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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생태환경

보름과 그믐, 죽음이 차오르는 나라(한겨레21 070322)

by 마리산인1324 2007. 3. 25.

 

<한겨레21> 2007년03월22일 제652호

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7/03/021003000200703220652074.html

 

 

 

보름과 그믐, 죽음이 차오르는 나라

적도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는 세계의 죄를 혼자 짊어지고 사라질 것인가
 

지구 온난화는 비가시적이다. 천천히 끓어오르는 냄비 속의 개구리가 죽음을 예감하지 못하듯 천천히 더워지는 지구에 사는 인간들은 위기를 체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적도의 섬나라 투발루는 ‘위기’의 가장 가시적인 사례로 꼽혀왔다. 북극의 빙산이 녹고 바닷물이 많아져 해수면이 상승한다. 해발고도가 낮은 태평양의 산호섬 나라들은 물에 잠긴다. 투발루는 과연 미래의 아틀란티스가 될 것인가. <한겨레21>은 다가오는 지구 온난화의 전조를 살펴보기 위해 2006년 북극에 이어 적도에 다녀왔다. 편집자

 

▣ 투발루=글 남종영 기자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비행기가 투발루 상공에 진입하면, 푸나푸티섬의 소방차는 활주로에 나와 사이렌을 울린다. 활주로 옆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던 노인들은 하품을 하며 일어나고, 활주로 잔디밭에서 공을 차던 아이들은 비행기를 보러 공항 빌딩으로 몰려간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낮 12시30분 투발루의 수도 푸나푸티섬에 울려퍼지는 사이렌 소리는 투발루 국민 9500명의 2~3%, 200~300명을 활주로로 몰려들게 만든다. 짧은 활주로에서 가까스로 브레이크를 잡아 세우는 비행기를 주민들은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바라본다.

 


△ 투발루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인류가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최대한 늦춘다고 하더라도 투발루는 이번 세기 안에 바닷물에 잠길 가능성이 크다.

 

미군이 파놓은 구덩이마다 바닷물 유입

 

적도의 폭염을 뚫고 태평양에서 불어온 바람이 선선해지는 오후 4시면, 활주로는 다시 사람들로 북적인다. 섬 대항 축구대회를 앞두고 청년들이 공을 차고,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활주로를 가로지른다. 석양빛이 사위면, 가족들은 돗자리를 깔고 활주로에 눕는다.

 

홍수가 나도 아마도 주민들은 활주로로 모여들 것이다. 뱀처럼 긴, 길이 12km의 푸나푸티섬(2.8㎢)에서 활주로가 있는 구간이 가장 폭이 넓다. 그래봤자 400m이지만, 산도 언덕도 둔덕도 없는 푸나푸티섬에서 활주로는 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투발루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은 3.7m. 주민들은 활주로밖에 대피할 곳이 없다. 투발루의 기약 없는 미래는 이 짧은 1.8km의 활주로에서 시작한다.

 

활주로는 1943년에 건설됐다. 투발루 초대 총리이자 독립 지도자인 토아리피 라우티(76)는 “2차 세계대전 때 미군들이 들어와 주민들을 이웃 섬으로 소개시키고 이곳에 활주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활주로 땅을 돋우기 위해서는 모래가 필요했다. 미군들은 모래를 구하기 위해 푸나푸니섬 북쪽과 남쪽 변두리로 장갑차를 몰았다. 라우티가 말을 이었다. “미군들이 모래를 빌려간다면서 여기저기 땅을 팠어. 그래서 지금 섬 여기저기에 구덩이가 생긴 거야. 투발루 사람들은 그걸 ‘배로 피츠’(borrow pits·빌린 구덩이)라고 부르지.”

 

미군은 섬사람들의 주식인 플라카(열대 토란)와 코코넛나무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비행장과 군사시설을 지었다. 그리고 자급자족 경제를 영위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아무짝에 쓸모없는 달러를 쥐어줬다.

 

수십 개의 배로 피츠에는 언제부턴가 바닷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40~50년 뒤, 본격적으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배로 피츠는 투발루 사람들에게 새로운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

 

취재진이 푸나푸티섬에 도착한 2월26일은 음력 1월9일이었다. 바닷물의 수위가 가장 높아지는 음력 보름날(15일)까지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취재진은 엿새 동안 이 작은 산호초 섬의 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 미군이 파놓은 구덩이에는 바닷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매달 보름과 그믐 물난리를 겪는다.(왼쪽사진) 사리 때가 되면 섬 여기저기서 바닷물이 솟아오른다. 지하수마저 짠물로 바뀌어 주민들은 빗물을 식수로 쓴다.

 

음력 1월10일 토무 시오네(64) 환경자원부 장관을 만났다. 시오네 장관은 “한 달에 두 번씩 물난리가 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지 1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음력 보름과 그믐날, 바닷물이 가장 높이 들어오는 사리 때가 물난리의 최고점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밀물 때 만조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썰물 때 간조 수위는 점점 낮아져요. 하루 중 조석 간만의 차이도 커진 거지요.”

 

배로 피츠가 산재한 변두리 마을로 가보았다. 배로 피츠 둘레에 목조주택과 돼지 막사와 닭장, 쓰레기장이 흩어져 있었다. 배로 피츠는 썰물 때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가 밀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리 칼로 모르세이(36)는 “푸나푸티섬의 산호초는 속이 비었다”며 “주변 바닷물이 솟아오르면 지하수도 바닷물과 섞여 솟아오른다”고 말했다. 음력 11일, 바닷물 수위는 돼지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리 때마다 물난리를 겪은 배로 피츠 주변의 주민들은, 이미 1~1.5m의 기둥을 받친 ‘원두막’ 형태의 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물이 1층 마루까지 밀고 들어왔어요”

 

테무키사 마우마우(55)는 10여 년 전부터 바닷물의 최고 수위를 기둥에 표시하고 있다. 마우마우의 2층집에 올라가자, 그녀는 기자를 맞아하는 게 임무인 양 의자를 내밀었다. 그리고 서투른 영어로 “더 이상 1층은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이 최악이었지요. 급기야 바닷물이 1층 마루에까지 밀고 들어왔어요. 식탁이고 텔레비전이고 모두 젖었지요. 10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투발루 기상청 사무실에는 마우마우가 말한 ‘지난해 2월’의 사진이 걸려 있다. 물에 잠긴 기상청 앞마당 백엽상 앞에서 직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직원들은 기상청 홈페이지에도 사진을 올리고 그 밑에 “해수면 상승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라고 써놓았다. 타발라 카티 기상청장이 말했다. “투발루 기상 관측 사상 최고였지요. 해수면 높이가 3.48m까지 상승했어요. 투발루섬에서 가장 높은 곳이 3.7m인데.”

 


 

최고점까지 22cm. 단 한 뼘 차이였다. 현재 투발루의 연평균 해수면 상승률은 5.5mm(1993~2007년 1월)이다. 보통 투발루는 1~3월 사리 때 2.9~3.4m까지 바닷물이 차오른다. 현재의 해수면 상승률이 지속될 때 10년 뒤엔 어떻게 될까. 2.96~3.46m가 된다. 투발루의 ‘최고점’이 정복되기까지는 60년이 걸린다. 이때 바닷물 높이는 3.23~3.73m에 이른다. 섬 전체가 물에 잠기고 마는 것이다.

 

카티 기상청장은 “해수면 상승은 투발루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소금기가 많은 지하수의 분출로 식수를 구할 수 없게 됐고, 코코넛나무와 농작물이 죽고 있다.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건 해수면 상승뿐만이 아니다. 1년에 한두 번 찾아오던 폭풍은 매달 찾아오면서 세고 강력해졌다. 폭풍이 사리 때 불면 치명적이다. 피할 언덕도 산도 없고, 노아의 방주(투발루에는 수백 명 정원의 관용 여객선 두 척뿐이다)도 없는 주민들은 이 우연한 시간의 일치가 두렵다. 정작 주민들이 느끼는 공포는 매달 찾아오는 물난리가 아니다. 그들은 2005년 아시아를 덮친 쓰나미와 미국의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목격하면서 투발루의 불길한 미래를 봤다.

 

해수면 상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외항선원인 바야쿠아 파팅아(45)는 “언론에서 그렇게 떠들긴 하던데… 모르겠어요” 하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잠깐 침묵이 흐른 뒤, 갑자기 그는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사리 때 폭풍이 덮치면 우린 끝장이에요. 나는 원양어선을 타고 아시아 쓰나미 현장을 직접 목격했어요. 사실 그 때문에 우리에게도 재앙이 닥칠 거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지요.”

푸나푸티에서 100km 떨어진 누크페타우섬에 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파팅아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이민 갈 것이라고 했다. 바닷가에 얼기설기 세워놓은 그의 집 기둥은 이미 3분의 2가 잠겨 있었다.

 

떠나고 싶지만, 어디로?

 

투발루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결같이 이민을 원했다. 건축가의 아내인 마우마우도, 외항선원인 파팅아도, 초대 총리인 라우티도 조국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마우마우는 “2005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민 신청서를 내고 있는데, 45살 이상은 받아주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25살 된 아들이 자식을 4명 낳아야 이민이 허락된다”고 말했다. 그러곤 “투발루에 갇혔다”며 자조하듯 웃었다.

 


라우티는 투발루 국민의 집단 이주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정부를 존속시키는 ‘국가 이주’를 말하고 있었다. “정부가 새 이주지에 대해 다른 나라들과 협상해야 할 때입니다. 정부로선 이주가 실현되면 국가가 없어질까 두려워하지만, 우리는 국가를 지키면서 이주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 시장의 중심에 가까운 대만, 오키나와 근처의 섬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가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선진국에서 그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1997년 교토협약 대표단으로 참가해 조국이 처한 위기에 대해 연설한 적이 있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교토협약에 미적대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태도는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위원회(IPCC)는 산업혁명 이전에 280ppm이었던 이산화탄소 농도가 2005년에는 379ppm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늘어난 이산화탄소로 온실효과가 발생해 북극과 그린란드의 빙산이 녹고 있다고 덧붙였다. 1961~2003년의 전 지구 해수면 상승률는 연간 1.8mm, 투발루는 지구 평균의 3배 수준인 5.5mm이다.

 

토무 시오네 투발루 환경자원부 장관은 “투발루의 위기는 강대국, 산업국, 개발도상국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나라들이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지구를 우주의 작은 온실로 만들었다. 2004년 국제에너지기구 자료를 보면, 미국은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9.73t, 오스트레일리아는 17.53t, 한국은 9.61t, 뉴질랜드는 8.04t에 이르렀다. 반면 투발루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0.46t(유엔기후변화협약 1996년 자료)에 불과하다.

 

푸나푸티섬에서 10여km 떨어진 테푸카 사빌리빌리섬은 주민들에게 재앙의 전조로 인식된다. 1997년 어느 날, 무인도는 사라졌다. 주민들은 “한밤중에 폭풍이 치더니 섬을 메웠던 야자나무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테푸카 사빌리빌리섬은 이제는 100평짜리 산호더미에 불과하다. 하얀 산호더미 위에는 조수에 떠내려온 페트병과 석면 조각, 존슨즈베이비로션이 흩어져 있었다. 코코넛 열매만 그새 산호더미 위에 싹을 틔웠다.

 

시간은 보름을 향해 성큼성큼 흘렀다. 섬은 조용히 변하기 시작했다. 활주로 주변 잔디밭에는 군데군데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플라카 농장에도 물이 찼다. 땅 밑에서 거품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바닷물이 솟아오르는 증거다. 소금기가 있는 물이 차오르니, 플라카가 견딜 리 없었다. 농부들은 땅을 돋워 바닷물의 ‘침공’을 막지만, 이미 농장에는 노랗게 죽어간 플라카가 띄엄띄엄 서 있다.

 

농장에는 노랗게 죽어간 플라카가…

 

음력 보름인 3월4일. 기상청은 “바닷물이 해발 2.93m까지 차오를 것”이라고 예보했다. 만조 시간인 오후 5시26분. 푸나푸티섬 변두리 마을 배로 피츠는 며칠 사이 거대한 연못이 되어 있었다. 돼지 막사도 닭장도 쓰레기장도 물에 잠겼다. 배로 피츠에서 솟은 바닷물은 슬며시 집 앞 마당까지 차고 들어왔다. 동네 공터, 배구를 하는 젊은 남녀의 발 아래로 물이 흘러들어왔다. 며칠 동안 밟고 다니던 징검다리도 사라졌다. 바닷가의 집들로 가는 길은 바닷물로 막혔다. 멈칫하던 꼬마가 바닷물에 발을 담그더니 집으로 총총 사라졌다.

 

*협찬 포스코

 


 


절망의 끝에 선 섬나라들

 

해수면 최고치 경신하는 투발루· 키리바시·바누아투·쿡제도·몰디브
 

투발루, 키리바시, 바누아투, 쿡제도, 몰디브…. 이 낯선 나라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오스트레일리아 기상청은 1990년대부터 남태평양 섬나라들과 함께 해수면 상승치를 관찰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만조 수치는 경신된다. 2006년 2월 투발루와 사모아가 최고 수치를 경신했고, 이어 쿡제도가 지난 1월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태평양과 인도양의 낮은 섬나라들은 매우 연약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산호초로 되어 있고 해발 고도 3~5m 안팎이라 해수면 상승과 폭풍에 취약하다. 거주와 개발 조건도 혹독하다. 언덕과 산이 부족해 식수를 구하기 어렵고, 모래가 부족해 건축공사도 하기 어렵다. 이미 이주가 이뤄진 곳도 있다. 파푸아뉴기니 정부는 2005년부터 카르테렛 군도 주민들을 인근 부간빌섬으로 이주시키고 있다. 바누아투의 테구아섬 주민들은 해변의 집을 내륙 쪽으로 옮겼다.

 

작은 섬나라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위원회(IPCC)는 지난 2월 6개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내놓았는데, 인류가 자연친화적인 삶을 선택해 온실가스를 줄이더라도(B1 모델), 전세계 해수면은 금세기 말까지 최소 18cm에서 최대 38cm 상승한다고 밝혔다. 최고 지점이 3.7m인데 이미 해수면 최고치가 3.48m에 이른 투발루로선 인류가 반성해 석유문명을 탈피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늦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