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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퀘이커

간디와 함석헌 선생의 숨결이 담긴 곳 - 우드부룩(구리넷 061109)

by 마리산인1324 2007. 5. 15.

 

<구리넷> 2006/11/09 [19:13]

http://www.gurinet.org/sub_read.html?uid=3316§ion=section10

 

 

 

생명평화의 길을 찾아 (2)
간디와 함석헌 선생의 숨결이 담긴 곳 - 우드부룩
 
문승원
 

  한국 사람들 중에 우드부룩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직접 가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함석헌 선생님과 박성준 선생님, 그리고 이번 연수를 함께 진행해 주시는 정지석 박사님 세 분 뿐이다. 함석헌 선생님은 많은 분들이 아실 것이고 박성준 선생님은 (부인께서 국무총리가 되어 더 유명해지셨지만) 성공회대학교의 교수님이다. 몇 해 전, 구리YMCA 실무자 연수에 강사로 모셔서 한번 뵌 경험이 있다. 이 세분의 공통점은 ‘평화학’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며 이 관심은 바로 이곳 ‘우드부룩(woodbrooke)’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드부룩을 이해하려면 퀘이커(Quaker)교에 대하여 먼저 이해하여야 한다. 퀘이커교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은 약간의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엄연한 기독교의 한 종파임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도 없고 예배형식도 없는 것에 대해 이단시 하고 병역을 거부하기 때문에 의무복무를 법제화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법적 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여호와의 증인과는 다르다.)

▲ 우드부룩의 건물 모습. 왼쪽부터 본관, 별관, RTC센터, 운동장이다.    © 문승원

 
  나도 이번 연수를 준비하며 퀘이커교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게 되었다. 퀘이커교의 원래 명칭은 ‘형제들의 단체(Society of Friends)'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모여 예배를 드릴 때 영적 감응에 의하여 ‘몸을 부르르 떤다(Quaker)’고 해서 퀘이커라는 다소 비하하는 별칭이 생기게 되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들에 대해 무어라 부르던 크게 문제 삼지 않아 결국 퀘이커라는 이름이 일반화 되었다고 한다.
 
  퀘이커교는 1650년대에 영국의 조지 폭스(George Fox)가 제창한 명상운동이다. 그는 4년간의 구도여행을 통해 펜들힐(Pendle Hill)이라는 산에서 환상을 보며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영국정부에 의해 탄압받았으나 북미대륙으로 건너와 도시(미국 펜실베이니아)를 세우고 종교적 자유를 허락받았다고 한다.
 
  퀘이커의 교리를 (내가 이해한 만큼) 간단히 설명하면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영을 갖고 태어난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미 하나님의 영이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따라서 목회자가 필요치 않으며 전도도 필요치 않다.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영을 얼마나 깊게 자기 스스로 추구하느냐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때로는 매우 은둔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매우 행동적이기도 하다.
 
  이들의 예배형태를 보면 조금 더 이해가 간다. 십여 명의 교인들이 둘러 앉아 예배를 시작하면 모두 침묵에 잠긴다. 그러다가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조용히 이야기하고 다시 침묵한다. 내가 참가했던 예배에서는 약 한 시간 정도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자연스럽게 침묵을 끝내고 차를 나누고 대화한다. 이것이 예배의 시작과 끝이다.
 
  보지는 못했지만 가끔 카톨릭 신부님들이 함께 하시기도 하고 불교의 스님들이 함께 하실 때도 있다고 한다. 한 교인의 말에 따르면 한번은 이슬람교의 사람이 예배에 참석하여 코란을 암송하기도 했는데 그 또한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감동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해가 될 듯 안 될 듯하지만 이러한 포용력이 이들을 무한한 평화주의자로 만드는 것 같았다. 갈등이 생길 이유가 없었다. 무슨 말이나 행동도 모두 받아들여지고 동화되는데 무슨 갈등이 있겠는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신과 다르다고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짓고 전쟁과 죽음을 부르고, 평화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기독교원리주의자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더 쓰다가는 내가 퀘이커교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을 전언하고 퀘이커교에 대한 소개는 이만 해야겠다.
  “나는 갈수록 퀘이커가 좋습니다. 좋은 이유는 그들은 형식을 차리지 않기 때문이요, 교리나 신학 토론에 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사도 없고 신부도 없고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겠다는 것도, 누가 뉘게 배우겠다는 것도 없이, 그저 살림을 통해서 하는 전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종교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고, 속이 넓으면서도 정성스럽습니다. 누가 와도, 불교도가 오거나, 유니테리언이 오거나, 무신론자가 온다 해도, 찾는 마음에서 오기만 하면 환영입니다. 그러니 참 좋지 않습니까?”

▲ 왼쪽부터 자원봉사자들이 가꾸는 유기농 농장, 아침 저녁 예배와 강의를 하는 세미나실, 식사후 커피를 즐기는 정지석 박사와 경원대 박경빈 교수, 강의를 진행해 준 벤 교수와 참가자들    © 문승원

 
  아무튼 우드부룩은 이러한 퀘이커교의 연구소와 같은 곳이다. 하지만 교리를 연구하는 곳이 아니고 세상의 평화에 대하여 연구하는 곳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종파와 인종을 초월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평화를 연구하였다. 그렇게 이곳에 온 사람들이 연구하고 생활한 것과 같이 이곳은 정말 평화로운 곳이었다.
 
  크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크기만큼이나 넉넉한 곳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안내를 담당한 스텝이 정말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곳은 방문자가 매우 많기 때문에 사전에 예약을 하고 허락을 받지 않으면 들어올 수가 없다. 심지어 자원봉사자들도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아직도 허락받지 못한 전 세계의 자원봉사자들이 수백이라고 하니 그 명성의 대단함을 느꼈다.
 
  들어가자마자 사전에 준비된 네임카드를 나누어주었다. 이것이 열쇠를 대신하기 때문에 꼭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 다음에 각자 묵을 숙소로 안내해 주었다. 두 사람이 한 방을 쓰도록 되어 있는 숙소는 각 건물의 위층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전주YMCA 이근석 사무총장님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방을 안내해 주던 정지석 박사님이 우리를 보며 의미있는 미소를 지어 보냈다. 내가 쓰게 된 방이 정 박사님이 쓰던 방이란다. 그러면서 덧붙이시는 말씀이 그 옆방이 간디가 이곳에 와서 수학할 때 쓰던 방이란다. 간디가 쓰던 방의 옆방에서 묵게 되다니.. 이런 영광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간디가 쓰던 방에는 인도인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교육이 시작되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뒤뜰로 나서는 순간의 놀라움이란..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있을까.. 작은 호수와 잔디가 깔린 정원, 아름드리 나무들, 크기도 가늠할 수 없는 천연 잔디 운동장, 수많은 꽃들, 700평 정도 된다는 유기농 농장, 그 위를 날아다니는 이름 모를 새들, 그 속에 자리 잡은 아담한 2층 건물들.. 마치 이곳은 수백 년 전 이 세상이 공해로 물들기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은 유명한 초콜렛회사 사장인 죠지 캐드버리(George Cadbury) - 한글로 쓰니 이상하다. 알아서 읽으세요 - 가 자신의 가족 저택을 퀘이커교단에 내 놓고 우드부룩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사람은 이곳뿐만 아니라 버밍험대학교와 셀리옥컬리지의 땅도 기증했다고 하니 퀘이커의 청빈함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버밍햄의 많은 지역이 공장지대이지만 유독 이 부근만은 그가 모두 사들여 녹색도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부자들도 좀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땅을 이용해 불로소득 올리기에 급급하니 수준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 바퀴 둘러본 후 첫 강의시간을 맞았다. 첫 강의는 Ben Pink Dandelion 교수로부터 우드부룩과 퀘이커의 평화사상에 대하여 듣는 시간이었다. Pink? 예상했던 대로 양복입은 교수님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청바지에 헐렁한 남방을 입고 귀에 서너 개의 귀고리를 한 교수님이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귀고리에 집중되었지만 정작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2시간 가까이의 긴 질문과 대답이 진행되었다.
 
  진지한 질문과 대답이 오고갔다. 특히 우리 대부분은 퀘이커의 평화운동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다. 예상과는 달리 매우 행동적인 퀘이커의 평화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특히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RTC(Responding to Conflict)프로그램은 매우 인상깊었다. RTC프로그램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어느 나라에 매우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있다면 이 갈등의 이해당사자들을 우드부룩으로 불러 갈등이해, 중재의 분석, 평화만들기, 행동의 준비 등의 교육을 하고 다시 돌려보내 그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되도록 돕는다. 특히 이 프로그램의 참여자들에게 드는 비용의 대부분을 RTC센터에서 부담한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에는 15개국에서 24명의 참여자들이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우간다, 스리랑카, 시에라리온, 나미비아 등 우리가 잘 아는 분쟁국가들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간 사람들이라면 분명 그 나라의 평화운동을 위하여 앞장 설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감명 깊었던 것은 프로그램에 대해 매우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 이미 2007년도의 모든 프로그램이 확정되어 있었고 그 이후 몇 년간의 프로그램의 방향도 이미 다 설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한두 달 전에 부랴부랴 계획하고 진행하는 우리와는 그 준비과정부터 판이하게 달랐다. 오랜 전통으로 다져진 이념과 실천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 우드부룩의 평화로운 전경. 꼭 다시 한번 가 보고 싶다. 그 때는 방문객이 아닌 공부를 하는 학생으로 가 보고 싶다. 그럴 날이 올까..   © 문승원

 
  그럭저럭 안 되는 영어를 해 가며 강의 또는 대담을 마치고 저녁식사시간이 되었다. 식사메뉴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채소류는 거의 모두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서 참가자들이 재배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식사시간이 되면 바구니를 든 몇몇 식사담당 자원봉사자들이 농장으로 가서 필요한 만큼의 채소를 가져오는 모습을 보며 이들은 식사 역시 프로그램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다. 식당의 자리가 다 찰 무렵 어느 한 사람이 잔을 두세 차례 두드리고 일어나 간단한 기도를 제안했다. 묵념일지 기도일지 모르는 침묵의 시간을 약 1분정도 갖은 후 다시 식사를 했다. 아주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커다란 컵에 맛좋은 원두커피를 가득 담아 정원 벤치에 모여 앉았다. 말없이 앉아 있어도 느낄 수 있는 우리 마음속에 가득한 평화로움이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하는 듯 했다. 이 평화를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꼭 간직해서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아마도 간디도 함석헌 선생님도 우리의 마음과 같으셨을 것이다.
 
(3편에 계속)
 
▲ 오랜만의 여유를 나무 밑에서 명상하며 지냈다. 생명평화의 세상을 꿈꾸며..    © 문승원

 
2006/11/09 [19:13] ⓒ 구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