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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퀘이커

‘표주박통신’ 20년 김조년 교수(한겨레신문 070417)

by 마리산인1324 2007. 5. 15.

 

<한겨레신문>2007-04-17 오후 09:49:54 

http://www.hani.co.kr/arti/society/life/203637.html

 

 

사랑하는 벗, 맑은 생각 한모금 드시게

한겨레 권복기 기자
»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김조년 교수와 부인 이종희씨(오른쪽에서 두번째·세번째)가 자신이 이끌고 있는 독서모임 ‘젊은날에 만나야 할 사람, 생각 그리고 책’에 참여하고 있는 사학과 정문보미씨와 군 복무 중 휴가를 받아 찾아온 제자 밝우리나라(맨 왼쪽)씨와 교정을 거닐다 포즈를 취했다.
‘표주박통신’ 20년 김조년 교수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반대하며 14일 동안 삭발 단식하던 함석헌 선생에게 한 고교생이 편지를 보냈다. 함 선생은 그에게 친절하고 진지한 답장을 했다. 민족의 스승과의 편지교류는 고교생이 대학생이 되고, 군 복무를 할 때는 물론 독일로 유학을 떠난 뒤에도 계속됐다. 고교생은 퀘이커 교도로, 평화운동가로, 명상가로 ‘스승’의 뒤를 따랐다. 1989년 함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대학교수가 된 그 고교생은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편지쓰기를 시작했다. “잘 달리는 사람의 바통을 이어받아 계속 달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도 진리의 바통을 선생님으로부터 받아 쥐고 계속 달리기를 마음으로 바랐다.” ‘표주박통신’은 그렇게 탄생했다.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김조년 교수는 홀수달 마지막 날이면 늘 제자들에게 편지를 쓴다. 20년째다. 졸업하는 제자들에게 강단에서 못다 한 말을 전하기 위해 시작한 편지가 강산이 두 번 바뀐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다.

 

편지글은 삶의 단상에서 학문이나 시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그가 궁구해 깨달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언제나 ‘사랑하는 벗에게’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어떤 이에게는 따뜻한 위안과 격려가 됐고, 진리에 목마른 이에게는 지혜의 말씀이 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며 ‘표주박’도 자라나 처음 2쪽이던 편지는 36쪽의 도톰한 작은 책자가 됐다. 그의 편지를 처음 받은 이는 30여 명의 제자들이었으나 지금은 친구, 친지, 지인 등 1100여 명이고, 전자우편으로 받은 이들도 1400여 명이나 된다.

 

강단에서 못다한 말 전하려
제자들에게 홀수달마다 편지
‘자신 안의 위대한 영혼 개닫고
매순간 행복 느끼라’
제자들은 ‘기념’모임으로 보은


‘표주박’은 제자들에 대한 김 교수의 사랑에서 시작됐다.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1984년 귀국한 김 교수는 “사제 간의 인연이 상업적 계약관계가 되어버린 현실”을 넘어서고 싶었다. 하지만 80년대 대학가는 반정부 시위로 수업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그가 맡은 사회사상사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수업 때 주소를 남기고 가면 못다 한 강의 내용을 보내주겠다고 하고 30여 명의 수강생 모두로부터 주소를 받아놓았다. 다음해 3월30일 약속대로 막스 호르크하이머에 대한 글을 보냈다.

 

“딱딱한 글만 보내기가 그래서 편지를 하나 썼어요. 그냥 보내려다 이름을 붙이는 게 좋을 것 같아 옹달샘의 표주박처럼 세상에 맑은 생각을 퍼뜨리는 구실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표주박통신이라 이름지었습니다.”

 

김 교수는 “순하고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한남대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이른바 명문대생들에게 기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자존감을 키워주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

 

“사회복지 분야 일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는 훌륭한 일이지만 월급봉투는 얇고 사회적 인정도 거의 없습니다. 행복하게 살면서도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으려면 영성에 바탕해 살아야 합니다.”

 

그는 제자들 안에 깃든 ‘내면의 빛’을 일깨우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이를 위해 그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게 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행복한 경험을 이야기해 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마하트마 즉 위대한 영혼을 갖고 있습니다. 학생들 모두에게 마하트마가 있어요. 심지어 망나니 안에도 있지요.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게 ‘너 안에 마하트마’가 있다고 자꾸 이야기하면 그 사람도 바뀔 것입니다.”

 

김 교수가 제자들 마음에 새겨주고 싶은 것은 지식뿐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 안에 위대한 영혼이 있음을 알고 매 순간이 행복함을 느끼라’는 것이다. 표주박통신도 그런 가르침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4월9일 보낸 ‘95호’에서 고백했듯이 편지쓰기는 그에게 “하나의 수련이요 수행”이며 편지쓰는 시간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이 수행임을 깨닫게 해줬다.

 

일상을 수행으로 여기고 살지만 그도 힘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김 교수는 수요일이면 아내 이종희씨가 진행하는 명상춤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지난해 귀국한 아내 이씨는 독일에서 30년간 생활하면서 기독교 수행의 전통인 명상춤을 배워 보급하고 있다.

 

지난 3월30일로 표주박통신이 세상에 나온 지 만 20년이 됐다. 김 교수의 사랑이 담긴 편지에 답하기 위해 제자들이 작은 모임을 마련했다. ‘표주박통신 20주년 기념 모임’이다. 20일부터 이틀간 한남대 두양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첫날 박원순 변호사, 둘쨋날 장회익 전 서울대 교수와 독일 퀘이커로 비폭력 평화운동가인 우테 카스파스가 특강을 하고 축하 행사도 열린다. pyojubak.hannam.ac.kr. (042)629-8060.

 

대전/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가능하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한 사람, 장자에서 말하는 진인(眞人)이 되어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면서, 여기서 사는 동안은 그 시늉을 하면서 알아가는 것이겠지요. 혹시 그러다 보면 나다니엘 호돈의 작품 ‘큰 바위 얼굴’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큰 바위 얼굴을 닮아갈런지도 모르지요.(표주박 통신 94, 2007년 1월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