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이커 소책자 제1호>
종교친우회 서울모임 간행
퀘이커의 기원
이리에 유끼고 / 조동설 역
‘퀘이커'(Quaker, 떠는 사람)란 어휘는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 및 그와 신앙을 같이 한 사람들이 영감을 느낄 때 부들부들 떨었기 때문에 그것을 본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며, 그 신도들은 자기들 스스로를 friends(친우, 그리스도의 벗)라고 불렀다. 오늘에 있어서도 ‘친우'가 정식으로 불리우는 이름이지만 그들은 별명이 불리어져도 조금도 꺼리지 않고 후에 자신들이 수시 ‘퀘이커'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퀘이커의 시조는 조지 폭스(George Fox)이다. 그는 1624년 7월 영국 레스터셔(Leicestershire)의 이름도 없는 직조업자인 크리스토퍼 폭스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러나 양친이 다 신앙심 깊은 청렴결백한 분들이어서 본래 성품이 조용하고 조심성 깊은 조지는 그 양친의 손에 청결함과 바른 것을 사랑하는 어린이로서 자랐다. 학교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비상한 감수성, 통찰력, 인간으로서의 깊이, 강건불굴의 기상 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폭스의 일기에 의하면, 그가 11세 때 안으로는 하나님께 대하고 밖으로는 사람을 대하여 성실하게 살며 여하한 일에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깨우침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조지가 처음으로 받은 계시였으며, 그의 일생을 통한 생활의 원리가 되었다. 그러나 조지가 출생한 그 당시는 영국사상 유래가 없는 내란 정변이 계속되는 소요와 혼돈의 시대로서 종교계・사상계의 동요가 심하였다. 본래 민감하고 순수성을 사랑하는 조지는 그 시대의 파도에 심한 우롱을 당하기에 꼭 알맞는 운명의 소유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심양면으로 점차 깊이 들어가게 된 인생의 고민과 의혹을 어떻게 할 수 없어 결국 19세 때 근본적인 해결을 구하기 위하여 집을 나와 거리에서 방황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목사나 학자도 그에게 납득이 갈만한 해답을 줄 수는 없었다. 그는 이로 인하여 신앙의 충실성이 어떠한 교회 제도나 의식, 학력, 신학, 신조와도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혼미한 가운데 있을 때 그를 구하고 인도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그리스도와 바로 곁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 뿐이었다.
고난이 더 해지면 더 해질수록 점점 더 하나님의 은혜는 깊어지고 잇달아서 계시를 받아 결국 23세 때에 사명감을 느끼어 전도에 몸을 던질 것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교회에 살지 아니하고 사람의 참 마음 속에 사신다고 부르짖고 참의 스승은 전도를 업으로 삼는 목사가 아니라 각자의 참 마음의 구석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외치는 그가 세상에 받아들여질리 없어 영국 국교회, 장로교회, 카톨릭교회, 침례교회 등의 증오를 사서 67세를 일기로 하여 하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박해가 그칠 날이 없었다. 시세가 어떻게 변하여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것으로서 세속의 여하한 권위로도 그의 진리를 보는 눈,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따르는 순수하고 철저한 정신을 조금이라도 굽힐 수는 없었다. 그 권세를 마음대로 구가한 크롬웰까지도 폭스와 그의 신도를 가리켜 “내게는 두려운 자가 따로 없으나 단지 하나 명예도 지위도 물건도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는 일파가 생겼다”고 탄식할 정도였다.
폭스의 신앙의 입장을 약술하면 이러하다.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인 항상 살아있는 성령이어서 일체의 유한된 인간 지성의 영역을 초월한다. 그 앞에서는 여하한 신학이나 종교제도・의식・신조도 인간적 조작에 불과하다. 구원은 순수하게 성령을 느끼고 그 인도함에 따라 일체를 내어놓는 일이며, 다른 여하한 것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 신앙이 여하한 뜻으로도 물질이나 형식에 의하여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인생의 순간 순간이나 이 세상의 일체가 전부 하나님 안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교회만을 성지라고 부르고 특정한 때 특정한 형식에 의하여서만 예배를 행하고 평상시에도 은밀하게 존재하여 세상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무서워할 줄을 모르는 세상의 많은 기독교인의 생활 태도에 참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느꼈다.
성서도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귀중한 문헌이기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헌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성서를 쓴 사람의 정신에 상통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성서를 쓴 사람들을 인도한 같은 하나님이 지금도 엄연히 사람들을 직접 인도하고 있다고 본다.
friends가 신앙은 곧 생활이라는 신념에 살며, 교회도 가지지 아니하고 목사도 가지지 아니하고 종교적 의식도 가지지 아니하고 단체로서의 예배도 다만 조용한 가운데 회중의 마음을 하나로 하여 성령의 인도함을 기다리고 바라는 것을 취지로 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살아있는 성령을 느끼고 지상의 여하한 의도도 초월하여 순수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는 인간의 참 마음을 폭스는 ‘속의 빛' 또는 ‘하나님의 씨', ‘내적 그리스도' 또는 경우에 따라 ‘가슴 속 깊이 숨겨져 있는 사람' 등등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사람과 경우에 따라서 흐려져 있는 수는 있어도 본래 만인에게 주어진 본질로 보는 것이다. 폭스를 비롯한 friends가 절대 비폭력의 평화주의의 입장을 취하여 인종・종교・국적・성・직업의 차이가 어떠하던지 간에 세계 인류의 자유・평등과 우애를 위하여 생명을 건 노력을 계속해온 것은 여하한 사람도 하나님에게 통하는 본질을 가진다고 하는, 즉 인격의 존엄에 대한 절대 신앙으로부터 나온다. friends의 이 신앙의 본질로 인하여 전도의 방법도, 신도가 생기는 방식도 또한 특이하였다. 폭스는 23세 때부터 44년간 전도에 종사하였으나 대사원도, 감옥의 한 구석에서도, 궁정도, 가두도, 박해의 도중도, 문자 그대로 어떠한 곳이든지 가릴 것 없이 성령의 움직임을 가슴 속에서 느끼는 대로 전도하였다. 전도의 목적은 만인이 본래 주어진 진정한 스승 ‘내적인 빛'에 만인의 눈을 향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길에 눈뜨게 하는 것이며, 그것은 인간을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따라서 소위 말하는 나의 편에 들어올 사람을 모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또한 새로운 종파를 만드는 생각조차 가지지 않았다.
폭스가 미국의 로드 아일랜드(Rhode Island)에서 여행하고 있을 때 어떤 거리에서 그 전도 내용에 감동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모아 폭스를 스승으로서 머무르게 하고 싶은 뜻을 제의하였을 때, 폭스는 한 마디로 “그러한 생각이 있다면 나는 잠시라도 더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머물러 있어서는 여러분께서 내적 스승에 따르고 여러분 자신의 힘을 자라게 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즉시 자취를 감춘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friends가 된다고 하는 것은 friends의 신앙이 그 사람의 속에 들어가 살고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본래부터 인간적인 조직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정신이 그 사람 속에 살고 있는가 없는가가 그 사람이 friends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엄숙한 사실이며, 회원인가 비회원인가는 이차적인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friends는 사람에게 결코 입회를 권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혼은 혼에 통하여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네덜란드, 독일, 미국으로 폭스의 전도하는 도처에 박해의 장벽을 넘어 같은 신앙으로 살아 나가자고 하는 신도의 무리가 생겼다. 개인 주택이나 산그늘 밑에서 침묵의 예배를 하는 조그만 무리가 생기고, 그것이 세상의 박해를 참아가며 상호의 수양・봉사・전도에 열중하기 위하여 지역마다 서서히 모임의 조직을 이루게 되었다. 이것이 월회(月會, Monthly Meeting), 계절회(季節會, Quarterly Meeting), 연회(年會, Yearly Meeting)의 시초이며, 얼마 후에는 독자적인 학교까지도 건설하게끔 되었다.
또 폭스 자신은 이름도 없는 가문의 무학한 분이었으나, 그 논설은 동서고금의 성자(聖者)・현철(賢哲)에 못지않은 것이었으며, 영국 교회의 대개혁을 갈망하고 있던 제 종파의 많은 귀족 및 학자들 간에도 깊이 침투하여 그 중에서 많은 걸출한 신도들을 얻었다. 그 현저한 예는 퀘이커의 이념에 따라 펜실베니아를 건설한 윌리암 펜(William Penn), 학자이며 신학자인 로버트 바클레이(Robert Barclay), 신비주의자이며 성자인 아이작 페닝턴(Isaac Penington) 등이다. 그러나 폭스 및 초기 퀘이커 신앙의 본질은 조리 정연한 신학이나 철리에 맞는 것은 아니고, 일체의 언어를 압도하는 직접 느끼는 하나님의 사랑과 힘, 신앙과 생활의 일치성, 지상에 있으면서 영원의 생명 속에 사는 사랑과 겸손,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는 어떠한 세상의 고난도 감수하려고 하는 진실과 용기, 바로 그것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퀘이커의 길은 폭스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도,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신 바와 같이 남모르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듣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수하게 따르는 것이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인간의 참 마음의 길이며, 종교・종파・인종・국적 등 일체의 차별을 초월하여 만인에게 호소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폭스가 출생하여 300년이 되지만 이 신앙은 세계 인류가 고난을 겪을 때마다 점점 더 빛을 내어 오늘날 퀘이커라고 자칭하는 자는 세상에 불과 16만명을 넘지 못하나 세상 도처에 무수한 협력자를 가지고 점점 더 강력하게 사랑과 창조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퀘이커 서울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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