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2007년03월22일 제6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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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 창을 내면 더워 죽소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한국생태학회 회장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석좌교수). 1970년대에 한국을 떠나 20여 년 동안 열대지방을 다니며 연구를 진행하던 그가 90년대 중반 한국 땅을 밟은 뒤 가장 놀란 것은 여름철 장맛비였다. “예전에 우리 장맛비는 주룩주룩 끝없이 질척질척 오는 거였는데 돌아왔을 때는 열대에서 맞던 비가 쏟아지더라”는 게 그의 회고다. 최 교수는 그런 느낌을 주변에 말했지만, 기상을 전공하는 동료 교수들은 근거 없는 얘기라며 펄쩍 뛰었다.
△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의 기온은 평균 섭씨 1.5도 올랐다. 서울 광화문 대로에 야자수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모습을 가상한 합성사진. |
“그러나 최근에 더 많은 기상학자들이 (내 생각에) 동의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최 교수는 말했다. 그는 “기후가 변한다는 것은 식물·동물·인간의 질환 등 생태계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의미”라며 “심각한 정도를 말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고 거대한 변화가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기후 변화가 생태계 변동으로 이어지고, 이 변동의 결과가 인간의 삶을 뿌리에서부터 뒤흔드는, 거대한 공포의 드라마가 시작된 셈이다.
침엽수림은 고산지대에 고립될 수도
한반도 기후의 아열대화는 이미 시간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일부 기상학 전문가들은 “한반도 일부 지역은 아열대 기후로 바뀐 상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 전체의 기온은 평균 섭씨 0.6도 정도 상승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1.5도 올랐다. 상승폭이 훨씬 큰 것이다. 기상학계에서는 북반구의 경우 기온이 1도 올라갈 때 기후대는 평균 200~250km 정도 북상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쉽게 말해 대전 날씨가 목포 날씨로, 평양 날씨가 대전 날씨로 변한다는 것이다. 사계절의 기간도 변화가 심하다. 겨울은 한 달 이상 줄었고 봄과 여름은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서울의 경우 1960년대 하루 평균 기온이 30도가 넘은 일수는 불과 3일이었지만, 90년대에는 평균 18일로 6배 늘었다는 기상청 통계자료도 있다. 대구의 경우 이 수치가 34일에서 75일로 늘었고, 광주는 4일에서 20일로 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해마다 아열대성 게릴라 폭우 현상이 나타나 장마보다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수해의 주요인이 되는 경향이 확고한 기상 패턴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기후 변화는 생태계의 격심한 변동으로 이어진다. 식물생태계의 변화를 좇고 있는 임업연구원 등의 연구 결과를 보면, 기온 상승으로 나무에서 잎이 나오는 시기가 평균적으로 5~7일 정도 빨라졌다. 1970년대에는 4월에 창경궁에서 열리던 서울의 벚꽃놀이가 최근엔 3월에 윤중로에서 열린다. 잣나무·신갈나무·전나무·분비나무 등 침엽수림의 면적은 줄어드는 데 반해 뽕나무·물푸레나무·보리수나무 등 활엽수의 면적은 꾸준히 늘고 있다(그래픽 참조). 이에 비해 남해안 지방에 서식하던 아열대성 수종인 동백나무는 충남 보령까지 진출했다. 활엽수림은 서울 면적의 10배 이상 늘어난 반면, 침엽수림은 8배 정도 줄어들었다. 기온이 더 오르면 침엽수림은 지리산·설악산·덕유산·한라산 등 고산지대에 고립될 가능성마저 있다. 아열대생 수목병원균인 후사리움가지마름병이 1996년 국내 최초로 발견됐고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가뭄으로 인한 대형 산불,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 열대성 수목병해충 발생 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기후 변화는 한국인의 주식인 쌀의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3월8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열대작물인 벼의 경우 지구 온난화에 따라 조생종 재배지대는 중생종 재배지대로, 중생종 재배지대는 만생종 재배지대로 적정 재배지대가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들이 그동안의 경험만을 바탕으로 현재의 재배 시기를 고수한다면 쌀의 수확량이 20~30% 정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아열대성 전염병의 공포
바닷속의 변화도 극적이다. 홍치·도화돔·만새기·고너리류 등의 아열대성 물고기가 동해에서 잡히고, 해파리·곤쟁이 등 난류성 생물이 동해에서 대량으로 나타난다. 한꺼번에 등장한 난류성 물고기들 때문에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을 중단할 정도였다. 연안에서는 난류 수역에서 볼 수 있는 산호가 나타나고, 따듯한 해역에서 주로 나타나는 ‘백화현상’이 동해 연안에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하늘에서는 철새들의 면면이 바뀌고 있다. 겨울이 예전보다 덜 추워지면서 한반도에서 월동하는 철새의 수가 늘어난 것이다. 해마다 4~5월이던 여름철새의 도래 시기도 훨씬 앞당겨졌다. 백로류 같은 새들이 5년 전쯤부터 이른 봄인 3월에 찾아와 산란하고 새끼를 기르곤 하며 도래 시기도 최소한 한 달 빨라졌다.
땅·바다·하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지는 생태계 교란이 심각한 것은, 결국 먹이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인간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아열대성 전염병의 확산 가능성이다. 이상 징후는 이미 포착되고 있다. 말라리아와 쓰쓰가무시병 같은 아열대성 전염성이 번지고 있는 것이다. 따뜻한 날씨가 이들 병을 옮기는 모기·진드기 같은 해충에게 훨씬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최근 10년 동안 전국 연평균 기온이 그전 10년에 비해 급상승하면서 관련 질병 환자도 급증했다(그래픽 참조). 최근 10년 동안 보건당국에 신고된 말라리아 환자는 연평균 2317명으로, 이전 10년에 비해 평균치의 45배였다. 세균성 이질은 1995년 107건에서 2000년 4142건으로 늘었다. 열대성 전염병인 뎅기열도 2001년 최초로 6건이 발생했다. 말라리아는 1960년대까지 창궐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79년에 “한국에선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이후 14년 동안 한 명도 발병하지 않다가 2000년 이후엔 해마다 1천~4천 명 정도가 병에 걸리는 추세다. 해외에서 걸려 입국하는 경우는 전체 발병자의 3% 정도여서 대부분이 국내 발병환자로 볼 수 있다. 가을철 3대 열병 가운데 하나인 쓰쓰가무시병 역시 지난 10년 동안 11배 정도 늘었다. 특히 2005년 이후 내리 2년 동안 해마다 6천 명이 넘는 환자가 생겨나고 있다. 이 병은 특히 기온 상승이 도드라지는 대도시 지역에서 더 많이 발생할 전망이다.
남향 아파트는 앞으로 기피 대상?
온난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는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의식과 생활양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의 이상향은 예전부터 따뜻한 남향이었다. 그래서 ‘남으로 창을 내겠소’ 같은 시구가 생겨났고, 집을 지을 때도 산을 뒤로 한 남향집을 지었다. 남향집은 겨울엔 볕이 길게 들어 따뜻하고, 여름엔 볕이 들지 않아 시원하다. 그러나 온난화가 계속 진행될수록 이상향의 방향이 차츰 북쪽으로 향할지도 모를 일이다. 20년쯤 뒤에는 북향 아파트가 인기를 끄는 ‘진풍경’이 벌어질 수도 있다. 또 개마고원이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로 각광받는 상상도 할 수 있다. 여름 휴가철마다 가장 붐비는 곳이 서울~평양 간 고속도로가 되지 않을까. 또 있다. 기후 변화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면서 대학입시에서 최고 인기학과가 기상학과가 될 가능성 말이다. 한반도 온난화의 속도와 폭은 앞으로 벌어질 변화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협찬 현대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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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뒤 서울은 서귀포처럼…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로 인한 위험이 갈수록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집중호우와 태풍 등의 강도가 더해져 막대한 피해를 유발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최저기온이 상승하고 가뭄이 영향을 미치는 지역이 넓어지며 폭염일수도 증가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3월2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2007 기상학술심포지엄’의 기조연설자로 나서는 영국 이스트 앙겔리아대학 기상연구소 필립 존스 박사는 “지난 50년간의 온난화율은 지난 100년에 견줘 거의 2배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런 기후 변화에 따른 이상 기상에서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겨울만 해도 기상관측이 이뤄진 100년 가운데 세 번째로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 기상청은 올해 우리나라 기온이 평년(12.4도)보다 섭씨 0.5도 이상 높을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앞으로 100년 동안의 한반도 기후도 상승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측됐다. 기상청 기상연구소 권원태 기후연구실장은 기후변화 정부간 위원회(IPCC)의 기후예측 시나리오(SRES A1B)에 따른 한반도 기후에 대해 “21세기 말 한반도의 기온은 4도, 강수량은 17%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면서 “여름 고온 특이일이 증가하고 겨울 저온 특이일의 빈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미 기후 변화에 따라 겨울이 짧아지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겨울이 80년 전에 견줘 한 달가량 짧아졌는데, 100년 뒤에는 15일이 더 짧아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때에는 서울의 기온이 지금 서귀포처럼 따뜻한 기온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파가 줄어들고 연평균 기온이 상승할 경우 여름철 집중호우의 발생 빈도가 급증한다. 하루 80mm 이상의 집중호우 발생일이 50년 전(1954~63) 연평균 23.5일에서 근래(1996~2005)에는 36.7일로 56%나 증가했다. 이때 여름의 강수량 증가율도 18%나 됐다.
이제는 3월에 내리는 함박눈이 일상적인 일이 되다시피 했다. 실제로 3월의 최대 적설 기록이 2004년과 2005년에 대거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에는 전국 76개 관측지점 가운데 26개 지점에서, 2005년에는 17개 지점에서 사상 최고 기록이 나왔다. 이처럼 3월의 폭설이 잦아지는 이유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대기의 에너지가 많아지고 찬 기류와 더운 기류의 대립 강도가 강화된 탓으로 여겨진다.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서로 뒤엉키면서 눈이 생성될 조건을 만든다는 말이다.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초대형 태풍이나 폭우 같은 위험에만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 농작물이나 야외 경기장의 잔디 등에 피해를 일으키는 서리와 냉해 일수가 줄어들기도 한다. 서리 일수는 80년 전에 견줘 20일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이로운 점은 태풍 루사나 매미 등으로 인한 4조원 이상의 피해를 떠올렸을 때 지극히 미약한 수준일 뿐이다. 요즘 날씨가 따뜻해지면 동토를 농토로 바꾸고, 노동조건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기후 변화는 우리의 일상마저 태풍으로 휩쓸고 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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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 나타나는 것
녹색비둘기와 검은바람까마귀
아열대 조류로 알려졌으나, 최근 한국에서 잇따라 발견됐다. 지난 1977년 제주도 북제주군에서 처음 발견된 녹색비둘기는 2004년 12월24일 충남 태안과 29일 경남 사천에서 연이어 발견되는 등 점점 북방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다른 비둘기와 달리 날개와 등 부분이 녹색이고 가슴 부위가 노란색으로, 일본·대만·인도차이나반도의 숲이나 바닷가에 주로 산다. 수컷은 어깨 쪽 날개덮깃이 어두운 보랏빛이지만 암컷은 짙은 녹색이며 꽁지깃에 검은색 띠가 있다. 주로 울창한 활엽수림이나 혼합림에 살고 6월쯤 한배에 2개의 알을 낳는다.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일대에 사는 검은바람까마귀도 2003년부터 4년째 전남 홍도로 날아든다. 한 번에 열 마리 넘게 관찰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밖에도 최근 발견된 아열대림 서식 조류는 10종이 넘는다.
명태와 오징어
‘어획량 반비례 법칙’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두 물고기다. 동해안에서 어획량이 가장 많은 지역 가운데 하나인 강원도 고성군 통계를 보면, 한류성 어류의 대표주자인 명태는 1980년대만 해도 연간 2만t씩 잡혔으나, 2005년에는 17t 밖에 잡히지 않았다. 반면 80년대 후반 어획량이 1만t이던 오징어는 최근 3만t 넘게 잡힌다. 충남 서산과 보령은 새로운 ‘오징어 특산지’가 됐다. 겨울의 수온은 갈수록 높아지고 여름 수온은 반대로 낮아지면서 온대기후 바다환경의 전형적인 특징인 뚜렷한 수온 차이가 사라진 결과다.
사과
전국 제1의 사과 산지였던 경북 영천시. 20년 전 1천만 평이 넘던 사과 재배 면적이 지금은 280만 평이다. 70% 이상 줄었다. 금호강변 모래땅에서 자라던 사과가 이제는 높은 산에서만 자란다는 것이다. 영천시의 최근 6년간 평균 기온은 20년 전보다 0.6도 올랐다. <명조실록>과 <숙종실록>을 보면, 조선시대에는 사과꽃의 개화 시기를 보고 그해의 이상 기후 여부를 점쳤다고 한다. 사과는 여름철 평균 기온이 26도를 넘지 않고, 겨울철 기온이 10.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재배가 가능할 정도로 기후 조건이 까다롭다. 이 때문에 ‘사과의 본고장’으로 불렸던 대구에서는 사과 재배를 포기하고 대추·복숭아·채소로 재배작물을 바꾸는 농민들이 많다. 사과 재배지는 오래전에 ‘북상’을 시작해 경북 의성을 지나 충청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까지 올라갔다.
소나무
20년 전 소나무는 한반도 삼림의 60%에 해당하는 384만여ha를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면적이 256만여ha로 줄었다. 전남 화순군의 경우 1960년대 500ha에 이르렀던 소나무숲이 80ha로 줄었다. 최근 기온 상승으로 소나무가 참나무 등 활엽수와의 종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소나무 생육을 가로막는 나무들을 뽑는 등 긴급조처를 취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중국얼룩날개모기
아열대성 전염병인 말라리아를 옮기는 대표적인 동물 가운데 하나다. ‘학질모기’라고도 불린다. 몸길이는 약 5.5mm이다. 아래턱수염의 각 마디 경계부에 흰 띠를 둘렀고 뒷다리 발목마디 관절에 흰 띠를 둘렀다. 배에는 비늘이 없고 황백색 털이 덮여 있다. 날개의 앞가두리맥의 두 곳에 흰 반점이 있다. 1945~50년에 한국에서 기승을 부렸던 말라리아를 퍼뜨렸던 주범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기온 상승과 함께 다시 한국인의 전면에 등장했다. 사상충병을 매개하기도 하며, 성충은 동굴·볏짚단 속에서 월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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