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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한미FTA 타결] 협상서 타결까지... 숨가빴던 '1년 드라마'(오마이뉴스 070402)

by 마리산인1324 2007. 4. 2.

 

<오마이뉴스> 2007-04-02 13:36

http://econom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01366&ar_seq=

 

 

 

'졸속'으로 시작해 '퍼주기'로 끝났다
[한미FTA 타결] 협상서 타결까지... 숨가빴던 '1년 드라마'
    김연기(yeonki75)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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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한미 FTA 최종 고위급협상에서 우리측 대표로 나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측 캐런 바티야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 지난 26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시작된 한미FTA 최종 고위급협상에서 미국측 대표로 나선 캐런 바티야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우리측 대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2006년 2월 3일 미국 의회 의사당 연단.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 의회 상하원 의원들 앞에 섰다.

"양국의 FTA 협상이 공식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앞으로 한미 관계가 더욱 친밀해지고 한 단계 도약할 것입니다."

김 본부장의 발언이 끝나자 롭 포트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마이크를 이어 받았다.

"최근 연구 조사를 살펴보면 한미FTA의 경제적 효과가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양국이 모두 윈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졸속 추진 논란과 찬반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불러오며 1년여를 끌어온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의 서막은 이렇게 올랐다.

이에 앞서 정부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월 경 당시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직접 나서 스크린쿼터를 절반으로 축소하고 쇠고기 수입 재개를 결정했다.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한 조치였다.

정부측 움직이과 함께 한미FTA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도 바빠졌다. 3월 28일 민주노총,·한국노총·민주노동당·참여연대 등 300여개 단체로 구성된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가 공식 발족했다. 4월 17~18일 한미 양국은 비공식 사전협의를 통해 협상 일정을 논의했다. 그리고 5월 11일 우리 정부는 대외경제장관회의를 통해 협정문 초안을 확정했다.

[1차 협상] 각 분과별 초안 통합... ''4대 선결조건' 논란

▲ 지난 6월 7일 한·미 FTA 원정시위대의 집회에 미국 노조에서 나온 참석자들이 "다운, 다운, 다운, FTA"를 연호하고 있다.
ⓒ 강인규
그로부터 한 달 뒤인 6월 5일 미국 워싱턴에서 1차 공식협상이 열렸다. 양국은 1차 협상에서 각 분과별 협정문 초안을 통합해 협상의 기초를 마련했다. 범국본은 워싱턴에 원정투쟁단을 파견해 협상장 주변에서 한미FTA 중단 시위를 벌였다. 협상장 주변에는 이후 험난한 협상을 예고라도 하듯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1차 협상이 끝나고 정부는 6월 27일 공청회를 열었지만 협정문 초안 공개를 놓고 고성과 막말이 난무하면서 공청회가 무산됐다. 그 사이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 '준비가 부족한 졸속 추진' 문제를 제기했다.

졸속 추진 논란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무렵 이번엔 스크린쿼터 축소, 쇠고기 수입 허용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가 4대 선결조건을 미리 내줘 무리하게 협상을 진행했다는 비판이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을 통해 거세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국내 여론이 악화 일로로 치달았다. 이익단체뿐만 아니라 일부 학계에서도 FTA 반대 대열에 동참했다.

여론은 급격하게 반FTA 쪽으로 기울었다. 다급해진 청와대는 FTA체결지원위원회를 구성해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를 위원장에 임명됐다. FTA체결위를 중심으로 내부 홍보에 열을 올린 덕에 반대 여론이 다소 수그러들고 찬성 여론이 다시금 높아지기 시작했다.

[2차 협상] 의약품 분과 갈등으로 파행... 국회 한미FTA 특위는 '개점휴업'

7월부터는 서울에서 2차 협상이 열려 처음으로 양허안이 교환됐다. 2차 협상에서는 미국 측이 "한국의 새로운 약가 정책으로 차별을 받았다"며 의약품 분과 회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시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는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의 새로운 약가 정책은 의약품 작업반의 목적에 맞지 않고 FTA가 추구하는 개방정신과 모순된다"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우리 측도 이에 맞서 상품 분과 회의를 취소해 결국 2차 협상은 파행으로 끝났다.

한 동안 잠자고 있던 국회도 이때부터 꿈틀댔다. 2차 협상이 끝난 이후 한미FTA를 국회 차원에서 다룰 '한미FTA 특별위원회'가 꾸려졌다. 국회 특위는 그러나 특위구성 결의안이 통과된 지 한 달 가까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아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샀다.

▲ 국회는 31일 국회 한미 FTA 특별위원회를 열고 한미 FTA 협상 추진과정 전반에 대해 질의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3차 협상] '평화시위 진수' 보여준 시애틀 원정투쟁단

3차 협상에 앞서 8월에는 한미FTA가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외교, 안보 전략에 집착해 추진됐다는 취지의 대외경제위원회 안건 자료가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9월 6일부터 미국 시애틀에서 3차 협상이 열렸다. 범국본은 이번에도 시애틀 현지에 60여 명의 원정투쟁단을 보내고 한미FTA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원정투쟁단은 협상 기간 내내 평화시위를 고수해 시애틀 현지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시애틀 경찰들도 원정투쟁단의 평화시위에 '통제'가 아닌 '보호'로 화답했다. 국내 시위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압봉과 방패, 그리고 과격 시위도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4차 협상] '계엄' 방불케 한 제주 협상장

4차 협상은 10월 23일부터 제주에서 열렸다. 4차 협상이 진행된 제주 서귀포시 중문단지 일대는 경찰의 삼엄한 보호망 속에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돼 마치 계엄상황을 방불케 했다. 또 시애틀 시위 때와 달리 경찰과 시위대 간의 잦은 충돌로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4차 협상이 끝나고 채 며칠이 지나지 않은 11월 초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발견됐다. 미국 측은 "위생에 문제가 없다"며 즉각 반발했지만 미국산 쇠고기는 결국 반송폐기됐다.

▲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미 FTA 4차 협상을 며칠 앞둔 지난해 10월 17일 오전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앞에서 투쟁계획 발표 기자회견 열고 경찰의 부당한 집회방해 계획 중단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5차 협상] 한국 협상단의 강수,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그리고 12월 4일부터는 미국 몬태나에서 5차 협상이 열렸다. 뼛조각 논란이 채 아물기 전이었다. 미국 측은 계속해서 쇠고기 문제를 언급했으며 협상장 분위기는 삭막했다.

우리도 강하게 맞섰다. 우리 측은 미국의 반덤핑 규제 완화를 위해 6개 요구 사항을 미국에 제시했으나 미국 측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맞서 우리 측은 무역구제 협상을 계속해도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미국의 관심분야인 의약품과 자동차 협상을 중단하는 등 강수를 뒀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6차 협상] 비공개 협상문건 공개... 엉뚱한 '유출 공방'

해를 넘겨 2007년에도 협상은 계속됐다. 이때부터 양국은 차츰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1월 15일 서울에서 6차 협상이 열렸다.

6차 협상 기간 중에는 일부 언론에 우리 정부의 비공개 협상 문건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국회와 국가정보원이 문서 유출자 색출에 나서는 등 엉뚱한 파문이 일었다.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신문은 특정 의원을 문서 유출자로 지목하고 FTA 본질과는 상관없는 문건 유출 공방에 열을 올렸다.

[7차 협상] 반덤핑 요구마저 접어... 본격적 '퍼주기' 논란

7차 협상은 2월 11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렸다. 양측의 '주고받기'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이 때부터 '퍼주기 협상' 논란이 불거졌다. 우리 측 협상단은 한 동안 공세를 펴는 모양새를 보이던 반덤핑 분야의 요구를 접는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퍼주기'로 일관했다.

국민여론도 싸늘했다. 우리 협상단은 국민들로부터 취약한 협상전략과 기술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한 때 70%까지 육박했던 국민들의 한미FTA 찬성 여론이 반대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8차 협상] 합의 없는 평행선... 쌀 문제까지 등장

▲ 26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시작된 한미 FTA 최종 고위급협상에서 한미 양국의 대표로 나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캐런 바티야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협상에 들어가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3월 8일부터 서울에서 마지막 8차 협상을 거치면서 양측은 비핵심 쟁점 합의에 속도를 냈다. 전체 협상 분과의 90%까지 타결을 이끌었다. 하지만 농산물·쇠고기· 자동차 등 핵심 쟁점에서는 여전히 팽팽하게 맞섰다. 협상 타결 전망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이후 양국은 3월 19일부터 워싱턴에서 수석대표 고위급 회담을 열고, 26일부터는 최종 타결을 위한 통상장관급 회담을 서울에서 열었다. 막판 쟁점 '빅딜'에 나섰지만 별다른 합의 없이 평행선을 달렸다. 여기에 미국이 '최후의 담판'에서 쌀 문제를 들고 나와 협상을 더 꼬여가게 했다.

그러나 우리 측은 당초 협상 의제가 아니었던 쌀과 쇠고기를 "반드시 지키겠다"고 강조했으나, 오히려 이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다. 우리 측이 쌀과 쇠고기를 강조할 수록 미국은 핵심 쟁점마다 기다렸다는 듯 이 카드를 꺼내들었다.

[협상 타결] '졸속' '퍼주기' '갈등'을 남긴 채...

노무현 대통령은 협상시한 마지막날인 30일 청와대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으로부터 FTA 협상 진행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최종 결단을 내리기 전이었다. 그러나 양국은 당초 협상시한인 31일 새벽 7시까지 핵심 쟁점을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양국은 협상 시한을 넘기고 4월 2일 새벽 1시까지 '연장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협상 연장시한 마저 12시간을 넘긴채 협상이 타결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에 따르면 이번 협상은 얻은 것 없는 '퍼주기 협상'으로 마감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리 측은 공세를 퍼부어야 할 섬유나 자동차 부문에서 조차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협상 주도권을 미국에 내줬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쌀 문제는 이미 WTO 다자협상 대상으로 FTA 협상에서는 의제로 상정될 수 없는 사안이었다"며 "그러나 우리 정부가 '쌀은 지키겠다'고 강조하면서 마치 '쌀만 지키면 성공한 FTA가 된다'는 식으로 문제를 호도했다"고 말했다.

지난 1년 여 졸속 추진 논란과 찬반을 둘러싸고 숱하게 사회적 갈등을 불러온 한미FTA 협상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2007-04-0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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