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2752
한국사 內 '만주' 소외 유감 | |||||||||
학술동향_조선창업, 과연 한반도의 자생적 산물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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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말, 윤은숙 학사가 몽·원제국기 동북아사를 전공하겠다고 찾아왔다. 나는 팍스몽골리카체제 하의 대만주사 연구를 권했다. 물론 당시로서는 연구 상의 여러 한계가 있었고, 몽골·여진·로·중·영·일어를 공부해야 하며 후진 현지답사가 여성에게는 어려움이 많음을 미리 귀띔해줬다. 하지만 시간의 선후와 완급은 있었지만 차세대 동북아 지도그룹을 배태한 지대인 만큼 그만한 역사배경이 반드시 전제됐으리라는 생각에서다. 그 후 뜻밖에 북방이 빨리 개방돼 90년대에 맨 먼저 몽골유학을 해 이희호 여사의 몽골어 통역을 전담할 만큼 몽골말을 배우고 애써 몽골사를 연구했지만, 퍽 험난한 나날들이었을 것이다.
현재의 남·북한 성립과정에 러·중이나 미·일 역사 전개가 결코 무관할 수 없듯이, 조선조의 창업이 몽·원제국의 흥망이나 명조의 굴기와 밀착된 상호관계를 가지면서 이뤄졌음은 지당한 일이다. 6.25사변이 3년인데 비해 몽·려전쟁은 접전기간만도 30여 년을 웃돌고, 고려는 직·간접으로 그 지배권 하에서 무려 100여 년을 지냈다. 몽·원제국은 동북아시아의 목·농권은 물론 태평양의 제패를 위해 연경을 대도로 정하고 옷치긴 왕가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해상기지 확보에 주력해, 「탐라」국을 동북아 3국 중 고려국 다음이자 일본국 위로 제2위에 자리매김해 올려놓은 중국 25사 상에도 유례없는 최초의 세계제국이다. 한반도의 차세대 지배세력인 조선조 핵심권력 형성에 영향이 미미할 수만 있었겠는가? ‘광역소수’로, 1/100도 안 되는 조직된 소수의 기동력으로 몽골-만주제국을 창업-경영한 몽골-만주인데 그런 유목태반 역사둥지 속에서 자라난 이성계 옷치긴 왕가 몽골국 군벌세력의 핵심만이 이에서 아주 예외일 수는 없다. 금나라는 고려에서 간 고려인의 후손이 세웠다고 『금사』에 적고 있고 이성계 군벌은 옷치긴 몽골왕가의 대만주권에서 그 권력핵심이 배태됐다는데도 우리는 만주를 한민족사에서 방기만 할 것인가. 버린 역사를 남이 주워 챙긴다고 욕질만 해댈 텐가. 그렇지만 조선조에서 물론 이들이, 당시 지지 신흥 주도세력과 상호작용치 않았다는 게 결코 아니다.
지금은 역사정보가 빛의 속도로 지구촌 시공을 넘나드는 아이티-비티 역사인식 대혁명시대다. 당시의 최첨단인 팍스몽골리카 체제 대만주권사 소산인 이성계정권의 중핵을 보는 눈도, 어설픈 쇼비니즘이나 다수결 독재로 전공영역별 이권 챙기기에 연연치 말아야 한다. 그리고 과감히 객관적으로 역사인식의 눈을 열어야 주변국들의 차원 낮은 역사제국주의 작태를 진실로 극복하는 위력을 확보해낼 수 있다. 요·금·원·청이라는 북풍이 주류를 이루는 동북아 근 천년사의 큰 흐름 속에서 명·려가 아니라 당연히 주로 몽골·고려 상호작용사의 열매로 태어난, 스키토·시베리안 북방민족사적 정통성을 담보한 조선왕조다. 그 토대 위에서 비로소 중문과 준별되는 구문구조를 지닌 세종의 뛰어난 한글이 창제될 수 있었다.
주채혁 / 강원대 · 몽골사
필자는 연세대에서 ‘元朝 官人層의 社會身分 硏究’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주요논문으로는 ‘몽골-貊高麗, 유목형 고구려 世界帝國考’, ‘소산(小山)의 순록(馴鹿) 연구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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