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사회

한-미 FTA 6개의 거짓말(한겨레21 070207)

by 마리산인1324 2007. 2. 9.

 

<한겨레21>  2007년02월07일 제647호

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7/02/021003000200702070647023.html

 

 

 

한-미 FTA 6개의 거짓말

 

 

2월11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리는 7차협상이 마지막이 될 것이란 관측 유력…쇠고기·약값·개성공단·무역구제 등에 대한 정부의 어이없는 장담과 약속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워싱턴에서 워싱턴으로….

 


△ 연합/ EPA/ 전헌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해 2월 로버트 포트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 선언을 한 곳은 워싱턴의 미국 의회였다. 두 나라의 최고책임자가 양쪽 수도에서 동시에 개시 선언을 하는 국제 협상의 관례를 깬 일은 한-미 FTA 협상의 성격과 무관했던 것일까?

 

협상 개시 선언 4개월 만인 지난해 6월 1차 협상을 워싱턴에서 시작한 뒤 두 나라를 오가며 6차까지 협상은 진행됐다. 그리고 2월11~14일로 예정돼 있는 7차 협상의 무대는 다시 워싱턴이다. 이번 7차 협상이 마지막 협상이 될 것이란 관측의 근거로는 미국의 무역촉진법(TPA) 시한 만료 90일 전인 3월을 한 달 앞두고 있다는 점 외에 협상의 장소 문제도 꼽힌다. 미국은 이점을 살릴 수 있는 홈그라운드에서 국제 협상을 마무리하는 걸 관례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다.

 

“우리 경제의 체질이 미국 모델, 곧 선진국형으로 바뀌는 것”이라는 찬성 쪽이나 “경제 통합을 넘어 경제 식민지로 가는 길”이라는 반대 쪽 모두에게 공통되는 한 가지는 ‘한-미 FTA가 우리 경제·사회의 발전 모델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인식이다. 한-미 FTA 협상이 사실상 마무리되는 올해 2월은 한국 사회의 앞날에 중대한 갈림길인 셈이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한-미 FTA는 ‘천사’도 ‘악마’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모습을 띠고 있을 테지만, 애매하고 불투명한 중간선으로만 여기기엔 6차까지 이뤄진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쟁점들에 얽힌 의혹이 너무나 자주 뚜렷하게 불거졌다. 쌀, 쇠고기, 의약품, 개성공단, 무역구제 등 뜨거운 이슈로 부각된 사안들에서 발견되는 거짓말의 흔적과 불가사의한 양상을 FTA 반대 진영의 흠집내기로만 볼 수 있을까?

 

거짓말①

쇠고기 수입과 FTA는 무관하다?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뜨거운 이슈로 부각된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 정부는 쇠고기 수입은 FTA와 무관한 사안이라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대통령 직속 한-미FTA체결지원회 홈페이지에서 각 부처의 해명 자료를 쏟아내는 ‘오해와 진실’ 코너에서도 이는 쉽게 확인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는 국민의 건강보호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으며, FTA 협상이 본격화하기 전부터 논의돼온 ‘별개의 사안’이다.”

 


△ 우리 협상팀은 “협상 시한에 쫓겨 내용을 훼손하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FTA 협상은 막판 빅딜로 치닫고 있다. 지난 1월15일 6차 협상에서 김종훈 수석대표와 커틀러 미국 쪽 수석대표가 악수하고 있다.(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쇠고기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 사이의 분쟁은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해묵은 사안이니 정부의 설명은 일견 맞는 말이다. 더욱이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된 뒤 한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조처를 내린 것은 협상 개시 선언(2006년 2월) 훨씬 전인 2003년 12월이었다. 그렇다면 쇠고기 논란은 FTA 반대 진영의 괜한 딴죽걸기에서 비롯된 것일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FTA 협상 전 우리 쪽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이른바 ‘4대 선결 조건’의 하나였다. 정부 스스로 별개라고 했고, 또 별개여야 할 사안이 일찌감치 긴밀하게 엮여 있었던 것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4대 선결 조건이란 건 없다”고 강변했지만, 며칠 뒤인 지난해 7월21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4대 조건이란 표현이 정부 공문서에도 있는 만큼 그런 표현을 정부 차원에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4대 선결 조건에 따라 수입 재개된 1~3차분 미국산 쇠고기에서 모두 뼛조각이 검출돼 전량 반송 처리되자 (미국 정부가 아닌!) 외교통상부나 재정경제부에서 “농림부가 융통성 없이 행동해 한-미 FTA 협상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작은 뼛조각을 이유로 수입 물량 전부를 돌려보낸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김성진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는 공개 발언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두 사안의 연결고리가 명백함에도 정부 쪽에선 ‘별개’라는 점을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입 위생 조건에서 후퇴를 하더라도 FTA 협상 성적표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방화벽’을 치려는 것일까?

 

거짓말②

약값 적정화 방안과도 상관없다?

 

약값 적정화 방안도 미국산 쇠고기 사안과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FTA 협상 이전(2001년)부터 한-미 사이에 갈등을 빚고 있던 분야라는 점, 또 정부 쪽에서 FTA와 별개 사안이라고 주장하는 점에서 그렇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5월3일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발표한 뒤 “한-미 FTA는 약값, 의료비 상승과 무관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복지부 맹아무개 서기관은 한 토론회에서 “5·3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3년 전부터 준비해온 사안으로 FTA와 별개임을 강조한 말”이라고 보충 설명했다. 정말 그런가?

 

약값 적정화 방안과 FTA가 별개라는 주장은 간단한 사실 하나로 쉽게 무너진다. 한-미 FTA 협상 대표단의 17개 분과 2개 작업반 중 하나로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이 들어 있다. 더욱이 2차 협상 때 의약품 분야는 최대 쟁점으로 부각된 바 있으며, 미국 쪽은 우리 정부에 약값 적정화 방안의 철회를 요구했다. 미국 신약이 차별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쪽 주장의 타당성은 제쳐두고라도 FTA와 약값 적정화 방안이 무관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의약품 가격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안과 함께 한-미 FTA 4대 선결 조건의 하나였다. 미국은 약값 재평가 제도 개정안의 취소를 요구했고, 한국 쪽은 2005년 10월 말 약값 재평가 제도 개정을 중단했다. 미국 쪽에서 약값 적정화 방안을 취소할 것을 요구한 데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던 셈이다. 협상 과정에서 우리 쪽이 한-미 FTA 합의 사항을 약값 적정화 방안에 반영해주기로 약속한 것 또한 이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거짓말③

개성공단 인정은 포기할 수 없다?

 

우리 쪽에서 공세를 취했던 분야에선 어땠을까? 한-미 FTA 협상 개시 때 우리 정부가 가시적 성과를 내보이겠다고 공언한 대표적인 것이 무역구제와 섬유,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다. 1, 2차 협상 때까지 정부 협상팀은 개성공단 생산 물품에 대해 역외가공 특례에 따른 원산지 인정을 요구했다. 우리 쪽은 다른 역외가공 사례까지 들어가며 설득했지만,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욱이 3차 협상을 앞두고는 진동수 재경부 차관이 “개성공단 한국산 인정 여부는 한-미 FTA 협상 테이블이 아닌 별도의 논의가 바람직하다”며 FTA와 별개로 추진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또 정세균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은 “개성공단을 공짜로 포기할 수 없다”며 다른 분야와 주고받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부는 “개성공단은 여전히 관심사”라고 하지만, 북한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지는 약화됐다. 정부의 5, 6차 협상 결과 브리핑 자료를 보면 상품무역분과에서 아예 ‘개성공단’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3차 협상 이후 개성공단에 대한 공격적인 쟁점화를 사실상 포기했고, 개성공단 물품의 한국산 인정이 물 건너갔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심지어 개성공단 문제를 한-미 FTA에 대한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카드로 꺼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 협상팀이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를 최종 포기한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6차 협상에서 상품 분야의 우리 쪽 최대 관심 품목으로 개성공단은 뺀 채 자동차 관세 조기 철폐를 거론했다는 점은 유의해볼 대목이다. 참여연대 강수경 간사는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이 관철될 수 없는 것이라면 사실대로 밝히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정부는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짓말④

무역구제 분야 요구는 반드시 관철시킨다?

 

‘무역구제 분야는 반드시 관철시킨다’는 공언 역시 비슷한 운명을 맞고 있다. 지난해 5월에 내놓은 우리 쪽 한-미 FTA 협정문 초안은 “미국의 반덤핑 발동을 억제하기 위해 요건을 강화하는 특례조항을 ‘다수’ 포함시키겠다”고 밝혀놓았다. 무역구제 분야를 미국 쪽에 공세적으로 요구할 핵심 쟁점으로 삼은 것이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무역구제 요구는 계속 강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 한-미 FTA 협상이 거듭될수록 무역구제 등에서 치밀한 전략과 정확한 판단 없이 졸속으로 강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1월15일 FTA 협상장인 신라호텔 앞에서 벌어진 협상 중단 촉구 촛불문화제.(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우리 협상팀은 무역구제와 관련해 제3차 협상에서 10개 항목, 4차 협상에서 15개 쟁점 항목을 제시했다. 그러다가 5차 협상 때는 5개 항목(△산업피해 판정 때 국가별 비합산 △반덤핑 자료조사 때 이용 가능한 자료로만 판정 △반덤핑 혐의 때 가격 약속 및 수량 제한 등)으로 요구 내용을 대폭 축소했다. 무역구제 분야의 핵심 쟁점인 △제로잉(덤핑 조사의 한 방법) 금지 △종료 재심(반덤핑 관세 부과 기한의 자동 종료 때 예외 사유를 악용해 반덤핑 조처를 연장하는) 남용 금지 등은 요구안에서 빠졌다. “협상 시한에 쫓겨 내용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애초에 내놓았던 핵심 내용 중에서 5대 요구항에 포함된 건 국가별 비합산 하나뿐이다. 2002년 산자부의 기업체 설문을 보면, 우리 기업들은 무역구제 분야에서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사항으로 제로잉 금지, 종료 재심 금지 등을 꼽았던 것과 거리가 먼 결과다. 핵심 내용이 빠진 만큼 5가지를 다 얻어내더라도 수출업계의 실익은 별로 없게 된다.

 

5차 협상에서 우리 쪽은 이처럼 무역구제 요구안을 대폭 줄이면서 ‘모두 수용하든지, 협상을 그만두든지 하라’(Take them all, or leave)고 최후통첩을 던졌으나, 미국 쪽은 아랑곳 않고 하나도 수용하지 않겠다며 이마저 묵살했다. 오히려 미국 쪽은 “무역구제 분야의 법 개정은 있을 수 없고, 미 의회에 법령 개정이 필요한 협상안을 가져갈 경우 협정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한-미 FTA 협상의 가장 큰 성과물로 내세울 예정이었던 무역구제마저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울산과학대 백일 교수(유통경영학)는 “정부는 애초에 한-미 FTA를 체결하면 우리 상품이 미국에 엄청나게 팔릴 것이라면서 수출 제조업에서 큰 이득을 볼 것이라고 선전했다. 무역구제는 반덩핑 관세 등 비관세 장벽이 핵심인데, 아무리 상대편이 있는 협상이라지만 미국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쳤다는 이유로 이런 핵심 내용을 뺀다면 누가 협상팀을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거짓말⑤

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거짓말 퍼레이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쌀 문제다. 우리 협상팀은 협상 초기부터 “쌀은 예외로, FTA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경제부처인 재경부로 넘어오면 좀 바뀐다. 재경부는 본격적인 협상을 앞둔 2006년 4월 ‘한-미 FTA Q&A’에서 “미국이 예외 없는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어 쉬운 과제는 아니나 쌀은 마지막까지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쌀만은 지키겠다”는 말은 곧 쌀이 협상 대상(개방 예외품목으로 분류)에 포함된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미국은 2차 협상 때부터 쌀 추가 개방을 요구하고 나섰다. 웬디 커틀러 미국 쪽 수석대표는 5차 협상에서 “쌀 시장도 개방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쌀에 대한 논의도 어느 시점에서는 개시될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현행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한국이 FTA를 이유로 미국에만 쌀 시장을 개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은 2005년 WTO 쌀 재협상을 통해 관세화를 2014년까지 유예하는 조건으로 미국에 의무수입물량을 할당한 바 있고, 2015년부터 관세화로 개방되면 관세율 400%가 적용된다. 그래서 쌀만은 지키겠다는 건 정부가 나중에 협상을 잘했다고 홍보하려고 일부러 내세운 여론 호도용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특히 “쌀만은 막겠다는 것이, 개방은 막더라도 대신 의무수입물량을 늘려주거나 관세화 개방 때 관세율을 낮춰주는 식의 양보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쌀만은 지킨다는 명분으로 다른 분야에서 빅딜이 이뤄질 공산도 커지고 있다.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이 농산물과 섬유(원산지 기준 완화와 관세 조기 철폐)의 빅딜설이다. 건국대 윤병선 교수(경제학)는 “쌀을 협상 대상으로 삼은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쌀은 2005년 쌀 재협상 때 이미 논의돼 개방 일정이 확정돼 있다. 쌀 개방을 막는다는 이유로 섬유의 원산지 완화 요구를 포기한다면 ‘쌀은 지키겠다’는 약속은 헛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한-미 FTA 협상은 이제 주고받기식의 막판 고위급 빅딜만을 남겨놓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해 7월 한-미 FTA 2차 협상을 앞두고 한덕수 당시 경제부총리(가운데)를 비롯한 관계부처 장관들이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거짓말⑥

투자자-국가소송제는 아무 문제 없다?

 

한-미 FTA 협상에 얽힌 쟁점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격렬한 논란을 낳고 있는 으뜸 사안으로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가 꼽힌다. 이는 투자와 관련한 협정의 준수 여부에 대해 (미국 정부가 아닌) 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기구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처음 도입된 장치다. 개인(투자자)에게 상대국 정부를 국제법정 소송으로 끌고 갈 수 있도록 자격을 준 것은 유엔 인권헌장을 빼곤 유일하다.

 

1995년 멕시코 정부가 미국 기업 메탈클래드의 독극성 폐기물 처리장 건립계획에 제동을 걸고, 이에 메탈클래드가 중재법정에 제소해 승소를 한 ‘메탈클래드 사건’이 ISD를 설명하는 예로 자주 거론된다. FTA 논란에서 사법권 침해 시비가 일어나는 게 이 때문이다. 또 미국과 맺는 FTA가 관세를 낮춰 무역을 촉진하는 성격을 넘어 법과 제도, 관행의 변화를 촉발한다는 주장도 주로 ISD에서 비롯된다.

 

<한겨레>가 8개 정부 부처 담당자와 9명의 민간 전문가로 짜인 ‘ISD 점검 태스크포스’ 회의록을 인용해 2월1일치에 보도한 내용을 보면, ISD에 대해 법무·건설교통·재경부 등 정부 쪽에서 위헌 가능성을 지적했고, 민간 전문가들도 1명을 빼고는 모두 문제가 많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돼 있다. “소송에서 국가가 패소해 투자자들에게 보상해줄 경우 헌법에 따른 재산권 보상 범위를 넘어서고, 따라서 내국민 차별로 헌법의 평등권을 해친다”(한 변호사)는 등의 이유였다. 법무부와 함께 건교부 쪽에선 “(미국이) 보완책을 제시하기 전에는 ISD는 완전 삭제를 주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태스크포스는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모두 다섯 차례 회의를 열어 투자자에게 국가 제소권을 인정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집중 논의해 대통령 주재 대외경제장관회의에 보고했다.

 

실제 협상에선 어땠을까? 당시 ISD 점검 태스크포스 회의록에 나오는 외교부 관계자의 발언에서도 보여지듯, 우리 정부는 2006년 4월 미국 쪽에 보낸 협상 초안에 ISD를 수용한다고 밝히고 있었다. 심지어 1~3차 협상 때(지난해 9월)까지도 ISD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다가 언론 보도 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4차 협상 때부터 “간접수용(공적 규제로 투자자 재산권을 간접적으로 침해하는 것) 예외조항의 예시에 토지 관리·이용, 일반 조세, 반독점 정책을 집어넣자”는 따위의 주장을 폈지만, 기차는 떠난 뒤였다. 무지의 소치였을까, 장막 속의 다른 셈법이 있었던 것일까? 고 정운영 선생의 책 <시지프의 언어>에는 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해학 한 토막이 소개돼 있다.

 

두 친구가 함께 술을 담그기로 하고, 그에 필요한 각자의 일과 몫에 대해 의논했다. “나는 물을 댈 테니 자네는 쌀과 누룩을 내기로 하세.” “그러면 나중에 어떻게 가르지?” “그야 물을 댄 내가 술을 차지하고, 건지를 낸 자네는 지게미를 가져야지.” “…?”

 

쌀과 누룩을 내고도 지게미만 갖는 협상이 될지 정당한 우리 몫의 술을 차지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게미만 갖고도 술을 차지했다고 우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민감한 시기라 인터뷰 안한다”

찬성 광고물만 쏟아내며 언론에 입장 밝히지 않는 체결 지원위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한겨레21>이 ‘한-미 FTA체결지원위원회’(이하 지원위)의 한덕수 위원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1월24일이었다. 지원위 쪽은 서면이나 이메일로 인터뷰 희망 날짜와 주제를 보내달라고 했다.

 

이에 <한겨레21>은 이메일로 1월29~31일 중 아무 때나 가능함을 알리고 인터뷰 주제를 간략하게 덧붙였다. 주요한 질의사항은 △협상은 어디까지 와 있고 앞으로 어떤 절차와 일정에 따라 마무리되는 것인지 △아직도 반대 여론이 50% 안팎에 이르는 것을 정부 쪽에선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높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협상안을 타결짓고 국회 비준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지 △한-미 FTA를 꼭 해야 하는 이유 등이었다.

 

지원위 쪽에 인터뷰를 요청한 건 실제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협상단보다 언론 노출에 부담을 덜 느낄 듯해서였다. 지원위는 지난해 8월 설치된 대통령 산하 조직이다.

 

인터뷰 요청 뒤 며칠이 지나도록 지원위 쪽의 답변이 없어 담당자인 이아무개 전문관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뜻밖에도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는 대답이 왔다. 민감한 시기여서 한 위원장이 언론에 나서는 걸 꺼린다는 설명이었다. <한겨레21>은 다른 사람이라도 나서줄 것을 지원위 쪽에 요청했다. 그러자 지원위는 홍영표 단장에게 알아보겠다고 답변했다가 며칠 뒤 홍 단장도 인터뷰에 나설 수 없다고 밝혔다.

 

지원위 설치를 규정한 대통령령 제19638호는 지원위의 주요 기능으로 △한-미 FTA 체결과 관련된 국민 의견 수렴 △관련 정보의 대국민 제공 △사회적 갈등의 조정 등을 들고 있다. 지원위는 이런 자신의 존재 근거를 잊은 것인가?

 

지원위는 대신 국민 세금으로 만들었을 게 분명한 한-미 FTA 홍보 광고물만 오늘도 무성하게 쏟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