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07-03-27 오전 9:49:40
[도시인을 위한 농업 이야기·3] 밥상 구조
가끔 시간 여유가 있어서 TV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노라면 가장 흔히 접하는 프로그램은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다.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살 빼는 이야기들이 줄을 잇는다. 이런 프로그램의 유행은 먹을거리 문제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 크게 높아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최근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배를 채우는 것에서 좀 더 맛있고 몸에 좋은 것을 찾는 것으로 옮겨지고 있다. 말하자면 양에서 질로 초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밥상이 이런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는가에 있다. 과연 마음 놓고 맛있는 것을 골라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기만 하면 되는가. 우리 밥상을 분석해보자.
수입 농산물이 지배하는 밥상
우선 쌀을 제외한 곡물류의 대부분은 수입 농산물이다. 쌀을 제외한 곡물의 자급률은 5%도 채 되지 않는다. 흔히 먹는 라면, 빵이 수입 밀가루로 만들어진 것은 웬만하면 다 아는 사실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런 수입 농산물은 안전하지 않다. 막대한 농약, 다량의 방부제가 쓰이기 때문이다.
인천항에는 한국 최대의 곡물 하역장이 있다. 이곳에서 곡물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이 어딘가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낟알이 도로에 떨어지는데 이를 근처 비둘기들이 날아와 쪼아 먹는다. 이렇게 줄곧 도로에 떨어진 수입 곡식을 먹는 비둘기는 곡식에 함유되어 있는 화학물질에 중독된다.
도로 위에서 비실거리다 지나가는 트럭에 치어 죽는 비둘기에는 이런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 있다. 언젠가 모 방송사에서 공개한 실험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수입 밀가루 속에 살아 있는 벌레를 집어넣었더니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는 실험 말이다. 우리는 벌레가 먹으면 죽는 밀가루를 시도 때도 없이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독성이 강한 수입 농산물이 허술한 식품 안전 관리와 검역 체계로 인해 무방비 상태로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입 농산물을 국내에 들여오려면 수입업자가 신고를 거친 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처음 수입되는 농산물의 경우는 정밀검사를 하지만 똑같은 농산물이 계속 들어올 때는 서류검사를 한다. 그 이후에는 무작위로 불시에 표본검사를 한다. 이 같이 허술한 검사 체계 탓에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수입 농산물이 시중에 유통될 수밖에 없다.
수입 농산물은 단지 주요 곡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입 농산물은 곡물을 재료로 하는 우리 먹을거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콩을 원료로 하는 음식을 예로 들어보자. 콩의 원산지는 만주인데 이곳은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였기 때문에 곧 한국이 원산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먹을거리 문화는 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콩으로 메주를 쒀서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근다. 음식 문화의 기초인 장문화의 원료가 콩인 것이다. 그 밖에도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콩나물을 길러 먹는 등 콩의 이용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이런 콩도 대부분 수입되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콩의 비중은 2003년 기준으로 7.3%밖에 되지 않는다. 된장찌개가 아무리 우리 음식이라고 열심히 먹어대도 그것은 십중팔구 수입 콩으로 만든 것이다. 겉만 우리 음식이지 속은 수입품이라는 얘기다. 심지어는 중국산 콩나물이 직접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콩나물 중에는 중국산이 흔하게 발견되고 있다.
농약에 절인 과실과 채소
그렇다면 여전히 국산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과일ㆍ채소류는 사정이 어떨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매우 고통스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식품의 안전성에서 국산 농산물이 결코 우월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현재 대다수 농민들 사이에는 농약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다.
통계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보다 열세 배나 많은 농약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결코 농민들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농약과 비료를 판매해 온 거대 자본의 논리가 강하게 작용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농약을 다량으로 투입해서 만든 농산물만이 상품 가치를 인정받는 풍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윤이 나고 큰 과일에 높은 등급을 매긴다. 그러나 이런 과일은 일단 농약으로 목욕을 한 것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자연 그대로는 결코 이런 모습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고기 역시 안전하지 않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해서 광우병 우려가 확산되면서 시민단체 차원에서 다각적인 대응이 모색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파고들면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육류 생산 과정을 자세히 알고 나면 육류를 섭취하는 게 어려울 정도다.
요즘 우리가 먹는 쇠고기, 돼지고지, 닭고기의 대부분은 공장형 축사에서 생산되고 있다. 공장형 축사의 가축은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꼼짝 못한 채 하루 종일 먹고 싸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다이어트를 원천 봉쇄함으로써 비육을 촉진하고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함이다. 물론 가축 입장에서는 이 과정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그렇다면 먹는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요즘 사료는 온통 '유전자 변형 작물(GMO)'과 항생제 범벅이다. 소의 사체를 갈아 만든 육골분 사료와 GM 옥수수, 감자, 콩 따위와 항생제를 버무린 배합사료에는 발암성 독극물인 포르말린 가루까지 뒤섞여 있다. 또한 다이옥신, 대장균, 중금속으로 오염된 물은 돼지가 먹어도 구역질이 절로 날 정도다.
도살 과정은 또 어떠한가. 돼지의 경우 한꺼번에 많은 돼지를 전기 충격기로 기절시키다 보니 맨 정신으로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육류를 사람들이 먹고 있다. 국산, 외산 또 어느 나라에서 수입되는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이래저래 요즘 먹을거리 문제는 국민들에게 심각하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사정을 제대로 알면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해로운 수입 농산물 유입을 막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국내 농업 체계를 혁신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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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길/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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