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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함석헌

함석헌의 평화사상(안병무)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8.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http://www.ssialsori.net/data/ssial_main.htm

 

<사람과 사상> (한길사) pp.153-175

<민족의 큰사상가 함석헌선생> (한길사, 2001.4), pp. 383-412

 

 

 

함석헌의 평화사상

안병무


  1. 머리말

 

  함석헌의 평화사상은 한국의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사이의 민족사와 유리시켜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의 평화사상을 추구하는데 여러 가지 길이 있겠으나 역사적으로 파악하려면 구체적인 패러다임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함석헌의 경우를 한국 평화사상의 한 실체로 고찰하려고 한다.

 

  함석헌은 조선조 말엽에 태어나(1901년) 일제 식민지 시대의 수난을 고스란히 당하면서 두 차례 투옥되었는데 그러는 동안에 그의 인간성이나 사상이 형성됐다.  해방 후 공산치하에서 민에 의해 끌려나오다시피 하여 평안북도 문교위원장 자리에 있다가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신의주학생사건의 배후 조종자로 찍혀 인민재판을 방불케 하는 과정을 통해 소련군사령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50일 만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석방되었다가 다시 체포되었는데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정보를 제공해줄 것을 강요받았다.  이 때문에 더 이상 북에 머물 길이 없어 남하하였다.  남하하여 종교인이라는 딱지가 붙을 정도로 조용히 종교적 영역을 탐색하는 집회를 계속해오다가 이번에는 글 한 편을 쓴 죄로 남한 정부에 체포되어 40여 일간 고문을 당했는데 거꾸로 매달리는 치욕을 경험했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  그를 고문한 경찰은 일제하의 고등계 형사였다.  남한 정부에서 고문당한 것은 필화사건인데 그 내용 중에 "남은 북을 괴뢰라고 하고 북은 남을 괴뢰라고 하니 있는 것은 괴뢰 뿐이요 참 나라는 없는 셈" 이라는 내용이 초점이었는데 그의 말대로 그는 자기 땅이면서 정착할 데 없는 자신을 뼈저리게 실감한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은 대 정부투쟁 따위를 생각하지 않고 요청 받은 글이나 쓰고 종교집회를 계속하다가 미국무성의 초청을 받아 미국 시찰을 하고 뒤이어 영국을 거쳐서 유럽 전체를 유람하였다.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로 군림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정권을 양심적인 민간인에게 이양하겠다던 약속을 뒤집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눌러앉겠다 하는 선언을 듣고 그의 속에 잠재했던 저항심과 분노가 폭발하여 서둘러 한국에 돌아온 것이 반정권투쟁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함석헌은 쉬지 않고 민주화의 전선에서 상징적 역할을 했고, 잡지사 '사상계'(思想界)의 요청으로 글을 쓰면서 국민 앞에 나타났는데 그로부터 계속 권력의 사찰을 받고, 납치되고, 재판정에 서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정죄를 당하는 쓴 경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런 삶의 과정에서 그는 평화사상을 계속 주장해왔으며 때로 민주화의 전선에 선 젊은 청년들의 과격성과 상충되어 쓴맛을 보기도 했지만 평화에의 갈구를 양보하거나 늦추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삶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함으로써만 그의 평화사상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2. 함석헌의 평화론의 사상적 배경

 

  함석헌은 서구화된 교육제도 하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끝까지 동양 사람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는 스스로 대학을 못 가본 사람이라는 것을 약점과 같이 얘기했는데 그 때문인지 모르나 그의 주장의 서술방법은 어디까지나 동양적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계속 평화를 말하나 서양적인 의미의 평화론을 전개한 적은 별로 없다.  그는 애초부터 아카데미즘에 관심도 없었으며 그러한 글을 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평화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 모두 그의 확신의 선언이지 논증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평면성을 뚫고 그의 주장의 뿌리를 찾으려면 그의 평화론의 배경을 이룬 사상들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고전적인 것으로 함석헌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그의 평화사상에도 상당한 배경이 되고 있다.  

  첫째, 동양적인 것으로 먼저 노장학파를 들 수 있다.  그는 노자를 평화주의의 첫 사람이라고 단언한다.  동시에 그는 평화운동을 일으키자는 글에서 평화운동에 필요한 조건을 말하면서 장자의 주장을 먼저 내세운다.  이 두 사람의 영향은 앞으로도 구체적으로 반영시킬 것이다.

  둘째, 기독교를 맹렬히 비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전쟁에 대한 아무런 태도의 확립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수에게서 평화주의적 영향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 구약의 '이사야서'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셋째, 힌두교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오랫동안 힌두교의 고전인 '바가바드기타'를 강의해왔으며 그것을 번역했다.  그런데 그는 힌두교 자체에서보다는 힌두교를 생활에서 체험한 간디를 통해서 힌두교의 근본정신을 흡수했다.

  넷째, 퀘이커교를 들 수 있다.  그는 정통 기독교에서 이탈하여 일본에서 시작된 무교회주의에 가담했다가 '역사는 또 한 걸음 나아갔다'는 선언과 더불어 거기서 탈퇴한 후 얼마 안돼 퀘이커교에 가담했다.  퀘이커교는 간디 자신도 높이 평가했고 무교회주의의 선창자인 우치무라(內村)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함석헌은 이 종파에 가입한 핵심적인 이유를 그들의 평화운동에 가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의 역사 자체를 근원에 있어서 평화주의적 모델로 보고 있다.  이 사고는 그의 바탕에 깔린 것으로 그가 30대 초반에 쓴 한국역사서의 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상에서 그의 평화사상에 영향을 미친 여러 계보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생애를 반평화적 현실과 도전하면서 얻어낸 그의 평화사상의 인맥이다.

 

  3. 평화에 대한 정의

 

  함석헌은 도체에서 평화에 대한 언급을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사고는 평화라는 큰 틀 속에서 다양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는 또한 평화를 주제로 하는 글들을 여러 편 썼다.  그러나 그는 평화가 무엇이냐 하는 정의를 내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가 모든 사물을 서술하는데 있어서 어디까지나 동양적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의 글은 거의 선언적이요 직관적이다.  평화에 대한 그의 이해를 표현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평화는 나의 신조이다." "평화는 내게 있어서 하나의 논(論)이 아니라 신조이다."  그러니까 그는 '평화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주제로 삼을 의사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2)그는 생명과 평화를 연결시키면서 생(生)은 명(命)이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의 길이요 운동이며 그것이 바로 대도(大道)인데 그 대도가 곧 평화의 길이라고 한다.  그는 산다는 것이 곧 평화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는 생과 마찬가지로 선택을 불허한다.  생은 '살아있다'가 아니라 '살아라'는 명령이듯이 평화는 어떤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행동이므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함석헌은 평화를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그것은 '평화가 삶의 본연적인 길이라는 그의 말과 같은 뜻이다.  여기서 그는 자연세계 관철에서 나온 다윈의 생전경쟁의 원칙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을 반박한다.  생존경쟁이라는 대전제로 자연을 보는 눈은 필연적으로 약육강식을 본능적인 것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면일 따름이다.  자연계 자체는 상호협조하고 의존하고 화합하는 면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경쟁의 일면은 경우에 따라서 나타나고 있으나 그 본능의 원래의 모습은 서로 협조하는 것이고 이 본능에서 모든 것이 발달되는 것이 대세라고 본다.

 

  그리고 함석헌은 평화를 그의 신조라고 했기에 평화는 그에게 있어서 당위성을 논할 여지를 주지 않으며 그는 평화의 기능성을 묻는 것조차 용인하지 않으려고 한다.  할 수 있으면 평화운동을 하고 할 수 없을 때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마저 봉쇄한다.  "살고 난 뒤에는 쉬움과 어려움도, 좋고 언짢음도, 잘잘못도 있겠지만 삶을 뿜어대는 불길 속에는 그런 것이 다 있을 여지가 없다.  생자(生者)는 불가불생(不可不生)이요.  사자(死者)는 불가불사(不可不死)이다.  필연이다.  이것을 깨닫는 데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다"라는 그의 말에서 보듯이 평화는 바로 삶과 직결된 것으로 사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그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상에서 본 그의 평화에 대한 이해는 삶(生)만큼 자명한 것이다.  삶이 자연 그 자체이듯이 평화도 자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대전제를 가졌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는 '왜 평화냐'고 묻는 것은 '왜 사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우문이 될 것이다.

 

  함석헌의 "평화는 공존의 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평화만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다."  라는 말이 선언적인 말보다 진전된 듯하나 그 말은 너무나 자명한 풀이이다.  평화를 그토록 반복하면서도 그에게서 평화에 대한 정의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이미 그가 선언한 대로 평화는 논(論)의 대상이 아니라 삶 자체이며 필연적인 길이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보기 때문에 평화는 신념의 내용이지 분석의 대상이 아님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낭만적 평화주의자인가? 그래서 평화에 대해 낙관하고 있는 것인가?  이미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그는 '반평화적 연속선상에서 살아온 사람이기에 경험적으로 본다면 대답은 일단 부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사적 또는 민족적 경험을 넘어서서 이런 질문에 대해 일언지하에 거부할 것이다.  왜냐하면 평화는 낙관이나 비관으로 좌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는 결코 평화의 길을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평화를 가로막는 많은 적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반평화적인 대상에 대한 투쟁의지에서 그의 평화에 대한 또 다른 면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4. 평화에의 길

 

1) 반평화적 요소들

  함석헌은 궁극적인 평화를 낙관적인 것으로 본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신념화하면서도 평화를 가로막는 무서운 장벽을 직시하고 있다.  이제 그의 반평화적 대상을 개별적으로 살펴보자.

 

  그는 첫째.  어떤 형태로든지 '정치'라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정치가 이 현실을 사실상 죄우하고 삶 깊숙이 침투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무엇이든지 본연의 것을 인위적으로 왜곡하므로 결과적으로 평화를 깨뜨리는 행위라고 보기 때문에 이를 원칙적으로 거부한다.  왜냐하면 정치의 목적은 권력 장악에 있으므로 그것은 그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폭력'에 호소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치의 최후의 목표는 권력을 손에 잡는 것이다.  권력을 잡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폭력의 집단인 병력을 양성하도록 되어 있다.  그것은 결국 군사주의를 낳는다.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세력은 그의 폭력이 미치는 범위만큼 그의 판도를 넓히려고 한다.  그리고 그 판도의 경계를 합법화하기 위해서 국가라는 것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므로 국가라는 것은 처음부터 폭력을 배경으로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비도덕적인 것이다.

 

  그는 국가의 이러한 본성을 국(國)자 풀이에서 재확인한다.  가운데의 구(口)는 사람을 표시하는 것이고 그 아래는 땅을 표시하는 것이며 옆의 과(戈)는 그것을 지키는 무기를 표시한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의 세 요소를 표시하고 이러한 것을 국경을 뜻하는 외곽을 두른 것이 구(口)인데 그것이 곧 나라라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폭력으로 판도를 설정하고 통치하는 폭력기관이다.  국가가 있기 전에 폭력이 있었다고 보며 폭력으로 얻은 전리품을 지키기 위해 국경을 만들고 또 그 국경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악순환을 숙명처럼 내포한 것이 국가라고 본다.  바로 이러한 국가를 만든 장본인이 권력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인 정치인이며 따라서 정치인은 약탈을 일삼으면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함석헌은 그들을 큰 도둑놈들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지배자들은 정치 없으면 못 산다고 하지만 이미 정치가 있기 전에 사회가 있었고 문화   가 있었다.  종교도 있었고 시도, 음악도, 그림도 있었다.  생각하는 것을 정치가 가르쳤던   가. 농사와 기계 만들기를 정치가 가르쳤던가.  아니다.  그런 것이 다 있은 후 정치가      도둑질하기 시작했다.

 

  그의 길은 견해는 국가란 있어야 할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무엇보다도 국가지상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한다.  국가지상주의는 결국 독재자의 자기 권좌를 지키기 위한 초법적인 것이다.  국가지상주의는 그러므로 군국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것은 국가가 전쟁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구체적인 요인이다.  이런 시각에서 그는 이른바 강대국들의 침략행위에 분노를 터뜨린다.  그는 저들의 실상을 이렇게 폭로한다.

 

  오늘의 전쟁은 혼자 하는 전쟁이 아니요.  세계적으로 같은 전쟁업자들이 흥정해서 하는 것이다. ......... 그들은 제 나라 남의 나라를 구별할 것 없이 전쟁이 계속돼야만 번영하는 족속들이다.

 

  지금 세계정세가 어려운 것은 3대니 4대니 하는 강대국들 때문인데 그들 속을 분석해보면 고민이다.  그들은 지난날 남의 피를 빨아먹고 쓸데없이 비대해진 그 틀거리를 유지하느라 고민하는 것이다.

 

  함석헌은 우리가 국가지상주의 때문에 희생되어 역사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이기 때문에 그 역사적 죄악의 결과에서 해방될 때만이 우리도 살고 세계도 산다고 보며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지상주의를 맹종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형태임을 계속 역설한다.  그러므로 그는 정부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고 통치는 없어지면 없어지는 것만큼 평화가 온다고 반복한다.  그러나 국가라는 것이 있는 한 그 본질상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보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 국가지상주의를 반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가주의, 나아가서는 국가 자체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이것을 뒤집어보면 그는 반평화적인 것은 바로 폭력이라는 점을 결정적으로 인식한 것인데 이 폭력을 합법화하고 그것에 뿌리를 둔 것이 정치, 국가. 국경 등이라고 보기 때문에 폭력에 대한 거부가 반국가주의로 응결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동원된 것은 무엇보다도 노장사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평화와 관련해 '도덕경'을 논함에 있어 '도덕경' 31장을 노자(老子)사상의 핵심처럼 첫머리글로 내세웠는데 그 주제를 "군대란 좋은 일의 그릇이 아니다"라고 했다.  사실상 31장은 모든 사람이 군대를 싫어하며 도를 깨달은 사람은 절대로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말로 출발한다.  도대체 모든 윤리적 강령 따위마저 부정하는 노자에게 군대는 물론이요 법 따위마저 설자리가 없는데 국가라는 것이 인정될 까닭이 없다.

 

  함석헌은 장자를 논함에 있어서 이른바 바보새(鵬)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 첫 시작으로 내세우는데 그는 이 장을 풀이하면서 결론으로 "장자는 당시 부국강병의 포악한 지배주의 때문에 희생되는 인생을 건지기 위해 말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 장자의 '거협' 편을 풀이하면서 "국가가 생기고 이른바 정치를 하기 전에는 세상에 도둑이 없었으며 그것이 생긴 다음부터 도둑이 생겼는데 일반 도둑은 좀도둑인데 반하여 국가는 통째로 훔쳐가는 큰 도둑이라고 하면서 반국가론을 펴고 있다"고 풀이하여 그것을 자신의 주장으로 삼는다.

 

  다음으로 간디의 비폭력운동이나 그의 대정치자세가 함석헌의 이러한 입장을 옹호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간디는 일생 동안 비폭력운동을 신조로 삼았으며 바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영국의 식민지 그늘에서 벗어났을 때 정부를 중심으로 한 국가의 틀을 만들기 위한 헌법작성에 반대하고 국민회의 형식의 공동체를 이룩하겠다고 고집했는데 함석헌이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또한 그가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라는 일반적으로 자명화된 법과 정치의 등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거부하며 적 또는 원수라는 것을 가상하므로 국가를 만들고 국경을 지키며 그것을 위해서 강병부국을 당연한 것으로 내세우는 판국에 오히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에게서 결정적인 후원을 받고 있는 것 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반평화의 핵심적인 것을 지적한 것이다.  평화는 하나의 사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는 나름대로 필수적이고 구체적인 평화의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평화운동을 일으키자'는 그의 글에서 평화운동에 대한 저해요소들로 (1)남북의 긴장. (2)주위 강대국들의 야심. (3)인간의 본성. (4)민중의 도덕수준 등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 요소는 그의 평화사상이 한국의 정황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한국의 분단상황이 한국인 내부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계 강대국들의 전략적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한 걸음 나아가 한국의 분단은 세계적으로 같은 전쟁업자들이 서로 흥정해서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본다.  이런 시각에서 그는 한국의 평화를 깬 주범이 중국, 일본, 소련, 미국 등임을 알고 있다.

 

  그들의 형태를 통틀어 대국주의라고 보며 이 대국주의가 없어지는 시대가 올 때 참 평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 대국들 자체가 이미 위에서 인용한 대로 그들이 지난날 남의 피를 빨아먹고 쓸데없이 비대했던 그 틀거리를 유지하느라고 고민한다" 고 보는데 저들은 남의 영역을 침범하고 착취하여 얻은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계속 전쟁을 유도할 수밖에 없는 숙명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그는 맹자의 "큰 나라를 가지고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을 즐거워하는 일이요. 작은 나라를 가지고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을 두려워하는 일이다.  하늘을 즐거워하는 이는 천하를 가눌 수 있을 것이요.  하늘을 두려워하는 이는 제 나라를 가눌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일면 세계를 지배하려는 대국주의는 자체 붕괴의 위험성이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흉내내서 패권주의를 모방하다가는 자멸할 것이고 오직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세, 즉 외천주의(畏天主義)만이 본래의 제 갈 길임을 주장하는데 이러한 외천주의가 바로 평화중립주의라고 한다.

 

2) 평화의 길

  함석헌이 평화에 대한 정의 그리고 반평화적인 요소들을 열거하는데 있어서도 서구의 전통적인 시각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서구 전통에 있어서 평화를 말할 때는 언제나 '균형'이라는 것을 가장 중요한 본질성으로 보았다.  문화에 있어서 균형 있는 자유의 확보, 정치에 있어서 평등한 법의 적용, 경제에 있어서 공정한 분배 등을 이룰 때만이 평화가 존속되고 바로 그것 자체가 평화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 균형이라는 것은 정적인 것이 아니고 언제나 가변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따라서 계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사고가 냉전시대의 논리에까지 지속되었다.  힘의 균형을 잡을 때만이 평화가 가능하다는 이 논리가 평화를 추구한다면서 전쟁무기의 경쟁을 합리화했다.   탈냉전시대에도 다를 바 없다.  탈냉전시대에도 일방적인 평화 선언이나 그 실천이 아니라 상대국과의 협상을 통하여 함께 군축을 체결하고 그것을 실천할 때만이 평화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함석헌은 '균등'이라는 피상적인 평화론에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고 평화는 바로 본래적인 것으로의 회귀임을 계속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무엇보다도 앞서서 평화의 길로, 인간의 본성에로의 회귀를 평화의 알파와 오메가로 내세운다.  그는 위에서 얘기한 반평화적인 요소들이 바로 이 인간의 본연성을 억누르고 왜곡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평화를 파괴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원래 인(仁)임을 강조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성선설(性善說)에 섰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밖에서 오는 장해에 의해서 변질될 때 적이 생기고 평화가 깨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불인(不仁)한 생각을 가지면 모든 것이 원수(身外皆敵)이지만 인을 내 속에 품으면 천하무적(天下無敵)이라고 한다.

 

  정치나 권력이 인간을 그 본성에서 변질시키므로 이기주의, 분리주의, 차별주의, 집단주의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종합체인 국가지상주의에 종속되게 만드는 데 대해서 참 평화의 길로 다음과 같은 노장 적인 입장을 내세운다.

 

  대기를 마시고 가스를 뱉으니 평화요.  먹을 것을 먹고 마실 것을 마시고 담긴 찌꺼기를 내보내니 평화요.  햇빛을 보고 웃고 바람을 쐬고 죽지를 펴니 평화이다.

 

  이것은 분명히 자연주의이다.  그는 인위적인 것일수록 반평화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인위적인 것이 자연스러운 길을 가로막는 현실에서 본래의 자기를 지키는 길로 다음 네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함석헌은 평화의식은 전체의식에서 출발되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자각이 평화의 근원이다.  이 전체의식은 도덕적. 정신적 인간의 바탕이다.  여기서 그는 전체를 세 개의 테두리로 표시하는데 작게는 가정이요 크게는 우주라 하고 그 중간을 민족공동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내용을 인위적으로 분리시켜 보는 것뿐이고 우주적 전체라는 테두리 안에 다른 두 가지가 다 포함되는 것으로 본다.  그런 전제 밑에서 그는 한국의 평화적 통일의 길을 본다.

  한국은 오랫동안 단일민족이었으므로 전체의식을 가지기에는 비교적 쉬울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역사적. 사회적으로 다원화된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의 남북분단을 한국에서의 평화를 가로막는 원인으로 인식하여 구체적으로 극복해야 할 당면과제로 보고 있다.  이 분단의 책임이 외세에게 있든 자기에게 있든 지간에 양 세력의 지배층이 내세운 이데올로기를 전체의식을 갈라놓는 가장 무서운 독소로 본다.  또한 그는 이 분단이 지배층에 의한 인위적인 것이고 민중은 분단되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므로 남북의 민중이 결합하는 것만이 한국 민족의 전체의식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둘째.  종교적 신념이다.  함석헌은 평화운동은 바로 정신운동임을 전제하면서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에 앞서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한다.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은 외적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해서 평화운동은 '속마음'에 관계된 것으로 그것은 종교적 차원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종교적 차원이라고 할 때 그것은 기성종교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제도화된 종교는 더더욱 아니다.  그가 종교라고 하는 것은 어떤 궁극적인 것을 믿는 신념을 말한다.  이 신념이 있을 때 현실적 제약에 굴복하지 않고 그것에 가능, 불가능을 묻지 않고 평화를 향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전진을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람들이 전승하고 있는 고유의 사상인 하느님(한울님) 신앙은 평화로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셋째. 한국민족의 특성에 대한 재인식이 평화, 한국의 평화만이 아니라 세계 평화운동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한 근거로 한국민족의 평화성을 내세운다.  무엇보다 그가 주시하는 것은 건국정신에 있어서 침략적 영웅주의 따위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4천 년 역사에서 남의 나라를 침략한 일이 없다는 것은 건국설화의 성격을 뒷받침해준다. 한걸음 나아가서 그는 한국 정신의 본원인 선도(仙道)의 기본정신을 평화사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선도의 기본사상을 무위(無爲), 자연, 정허(靜虛), 유약(柔弱)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들은 언뜻 보면 소극적인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적극적인 것으로 그것은 바로 평화주의의 한국적 바탕이라고 본다.  그는 이 선도가 중국의 노장학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그것은 중국의 노장사상이 유입된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한국의 선도사상이 중국의 노장사상이 유입된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한국의 선도사상이 중국으로 가서 노장사상을 형성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능화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함석헌은 선도적 삶을 구현한 인물을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대표적으로 열거하는데 온달, 검도령, 처용 등이 그들이다.  그가 열거한 세 사람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서 선도적인 평화사상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온달이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은 바로 그가 철저한 평화주의자였음을 뜻하고 처용이 제 아내를 겁탈한 마마귀신을 죽이지 않고 노래를 불러 물러나게 한 것도 평화주의이고 검도령이 장양의 청을 받아 철추로 진시황을 박랑사에서 때렸다는 것은 얼핏보기에는 무력주의 같으나 실은 평화주의라고 한다.  이러한 평화사상이 그대로 계승되어 3. 1운동과 4.19혁명이 비폭력 투쟁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넷째. 세계사적 비전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유약하고, 무능하고 이름 없이 음지에서 고난받는 민중이 평화운동의 주역이 되어 온 세계를 평화를 이끌 수 있다는 신념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은 민중이 조건 반사적으로 계급적 의식을 갖고 지배자에게 저항하는 것으로 만족한 근시한적 복수 현상에 대해서 세계평화의 주인으로서의 의식을 가질 때에 비로소 평화에의 길을 앞당길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조건들을 뒤에서 좀더 깊이 추적함으로써 그의 평화사상의 궁극적인 것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5. 평화의 씨알

 

  지금까지의 고찰에서 도달한 것은 함석헌의 평화에의 두 가지 열쇠이다.  하나는 평화 이행의 종교적 차원이요.  또 하나는 평화에의 주체에 대한 그의 입장이다.  그가 평화의 정의로 사서(四書) 중의 하나인 '대학'의 '명명덕친민지어지선'(明明德親民止於至善)이라는 구절을 평화의 궁극적 경지로 보고 있는데 거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친민(親民)이다.  그가 스승으로 받드는 유영모는 이 민(民)이라는 것은 씨알이라고 번역했는데 함석헌은 많은 사상의 과정을 거쳐 결국 이에 착륙했다.  그러므로 함석헌은 그의 결론과 같은 씨알을 존중해서 그의 생애의 마지막까지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를 냈다.  그런데 바로 이 씨알을 그는 평화의 담지자, 아니 평화의 원천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면 씨알이란 무엇인가.  그는 거듭해서 그 정체를 표현하려고 했으나 이른바 사회과학적인 시도는 물론 하지 않았고 나아가 그런 것은 거부했으며 서구적인 의미의 철학적 정의도 시도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가 그런 것으로는 도저히 파악될 수 없는 보다 높은 차원의 근원적인 경지를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씨알이 무엇이냐 라는 자문을 하고 말 그대로 "지위도 없이 권력도 없이 그저 땅을 디디고 서서 전체를 위해서, 전체라는 것을 의식도 못하면서 전체를 위해서 봉사하다가, 또 봉사하다가 가는 사람들입니다"  라고 자답하는데 일견 사회과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나 그 뒤를 이어서 다시 "그러니까 난대로 있는 사람, 못났기 때문에 하느님이 만들어준 본성을, 그 바탕을 비교적 깨뜨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라의 주인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라고 하는가하면 "씨알은 본질적인 평화이다.  씨알의 바탕이 평화요.  평화의 열매가 씨알이다.  그러므로 씨알의 목적은 평화의 세계 외에 있을 수 없다"고 한다.

 

  함석헌은 대담하게 씨알 자체가 바로 평화임을 말한다.  그러나 현재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씨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서 제능력을 발휘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평화가 가시화되지 않은 것처럼 씨알의 정체가 아직도 가려져 있다.  그런 뜻에서 그는 씨알을 내재의 평화 또는 극대에 대해서 극소의 평화라고 한다.  말하자면 평화의 잠재능력이라는 말이다.

 

  이 씨알을 억누르고 위축시키는 것은 바로 그의 지론인 국가라는 제도에까지 끌고간 정치적 공작이 주범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간사회를 이끌어오는 이른바 문명, 문화라는 것이 모두 공범자이다.  그러므로 지식을 쌓으면 쌓일수록 오히려 반씨알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본다.  또한 거듭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은 종교의 반씨알적, 반평화적 작용이다.  그는 평화를 깨뜨리는 전쟁으로 민중을 이끄는 것은 종교였음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한다.  그는 오늘의 여러 종교들의 상태나 그 지향성을 맹렬히 공격하면서 종교의 반평화적 독소를 폭로한다.

 

  여기에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반씨알적이고 따라서 반평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씨알 또는 민중이 그런 힘들에 눌려서 자기 발휘를 못하는 것이라면 평화로 도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누가 어떻게 이 평화를 가져올 수(회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여기에서 함석헌은 민중의 저력을 믿으며 그것이 마침내 그들을 누르고 있는 모든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세계사를 통관하면서 비록 우여곡절은 많아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바로 씨알이 역사의 무대에 제 모습을 드러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누가 준 것이 아니라 씨알 스스로가 싸워서 이겨낸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참 승리는 밖에 있지 않고 씨알 제 속에 있다는 말로 "나무와 나무가 비비고 돌과 돌이 부딪치고 씨알과 씨알이 부딪칠 때 너도 아닌 나도 아닌 전체의 모습과 음성이 나온다"고 하는가 하면 "민중은 평화를 사랑하는 것인지라.  안심하고 살게만 해주면 어느 정도 자유의 구속을 당하여도 참는다.  그러나 참다가도 정말 견딜 수 없는 정도가 되면 그 양 같은 민중이 결속을 하여 들고일어나서 그 압박자를 쫓아낸다.  그것이 혁명이다" 라고 말한다.  이로써 그는 마침내 평화의 본원인 민중이 반평화적인 요소나 구조를 깨뜨리고 평화를 구현할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한 확신 속에서 함석헌은 "씨알을 못살게 굴지말고 가만두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평화에서 시작하자는 말이다" 라고 한다.  이런 주장에서 그는 노자의 말인 '성인무심이백성심자심'(聖人無心以百性心自心)을 "거룩하게 나신 이는 제 맘이란 것이 없고 씨알의 마음으로 제 마음을 삼는다" 로 풀이하므로 씨알의 정체가 구현되는 것만이 평화의 길임을 천명한다.  즉 씨알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이 평화의 열쇠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제안을 하는 그는 그 실현이 그토록 단순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국가주의의 암벽을 무너뜨리고 폭력주의의 사나운 짐승을 잡기 위해' 라는 전제 밑에서 다음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세계의 씨알이 뭉쳐야 한다.  둘째. 씨알이 과학을 체득하여야 한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씨알 개념에 모순되는 듯하나 그가 과학을 체득하라는 것은 씨알의 적을 앎으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힘을 모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는 이 씨알이 씨알로 있기 위해 세계적인 평화기구를 설치하자는 제안을 한다.

  그래서 그는 씨알이 맨 마음을 가지고 국가주의와 싸우는 것은 아메바가 사자에게 대드는 것과 같고 바위를 계란으로 때리는 것과 같음을 안다.  그러나 그는 "사자는 죽어도 아메바는 영원히 살았으며 바위는 마침내 부서지고 말고 물은 길이 하나로 흐르는 것을 우리는 안다"는 말로 그의 씨알에 대한 철저한 낙관론을 양보하지 않는다.  무슨 근거에서 그럴까?  그것은 그가 씨알을 종교적 차원에서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6. 종교적 차원

 

  함석헌은 1965년이래 민주화운동에 가담하여 많은 박해를 받아왔으며 이러한 투쟁과정을 통해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씨알에 상륙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계속 반폭력. 반군사정권. 반정치. 그리고 마침내는 반국가론을 펴왔다.  그가 부정한 이런 것들은 무엇보다도 반씨알적인 세력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반씨알적인 세력이란 바로 반평화와 동일이다.  그는 씨알만이 평화의 담지자임을 거듭 신념으로 반복했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그는 씨알이 바로 사람의 '본래성', 때묻지 않은 인간의 본래의 모습, 그의 말대로 하면 '속마음'을 가장 순수하게 지닌 원유라고 본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속마음이란 때묻지 않은 정신을 말한다.  그는 인권운동 또는 민주화 운동에 가담해 싸우면서도 계속 운동권을 대한 그의 불만 토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운동이 사회. 정치. 경제라는 가시적인 지평에 머물러 전략적인 차원을 넘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이었다.  그런 운동은 결국 그가 언제나 경계하는 부정적 의미의 정치운동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말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주의에 대한 핵심적인 비판의 근거는 그것이 반도덕적일 뿐 아니라 반종교적이라는 데 있다.  국가지상주의는 사실상 종교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과 그 시발점을 같이한다.  어떤 운동이든지 종교적 차원을 무시하면 결국 국가지상주의가 빠진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처럼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운동도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의 차원에서는 성취할 수 없는 것이고 '정신운동' '속마음'에서부터의 운동일 때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정신, 그 속마음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함석헌에게 있어서는 종교적 차원인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다른 게 아니고 우리(사람) 속의 빛이라고 할 때 나라면 나고 우리 속에 계시는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이고 그 점이 속에서 밝아져야 된다.

 

  여기서 함석헌은 '신의 경지'는 바로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이다.  또 그는 중용(中庸)의 중(中)도 우리 속에 있는 하느님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라고 하거나 사람이라고 하거나 그가 저적하자는 것은 바로 씨알인 것이다.  함석헌은 예수를 씨알 중의 씨알이라고 선언한다.  그 근거로써 많은 자료 중에서 특히 예수가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한 것을 제시한다.  순수한 속마음 또는 정신의 담지자를 그가 씨알로 표시하는데 씨알 자체를 그는 주저없이 민중이라는 말과 일치시키는데 그것은 결코 서구에서 말하는 개인(Individium)으로서의 개체가 아니라 집단성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정신은 바로 씨알의 정신이면 그것은 바로 우주정신과 연결된다.  이것이 바로 그에게 있어서 신(神)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예수를 씨알 중의 씨알이라고 하며 예수가 자신을 '사람의 아들' 이라고 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같은 예수에게서 그는 씨알, 우주정신, 신을 동시에 만나는 것이다.

 

  씨알은 씨알이기 때문에 자연 어쩔 수 없이 하느님을 믿게 되어 있다.  믿는 것이 씨알이다.  하느님과 씨알은 한 실오리의 두 끝과 같다.  위에서는 하느님이요 아래에서는 씨알이다.  씨알 중에서도 참 씨알이 예수였다.

 

  이상에서 함석헌은 종교적이면서 가장 비종교적이요.  예수에게서 궁극적 씨알(그러니까 평화)의 원천을 보면서도 기독교 자체에 대해서 가장 냉철한 비판가일 뿐 아니라 그것에서 탈출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기성종교에 대해서 거의 일생동안 신랄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참 정신, 즉 신은 어떤 밖의 조건에 의존하지 않는다.  정신은 정신만으로 서는 것이지 그 자체가 아닌, 겉모양은 아무리 종교의 모양을 했어도 종교가 아니다.

 

  함석헌은 결국 기존의 종교가 권력에 의존하고 체제를 형성하여 씨알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역할 이상을 하는 것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결국 반정신, 반신(神)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평화운동은 그가 이해하는 종교적 차원을 순간도 이탈하지 않고 나아갈 때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씨알이 지배하는 세계가 올 때만이 궁극적 평화가 도래한다고 본다.

 

  그러면 평화의 원천이요.  담지자인 민중의 평화운동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미 씨알의 이해, 그리고 종교적이라는 그의 주장에서 그 대답은 결정된 셈이다.  '원래'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평화운동이다.  인위적인 데서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평면적 싸움에서 승부를 걸지 말고 근원적 차원, 종교적 차원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바로 승리의 길일 따름이다.  함석헌은 적어도 글과 말로써 당대의 누구보다도 강렬한 투쟁의지를 보여왔다.  그의 불의에 대한 도전과 폭로의 말은 날카로웠다.  그리고 또 민중이 깨어서 제 본분인 역사의 주인이 될 것을 거듭 촉구했다.  그는 다 된 것(Indicative)을 말하면서 동시에 요청(Imperative)을 거듭한다.  세상은 분명히 잘못됐는데 그리고 주객이 전도된 판국에서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하면 결국 투쟁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분명히 그의 사고에는 언제나 이중성이 있다.  인디케이티브에 임퍼라티브가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싸우지 않고 어떻게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하도록 한단 말인가.  씨알의 혁명이란 바로 싸움으로만 쟁취할 수 있지 않은가?

 

  그 점을 함석헌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운동을 위한 투쟁전략을 말하는 일이 없으며 한걸음 나아가서 어떤 형태의 폭력도 반대한다.  그 대신 그는 거듭 인간내적 평화를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속'이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그것은 결국 마음에서부터 반평화적인 것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그의 이중성의 발로이다.  그것을 노골화한 것이 장자를 업은 다음의 말이다.

 

 시비는 반드시 따지고 싶지만, 그래야 일이 바로잡아질 것 같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선악은 상대적이다.  상대적이기 때문에 하면 할수록 싸움을 더 격화시키지 조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 그래서 그 식대로 나가면 결국 도달하는 것은 혼란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함석헌의 언론투쟁은 결국 조화된 평화론에 보탬이 된 것이 아니라 혼란에 일역을 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에 그는 굴복하지 않는다.  그는 공자의 '인자무적어천하'(仁者無敵於天下)를 내세워 스스로 인자(仁者)가 되면 평화가 저절로 온다는 뜻을 주장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인(仁)은 그에게 있어서 무위(無爲)와 같은 뜻이 된다.

 

  그러면 무위로써 저항까지 포기하라는 것인가.  함석헌이 언제나 방패로 삼는 자 중의 한 사람인 장자도 노자처럼 무위를 말하면서 바로 그것을 위해 싸웠고 시비로 일관했듯이 함석헌 자신도 시비와 비판으로 일생을 보냈다.  그가 말하는 무위는 결국 유위(有爲), 인위(人爲)에 대한 저항이다.  있는 대로 내버려두면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인데 그것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인위요.  유위이다.  그것은 지배하려는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것과 싸우는 것이 바로 그의 무위이다.

 

  그런 무위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다.  더욱이 뜻을 갖고 기존 체제를 거슬리거나 개혁하려는 의지를 가지는 한 무위상태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거기에는 충돌이 불가피하게 따르기 때문이다.  무위는 반(反)운동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어찌라는 것인가?  이 질문은 그에게 적당치 않다.  그는 무위를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운동은 신념의 길이요.  봉사의 길이요.  자기 희생으로만 되는 길이다."  나.  내 집단 위주의 사고가 마침내 폭력을 바탕으로 한 국가주의에까지 이르렀다고 보는 그에게 이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결국 '너'에게의 봉사.  나아가 자기를 희생할 각오가 있을 때만 사람은 공존할 수 있다.  고 확신하는 그에게 투쟁이란 결국 희생할 각오로 '아닌 것은 아니오'라고 증언하는 것 이상일 수 없다.

 

  투쟁이란 시각에서 그는 예수와 그리고 자신과 동시대인으로 간디를 모델로 내세운다.  그러면서 그들에게서 공통점으로 비폭력을 찾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을 쓰는 것은 결국 반평화행위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때리면 맞고 죽이면 죽는 길밖에 없다.  그는 예수를 이렇게 파악한다.

 

  예수께서는......... 악독한 정치 밑에 희생이 되어 목자 없는 양떼같이 헤매는 씨알들을 건져주시려고 "목마른 사람은 내게로 오라"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에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고 한다.

 

  여기서도 그는 예수의 '희생'을 결국 투쟁의 평화적 형태로 본 것이다.  희생은 스스로 제물로 바친 것이 아니라 투쟁 저항의 결과이다.  그 저항의 대상은 바로 국가세력이다.  국가는 폭력이 뒷받침하는데 반폭력을 주장하면 결국 희생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물론 희생이 끝이 아니다.  투쟁(희생)의 과정을 통해 '빛'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이 다름아닌 종교적 차원에서 찾을 수 있는 평화인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확신에 도달할 때 참 평화를 위한 운동이 승리하는 것이다.

 

  그가 이런 시점에서 예수운동을 오늘에 실현한 대표적 인물로 간디를 내세우는데 그중에서도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구체적 모델로 내세운 것이다.  그는 주저없이 "이제 우리의 나아갈 길은 간디를 배우는 길밖에 없다"로 선언한다.  이처럼 간디가 걸어간 길을 모든 운동의 기준으로 삼는다.  어떤 의미에서일까?  그는 간디가 어디까지나 종교적 인물이었음을 강조하며 그가 총탄에 맞아 쓰러질 때의 외마디가 그의 중심이요 유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아리 라마'(오 하느님)였다.  이것이 간디의 평화운동의 궁극적 길이다.  평화운동도 정치문제에 걸려있다.  그런데 그 운동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으로 투쟁할 때만이 승리한다고 본다.  그는 간디가 정치문제를 종교적으로 해결한 데에 그 위대함이 있다고 본다.

 

  간디에게 있어 종교적이란 바로 그 운동의 궁극적 목적이 진리의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시티아그리하'운동은 바로 종교운동이다.  간디는 그의 운동 전체를 그의 자서전에서 밝히듯이 진리의 진리성을 입증하는 실험으로 본다.  따라서 평화를 위한 민중운동도 진리를 증명하는 실험과정이 되는 것이다.  함석헌은 '사랑하라' '희생하라'와 같은 요구를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은 일반화된 것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어떤 집단, 민족 또는 국가적 차원에서 운동화한 것은 간디뿐이라고 한다.  그것은 죽음을 각오할 때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민족이나 국가차원에서 그런 요구를 하는 경우는 배신자 혹은 이적행위로 규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간디의 운동은 인도의 독립운동이면서도 독립운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실은 그의 목적은 진리(종교)를 운동이라는 실험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고 확립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에의 길이 그의 목적이므로 영국과 인도의 대립이라는 상황에서도 그 대립이 일차적 관심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그의 운동은 인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국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영국이 영국답기 위해. 달리 말하면 영국이 참을 인식하기 위해 인도를 떠나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이기 때문에 그의 운동은 증오가 있어서는 안되고 더욱이 어떤 경우도 폭력에 폭력으로 마주서서는 안된다는 결론이다.  그런 뜻에서 비폭력 주장은 바로 그의 평화운동이다.

 

  그러나 간디는 비폭력이 종교적이고 평화의 길 자체이기 때문에 무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민중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증오를 배격하고 나아가 정치적 욕심을 지닌 운동은 절대 배제하지만 민중에게 비겁함이 가장 큰 적이라는 것과 참 용기 있는 자만이 바로 비폭력적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민중운동을 위해서는 그것이 조직화되어야 한다.

 

  함석헌은 바로 이것이 간디에게서 중요한 강점이라고 본다.  이것은 바로 평화운동을 간디에게서 배워야 할 중요한 것으로 보고 그는 언제나 자신이 비조직적 인물임을 한탄했다.  그런 조직운동을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를 통해 제창하기도 하고 간디의 민중운동의 일환인 아슈람을 배워 씨알 농장도 경영해보았다.

  그리고 간디의 운동에서 절대적 힘은 간디가 홀로가 아니고 인도 민중이 간디를 축으로 하고 맞물려 도는 데서 왔다고 본다.  그는 민중은 역시 구심점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이것을 그는 간디가 일생 동안 몸소 실천한 물레의 구조를 보며 설명한다.  물레의 바퀴를 만든 나뭇조각 하나하나는 아무것도 아닌 약한 것이다.  그러나 중심이 되는 축을 중심으로 조직하면 계속 돌아간다.  민중운동은 이렇게 축이 있어 돌아야 한다.  축 또한 홀로 운동이 될 수 없다  바퀴가 있어야 돈다.  함석헌은 평화운동을 결국 간디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평화운동도 평화로써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7. 맺음말

 

그의 평화사상은 반정치, 반폭력, 반국가로 이어졌다.  그는 한 번도 그런 용어를 쓰지 않았으나 결국 무정부주의(Anarchism)에 도달했다.  이것은 정부란 도덕성이 없고 폭력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단정한 것과 직결된다.  우리는 이 글 머리말에서 그의 생애를 살펴봤는데 그것은 이 맺음말의 배후를 전제한  것이다.  그는 역사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그의 생애를 통해서 자국이나 침략 외세 하에서 그리고 공산주의사회나 민주주의 체제를 두루 겪으면서 국가라는 이름 밑에 도사린 폭력성을 몸으로 체험해왔다.  그러므로 그의 평화론과 반국가주의는 그의 생을 통한 실험의 결론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그가 귀착한 것은 자연주의라 하겠다.  그는 노자의 사상을 '건드리지 말라'로 집약하기도 한다.  그는 참 우주, 역사, 자연, 신을 하나로 묶는데 그것을 일관하는 것은 그의 표현대로 하면 '뜻'이다.  이 뜻이 실현되는 것이 바로 평화이다.  그 '뜻대로' 안에서 신과 인간, 자연과 역사가 이원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하나로 조화. 통합되는데 평화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것은 새삼 만들어나갈 현실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이다.  이 원래적인 길을 가로막는 것이 결국 반평화세력인데 그것이 바로 인위성이다.  이 인위성을 폭력으로 강제하는 것이 정부이다.  그러므로 그의 평화를 위한 투쟁은 결국 반평화적인 것을 제거해서 세상이 제 본래의 길을 가게 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노장의 주장대로 흐르는 물길을 가로막지 않는 것이 평화의 길이다.  물은 방향성을 확실히 갖고 있다.  그것은 아래(골짜기)로 가는 것이다.  이것을 가로막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밀어붙이거나 그게 안되면 그 장애물에 의해 생긴 공간을 채워주고 여전히 아래로 흐르는 것이다.  그 장애물이 강력해서 우회하더라도 결국 물은 정해진 방향대로 흐르고 만다.  이 점에서 그는 맹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도 동원한다.  이상과 같이 살펴볼 때 그는 궁극적으로 낙관주의자이다.

 

 

 사단법인 함석헌 기념사업회 ssialso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