수확이 쉽다. 그래서 같은 면적에 재배하더라도 기존 마늘에 비해 3배 이상 수확 작업 시간이 단축되고, 수확 노력도 70% 절감되는 효자 품종이다. 특히 일손이 부족한 농가 입장에서는 노동력이 절감되는 것이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쪽수는 6~8쪽으로 인편(쪽) 하나하나의 크기가 커서 소비자가 이용하기 편리하다. 마늘의 주요 기능성 물질인 알린의 함량이 높고 항산화 능력에 관련된 총 페놀, 총 플라노이드의 함량 또한 다른 품종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높다.
▶국내 최초 전국 재배 가능한 ‘홍산’ 마늘=농촌진흥청은 품질 좋고 수량이 많은 홍산 마늘의 전국 재배 기반 조성을 위해 홍산을 이름 그대로 더 널리 알리고자 노력 중이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 전국 31개 지역에 시범 재배를 실시하고, 품종특성과 재배법 지도를 위한 현장기술지원, 평가회 등을 열었다. 난지 지역에서는 대비 종보다 숙기가 늦기 때문에 후작물 재배가 어려워 꺼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한지 지역의 경우 홍산을 선호하는 농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홍산은 월동에도 강하고 재래종보다 수량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홍성, 영천, 보은 등과 같이 기존 한지형 품종을 재배하는 농가의 호응이 높은 편이다. 2023년 현재 6개 지역 10개 업체에 통상 실시됐다.
물론 홍산 마늘이 처음부터 사랑받았던 것은 아니다. 홍산 마늘은 다른 마늘보다 인편 끝 초록색이 도드라지는 특성이 있는데, 이는 클로로필 성분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이 클로로필은 항암 작용, 당뇨 완화, 조혈 작용, 간 기능 개선 등에 효과가 있는 성분이다. 하지만 유통 초기에는 일반 마늘과 다르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이 꺼리며 구매한 마늘을 반품하는 현상도 발생했다.
그러나 홍산 마늘의 단점이라 생각되는 초록색 부분을 부각해 클로로필 등 기능성 성분이 많은 초록 마늘로 홍보하자 분위기는 반전됐다. 소포장 깐마늘을 제작해 기능성을 강조하고, 대형마트 등을 통한 유통 및 마케팅 지원을 활성화하자 소비자들의 인식 또한 변화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2019년 0.5%대였던 점유율을 2020년 3%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과 품종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2020년 대한민국 우수품종상 대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홍산 마늘은 수량성이 좋고 전국 재배가 가능한 한지·난지 겸용이며, 적극적인 보급사업으로 비교적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품종보다 대가 굵어 수확 후 건조가 어려운 점과 이로 인한 저장성 저하가 해결 과제로 꼽힌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수확 후 관리 조건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진정한 마늘의 민족을 꿈꾸다=현재 국내 마늘 재배 면적의 80%는 난지형 마늘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농촌진흥청은 남도종, 대서종과 같이 수확 시기가 빠르면서 수량과 기능성이 높은 난지형 신품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1인 가구, 맞벌이 가구 증가 등 소비 트렌드 변화에 맞춘 품종도 연구 중이다. 깐마늘이나 다진 마늘과 같은 신선편이 제품 활용에 적합하면서도 껍질을 벗기기 쉽고, 색깔이 우수하며 가공 후 변색이 적은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유전자원의 수집과 함께 기존 유전자원, 가임마늘 유래 육성 계통 등 새로운 육종 소재를 창출하고 다양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목표 형질에 맞는 선발 기준을 확립하고 대량으로 빠르게 평가할 수 있는 조건을 수립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타임이 선정한 10대 항암 식품 중 하나로 뽑힐 만큼 기능성이 높은 마늘. 김치의 양념 재료로, 또 맛있는 빵의 향신료로, 건강보조식품과 의약품으로 변화무쌍하게 진화 중인 마늘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음식과 건강을 책임져 왔다. ‘마늘의 민족’으로서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2, 제3의 홍산 마늘이 육종되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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