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20일(금)
공동체의 의사결정과정은 어떠해야 할까요?
많은 공동체가 의사결정과 소통의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브루더 호프 공동체에서는 회의에서 금기 언어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아니오’라는 말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 곧바로 반대하거나 부정할 때 상대방은 그 말로 인해 상처를 입게 되며, 이로 인해 서로 불신의 골이 생기게 되고 이런 부정적인 인간관계는 공동체에 치명적인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 존중하고, 부드러운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도록 요구받게 됩니다.
반대로 기업과 같은 곳에서는 이런 부정과 논쟁의 언어가 적극적으로 권장되거나, 이를 잘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인 결정과 집행의 중요한 기술이 됩니다. 기업에서는 인간관계에 매여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기업에 치명적인 위기가 되기 때문이지요. 기업은 그 공동체의 성장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통해서 이익을 얻는 것에 목적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공동체들의 대화 방식과 의사결정 방식은 어떠합니까? 아니 대화와 회의에 대한 원칙과 철학은 무엇입니까? 이 원칙과 철학에 따라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가 결정됩니다.
제가 광명YMCA에 처음 들어와서 훈련받은 것이 회의진행법이었습니다. 황주석 총무님은 다짜고짜 저에게 회의에서 동의가 영어로 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agree'입니다. 그 다음 질문은 그럼 재청은? “글쎄요, re-agree인가요?”라고 하면서 우물쭈물했고, 저 스스로도 참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습관적으로 동의, 재청을 이야기 했으면서도 정작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은 동의와 재청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회 운동의 관행에서 회의는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했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별도의 조직에서 은밀하게 하던 방식에 익숙했기 때문에 우리는 회의를 통해서 의사를 정확하게 결정하는 의의를 몰랐던 것입니다.
동의는 영어로 motion입니다. 의제를 성안해서 제안한다는 의미인 동의(動議)입니다. 그리고 재청은 동의된 의제에 대해 찬성한다는 재청(再請) seconding, 혹은 agree입니다. 이러니 매번 YMCA 간사회의를 할 때마다 회의 진행법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매월마다 이사회를 해야 하고, 온갖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간사들이 정작 회의는 대충대충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런데 또 하나, 회의 진행과 관련해서 갖게 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제가 연맹에서 일하면서 받은 회의 사무에 대한 훈련은 회의의 결과에 대해 엄밀하게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소 어색한 문장투지만 ‘00하기로 하다.’는 식의 준 법률적, 결정문과 같은 방식으로 회의록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두런두런 나눠진 회의라도 뭔가 분명한 결정이 내려진 것처럼 정리될 수 있고, 그런 회의록이 확정되면 상당한 효력을 갖게 되기 때문에, 서기가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우스개처럼 이야기 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정리된 회의록을 받아보면 당사자들은 ‘아 그때 그 이야기가 이렇게 하는 것으로 된 것이었나?’ 하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편안하게 담소하듯이 진행된 회의가 분명한 결정으로 정리되는 것은 앞뒤가 안맞기 때문입니다.
아데나워 재단의 고상준 선생과 오랫동안 민주시민교육 방법론 프로그램을 같이 하면서 회의진행에도 다양한 방법들을 도입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스티카 붙이기, 브레인 라이팅 등 부드럽고 재미있는 방법들로 회의의 과정을 변화시켜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이 회의진행의 모든 것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깊이 성찰하고,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고, 생각을 발전시켜서 정리해 내는 과정은 아무래도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다듬어 져야 하는 것 같습니다.
여성들은 남성화된 딱딱한 방식의 회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수다 떨듯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나누다 보면 이야기가 모아지고 ‘그렇게 합시다.’라고 정리되면 자연스럽게 넘어갑니다. 기존의 회의방식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회의 이후의 뒤끝도 좋아서 이 방법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그룹에서는 적당한 것 같지만 조금 더 규모가 큰 회의가 되면 이야기가 모아지는 역동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시간이 늘어지고, 이야기가 산만해지고, 그래서 결국은 기성의 회의방식으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러저러한 회의진행과정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회의의 목적에 대한 의문입니다. 회의가 의제를 결정하는 과정이라면, 보다 효율적인 방식을 도입하면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전자투표도 있고, 민주시민교육방법론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의가 그런 딱딱한 사무행정이 아니라, 회의를 통해서 공동체가 이루어지고, 그 공동체가 성장하고, 구성원간의 관계가 더 강화되고, 새로운 비젼을 생산하는 그런 놀랍고도 신비한 일이 일어나는 시간이라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회의가 그래야 하고, 그런 회의가 없다면 온전한 공동체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우리의 회의진행법은 새롭게 변화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퀘이커 공동체는 예배와는 다른 형식의 Business Meeting이 있습니다. 이 회의는 공동체의 성장을 목적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퀘이커 공동체를 유지하는 두가지의 중요한 모임은 바로 예배와 비즈니스 미팅입니다. 예배는 자신 속에 있는 신성한 것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신과의 만남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물론 이 예배에서도 자신의 감동을 서로에게 전하는 감화도 있고, 함께 집단적인 침묵을 통해서 공동체의 역동성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배의 기본 설계는 공동체적인 영성을 통해서 신과의 수직적인 소통을 이루는 것에 있습니다.
반면 비즈니스 미팅은 수평적인 소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1달 동안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삶이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기에 적합했는지를 서로 점검하고, 이를 통해서 함께 실천해야 할 과제들을 정리해 냅니다. 물론 구체적인 사무행정에 대한 결정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의사결정과정의 핵심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친구라는 것을 확인하고, 서로의 결속을 높이고 공동의 비젼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비즈니스 미팅을 마치면 서로에게 감동하고, 결정된 내용들에 대해 내면화 하는 또 다른 신념화가 이뤄집니다.
그래서 퀘이커의 신념체계도 기본적으로 신과의 거룩한 만남, 그리고 사회적인 공동의 실천의 두 축으로 구성됩니다.
퀘이커는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서 세세한 규정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반드시 예배를 먼저 드리고, 참가자들은 예배에 참가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사회자의 자세와 역할도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규정들은 회의이전에 갖추어야 하는 마음가짐과 회의의 목적을 내면화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비즈니스 미팅에는 정해진 질문들이 있습니다. 이 질문들을 사회자가 낭독하고, 참가자들은 그 질문에 대해 묵상을 함께 합니다. 그리고 나서 묵상에 따라 각자가 정리한 생각들을 발표합니다. 질문들은 공동체가 정한 목적에 우리의 일상 활동들이 부합되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점검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질문에 대해 자신의 행동을 비추어 보면 반성의 기준과 반성의 결과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 확인됩니다.
예를 하다 들어보겠습니다.
Ohio 연례회의의 회의를 위한 질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서문>
이 질문지들은 연례회의를 통해서 우리 공동체가 크리스챤의 생활과 행동, 회원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는 수단을 제공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연례회의에서는 정기적인 모임에서 참가자들은 자기 점검을 하고, 회원들이 매일의 생활에서도 이 기준들을 지키도록 훈련하는데 힘쓰도록 권고한다.
<질문지>
아래의 질문들은 매번 회의에서 차분하게 읽고 숙고하고 거기에 응답하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요약보고서를 회의록으로 채택한다.
질문1. 우리는 예배 모임에 제시간에 출석했으며, 잘 참여했는가? 예배의 묵상에서 우리는 진실했으며, 신과의 교감을 잘 이루었는가? 우리는 영적인 예배를 위해 기다리고 복음의 선교를 자유롭게 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가? 우리는 다른 이들을 환영하고 친교를 나누는데 진심을 다했는가?
질문2. 우리는 용서의 영성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한 것과 같이 사랑 안에서 걸어가기 위해 힘썼는가? 우리 각자는 다른 이들의 신앙을 위해 배려하고 있는가? 우리의 이웃들을 나 자신과 같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회원들 사이에 그리스도의 조화와 일치를 해치는 일들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10가지 정도 됩니다. 각 모임의 특성에 따라 읽는 질문지가 다르게 정해지는데 어쨌든 이런 질문을 받고나면 다들 자신의 행동을 반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자가 읽은 질문을 받고 여기에 대해 묵상을 하고 나서 각자의 고백을 합니다. 이 고백들을 정리한 회의록은 참가자들에게 확인한 후 승인됩니다. 이것은 그 공동체가 다음 비즈니스 미팅때까지 지키게 되는 하나의 지침서가 됩니다.
회의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연례회의는 아래와 같이 질문지들에 대한 내용을 정리했다--
질문1. 우리의 모임은 대체로 잘 이뤄졌으며, 늦게 오는 이들은 다른 이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우리의 예배는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예배에서의 일반적인 실천은 묵상과 기도를 촉구하는 것이다. 세례를 받는 시간인 기다리는 예배와 하느님과의 교제는 우리의 목표이다. 더 많은 이들이 우리의 예배에 초대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역할을 해야 한다. ----
이러한 질문과 이에 대한 응답을 통해서 이들은 신앙공동체로서의 품격을 서로 다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서 참가한 이들이 신성을 가진 친구임을 확인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회무처리를 하게 됩니다.
회무처리에서도 여러 가지 규정들이 있습니다.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언어들, 사용을 권장하는 언어들이 정해져 있습니다. 다른 이의 발언에 대해 이견을 제시할 때도 저의 의견은 이렇습니다만, 공동체의 결정에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이런 발언이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회의록은 그 자리에서 채택을 합니다.
오늘 수업에서 들은 이야기라서 정확한지, 모든 퀘이커 모임이 다 그러한지는 아직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퀘이커 모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입증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가에 맞추어집니다.
예전에 등대모임에서 어느 분이 우리의 생활약속을 의문문으로 읽어보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지역자치에 관심 갖고 적극 참여하고 있는가?” 짧은 질문이지만 할 이야기가 참 많은 질문입니다.
모임 때마다 생활나눔을 해보면, 개인의 신변잡기가 많이 이야기 됩니다. 모임에 모여서 할 이야기로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왜 모였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보다 분명하게 정리되는 질문지가 이야기를 모아주는 안내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많은 모임을 하면서 다수의 유지지도자들은 모임에 지치기 쉽습니다. 그리고 부담스런 행정사무를 결정하는 회의는 참가자들이 의무처럼 느끼기 쉽습니다. 많은 경우 회의는 짧게, 뒷풀이는 진하게 하는 것들이 그런 회의에서 오는 문제들에서 기인하고 있습니다. 실무자들은 습관처럼 모임을 준비해서 오히려 반복되는 모임이 조직의 동력을 떨어뜨리지는 않는지 검토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모임을 통해서 그 모임이 계속 성장하고, 모임을 통해서 참가자들의 성숙하는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각 모임의 목적과 목적에 맞는 방식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모임을 위한 설계도를 정교하게 다듬는 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회의가 참 은혜롭고, 회의를 통해서 모두가 기쁨과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회의가 기다려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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