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문화> 2006-09-01 17:45:52 www.nan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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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에서 읽는 삶의 지혜 (신영복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 ||||||
최근에 『강의』라는 제목으로 동양고전에 관한 해설서를 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내가 이야기하는 이런 저런 강의에서 그 책이 자연스럽게 중심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그것을 실마리 삼아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합니다. 저는 고전을 '관계론'이라는 관점을 통해 읽고 있습니다. 이 '관계론'에 대해서 철학적인 딱딱한 개념으로 소개하기 보다는 내가 겪었던 일을 통해서 전달해보려고 합니다.
1. 나의 고전독법의 관점인 관계론은 면벽명상(面壁冥想)의 결론입니다. 나의 정체성(Identity)은 나의 사회성(Sociality)이라는 것이 명상의 결론이었습니다. 관계론의 독법은 근대성에 대한 반성이며 60년대의 절망에 대한 반성이었습니다. 20년 징역살이를 하는 동안 독방에 있었던 기간이 5년이었습니다. 독방에 있을 때 소위 말하는 면벽명상을 많이 했습니다. 혼자서 갇혀있으니까 외부와 소통하고 싶은 생각이 들고, 신통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우주의 궁극적인 정보체계와 통한다고 하기에 좋겠다 싶어서 열심히 했습니다. 책도 많이 읽어보고 했는데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대단한 분들이 그런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그렇게 신뢰가 생기지 않습니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호흡을 어떻게 하고, 기운을 돌리라고 하는데 잠깐 졸릴 때 말고는 무념무상이 안 됩니다. 그래서 아예 내가 겪었던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되살리는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4살 때 기억을 되살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렸을 때 만났던 사람들, 겪었던 겪은 일들을 눈감고 앉아서 떠올려보았습니다. 과거를 다시 체험하는 추체험(追體驗)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참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는 대단히 사소한 일 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아주 엄청난 일이나, 그때 잠깐 만났다 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내 속에 깊이 영향을 주었던 사람, 반대로오래 같이 있었는데도 나와 녹아 들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중학교 일학년 겨울방학에 1월 1일이면 신년식이란 걸 한다고 학교운동장에 집합시켰습니다. 신년식이 끝나고 나서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1번부터 순서대로 신년을 맞이하는 각오를 이야기 하라고 했습니다. 그 춥고 난로도 없는 교실에서 한 명씩 일어나서 이야기 하는데, 심부름 잘하고, 숙제 잘하겠다는 얘기 말고는 별게 없었습니다. 그때 같은 반에 별로 눈에 안 띄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공부도 별로, 싸움도 못하고, 가난하고, 별로 말없는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 차례가 되자 대뜸 "나는 납득이 안 갑니다.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는데 이게 뭐 특별하다고 방학 중에 불러내서 이런걸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선생님도 친구들도 나도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 책 중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있는데, 내가 붙인 제목은 아니지만 나에게 사색적인 면이있다면 그 친구 덕이라고생각합니다. 독방에 앉아서 내가 그 동안 만나고 겪은 사람들을 돌이켜 보면서 내린 결론은, '나'라는 것은, 나의 정체성은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 내가 겪은 모든 일을 합이란 것입니다. '나'라는 것은 내가 맺은 관계의 총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만의 배타적인 천재성 보다 겪고 만나고 함께한 이러저러한 것이 나를 이루는 게 아닌가? 그래서 고전도 존재론 보다는 관계론으로 읽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4·19 직후에 그런 각성을 했습니다. 그때가 대학교 2, 3학년 무렵이었는데, 1년 후에 5·16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세대가 사실 불행한 세대입니다. 식민지에서 해방되자마자 해방의 격동 속에서 전쟁을 겪었고, 4·19가 일어났을 때 굉장히 격양된 정서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지어 4·19를 '총알이 이마를 뚫고 지나간 혁명'이라고 칭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것으로 시작했음에도불구하고,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이후의 사회변화를 보면 우리가 어떤 억압구조 속에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억압구조가 붕괴되고, 통일운동까지 압축적으로진행되었지만 5·16으로 초토화되었습니다. 총알은 이마가 아니라 모자를 뚫고 지나간 것뿐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억압구조 속에 있는지를 그때 깨달았습니다. 부패한 늙은 정객을 쫓아내는 것만으로는 억압구조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슬픈 각성을 하고, 긴긴 군사정권 시절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고전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60년대 대학에서는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근대를 기획하는 것을 중심적으로 했습니다. 서구의 근대사회를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삼고 유럽과 미국의 문화를 앞다투어 들여왔습니다. 상층부에 있던 대학생들은 훨씬 민감하게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행하다는 생각을 했고, 이왕 무기형을 받았으니까 근본적인 것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고전을 읽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교도소에서도 책이나 필기도구를 소지하는 것이 자유롭게 되었는데, 60년대 말에는 책 세 권 달랑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그걸 반납해야 다른 책을 넣어 줍니다. 대전에서 징역을 살았는데, 책은 서울에 계시는 노부모님이 보내주셨습니다. 어찌되었든 징역 사는 게 벼슬도 아닌데 책 보내달라고 하는 것도 불효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 권으로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택했습니다. 노자, 주역, 사서삼경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나중에 본격적으로 읽다 보니 사서삼경 정도는 계속 두고 봐야 해서 한 권으로 제본을 해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엄청나게 크고 두꺼운 책으로 만들어서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근대 사회를 이상적인 모델로 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극도의 좌절감 패배의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전 속에는 뛰어난 담론들이 많았습니다. 계속 고전을 공부하면서 우리 시대를 반성하고,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에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그런 독서편력을 아는 사람들이 강의로 하자고 해서 10여 년 동안 고전강독이라는 강의를 했습니다. 오늘은 그 중의 몇 개를 같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2. 동양문화는 관계론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泰 小往大來 吉亨 則是天地交 而萬物通也 上下交 而其珍也 內陽外陰 內健外順 內君子而外小人 君子道長 小人道消也 (주역) 위(位)와 응(應)이라는 주역의 독법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주역에는 64개의 괘(掛)가 있습니다. 이 64개의 괘가 가지는 의미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까이 지내는 중국학 전공자 중에 당시(唐詩) 300수를 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시 300수를 외우고 있는 사람은 이런 봄 밤을 보고 그것을 당시 한 편으로 담아낼 수 있습니다. 시 한 수가 세상을 읽는 하나의 창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담는 300개의 창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주역의 괘는 세상을 보는 64개의 창입니다. 주역의 64괘는 세상은 이렇게 변화한다는 오랜 경험의 축적을 통해 만든 하나의 틀입니다. 세상을 읽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 뜨는 그릇으로 바닷물을 뜨면 그릇 속에 담긴 것은 아무리 커도 바다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다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지천태(地天泰)라는 괘를 살펴보자. 양효가 아래에 있고 음효가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양효라고 해서 언제나 양의 뜻을 가지지 않습니다. 위(位)에 따라 다릅니다. 음효가 음효의 자리에 왔을 때 득위(得位)했다고 하고 자리에 없을 때 실위(失位)했다고 합니다. 효의 상태만을 읽는 게 아니라 효가 처한 관계를 통해 읽습니다. 그리고 이 효와 다른 효의 관계를 따집니다. 이것을 비(比)라고 합니다. 옆의 효와 음양의 조화를 따지는 것입니다. 하괘의 효와 상괘의 효가 음양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이것을 응(應)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개별적 존재성을 중심으로 읽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다른 것과의 존재 속에서 길흉화복을 찾습니다. 태괘는 좋은 괘다. 땅의 기운은 대개 아래로 내려오고 하늘의 기운은 올라갑니다. 이것들이 서로 만나고 통합니다. 교통, 만남이 있는 효이기 때문에 좋은 효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 속에 동양적 사고의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이것은 붓글씨를 쓸 때에도 드러납니다. 붓글씨를 쓸 때 획을 하나 그었는데, 생각보다 치우쳤다 싶으면 다음 획을 안쪽으로 그어서 그것을 보충합니다. 한 글자의 결함이나 잘못은 그 다음 글자를 통해서 보충합니다. 붓글씨는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붓글씨를 쓸 때는 아래, 위, 양 옆을 다 봐야 합니다. 낙관까지도 전체균형에 잘 어울리게 찍습니다. 이렇게 균형이 잡힌 글씨를 서도(書道)에서는 격조 있는 글씨라고 인정합니다. 옆에 있는 글자와의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서도(書道)에서는 글씨에서 제일 중요한 흑과 백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글자와 글자간의 배치가 균형 잡혀 있는지, 획과획이 잘 어울리는지를 봅니다. 서도라는 것은 서양에는 없는 예술입니다. 서도가 가지고 있는 구성에는 관계론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도는 그 사람과 작품에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서양 예술에는 사람이 형편없을수록 작품이 돋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거장들의 삶을 보면 성격이 괴팍하거나, 성정이 거친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서도의 경우에는 사람이 훌륭해야 합니다. 서도가 가지는 작품의 구성 외에, 사람과 작품이 가지는 관계를 보면 서구적인 예술과는 상당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사고의 바탕에는 사물이나 현상을 그것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것이 맺고 있는 이러저러한 관계를 통해 파악하려는 문화가 있습니다. 대전교도소에 이송되었을 때 동베를린 사건으로 들어온 이응로 선생이 출소했습니다. 그 분에 대해 궁금해서 여기저기 물어보니까, 그 분과 같이 있던 젊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대뜸 말하기를 "그 노인네 괴짜라고 하더라. 만나는 사람마다 싫다는 이름을 계속 물어보더라"는 것입니다. 징역살이에서는 이름을 안 물어봅니다. 서로서로 이름을 밝히기 싫어하거니와 번호로 부르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선생은 항상 이름을 물어보고, 이름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 친구에게 이 선생이 이름을 물어봤는데, 그 친구이름이 '응일'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이 혼잣말로 "뉘 집 큰아들이 징역을 사는구나? 했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정말 장남입니다. 집에서 가출할 때 누이동생 시계를 훔쳐 나왔는데, 돈 벌어 고향에 가려고 했지만 그것도 다 헛된 일이 되고 징역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친구가 그날 고향생각에 잠을 못 잤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냥 그 사람으로 안 봅니다. 그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그 사람을 봅니다. 이것은 타자화하거나 대상화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서도의 미학이나 주역이라는 동양적인 의식, 사고방식의 바탕에 깔려있는 관계론적인 성향 같은 것은 대단히 객관적인 세계관입니다. 그런데 인간이해에 있어서 이런 인문학적이고 문화적인 전통이 급격하게 없어지고 있습니다. 3. 오늘의 현실은 인간관계가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臣聞之胡齕曰 王坐於堂上 有牽牛而過堂下者 王見之曰 牛何之 對曰 將以釁鍾 王曰 舍之 吾不忍其觳觫若 無罪而就死地 對曰 然則癈釁鐘與 曰 何可癈也 以羊易之 不識有諸 (맹자) 인간관계의 황폐화는 사회성의 붕괴입니다.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가 곧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상품사회에서는 인간의 정체성(正體性)이 소멸됩니다. 君子不器(논어)이어야 합니다. 인간은 다른 어떤 가치의 하위(下位)개념이 아닙니다. 옛날 춘추전국 시대 제나라의 성왕이 앉아 있다가, 한 신하가 벌벌 떠는 소를 끌고 가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제물로 끌려가는 소였습니다. 성왕은, 벌벌 떨면서 사지로 가는 소가 불쌍해 못 보겠다며 양으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맹자가 성왕에게 찾아와서 이 소문이 진짜인지 물었습니다.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은 것인가? 맹자가 성왕이 모르는 이유를 설명하기를 '양은 못 봤고 소는 봤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본 짐승이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그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듣고 그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이처럼 만남이 있는 것과 만남이 없는 것의 차이는 아주 결정적입니다. 내가 교도소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사람을 보면 대부분 죄명을 알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좀더 신경을 쓰면 형기도 알아 맞출 수 있습니다. 걸음걸이를 보면 딱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 보는 느낌을 이제는 전철에서 씁니다. 전철 타고 가다 한번 둘러보면 누가 어느 역에 내릴지 대부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잠을 못 자서, 지하철 타고 가는 동안에 졸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신도림에서 내릴 사람 앞에 섰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신도림 역에서 내 앞에서 있는 사람이 내렸는데, 그 옆자리 사람이 옮겨 앉더니 자기자리에 친구를 옮겨 앉혔습니다. 그것까지는 몰랐습니다. (웃음) 그 자리를 계속 노리고 있었던 나보다 자기 친구를 앉히려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전철에서 우리가 만나는 시간은 아주 짧습니다. 평균 20분입니다. 그 시간을 가지고는 사회관계가형성되지 않습니다.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적인 질서입니다. 지속적이지 않은 것은 사회에 낄 수 없습니다. 지속적이지 않으면 사회적 가치나 규제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보다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이 신경 쓰는 것입니다. 만남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모스크바에서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거기 전철에서는 젊은이가 않아 있다가 노인이 타면 자기자리로 모셔와서 앉힙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 전철을 저 노인들이 만들었지 않느냐?"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물어봤다면 "자기 월급 받으려고 만들었지, 우리 때문에 만들었냐?"라고 할 것입니다. 똑같은 사실에 대해 왜 생각이 다를까? 이것이 '관계'입니다.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관계성을 자각하고 있는가의 차이입니다. 이처럼 만남의 유무는 아주 중요합니다. 내가 징역 18년을 살았을 때, 어머님이 위독하다고 해서 6일간 사회로 나갔다 온 적이 있습니다. 5시까지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늦을까봐 일찍 왔더니 4시였습니다. 한 시간 빨리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밖에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재소자 접견대기실에 갔습니다. 가족이 접견을 오면 이 대기실에 있다가 호명하면 수인(囚人)과 만나는 곳입니다. "우리 가족이 어떻게 생긴 방에 있다가 갔을까?"하고 거기 들어가 봤는데, 어떤 여자가 거기 엎어져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는 접견 대기하는 가족이 없어야 하는데, 아마도 남편 접견을 마치고 가다가 들어와서 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교도소에 들어오는 그 여자 또래의 애들을 보면, 그때 울던 여자가 보입니다. TV에서, 경찰서에서 나쁜 짓 하다 잠바를 뒤집어쓴 사람들 보면, 그 옆에 그의 아내가 보입니다. 2차 대전 이후에 전쟁이 잔혹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예전에는 전쟁터에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짜르트 틀어놓고, 버튼 하나 누르면 끝입니다. 만남이 없습니다. 내가 죽이는 사람이 누구인지,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는 인간관계가 거의 황폐화된 사회입니다. 농담 삼아서 하는 말처럼, 당구공과 당구공의 만남, 잠깐 스치는 만남만 있을 뿐 만남이 없는 상황입니다. 도시의 물리적인 밀집성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가 황폐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시는 자본주의가 만들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존재형식이 바로 도시입니다.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가 얼마나 비정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현실이 바로 도시입니다. 이렇게 만남이 없는 사회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 벌어집니다. 인간관계의 황폐화는 사회성의 붕괴입니다. 만남이 없고 상품교환이라는 형식의 인간관계만 있습니다. '상품'이라는 것 자체가 가치의 기준이 되면서 개인의 정체성도 소멸됩니다. 정치경제학 시간에 화폐를 설명하면서 쌀 한 가마 하고 구두 한켤레가 같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 없이 쓰는데, 알고 보면 말도 안 됩니다. 쌀하고 구두가 같다고 하는 것이 상품화입니다. 쌀은 쌀이면 됩니다. 인간이면 인간으로서평가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평가 받지 못하고 '등가물'에 의해서 평가 받습니다. 쌀이 구두를 가지고 자기를 표현하는 모순이 상품화입니다. 상품은 팔기 위해서 만든 물건이고, 팔려면 자기를 가치 형태로 표현해야 합니다. 등가물이 없이는 자기 표현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의 딸이 서울대에 합격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어머니가 여기저기 말하고 다닙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는가? 딸을 자기의 등가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등가물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장난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심각한 말이 있습니다. "사람 좋으면 밥 먹여 주냐?"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말을 예사로 이야기 하는데,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논어 '위정'(爲政)편에 보면 '군자불기'(君子不器)란 구절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군자는 그릇이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불기(不器)라는 것, 기(器)는 그릇입니다. 사람은 그릇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릇은 용도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국그릇, 밥그릇, 간장그릇이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문성을 가지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다 해야 됩니다. 문사철시서화(文史哲詩書畵), 옛 사람은 다 했습니다. 누가 전문성을 요구 받는가? 노예만 전문성을 강요 받습니다. 단 하나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 사회 일반적인 교육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다른 것의 하위개념이어서는 안됩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63빌딩도 서고, 지하철도 생겼습니다. 감옥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것을 마치 자기 얘기인 양 자랑합니다. 그걸 듣고 한 친구가 굉장히 빈정대곤 했습니다. 그 친구의 여동생이 10살쯤에 서울역에서 실종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여동생을 서울역 앞 사창가에서 발견했다가 놓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서울의 발전이 '뭐 어쩌구' 하면 대단히 냉소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 친구에게 서울이라는 도시는 의지할 곳 없는 어린 소녀를 10년 만에 창녀로 만드는 도시인 것입니다. 해외 입양 돼서 잘 자란 애들을 보면 우리가 어려워서 못 키웠는데, 저 사회는 우리보다 낫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는 이 젊은 친구가 냉소적이고 부정적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사람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간관계와 인간성, 인간의 정체성을 우리가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근대사는 강철의 역사이며 자본주의는 존재론(存在論)의 사회입니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논어) 和의 원리는 차이를 승인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평화의 원리입니다. 同의 논리는 지배의 논리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는 어떤 사회적인 매시지를 각파의 기본담론으로 하고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유가(儒家)의 사회정치적인 메시지는 '대(對), 마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대로 동양정치의 특징입니다. 하나를 논리적으로 심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서 서로 상대가 상대를 설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수십 개의 제후국이 춘추시대에는 12개로 줄고, 전국시대에는 7개로 줄어 듭니다. 그러다가 진나라로 통일되며 일국 패권으로 수렴됩니다. 유가는 주나라의 종법을 이상으로 하는 학파입니다. 주나라는 천자를 중심으로 두고 제후가 공존하는 화(和)의 통치를 했습니다. 화(和)는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면서 서로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 반대로 동(同)은 전쟁으로 흡수, 합병, 지배하는 것입니다. 일국 패권으로 수렴하는 것이 동(同)입니다. 흡수하고 지배하는 것입니다. 근대사라는 것이 바로 이런 동(同)의 논리입니다. 근대사는 바로 자본주의 전개과정입니다. 자본이라는 것이 동의 논리와 같은 것입니다. 자기 존재성을 강화하려는, 자본이 자기 증식하는 것, 자본축적의 역사가 근대사의 전부입니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기업이건, 국민국가건 자기 존재를 계속 키워가려는 논리가 동(同)의 논리입니다. 이 원리가 오늘날 우리 현대사회의 세계적인 질서를 설명한다고 봅니다. 어떤 면에서 춘추전국 시대가 오늘날 세계질서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시사점은 동(同)을 강조한 진나라가 통일을 하고 14년 만에 망했다는 것입니다. 5. 패권주의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古者有語曰 君子不鏡於水 而鏡於人 鏡於水 見面之容 鏡於人 則知吉與兇 (묵자)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보지 마라는 금언은 전쟁방식의 패권주의에 대한 경구입니다. 전쟁방식의 패권주의를 정면에서 이론적, 실천적으로 반대한 학파가 묵가(墨家)입니다. 불경어수(不鏡於水), 물에 비추어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은 옛날에는 거울역할을 했습니다. '거울에 비춰보지 마라, 그것은 겉모습뿐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에 비추어 보는가? 사람에게 비추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쟁방식의 패권추구가 패망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나라 부차의 예를 보십시오. 역사적인 사람들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동(同)의 논리가 패망한다는 것이 묵자의 논리입니다. 하나의 약이 있습니다. 이 약을 만 사람에게 복용시켰더니, 서너 사람만 효험보고 나머지는 다 죽는다면 그것을 양약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몇몇 승전국 만이 아니라 패전국까지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자도 개선장군은 상례(喪禮)로 맞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한 이긴 국가만을 보지 말고 수많은 패한 국가의 사람들을 봐야 한다는 것이 묵가의 주장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패권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 미국입니다. 미국이 전세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어도 들어가는 이유를 석유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대하게 팽창해 있는 패권적인 미국경제가 지속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U를 중심으로 달러에서 유로로 바꾸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란은 외환을 유로로 바꾸고 있고, 후세인도 석유결제 화폐를 유로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석유를 사는 돈은 달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돈을 찍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게 미국의 저력입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경제규모가 수천 배로 팽창했습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이천억 달러라고 합니다. 이렇게 각국마다 달러를 쌓아놓습니다. 이게 유로로 바뀌어서. 달러가 아니어도 유로로 석유를 살 수 있게 되면 달러가치가 폭락합니다. 부시가 멍청해서, 네오콘이 호전적이어서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 아닙니다. 대단히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국의 패권이 지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점이 미국의 아킬레스건입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엄청난 생산력 때문에, 자연과의 충돌 때문에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자본축적 구조 자체가 대단히 위태로운 구조입니다. 지금은 금융자본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시대입니다. 산업자본은 더 이상 중심이 아닙니다. 금융자본은 큰 자본이 작은 자본을 수탈하는 것입니다. 만들어내는 자본이 아닙니다. 생산과 아무 상관 없는 자본입니다. 자본축적 과정의 최후단계라고할 수도 있습니다. 공룡이 계속 생존할 수 있는 몸집을 초과했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자본축적구조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상품문화 고유의 우민화(愚民化)입니다. 역사를 읽으면 알겠지만, 아무리 큰 제국도 마지막에는 우민화로 망합니다. 역사의 도처에 그 기록들이 있습니다. 빵과 서커스, 사람과 사람이 싸워 죽이는 것을 보면서 아무 생각이 없어집니다. 어느 정치권력이든 일단 권력을 쟁취하면 바로 우민화를 추구합니다. 결국은 다 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만큼 우민화의 기제가 막강하고 우민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체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6. 환상을 청산해야 합니다. 墨悲絲染과 國亦有染 (묵자) 우리들의 의식은 물론이며 나라도 잘못 물들어 있습니다. '지속가능'의 환상을 깨뜨려야 합니다.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자체가 거의 허구화 되어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떤 가치를 이끌어낼지 모르고 있습니다. 묵비사염(墨悲絲染), 묵자가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슬퍼했다는 말입니다. 나라도 우민화로 물드는 것입니다. 『고전』개정판 서문에 밝혔지만, 신문사의 후배들이 나를 시켜서 세계기행을 하게 했습니다. "저 선배는 20년 간 감옥에 있었으니까. 보는 게 다른 사람보다는 덜 물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좀 참신한 글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나도 똑같이 물들어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갔을 때 일입니다. 신문사와 계획을 세워 놓기로는 2차 대전 전승기념탑이 있는 강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신문에 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까 기념탑이 없었습니다. 내가 당황해서 기념탑을 찾으니까 언덕에 한 여자 동상이 전승기념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전승 기념탑이라고 하면 워싱턴에 있는 해병대가 깃발 꽂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짜 전쟁에 이겼다는 것은 전쟁에 갔던 아들이 죽지 않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것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동상으로 만든 것이 키예프의 전승기념탑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참담할 정도로 부끄러웠다. 전쟁과 전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천박하게 물들어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논어) 우리들의 감성 역시 잘못 물들어 왜곡되어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 자하가 공자에게 시경에 있는 구절의 의미를 질문합니다. '교소천혜(巧笑倩兮) 미목반혜(美目盼兮) 소이위현혜(素以爲絢兮)', 볼우물이지는 아름다운 미소, 아름다운 검은 눈과 눈동자, 그리고 소(素)가 현(絢)이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소(素)는 바탕, 하얗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회사후소(繪事後素)가 아니냐고 합니다. 그림 그리는 것은 소(素) 다음이 아니냐, 그림 그리기전에 바탕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형식미가 아니라 인간미가 진짜 아름다운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말에서 아름다움의 어원은 아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의 반대말은 추한 게 아니라 모름 다움입니다. 잘 아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날 '잘 아는 것'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 모르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바탕을 두고 보면 사람은 헌 사람이 좋습니다. 광고를 보시면 상품은 대단한 약속을 합니다. 구매자가 잘 사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오로지 팔기 위한 것이 목적이 됩니다. 광고에서 말한 상품의 유용성이 허구임이 밝혀지면 새로운 것이 또 나타납니다. 상품이 아니라 변화에만 탐닉합니다. 바뀌지 않는 것, 안 바뀌는 것, 오래된 것, 우리가 잘 아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역전되어 있습니다. 상품의 본질과 관련한 우리들의 인식과 미적 정서가 이렇게 역전되는 구조는 식민지 문화의 보편적 특징입니다. 자기 것은 아름답지 않고, 밖에서 오는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심지어는 새로운 변화도 과거로부터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끌어옵니다. '제3의 물결'이 밖에서 옵니다. 이런 도착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조건 밖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식민지 문화의 종속적인 특징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각한 것 중의 하나는 '사람들의 판단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 사람의 판단력이 되는가? 최종적으로는 무엇이 판단의 결정이 되는가?'입니다. 그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기가 의식하고 있는 열등감입니다. 판단의 근거에 일종의 콤플렉스,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누구나 콤플렉스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자기가 의식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어떤 종류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합리적인 판단을 절대 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만 아니라 한 사회가 그런 문화의식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면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회가 됩니다. 제주도에 부산회집이 있고, 부산에 서울회집, 서울에 클린턴 회집이 있는 식입니다. 이런 열등의식은 냉정한 자기 반성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자기 밑에 자기를 심리적으로 보장하는, 콤플렉스를 쏟아 넣는 대상을 찾으려고 합니다. 나도 멕시코에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 국제기구의 수장을 맡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얼굴을 늘 새까맣게 태워서 동양사람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하면 멕시코 사회에서 낮춰 본다고 합니다. 나는 멕시코에서 노벨 문학상을 많이 받는 것도 서구가 라틴의 입을 단속하려고 그런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멕시코는 대단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를 보라, 피카소를 일찌감치 결별하고 인디오의 전통과 민중 정치성을 훌륭하게 담아냈다. 안소니 퀸 같은 배우가 난 곳입니다. 우리들이 근대화 서구화 이런 것을 향해 가지고 있는 지울 수 없는 콤플렉스는 우리들에게 굉장한 부담입니다. 그래서 나는 동양고전 속에 귀중한 인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환상에 대한 청산이 없으면 단 한발 짝도 나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7. 실천적 관계론으로서의 연대(連帶)가 희망입니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노자) 연대의 이유는 객관적 조건이 대단히 열악하고 주체적 역량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연대는 실천의 방법이기에 앞서 그 자체가 삶의 내용이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노자의 철학을 제왕학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민초의 철학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모든 전쟁의 패배를 다 지고 가야 하는 민초들이 어떻게 난국을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 노자는 물의 철학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노자의 민중의 의식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노자는 물을 상선(가장 높은 善)이라고 합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합니다. 그리고 부쟁(不爭), 다투지 않습니다. 전투성을 포기하거나, 개량주의가 아닙니다. 쟁(爭)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노자의 쟁(爭)은 객관적인 조건이 미비할 때 무리한 기회주의, 모험주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가장 과학적인 것은 다투지 않아야 합니다. 주체적 역량이나 객관적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물의 철학입니다. 물을 상선(上善)이라고 보는 이유는 아래로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중인지소(衆人之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 낮은 곳에 처합니다. 그래서 가장 약한 물이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가서 가장 큰 물인 바다를 만듭니다. 그래서 노자의 물의 철학은 과학적인 실천방법과 하방연대(下方連帶 : 낮은 곳으로 내려가 함께 하는 것)를 말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바다를 만들어 내는 것이 물의 철학을 소개한 이유입니다. 물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약자, 민초들의 전략 전술입니다. 나는 우리 사회의 민주역량, 변화역량이 대단히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객관적인 조건이 대단히 열악합니다. '세계화, 세계화' 하는데 우리는 너무나 세계화 되어 있습니다. 은행에 외국자본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큰 기업의 50% 이상 주식을 외국자본, 투자가 아닌 투기성격의 자본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행은 가계대출만 합니다. 신규사업에 필요한 돈을 안 준다. 그래서 고용창출이 안 됩니다. 기업에서 만들어지는이윤도 재투자를 하지 못하게 하고 주식을 사서 불태우게 합니다. 청년실업 문제가 무슨 규제를 안 풀어서, 투자환경을 높이지 않아서 벌어진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객관적 조건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 위에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완고한 보수적인 질서가 있습니다. 최소한 1623년 인조 반정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지배계층이 바뀐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일제, 해방직후, 군정, 자유당, 군사정권, 자본을 쥐고 있는 언론까지 지금도 여전합니다. 거기에 외세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경제정책을 이끌 능력자체가 없습니다. 주체적인 역량이 없습니다. 지금 대개의 운동이 조직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양적인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양적인 역량은 평가대상이 안 됩니다. 역사적인 어떤 국면에서 양은 증폭합니다. 그 국면에서 많은 양을 이끌 조직역량이 더 중요한 요소입니다. 문제는 이 조직적 역량이 어떤 결합수준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가장 느슨한 연합형식인지, 대책위나 구성해서 모였다 헤어지는지, 전선형태로 가는지, 공고한 구심, 역량의 구심이 있는지 이런 것을 봐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민노당은 우리나라 변혁역량의 구심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이런 환경에서는 루카치의 파르티잔이 현실적인 전술이 됩니다. 중앙이 없으니까 게릴라 전술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역량은 취약합니다. 그래서 하방연대를 이야기합니다. 연대는 '실천적 관계론'의 '운동론적 개념'입니다. 대기업은 중소 하청기업과, 노동자는 농민과 이런 형태로 바다로 바다로 가는 그러한 현 단계의 정치가 필요합니다. '연대'라는 것 자체가 인문학적 가치라고 봅니다. 연대하는 것, 삶이라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연대'는 운동론이라기 보다는 삶의 철학으로 봐야 합니다. 사람입니다. 사람과의 사업이 삶입니다. 우리 삶의99%가 사람과의 사업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하느냐가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능력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휘하는 것이고, 아픔도 기쁨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옥살이가 괴롭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연대를 어떤 전략전술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우리 삶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문학적 가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8. 길의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小狐汔濟 未出中也 濡其尾 不續終也 (주역의 화수미제 괘) 도로의 속도와 효율은 자본의 논리입니다. 길의 가치를 가지자, 주역의 이야기입니다. 주역 1번부터 64번까지 순서에서, 마지막인64번이 화수미제(火水未濟)입니다. 미완성으로 64괘를 끝낸다. 괘사를 보면, 어린 여우가 강을 다 건넜는데 그만 꼬리를 적셨다. 별로이로울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처음에 이것을 볼 때는 '이게 나보고 하는 소린가? 마지막에 방심하다가 실수하거나 조금 남은 것 빨리 하려다가 실수했다는 것인가?'했습니다. 주역은 세계의 변화에 대한 범주입니다. 64개의 카테고리라는 것을 알고 나중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윤리적인 선언일 수 없다고 보고 생각하니까, 작은 실수로서 끝나지 못하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끝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영원하고 미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를 64 번째 괘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표나 완성이 없으면 전부 과정입니다. 과정의 연속입니다. 그러니 빨리 끝내고, 완성하고 달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의 마디처럼 계속 관념적인 끝을 놓고 가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 사회를 인간적으로 만들어 가려는 노력은 장구하고 강고하고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상승이 있으면 침체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이 과정을 어떻게 가야 하는가? 그래서 길의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길과 도로는 다른 말입니다. 도로는 효율성,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고속도로는 효율을 극대화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속길'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길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길은 뭔가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현장이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고, 친구를 만나고, 앞서간 사람들을 배우기도 하는 것입니다. 도로는 오로지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입니다. 길은 도로처럼 나있는 게 아닙니다. 처음 징역 끝나고 나서 쓴 붓글씨가 '여럿이 함께'였습니다. 후배가 글씨를 보더니만 방법론만 있고 목표가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목표도 이 안에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긴다. 프란시스 볼튼이라는 영국의 해부학자가 어느 시골장터에서 큰 황소 한 마리를 상으로 걸고 가장 근접한 몸무게를 적는 사람이 황소를 타가는 놀이를 했습니다. 800명이 거기 참가했는데 참가한 사람들이 쓴 숫자를 그걸 다 더해서 평균을 구했더니 1198파운드가 나왔다. 실제로 소를 달았더니 1197파운드였습니다. 여럿이 함께한 것이 압도적으로 정확했습니다. 길은 앞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가면 뒤에 생기는 것이 길입니다. 미리 이상적인 모델을 상정하고, 그 모델로부터 현실의 실천을 받아오는 거꾸로 되어있는 구조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포스트모던을 지지하지 않지만 한 가지, '건축의지를 해체한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설계도면을 걸어놓고 만들어나가는 것, 이것이 인류사의 가장 큰 과오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목표를 만들어서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없는것을 가져다 만드는 것, 계몽주의 혁명론, 변혁론의 이런 건축적 의지를 해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혜는 어디서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정보는 노력 없이 얻어와서 쌓는 것이지만, 지식은 전수하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처음에 책이 출판될 때 대단히 걱정했습니다. 선생 없이 책만 돌아다닌다는 사실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식은 선생으로부터 닦고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보는 얻어오기만 합니다. 그래서 정보의 홍수가 나타납니다. 지식은 선생으로부터 배우는 것이고, 지혜는 스스로 닦는 것입니다. 9. 성찰(省察)이 진정한 가치입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절망의 언어이지만 동시에 희망의 언어입니다. 厲之人夜半生其子 遽取火而視之 汲汲然惟恐其似己也 (장자) 자신을 돌이켜보고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자각하는 것 그것이 곧 良心입니다. 절제절명의 상황, 박(剝)괘, 뺏긴다는 의미입니다. 이 괘가 석과불식(碩果不食)을 말합니다. 그래도 이 양괘(陽卦)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희망적인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희망을 읽을 것인가? 까치밥이 바로 석과(碩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앙상한 나무입니다. 이 상황을 희망의 상황으로 바꾸는 것은 잎사귀를 다 떨어내고 냉정하게 그 사회의 알몸을, 그 사회의 구조를 직시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적인 주체성, 경제적인 자립성, 인간관계의 실상을 바로 세우는 것, 거품을 덜고 우리 사회의 구조를 직시하는 것이 첫 번째 희망 만들기의 조건입니다. 나무가 잎사귀를 떨구면 아래로 떨어집니다. 이것을 분뇨 분(糞), 근본 본(本), 분본(糞本)이라고 합니다. 나무는 그 잎사귀로 뿌리의 거름 삼습니다. 한때는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모든 변혁의 지렛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동안에 가장 강대한 정치 권력이었던 나치와 스탈린은 사회변혁을 이끌어 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정권을 잡았어도 사회변혁을 못합니다. 차기 정권 창출하는데도 부족합니다. 대통령 선거 다음 날부터, 다음 선거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어떻게 잠재력을 키워야 그 사회가 불가역적인 변화를 할 수 있는가? 영원한 반란을 이야기 하는 짜파티스타의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영원한 반란'이 대단히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명령, 권력을 부정하는 반란 그 자체가 사회를 바꿔내고 살아있게 합니다. 이것을 대책 없는 주장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할 때 박(剝)괘는 그 다음 복(復)괘가 됩니다. 돌이킬 복(復), 박괘를 뒤집은 것이 복괘입니다. 맨밑의 양괘를 우뢰(雷)라고 합니다. 땅밑에 우뢰를 묻어놓은 것, 잠재적인 가능성을 품어놓은 것입니다. 주역은 옛 사람들이 오랜 반복적 경험 사회변화의 경험에서 이끌어낸 그런 대로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이런 과정에서 석과불식을 복괘로 만드는 희망을 고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나누고 싶은 것은 한마디로, 성찰입니다. 성찰성, 대단히 좋은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장자의 그 많은 원문 중에 단 한 구절을 택했습니다. '여지인야반생기자(厲之人夜半生其子) 거취화이시지(遽取火而視之) 급급연(汲汲然) 유공기사기야(惟恐其似己也)', 불구자가 한밤중에 아기를 낳고, 급히 불을 들어 오직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 아기를 살펴봅니다. 이것을 성찰성이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가 불구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깨닫고, 우리가 물들어있는 종속적 자본주의 사회의 패권구조가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찰성이 인간성에 아주 중요한 품성으로 자리잡을 때, 양심적이라고 합니다. '목수'라고 하면 집 그림을 그릴 때 주춧돌부터 그리는 사람이 생각나고, '양심'하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습니다. 초년에 만난 친구인데, 어려운 60년대 말에 불구인 아버지를 비롯해서 병석의 여동생까지 4식구를 먹여 살리는 가장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소년가장 개념도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벌도 식구들 끼니가 안되면 집에 못 들어가고 동대문 합숙소에서 잡니다. 새벽에 서울역 부속병원에 뛰어가서, 찬물 가득 먹고 피를 뽑아 팔았습니다. 피에 물 타서 팔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안 받았다는 그 표현은 받았다는 반증입니다. 양심은 자기 성찰성입니다. 자기와 자신이 맺고 있는 성찰이 양심이라고 봅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60년대 군사정권이 시작되면서 학생서클운동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때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웠고, 사명감 있는 사람이 귀하기도 한 시절이었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그때 친구는 뭐하나 생각하곤 하다가, 나와서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고, 사명감을 가지고 있고, 조직적이고, 설득력 있는 친구들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별 볼일 없던 친구들, 사명감이 아니라, 양심에 가책 받을까봐 할 수 없이 들어온 친구들은 그 속에 계속 있었습니다. 김수영씨의 풀처럼 계속 있었습니다. 나는 개인의 능력이나 개인의 논리가 성찰과 양심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관계론의 결론입니다. 알튀세르가 그랬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에 높은 곳에 눈 속에 사는 토끼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그 토끼가 평지에 사는 코끼리 보다 크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네팔에서는 산을 높이로 부르는 법이 없습니다. 저는 개인의 능력이나 존재성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맺고 있는 인간적인 관계가 그 사람의 삶이고 행복입니다. 그 긴 과정을 생각하면서 후배들에게 말합니다. 제일 오래 할 자신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완성이 없는 일은 오래하게 되지 않습니까? 라틴 유럽의 완고한 보수적인 구조 속에서 고뇌한 그람시가 헤게모니와 진실을 갈급했듯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열악하고 취약한 환경 속에서 뭔가 인간적인 가치를 심어나가려는 노력, 그런 사람들을 소중하게 지키는 진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눔문화는 훌륭한 진지, 따뜻한 가마, 좋은 도자기를 만들어내는가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위의 내용은 신영복 교수님이 나눔문화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며, 발표자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전제할 수 없습니다. www.nanum.com | ||||||
제공 : 나눔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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