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5년 01월 06일 18:13:0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1061813071&code=990314
[생명 평화 이야기] 眞俗不二의 사회
〈도법스님 전 실상사 주지〉
꿈에도 보고 싶지 않은 자연재앙은 문명사적 격변보다 더 근본적인 천지개벽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국가이기주의와 경제성장정책만으로는 절대 해답을 내놓을 수 없음을 엄숙히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고 짐작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비상 상황이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힘 겨루기 하고, 남과 북이 등 돌리고 서로 으르렁거려도 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진보와 보수, 여와 야, 노와 사, 지역과 지역, 정부와 농민, 종교와 종교들이 편갈라서 갈등과 대립해도 괜찮은 시절이 아니다.
-농업·농촌 무시하면 희망없어-
희망의 길이라는 확신을 갖고 추구해 온 변화와 발전의 문명사를 되짚어보며 참된 길을 찾는 진지한 몸짓이 있어야 할 때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사회로 변화 발전해 왔다. 그리고 우리들이 오래 전에 내팽개친 ‘지속발전 가능사회’를 만드는 일만이 유일한 희망의 길이라고 외쳐대고 있는 게 첨단 문명사회라는 현재의 주소다.
현대 사회의 마지막 카드로 내놓은 것이 이미 우리 조상들께서 꿈꾸어 왔던 ‘지속발전 가능사회’라니 왠지 서글프다. 엄청난 고난과 희생 끝에 21세기 마지막 희망으로 제시되고 있는 게 ‘지속발전 가능사회’라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착잡하다. 유일한 희망으로 제시되고 있는 ‘지속발전 가능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한마디로 자자손손 우리의 생명이 안전하고, 건강하며,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다. 자연과 인간, 국가와 국가, 이웃과 이웃, 너와 내가 함께 어울려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요즈음 희망의 길이라고 외쳐대는 ‘지속발전 가능사회’를 ‘진속불이(眞俗不二)의 사회’라고 했다. 생명의 안전성과 삶의 건강성이 담보되는 ‘진속불이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했을까? 미국, 중국, 일본, 한국을 건설하고 키워준 큰 터전의 자연을 하느님으로 모셨다. 부모, 형제, 손자, 서울, 경기, 자동차, 컴퓨터, 생명공학, 대통령, 과학자, 자본가를 낳고 길러준 농촌과 농업을 영원한 부모님으로 모셨다. 자연과 농업을 모셔야 한다는, 기본을 무시하는 그 어떤 변화와 발전도 희망이 될 수 없음을 만고의 철칙으로 여겼다.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향해 물어보자. 정말 ‘지속발전 가능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길은 하나밖에 없다. 자연의 하느님과 농업의 부모님을 무참하게 짓밟는 경제성이나 경쟁력이라는 무례한 논리들을 당장 내려놓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자연이라는 하느님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 농촌·농업이라는 부모님 품에 달려가 안겨야 한다. ‘지속발전 가능사회’ ‘진속불이의 사회’가 21세기 희망의 길이라고 믿는다면 목숨 걸고 가야 할 길이 이 길 말고는 있을 수 없다. 국가사회의 근간인 농촌만큼은 돈벌이하는 무대가 아니라, 생명이 안전하고 건강성이 담보되는 생명활동의 무대로 가꿔야 한다. 국민의 목숨 줄인 농업만큼은 경제소득을 위한 농업이 아니라, 생명살림의 농업으로 본래의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지속발전을 위한 절대조건-
그러려면 범국민적인 비상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먹거리 자급률 50%, 1천만 인구가 사는 농촌사회’를 전제로 정책을 세우고 방향을 잡아 차근차근 진행하면 된다. 그러면 농촌이 해체되면서 몰려든 인구로 빚어지는 도시의 주택, 교통, 실업, 빈민 문제가 저절로 해소될 수 있다. 물을 비롯한 국토의 환경과 도농격차 따위의 문제가 발생할 이유가 원천적으로 없어진다.
자연·농촌·농업은 생명평화의 세상을 꽃피우는 절대적 기본조건이다. ‘지속발전 가능사회’ ‘진속불이의 사회’는 이 길로부터 시작할 때만이 비로소 실현이 가능하다. 새벽을 알리는 닭의 해에 문명사적 새벽을 알리는 큰 첫걸음을 내딛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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