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풍류도와 멋 있는 한국인들
신라의 석학 최치원은 한국인의 얼을 풍류도라 했다. 풍류란 알태어의 “부루”에 대한 이두식 표기라 하겠다. 부루 또는 “부루칸”은 하느님 또는 광명신을 뜻한다. 광명으로써 세상을 다스리던 혁거세를 불러 “불거안”(弗居內)이라 한 것은 다 이것과 연관된 말이다. 고대 한인들은 항상 시월이면 하느님에게 노래와 춤으로써 제사지냈다고 한다. 한인은 본시 하느님을 믿어온 족속이었다. 그런데 한인의 얼 또는 종교적 영성을 불러 천신도나 부루도라 하지 아니 하고, 풍류도라 한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풍류란 우리말의 멋에 해당하는 심미적인 개념이며 예술적인 개념이다. 하느님을 뜻하는 천신이나 부루라는 용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풍류라는 한자를 썼던 것이다. 여기에 한인들의 특유한 하느님 이해의 표현이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적인 의의 하느님으로 이해했고, 기독교인들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으로 이해한 데 대해 한인들은 예술적인 창조적 멋의 하느님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한 민족문화의 성격이 그들이 신봉하는 하느님 이해와 관계된 것이라면, 한국문화의 특성은 예술적인 데 있다. 풍류도는 포함삼교한다고 했다. 멋은 유·불·선의 종지를 다 포함했을 뿐만 아니라 삼교의 경지를 넘어선 곳에 있는 것이다. 멋의 양상은 “한”이다. 한이란 하나이면서 일체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하느님은 곧 “한님”이며 “하나님”이다. 이러한 풍류도가 한인으로 하여금 한인되게 하는 얼이다. 그러므로 풍류도는 실로 접화군생한다고 했다. 인간화의 작용을 하는 것이다. “삶”이라는 우리말이 생명과 생활을 뜻하는 동시에 사람의 준말로도 이해할 수 있다면, 접화군생은 사람된 삶을 실현하는 데 있다. 풍류도는 한인으로 하여금 한인되게 하는 민족적 얼이며, 그것은 포월적인 한과 인간적인 삶의 창조적 통합에서 성취되는 예술적인 멋의 얼이다. 한인의 이상은 “한 멋진 사람”이 되는데 있으며, 풍류도인이야말로 이상적인 한국인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 빛나는 풍류도인을 지적한다면 우선 7세기의 원효와 16세기의 율곡 그리고 20세기의 신천옹 함석헌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원효는 불교인이요, 율곡은 유교인이요, 함석헌은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공통된 풍류도적 특성이 들어 있다. 첫째는 전통적 종교를 넘어선 종교인이라는 데 있다. 원효는 불교인이면서 전통적 불교의 한계를 넘어선 참 종교인이었다. 율곡과 유교, 함석헌과 기독교의 관계 역시 그러하다. 이것은 마치 추사 김정희가 서도의 길에 들어가서 전통적인 서예에 통달한 후 자신의 추사체를 창출한 참 서도인인 것과도 같다. 격에 들어가서 그 격을 넘어선 격의 예술인의 경지이다. 여기에 멋이 있다. 둘째는 포월적인 “한”의 자리에서 종교적 전통을 본다는 데 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것이 종교를 넘어선 종교인에게는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뿐만 아니라 유·불·선 삼교에 다 통달한 종교인들이었다. 셋째는 “삶”의 현장에서 뛴 실천적 종교인이라는 데 있다. 단순한 사상가로서의 종교인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터득한 바를 실천함으로써 종교의 진면목인 사랑과 자비를 역사화하려 한 종교인들이었다. 이들이야말로 한 삶을 실천한 멋있는 종교인이요, 멋있는 한국인들이었다. 이러한 특성에 비추어 원효와 율곡, 그리고 신천옹의 편모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원효와 율곡
원효
원효(618∼686)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단문이 있다면, 그것은 『금강삼매경』의 대의를 풀이한 그의 글일 것이다. 그 대강을 적어본다.
“무릇一心의 근원은 有와 無를 떠나 홀로 청정하고, 三空의 바다는 眞과 俗을 원융하여 넉넉하고 고요하다(湛然). 담연함으로 둘을 융합하였으나 하나가 아니요(融二而不一), 홀로 청정함으로 양극을 떠났으나 중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離 而非中). …‥ …‥ 融二而不一임으로 眞과 俗의 性이 서지 않음이 없고, 染과 淨 의 相을 갖추지 아니함이 없다. 離 而非中임으로 有와 無의 法이 이루어지지 않는 바 없고, 是와 非의 뜻이 미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破함이 없으되 파하지 못함이 없고, 立함이 없으되 세우지 않는 바가 없다. 가히 理 아닌 至理요, 然 아닌 大然이라 할 것이다.”
一心之源 離有無而獨淨, 三空之海 融眞俗而湛然. 湛然 融二而不一, 獨淨 離邊而非中. …‥ 融二而不一故 眞俗之性 無所不立, 染淨之相 莫不備焉. 離邊而非中故 有無之法 無所不作, 是非之義 莫不周焉. 乃 無破而無不破, 無立而無不立. 可謂 無理之至理 不然之大然矣.
원효는 유식계의 일심(一心)과 반야계의 삼공(三空)의 세계를 하나로 융합하였다. 일심은 근원적인 샘이요, 삼공은 그 샘이 흘러 만든 바다이다. 일심이 체( )라면 삼공은 용(用)이다. 일심이란 “한”의 마음이다. 이것이 만인 속에 있는 불성이요, 여래장이요, 법신이다. 기독교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여기까지 밝히고 도달한 것이 불교이다. 그러나 원효는 이 “한마음”을 넘어선 그 원천을 바라보고 잡고 있는 것이다. “한마음의 원천”(一心之源)이란 한마음이 있게한 원천이라는 뜻이다. 그 원천이란 다름아닌 ‘한’님 곧 하나님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한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었다. 실은 유교도 도교도 그러하다. 한마음의 근원인 ‘한님’은 실로 “만유 위에 있고, 만유를 통해 있고, 만유 안에 있는” 궁극적 실재이다. 그러므로 그는 있고 없음이다. 거룩과 속됨에 구애됨이 없이 홀로 청정하다. 이 ‘한’의 자리가 포함삼교하는 풍류도의 자리이다. 풍류도란 실로 한님과 하나가 된 얼이기 때문이다. 풍류도를 지닌 원효의 근본사상은 이 한님으로 돌아가는 데 있었다(歸一心之源). 공(空)은 연기법에서 본 현상계(色)의 실태요, 존재양식이다. 인연으로 인해 서로 의존하며 존재할 뿐이고, 그 자체가 영원한 실체는 아니다. 인연을 맺게 하고 존재를 가능케 하는 이는 한님이다. 그러므로 한님의 자리에서 볼 때 그가 창조한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공의 바다이다. 그 바다 안에는 진과 속이, 색과 공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거기서는 파하는 바도 없고 파하지 않는 바도 없으며, 세우는 바도 없고 세우지 않는 바도 없다. 삼공의 바다는 모든 주장과 종교가 제각기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게 함으로써 넉넉하고 고요할 뿐이다. 여기에 무한포용과 자비의 세계가 전개된다. 이는 실로 논리를 초월한 불가사의의 무분별지의 세계이다. 원효는 반야와 삼매의 세계를 구별하여 이렇게 말했다. “금강반야는 인과연기법에 통달한 지혜이고, 금강삼매는 수행의 결과로써 도달한 궁극적 경지에 있다.” 그는 지혜의 세계에 머물지 아니하고, 이것을 몸으로써 터득하고 자신의 삶이 되게 하는 금강삼매의 세계를 살았다. 원효는 광대로부터 얻은 표주박에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하리라는 화엄경의 구절을 적어 들고, 무애가를 부르며 춤추면서 여염집이나 술집을 드나들었다. 또한 천민인 땅꾼 뱀복이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그를 함께 장사지내면서 “세상이 모두 괴롭다”고 설법하기도 했다. 그는 방편에 불과한 계율을 자유로이 넘나들었고, 진과 속의 장벽을 넘어선 자유자재한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 민중에게 삶의 진리를 전하고, 그들의 괴로움을 함께 하는 자비를 실천한 보살이었다.
율곡
율곡(1536∼1584)의 사상과 사람됨을 볼 수 있는 글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그의 시가 아닌가 한다.
學道卽無著 隨緣到處遊 暫辭靑鶴洞 來玩白鷗州 身世雲千里 乾坤海一頭 草堂聊寄宿 梅月是風流
도를 배움은 곧 집착 없으매라. 인연따라 이른 곳에서 노닐 뿐이네. 잠시 청학동을 하직하고 백구주에 와서 구경하노라. 내 신세는 천리 구름 속에 있고 천지는 바다 한 모퉁이에 있네. 초당에 하룻밤 묵어가는데 매화에 비친 달 이것이 풍류로다.
도를 터득한즉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도란 이름할 수 없는 궁극적 실재이지만 이것을 기독교적 상징을 빌려 표현한다면 로고스요, 도가 사람의 몸을 입고 온 그리스도이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길(道)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한 것이다. 도를 터득한 율곡의 삶은 인연을 따라 도처에서 노니는 것이었다. 한 때는 불교를 배우기도 하고, 노자 도덕경을 재편하면서 주석을 달기도 했다. 그가 정도로 믿고 평생을 몸담았던 유교에 대해서도 실은 거기에 매이지 아니하고 초연한 자리에서 진리를 탐구했다. 유·불·선 등 종교라는 벽에 걸림이 없이 도만을 따라 살려고 했다. 율곡은 천리를 나르는 구름처럼 자유로운 존재였고, 그의 눈에는 천지가 바닷가에 놓인 한 개의 조약돌로 보였다. 인생이란 초당에 하룻밤 묵어가는 나그네라 사심 없이 바라보는 풍경은 멋스럽기만 하다. 매화나무에 걸린 달, 이것이야말로 풍류가 아니겠는가. “매월 이것이 풍류”라고 했을 때에는 율곡이 천애한다고 한 매월당(梅月堂) 김시습(1435∼1493)을 염두에 둔 듯이 보인다. 매월당은 포함삼교하는 자리에 서서 유·불·도에 자유로이 드나든 풍류객이었기 때문이다. 풍류의 멋은 초탈과 함께 생동감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회색빛 나는 종교적 논리 속에는 생명이 없다. 율곡은 어느 노승과의 대화 속에서 이런 시구를 남겼다.
“고기 뛰고 솔개 날아 아래위가 한가진데, 이는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로세. 무심히 빙긋 웃고 내 신세를 돌아보니, 지는 해 우거진 숲속에 나홀로 섰어라.”
천지에 가득찬 생명의 세계는 종교적 논리를 넘어서 있는 것인데, 우리는 종교적 시비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주의 생명을 숨쉬며 멋진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 종교가 아니겠는가? 유교는 본시 군자가 되어 사람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가르침이다. 29세에 장원을 한 율곡은 도에 통한 풍류객일 뿐만 아니라 유교적인 이상을 따라 이 세상에 도덕적 이상사회를 건설하려고 평생 관료생활을 한 사대부이기도 했다. 유교적 형식을 따른 실천적 종교인이었다.
3. 신천옹 함석헌
시와 감옥 “사람은 대지에서 시적으로 산다”고 한다. 대지 안에 갇혀 있지만 사람은 이것을 뚫고 하늘을 노래한다. 신천옹은 1940년에 계우회 사건으로 평양에서 일년간 옥고를 치루었고, 2년 후에는 「성서조선」사건으로 다시 서대문형무소에서 일년간 복역했다. 해방되던 1945년 11월에는 신의주 학생사건의 책임자로 소련군 사령부에 체포되어 50일간의 감방생활을 했다. 공산당 치하에서만이 아니었다. 월남한 신천옹은 자유당 독재정권 밑에 『사상계』에 실린 글로 인해 서대문 형무소에 20일이나 구금 당했다. 군사독재 치하에서의 신천옹의 고난은 더 말할 것이 없다. “5·16을 어떻게 볼까?”를 위시로 필화가 끊이질 않았다.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 모인 유지들이 “3·1 민주구국 선언”을 발표하고, 박정희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자, 정부는 선언문에 서명한 11명 전원을 구속 기소했다. 그 선두에 서 있는 이가 신천옹이었다. 신천옹은 옥중에서 시를 썼다. “시는 내 안에 임재하시어 내 얼이 되고 혼정이 되신 ‘한’님의 뜻을 읊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과 인생과 세계라는 감옥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빛을 품고 살아간다. 이 생명이 시를 낳게 하는 것이다. “시를 낳았으면 그곳은 이미 감옥이 아니다.” 시인 신천옹은 실로 감옥 아닌 감옥살이를 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읊었다.
“일찍이 이 생명의 뜻을 말하는 시가 있었다. 이 어두운 감옥 속에 비치는 불길이었다. 그는 참 뜻을 말하는 참 시였다. 이 우주의 아들이었다.…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그보다 더 큰 시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 예수는 최대의 시요, 시인이었다. 그로 인해 세상은 감옥이 아니라 광명한 낙원으로 변한 것이다. 신천옹이 예수를 주님으로 믿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수평선 너머
하늘만 믿고 살아온 바보새 신천옹 함석헌(信天翁 咸錫憲, 1901∼1989)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발길에 채어 이리저리 굴러온 것으로 생각했다. 일신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고난의 역사를 살아오면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역사의 수평선 너머로부터 다가올 구원의 소식을 기다리며 노래했다.
“바다, 넓이 끝없이 까만 깊이 한없이 아득한 바다 또 바다 저 바다 너머는 또 무엇이 있나?
물결, 앞에도 앞에도 푸른 푸른 옆에도 옆에도 하얀 하얀
물결 또 물결 저 물결 뒤에는 또 무엇이 있나? …‥ 바다 아닌 바다 물결 아닌 물결 바람 아닌 바람 소리 아닌 소리 거기가 가고파서 그리워서”
신천옹이 그리워하며 추구해 온 곳은 바다( )와 물결(用)을 넘어선 세계였다. “유(有)의 물결, 아득한 수평선”과 “무(無)의 모래밭, 뽀얀 지평선”을 넘어선 세계였다. 유와 무를 떠나 홀로 청정한 일심지원(一心之源)이요, 그곳은 “유와 무가 녹아들어 한 빛”을 이룬 세계이다. 마음과 역사를 넘어선, 그러면서도 종교와 역사가 하나로 녹아든 하나님의 나라요, 예술의 세계였다.
“끝없는 바다 끝없는 모래밭, 그칠 줄 모르는 떨리는 교향악, 수평선 지평선 넘겨다보며, 그 서품에 천평선(天平線) 기대고 서서, 어부는 영원히 영원을 내다보더라.”
어부는 예수인 동시에 신천옹이기도 하다. 어부는 “수평선 넘어오는 소식 오직 들으려” 숨을 죽이고 서 있는 시인이다.
원효는 삼공의 바다를 보았고, 율곡은 천리를 날으는 구름 위에서 천지를 내려다 보았다. 거기에서 그들은 자유요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말하자면 공간예술의 세계였다. 그러나 신천옹은 그칠 줄 모르는 역사의 교향악을 들으며 수평선을 넘겨다 보았다. 그곳에서 넘어올 소식만을 오직 들으려 기다리고 있었다. 말하자면 미래를 향해 연주되는 시간예술의 세계이다. 신천옹은 기독교적 역사의식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씨알의 소리
초월적인 하나님은 우주 안에도 밖에도 계시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는 우리의 마음과 인간의 집단적 인격체인 역사이다.
“밝히 말하자. 하나님은 하늘 아닌 하늘, 우리 혼 안에 있다.…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맘에 있다. 정신에 있다. 고로 맘이 청결한 자 하나님을 본다고 했다.”
사람은 우리 안에 모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데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뜻은 자유와 평화의 실현을 위한 사랑으로 집약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곳은 사회와 역사이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자기 실현 과정사이기도 하다. 그러면 우리의 역사는 어떠한가? “한국 역사의 밑에 숨어 흐르는 바닥 가락은 고난이다.” 우리의 정치, 사회, 종교, 예술할 것 없이 모두가 고난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우리의 역사의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은 무엇인가? “고난은 생명의 한 원리이다.”(간디).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인간을 새로운 존재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이제는 우리 한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전개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고난을 구체적으로 짊어지고 역사를 이끌어 온 존재는 지배층이 아닌 민중이다. 고난의 역사의 주체자는 민중이다. 이 민중을 신천옹은 “씨 ”이라 했다. 씨는 생명을 내포하고 있어 새로운 생명을 출발시키는 불사의 존재이다. 씨 은 하나님의 생명이 내재하여 우리의 얼이 된 존재이다. “하나님이 현상계에 내려오는 자리가 씨 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씨 을 통해 일하신다. 그런 뜻에서 하나님과 씨 은 둘이면서 하나이다. 씨 이 역사의 주체자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씨 이 당하는 고난은 곧 하나님이 당하는 고난이기 때문에 고난의 역사는 구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고난의 역사로서의 한국역사가 의미를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씨 은 하나님의 영이 자신의 얼이 된 “ 사람”이다. 그들은 하나님만을 믿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와 소망을 가지고 산다. 신천옹 함석헌은 씨 이요, 하나님만을 믿고 살아온 바보새였다. 씨 은 제 소리를 내는 주체적 존재이다. “
제 소리”란 자기 안에 있는 하늘의 소리이다. 씨 신천옹은 “제 소리꾼”이었다. 씨 의 소리는 제 소리인 동시에 하늘의 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씨 의 소리는 어두운 역사에 혁명을 초래한다. 신천옹은 「씨 의 소리」지를 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일생이 바로 씨 의 소리 운동이었다. 하늘의 소리를 전하는 예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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