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07-04-06 오후 12:38:42
[기고] 기후변화, 손 놓고 있을 것인가?
4월 6일 오전 10시(현지 시각) 브뤼셀에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는 4차 보고서의 2권 <기후변화 2007 : 영향, 적응과 취약성> 보고서를 발표한다. 지난 2월 2일 발표된 4차 보고서의 1권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관측과 전망이 발표됐다면, 이번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초래할 부정적 영향에 대한 연구가 공개된다.
이미 1권을 통해 기후변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인간 활동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이 재차 확인됐다. 그리고 이 기후변화가 인간은 물론 생태계에 치명적 위협이 될 것임이 알려지면서 세계의 관심은 IPCC에 쏠려있다. 언론에 미리 소개된 초안 요약본에 따르면 기후변화 문제를 '멸종의 고속도로'로 언급할 만큼 그 심각성은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다.
2050년이면 20억 명이 물 부족에 직면하고 생물종의 5분의 1 이상이 멸종된다. 인도는 경작지의 3분의 1이 소실되고 동남아시아는 곡물 생산이 최대 30%까지 줄어든다. 히말라야 빙하가 사라지면서 서남아시아 7억 명이 수자원 고갈로 위협을 받는다. 경작지가 줄어드는 아프리카에선 열대성 질병이 증가하고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는 태풍, 홍수 등 기상이변이 늘어난다.
불공평하게도 지구온난화에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 공업국이 분포한 북미와 유럽 지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다. 하지만 기상이변과 환경난민 발생에 따른 기후 전쟁에서 자유로울 국가는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인류가 되돌리기 힘든 심각한 상황에 처했으며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일부 전문가나 연구단체에선 아직도 IPCC가 기후변화의 영향을 과장했거나 틀린 주장을 펴고 있다고 딴죽을 건다. 하지만 IPCC에 누가 참여해서 어떻게 보고서가 작성되는 지를 이해한다면 이런 소리가 정치ㆍ경제적 이해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한 정보를 왜곡하려는 의도임을 쉽게 눈치 챌 것이다.
IPCC 보고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2500명의 전문가들이 매번 5~6년 동안 복잡한 작업 절차를 거쳐서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과학적 진실을 기록한다. 아직 IPCC 보고서 작성과 검토 과정에 참여하는 국내 전문가는 손에 꼽을 정도에 그치고 있다. 도대체 누가 왜곡ㆍ과장을 하고 있는지는 현실로 다가오는 기후변화가 증명할 것이다.
중국, 인도 욕하지 말라…미국부터 변해야
기후변화 완화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미국은 기후 재앙의 주범이다. 지금도 전 세계 온실가스의 22%를 배출하고 있고 교토의정서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있는 국가군의 36%를 배출한다. 역사적인 누계를 따지면 미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9%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미국은 계속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재를 뿌리고 있다. 교토의정서 서명을 철회한 데 이어, 기술을 통한 자발적 감축을 고집하면서 국제사회와는 상반된 길을 걷고 있다. 미국이 복귀하지 않는다면 교토의정서나 추가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도 본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각각 전 세계 온실가스의 18%와 4%를 배출하는 중국과 인도도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중요한 당사자임에 분명하다. 중국과 인도는 최근 온실가스 배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양국에는 세계인구의 거의 40%가 살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 배출량 기여도도 크다. 하지만 아직 중국과 인도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지구 대기는 인류 누구나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유 자원이다. 그러므로 국가 배출량 보다 1인당 배출량이 중요한 기준이다. 그렇다면 중국과 인도의 1인당 이산산화탄소 배출량 은 어떨까? 중국과 인도는 각각 미국의 5분의 1, 20분의 1에 불과하다.
한국이야말로 기후 변화 책임자 중 하나
국제사회에서 별로 부각이 되진 않지만 한국은 기후 재앙을 부추겨 온 숨겨진 '기후변화 기여국'이다. 교토의정서에선 개발도상국과 같이 취급되지만 한국은 현재 온실가스 배출 세계 10위의 나라이다. 2004년 기준,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9.61t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유럽의 7.72t을 크게 상회하고 일본의 9.52t보다 많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0년에서 2004년 사이에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무려 104.6%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유럽연합이 불과 1.6% 증가했고 비난을 사고 있는 미국조차 19.8% 증가에 그친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이다. 더군다나 2003년에 한국 정부가 발간하여 유엔에 제출한 국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는 200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70%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만약 이런 전망이 현실화된다면 2020년이면 한국은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OECD유럽의 두 배에 이를 것이다. 앞으로 있을 기후 협상에 대비해서 전망을 과장한 점을 감안해도 한국 정부의 국가 보고서는 기후재앙에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내용이다.
한국 정부도 1998년부터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기후변화협약 범정부 대책기구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고 1999년부터 기후변화협약 종합대책을 시행 중이다. 2005년부터 추진 중인 기후변화협약 제3차 종합대책은 약 17조 원의 정부 예산과 민간 투자가 이루어지는 거창한 사업이다.
그러나 국무총리와 12명의 장관급 인사가 참여하는 대책위원회, 15명의 차관급 인사가 참여하는 실무위원회, 그리고 그 아래 실무조정회의와 실무대책반을 둔 방대한 대응체계에 통합과 조정의 기능을 하는 사무국 기능은 없다. 거창한 종합대책에는 아직도 국내 온실가스 저감 목표가 없고 세부 과제별 구체적 목표와 평가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
기후재앙을 겪으면서도 기후변화 적응 분야는 경시되었다. 결국 방대한 대응체계와 거창한 종합대책에도 불구하고 1999년부터 최근까지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더군다나 한국은 미국이 자국의 입지와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만든 '아시아-태평양 기후변화 파트너십'에 참여하고 있다. 군사동맹,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한 경제동맹에 이어 미국과의 기후동맹이 움트고 있다. 결국 한국의 기후정책은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20톤에 이르는 미국의 뒤를 좇는 식이다.
한국, 언제까지 미국 뒤만 좇을 텐가?
한국은 기후변화 완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또 하나의 당사국이다. 유엔기후회의체제에서 한국은 정신연령은 청소년인 어른 취급을 받는 셈이다. OECD 국가 중에서 교토 목표를 받지 않은 국가는 멕시코와 한국 둘뿐이다. 그런데 한국은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선진 공업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멕시코는 한국의 3분의 1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런 한국이 경제수준과 온실가스 배출 규모에 맞게 교토의정서 이후의 온실가스 의무 부담에 동참한다면 이것은 미국, 호주 등 기후변화 불량 국가를 압박하고 중국, 인도 등 개도국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추동력이자 기후변화 대응의 희소식이 될 것이다.
이것이 한국 경제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3월 8일 유럽 27개국 정상회담에서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20% 삭감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유럽은 에너지 효율 향상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성장과 고용 확대도 도모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조속한 실천은 생태적으로 현명한 행동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의 박종식 소장도 "한국에선 기후변화의 위기만 강조되었지 기회의 측면이 간과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우선 지난 해 11월 환경부 장관이 의지를 밝힌 것처럼 2008년부터 시작하는 제4차 종합대책부터 국내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 아니라 유럽의 뒤를 좇아 2011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5% 높이는 목표를 달성하고 이런 흐름을 이어가면서 에너지 효율 향상에 힘쓸 경우 한국도 2030년이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보다 30%까지 낮출 수 있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한국은 세계를 움직일 잠재력이 있다.
이상훈/환경연합 에너지기후본부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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