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앙> 2007년 02월 26일 (월) 08:04:21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5337
한미FTA 중단, 명예로운 실패 선택하라 | ||||||||||||||||||||||||||||||
[노대통령을 검증한다③] 유독 최장집 교수를 공격하는 이유 | ||||||||||||||||||||||||||||||
심상정 / 국회의원 ![]() | ||||||||||||||||||||||||||||||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를 참여정부라고 불렀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국정의 가치를 강조한 용어다. 좋은 말이다. 대통령은 이 말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여러 가지로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최소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한 대통령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틀 자체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민주주의의 형식과 내용을 분리해 사고하는 자는 지금 이 시대에선 민주주의자로 불리기 어렵다. 대통령도 여기에 해당된다. 참여정부의 비극은 이 두 요소를 분리해 접근한데서 시작되었다. 한국정치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의 발전은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며 본격화되었고,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뿌리를 내리며 공고화 단계에 들어섰다. 김영삼 정부가 내세운 문민화(탈군부화), 김대중 정부가 이룬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과도적 의미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 이렇게 김영삼, 김대중의 정치적 성과 위에서 비로소 노무현 정부가 출범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에 부여된 민주주의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이었나? 대통령이 진보진영 내 비판적 지식인 가운데 유독 최장집 교수를 정치의 장으로 불러들여 공격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유독 최장집을 공격하는 이유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통령에게 참여민주주의는 정치적 슬로건에 머물렀다. 그 슬로건을 구체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참여’는 과거의 사회운동 세력 중 일부 명망가, 친정부 지식엘리트 등을 공조직의 이사, 감사, 위원회 위원 등으로 충원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인사의 공정성을 유난히 강조했던 정부에서 ‘낙하산 인사’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이다.
나는 한나라당이 ‘위원회공화국’이라고 참여정부를 공격할 때마다 청와대를 옹호해 주었다. 한나라당의 공격이 위원회에 참여한 몇몇 개혁적 인사를 겨냥한 것 때문이기도 하고, 또 통치자의 의지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그 정도의 인적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봤다. 그러나 개혁은 기득권의 저항을 제어할 수 있는 구체적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참여정부는 개혁을 이루기 위한 ‘힘’을 스스로 버렸다. 그래서 참여정부는 기득권화되어 있는 관료집단조차 뚫지 못했다. 한국사회에는 민주적 참여를 통해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건강하고 영향력있는 세력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들을 시야에서 하나 둘씩 지워나갔다. 오히려 개혁을 약속했던 사람들을에게 개혁 포기를 종용하려 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반개혁세력’과 동일한 시선으로 다루기조차 했다. 행정부 개혁을 참여민주주의적으로 추진할 생각이 있었다면 공무원노조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했을까? 교육개혁을 원했다면 교원노조, 학부모, 학생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했을까? 재벌개혁을 정말 이루고자 했다면 시민단체, 노동조합과 어떻게 만나야 했을까? 대통령은 개혁을 주창하면서 개혁추동세력을 배제해 나갔고, 그 결과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데 실패했다. 일하는 사람이 빈곤한 민주주의 이제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인가’의 문제를 살펴보자. 2002년 대선 때 민주노총 조합원은 자신들의 위원장 출신 권영길 후보(36%)보다 노무현 후보(47%)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이들이 권영길보다 노무현을 더 신뢰한 것은 아니다. 차별해소, 노동기본권 확립, 통합적 노사관계 등등 노무현 후보의 공약이라도 우선 현실화하자는 단계적 전략을 택한 셈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기대가 깨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속노동자 역대정권 최고, 집권 4개월 만에 철도, 화물파업 공권력 투입, 비정규직 850만 시대 등을 당연시하는 노동자를 향한 잔인한 통치가 시작되었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노동자들은 국민소득 2만불,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퇴출 일순위로 지목되었다. 노무현 정부에 의해 구속되고 수배된 노동자들은 일용건설 노동자, 화물 덤프트럭 노동자, KTX 여승무원을 비롯해 예를 들기에도 벅차다. 119만원 월급에 생존의 기아선상에 놓인 850만 비정규직과 그 가족, 340만 농민, 350만 영세상인 등 절대다수 국민들이 궁핍의 고통으로 빠져 들어 갔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3권 밖으로 내몰리고, 지역시장이 붕괴되고, 장애인, 이주노동자, 신용불량자, 빈곤계층 등 사회적 약자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대통령의 실패에 대한 역사적 검증은 이미 내려졌다. 분배구조를 개선하겠다며 복지정부를 외쳤지만 복지사칭정부였으며, 국민을 먹여살리겠다며 개방에 승부를 걸었으나 서민은 죽을 맛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했다고 자랑하지만 오히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는 퇴보하였다. 이제 1년 남았다. 아직도 대통령의 선택지는 남아 있다. 비록 실패했지만 ‘명예로운’ 실패자기 되기를 바란다. 지금이라도 서민의 삶을 대통령정치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한미FTA가 관건이다. 관료들의 호주머니를 벗어나 우리사회를 위험에 몰아놓을 한미FTA협상을 중단해야 한다. 이것이 4년전 노무현을 외쳤던 수많은 서민들에 대한 대통령의 마지막 예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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