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평화주의자로서의 본회퍼
디트리히 본회퍼는 기독교 평화운동의 선구자이다.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평화를 이 사회속에 실천하고자 투쟁하다가 순교하였다. 미국의 라인홀드 니버는 본회퍼를 순교자라 칭하고 “그의 삶은 현대 사도행전에 속한다”고 말한바 있다. 본회퍼가 남긴 공헌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정의와 평화를 위한 기독교인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한 것에 있다.
2006년은 본회퍼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며, 동시에 인도의 간디가 비폭력 불복종운동을 시작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본회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제 본회퍼 학회는 2월 3-4일까지 본회퍼 탄생지 브레슬라우(Breslau)에서 국제 본회퍼 학술대회를 개최하였고 각국에서는 본회퍼 탄생 100주년 기념 각종 행사가 열리고 있다.
본회퍼는 1904년 2월 4일 브레슬라우에서 신경의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1945년 4월 9일 39세에 플로센뷔르크에서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한 혐의로 교수형에 처형되었다.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그의 삶과 신학의 주제이다. 본회퍼는 그 질문에 대하여 고백하고 그 고백한 것을 증언하다가 나치정권에 의해서 처형되었다. 오늘 우리는 본회퍼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평화를 만드는자(peacemaker)로서 평화의 사도가 되라고 말씀한다. 평화운동의 선구자로서 본회퍼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며 또 누구이며 그가 말한 기독교 평화론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평화는 인류의 영원한 염원이다. 오늘 세계 각처에서는 전쟁과 테러, 기근과 경제적 불평등, 생태학적 위기, 인종과 종교적 갈등 속에 처해져있다. 신의 정의와 자유와 민주주의 이름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정의롭지 못한 전쟁, 이스라엘의 레바논 폭격 등 세계각처는 평화를 갈망하지만 평화롭지 못한 것이 세계의 현실이다.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동북아에도 북한핵문제를 비롯한 중국의 팽창주의, 일본의 신군국주의가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기독교는 정의와 평화를 위한 사회적 책무에는 소홀히 하고 오직 기복주의 경향으로 나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회퍼는 “오늘 여기에서 우리들에게 구체적으로 정의와 평화를 위한 기독교의 과제를 위해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무슨 의미가 있는가”
본회퍼 평화사상의 발단과 전개
본회퍼가 평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30-31년 미국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연구한 기간동안 프랑스에서 온 평화연구자 쟝 라세르(Jean Lasser)로부터 기독교 평화주의에 대하여 소개를 받으면서였다. 그 이전까지 독일의 루터교 사람들에게는 들어보지 못한 주제였다. 본회퍼는 쟝 라세르를 통하여 산상설교를 통한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본회퍼는 예수의 산성설교 중에서 보복금지, 비폭력, 원수사랑 등의 정신으로부터 기독교 평화의 참된 정신을 배우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조국을 위해서 무기를 드는 것은 국민의 의무이자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본회퍼는 이때 기독교 평화는 민족적 배경을 초월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본회퍼는 평화와 정의에 관한 예수의 말씀 속에서 기독교 평화의 본질을 발견하였다. 그 이후의 삶은 이때 깨달은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또 한사람 본회퍼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인도의 간디이다. 간디를 통하여 비폭력 방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본회퍼는 간디의 “폭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저항의 형식”에 감명받았다. 본회퍼는 앤드류스의 소개로 간디와 서신교환을 하였고 간디의 초청으로 인도를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고백교회에서 세운 목사연수소인 핑켄발데 신학교의 책임자로 가게 되어 그 방문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본회퍼는 간디로부터 히틀러에 대항하는 현실적 저항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본회퍼는 간디의 비폭력 방법을 높이 평가하였고 평화 설교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동쪽에 있는 이교도로부터 수치를 당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이때 이교도는 간디를 지칭한 말이다.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실천이 가장 일찍 이교도인 간디에 의해서 분명하게 드러난 것에 대한 수치를 말한다.
본회퍼의 평화사상의 전개는 1930년대 두 차례의 강연과 설교 그리고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와 『윤리』, 『저항과 복종』(옥중서간)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번째 강연은 1932년 7월 체코슬로바키아 체르노호르스케 쿠펠레에서 개최된 청년 평화회의에서 “세계연맹사업의 신학적 근거”라는 제목으로 행한 강연이다. 두번째 강연은 1934년 8월 24-29일 덴마크 파뇌에서 개최된 생활과 사업(Life and Work)의 청년 협의회 때 한 강연과 8월 28일 아침 경건회 때 행한 평화설교(Friedenspredigt)라고 일컬어지는 설교가 남아있다. 파뇌 강연의 원고는 남아있지 않고 7개항의 테제만 남아있다. 이날 행한 설교는 에큐메니컬 평화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설교에서 본회퍼는 평화를 위하여 큰 규모의 에큐메니컬 공의회(okumenisches Konzil)를 개최할 것을 제안하였다. 세계는 무기를 가지고 노려보고 있고, 사람들은 무섭게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고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하였다. 그는 절박하고 시급한 상황을 “시간이 급박하다(Die Stunde eilt!)고 외쳤다. 본회퍼는 “내일아침 전쟁의 나팔소리가 들릴 수 있다”고 하면서 평화를 위한 세계교회의 관심을 촉구하며 에큐메니컬 공의회를 열 것을 제안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본회퍼의 예감은 현실로 되었다. 7개월 후 히틀러는 독일에서 국민 개병의무를 선포하였고 5년후 1939년 9월1일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세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본회퍼의 이 제안은 56년이 지나서 1990년 서울에서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질서의 보전”의 대회로 실현되었다.
본회퍼 평화사상
첫째, 본회퍼의 평화사상은 성서에 기반을 둔 기독교 평화사상이다. 기독론적이며 교회론적인 기독교 평화사상이다. 특히 예수님의 산상설교에 기초를 두고 있다. 본회퍼의 평화사상은 세속적 평화주의와는 다른 복음적 평화사상이다. 당시에 세속적 평화주의에서는 정치적 계약이나 제도 같은 정치적 방법, 국제자본의 투자 등의 경제적 수단, 군비확장 같은 군사적 방법을 통하여 진정한 평화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본회퍼는 이런 방법을 안보(Sicherheit)라는 용어로 사용하였는데 이것을 가지고는 평화가 실현되지 않음을 말하였다. 본회퍼는 안보의 길에는 평화의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안보는 평화의 반대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안보는 불신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안보는 자기를 지키려는 것을 뜻하며 평화는 신앙과 순종안에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맡기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1933년 10월에 히틀러 나치정권은 국제연맹을 탈퇴하였고 재군비를 착수하였다. 본회퍼는 여기에 간접적으로 히틀러의 재군비착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본회퍼는 평화는 민족중심적인 정치·경제적 방법이 아니라 신학적·신앙적 방법으로 이룰 것을 촉구하였다. 본회퍼는 여기에서 평화는 무기와 군비확장 안전보장의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도와 비폭력적 방법을 통해서 이룰 것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본회퍼는 당시에 기독교계의 일부의 경향인 사회복음적 전통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실현할 수 있다는 세속적 평화주의를 거부하였다.
둘째, 본회퍼는 평화의 개념을 진리와 정의가 실천되는 것으로 보았다. 본회퍼는 기독교적 평화를 정의로운 평화로 본 것이다.
현대평화연구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평화의 개념을 소극적 평화의 개념과 적극적 평화의 개념으로 나누어 정의(定義)한다. 소극적 개념에서는 평화란 전쟁이 없는 것이다. 공공연한 집단적 폭력이 없는 상태 평화는 폭력, 궁핍, 부자유, 불안이 없는 상태로 정의된다. 적극적 평화의 개념에서는 평화는 정의(正義)의 현존이다. 평화는 사회정의가 행해지고 있는 상태, 삶을 위해 능력과 수단이 균등하게 분배되는 상태로 정의된다. 기독교 평화개념은 소극적 개념과 적극적 평화개념을 연결시키면서 정의에 강조를 통하여 적극적 개념을 우선시킨다. 따라서 기독교적 평화는 정의로운 평화로 규정된다. 본회퍼는 이미 평화의 개념을 정의로운 평화로 본 것이다. 성서에도 “정의와 평화가 서로 입을 맞춘다.”(시 85:10) 정의는 평화를 가져온다.(사 32:17)고 함으로써 정의와 평화를 밀접하게 연관시킨다. 본회퍼는 “진리와 정의가 유린되는 곳에서는 평화가 성립될 수 없다”고 하였다.
셋째, 본회퍼의 평화주의는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다. 본회퍼는 평화사업의 적(敵)을 전쟁이라고 정의하고 전쟁의 수단을 가지고 인류의 평화적 복지를 가져 올수 없다고 하였다. 본회퍼는 1934년 파뇌에서 평화협의회가 열리고 있는 동안 바닷가에서 휴식할 때 “목사님, 전쟁이 일어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고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허락하셔서 무기를 손에 잡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한 일이 있다. 본회퍼는 히틀러 독재의 폭정에 히틀러 집권 첫날부터 저항하였다. 개신교 신학자로 거의 유일하게 1933년 초 유대인들의 박해를 교회의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현대의 평화론에는 세 가지 형식이 있다. 첫째, 성전론(Holy War Theory) 둘째, 평화주의(Pacifism) 셋째, 정당한 전쟁(Just War Theory) 그 중에서 본회퍼의 입장은 평화주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넷째, 본회퍼는 평화를 하나님의 계명과 그리스도의 현존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기독교인은 평화실천을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며 계명에 순종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성육신하심으로 주어진 계명이다. 산상설교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말하듯이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다. 평화는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계명이다. 다섯째, 본회퍼의 평화론은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에 근거한 제자직의 평화론이다. 십자가 신학은 본회퍼 평화신학에 신학적 근거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십자가는 고난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길은 고난의 길이다. 평화를 실현하는 길은 고난의 길이요 고난 받는 제자의 길이다. 제자직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뒤따르므로 성립된다. 본회퍼는 제자직의 부름은 예수의 수난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다고 말했다. 여섯째, 본회퍼의 평화사상은 그의 대리사상과 책임윤리에 근거한다. 대리(Stellvertretung)와 책임(Verantwortung)은 본회퍼 신학사상의 핵심개념이면서 평화사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를 타자를 위한 존재로 교회를 타자를 위한 교회라고 하였다. 예수가 구세주가 된 것도 대리적 행위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 앞에서 이웃을 위한 책임적 행위이다. 평화의 실천도 책임적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본회퍼는 1934년 파뇌의 “평화 설교”에서는 평화를 하나님의 계명과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1937년대 후반 『나를따르라』에서는 비폭력 저항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1940년대 『윤리』, 『저항과 복종』(옥중서간) 등에서 그의 사상적인 발전을 찾아 볼 수 있다. 『윤리』에서는 계명의 구체성과 상황성, 현실, 책임의 개념과 연관되어 파악될 수 있다. 1938년 이후 독일에서는 모든 독일인의 이름으로 자행된 살인적인 유대인 배척주의, 군국주의,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정치적 상황이 전개되었다. 본회퍼는 더 이상 원칙적 평화주의를 고수할 수 없었고 상황에 의존하는 상황적 평화주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평화주의적 준칙(pazifistische Maxime)은 더 이상 비폭력이나 무저항일 수 없었다. 하나님의 계명인 평화는 구체적으로 현실에 적합하게 정치적·책임적 모습으로 실현된다. 평화는 “오늘” “여기에서” “우리들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현실이 이 세계의 현실로 들어온” 그 그리스도의 현실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본회퍼의 “직접적·정치적 행동”은 히틀러 암살계획에까지 나아갔다. 이 저항은 기독교인의 신앙의 결단에서 오는 정치적 책임의 행위였다. 구체적 상황에서 내린 그의 결단은 평화의 실천을 위한 이웃과 오고 있는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적 행위였다.
1930년대 초에 평화주의를 주장하였던 본회퍼가 1940년대 초에 히틀러 암살단에 가담한 것은 평화주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의 계명에 순종한 것을 의미한다. 본회퍼는 일찍이 말하였다.
계명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명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지금 우리로부터 아주 특별한 어떤 행동을 요구한다. 그리고 교회는 이것을 회중에게 전파하여야 한다.
본회퍼는 “히틀러는 전쟁을 의미한다.”고 말한 바 있다. 평화를 위한 기독교 교회의 일이 전쟁의 종식과 극복을 뜻한다면, 본회퍼의 결단의 행위는 구체적이고 신적인 계명에 순종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회퍼 신학과 평화사상은 그의 삶 속에서 전기 후기의 단절이 아니라 “일치 속의 다양한 모습의 결단”이었다. 본회퍼는 교회의정치적 책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말에 극명하게 잘 표현되었다. 교회와 기독교인은 “바퀴 아래 깔린 희생자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것뿐 아니라 바퀴 자체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피 흘리는 일을 중지시키기 위하여 “미친 운전수”인 히틀러를 제거하려 한 것이다. 따라서 본회퍼가 히틀러의 암살계획에 가담한 행위는 저항권과 그의 책임윤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본회퍼 기독교평화론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 교회의 평화를 위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기독교 평화는 정의로운 평화이며 본회퍼는 평화에 헌신하는 것이 기독자의 참된 모습으로 보았다. 오늘 교회는 정의와 평화를 실천해야 될 것이다. 본회퍼가 평화는 정의와 진리가 확립되는 곳에 건설된다고 하였듯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평화를 실현하는 길이다. 평화는 정의의 실현을 통하여 구체화된다.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오늘 세계가 당면한 테러와 전쟁의 극복문제는 빈곤의 문제와 사회정의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안 된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이 노벨평화상 수상연설에서 한 말은 이 시대 평화의 과제를 위해 깊이 새겨 볼 말이다. “인류평화는 빈곤퇴치, 분쟁예방, 민주주의 발전 없이는 이룰 수가 없습니다.” 평화 실현의 첫걸음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고, 미국을 위시한 가진 자가 나눔을 실천하여 빈부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오늘의 테러의 문제는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여야 극복될 수 있다. 북한의 식량난을 인도적 견지에서라도 도와야 한다.
둘째, 전쟁을 반대하고 비폭력 방법으로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많은 희생이 뒤따를 수 있고 비폭력의 길은 고통과 희생과 십자가의 길이다.
오늘 세계는 보복전쟁 속에 있다. 테러와 폭력의 근절은 보복전쟁을 통해서 해결 될 수 없다. 폭력과 전쟁은 또 다른 폭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보복은 보복의 악순환을 가져오고 피는 피를 부른다. 평화에 이르는 길은 무력이나 보복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정의로운 전쟁이란 있을 수 없다. 평화의 길은 비폭력의 길이다. 비폭력의 길은 고통과 희생과 십자가의 길이다. 비폭력방법은 위대하지만 그 길을 사는 사람은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비폭력적 방법은 약한 것 같으나 강한 방법이며 지는 것 같으나 이기는 길이다. 폭력적 방법은 일시적으로는 이기는 것 같으나 결국에는 지는 방법이다. 폭력은 어두움의 세력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요, 비폭력은 빛의 자녀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폭력은 생존자에게는 비참함을, 파괴자에는 야수성을 남겨주고 마침내 그 자체를 파괴한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류는 전쟁을 종식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종식시킬 것입니다.”
테러의 극복 방법은 테러로서는 해결할 수 없고 평화는 폭력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평화 학자 요한 갈퉁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주장한바 있다. 본회퍼가 평화는 위대한 모험이라고 하였듯이 평화의 길은 험한 길이다.
셋째, 오늘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문제는 동아시아 문제인 동시에 세계평화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한·중·일에서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문제는 동아시아인의 생존의 문제인 동시에 세계평화와 직결된 일이기도 하다. 한·중·일에서는 북한 핵문제, 한·일간의 독도문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나타난 신군국주의 기도(企圖), 중국의 고구려사를 중국역사로 편입시키고자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등이 한·중·일 삼국간에 현안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동아시아가 함께 공존하려고 하면 동북아의 역사문제를 바로 잡고 비핵, 평화를 실현해야 한다.
동아시아 3국은 평화와 공존을 위해 본회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겠는가? 역사적 잘못을 바르게 인식하고 참회하여야 한다. 본회퍼가 죄의 인식(Schulderkenntnis)과 죄의 고백(Schudbekenntnis)을 강조하였듯이 과거의 역사적 과오를 바르게 인식하고 철저하게 반성하고 참회하여야 한다. 잘못을 참회하려면 먼저 잘못을 바르게 인식하고 깨달아야 반성과 참회를 바로 할 수 있다. 지나간 역사에 대한 정리가 되어야 평화공존이 가능하다. 지나간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동아시아의 선린과 평화공존을 위한 선결 사항이다.
일본인들은 그들이 행한 침략과 학살에 대하여 반성과 사죄와 참회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들이 행한 잘못을 은폐·왜곡·미화시키고 있다. 그들은 역사적 과오에 대하여 형식적인 사과의 말 몇 마디만 하고, 잊을만하면 또 다시 신 군국주의와 패권주의를 꾀하는 망언을 하고, 한국영토인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주장하고, 후손을 교육시키는 역사 교과서마저 왜곡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중국의 동북공정의 결과물로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을 시킨 논문들이 발표 되고, 마라도 남방에 있는 이어도를 중국이 한국영토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보도가 나온다. 일본은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억지 주장을 하고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일본에 신군국주의 건설의 구실로 삼고 있다. 이러한 때 본회퍼로부터 평화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배워야 할 것이다. 세계는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는 세계화의 빈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대 80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강대국을 위한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반도에는 현재 분단된 상태로 휴전협정이 발효되는 상태다. 한반도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마침내는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때 한국교회와 기독교인은 평화수행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길로 이해를 하여야 할 것이다.
인류의 분쟁의 원인이 이데올로기 보다 인종과 종교 갈등에서 일어나고 있다. 인류 평화를 위해 종교간의 협력을 하면서 평화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본회퍼가 평화를 하나의 위대한 모험이라고 말한 것처럼 오늘 우리는 평화를 예수님의 정신에서 고난과 죽음을 각오하고 평화를 실천할 때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 질 것이다.
유석성 l 교수는 독일 튀빙엔대학에서 위르겐 몰트만 교수 지도로 본회퍼에 관한 논문으로 신학박사(Dr. Theol.)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이며 한국본회퍼학회 회장으로 있다. 저서로 『사형과 인간의 존엄』, 『본회퍼 신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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