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 756호>2008 01/01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16447
진보, 아픈 만큼 성숙해질 것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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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대선결산 대선 패배보다 더 큰 위기는 ‘대안 부재’… 집권 수행능력의 정당성 확보해야
‘시계추 효과’로 표현되기도 하는 정권교체가 민주주의 원리의 핵심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기에 어느 정치학자는 독재체제의 붕괴로 민주화가 시작된 이후에 두 번에 걸친 권력 교환을 민주주의 공고화의 경험적 척도로 삼았다. 물론 이때 권력 교환의 주체를 ‘보수’와 ‘진보’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보수’는 독재시기 집권세력과 정치적 연줄을 갖고 있는 정치세력인 반면, ‘진보’란 반독재 민주화세력의 맥을 잇는 정치세력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에서의 명실상부한 1기 민주정부는 1997년 경제위기 국면에서 집권에 성공한 ‘국민의 정부’다. 그리고 진보세력은 2002년 2기 민주정부를 다시 장악했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세력은 3기 민주정부를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수구보수’는 ‘실용보수’로 진화 서구의 경험에서 볼 때 민주주의체제하에서의 보수와 진보 간의 권력 교체는 아주 당연한 정치현상이다. 케인즈주의적 복지정책을 중시하는 좌파세력의 집권은 통화 안정을 목표로 한 긴축과 가혹한 구조조정을 핵심원리로 하는 우파 집권세력의 보수적 경제정책이 빚어낸 불안정 고용 문제에 대한 유권자 심판의 결과다. 반면 우파세력의 집권은 완전 고용을 목표로 한 좌파 집권세력의 재정 확대 정책이 빚어낸 물가 불안으로부터 반사이익을 얻은 결과다. 그러기에 진보의 참패로 끝난 2007년 대선이 진보와 민주주의 그 자체의 위기의 시발점이 되는지 아니면 한국에서 서구형 민주주의 모델의 초석을 다지는 중대선거인지가 쟁점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이미 이번 대선을 보는 진보진영 내의 시각에도 차이가 있다. 이번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를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 과정으로 보는 시각은 이제 곧 집권을 앞둔 보수세력을 더 이상 ‘수구보수’로 보지 않는다. 이들 보수가 아무리 과거 독재체제를 지지했던 정당들을 그 본류로 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미 10년이라는 기간을 걸쳐, 아니 군부에 대한 문민 우위의 원리를 제도화한 ‘문민정부’ 시기까지 포함하면 15년에 걸쳐 나름대로 이념적·인적 쇄신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수진영에서 ‘정통보수’가 분화해나갔다. 또 주목해야 할 것은 과거 두 번에 걸친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정통보수’이건 ‘실용보수’이건 민주주의의 절차와 규칙을 내면화함으로써 절차적 민주주의를 존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비교적 공정하고 규칙적인 권력 경쟁은 과거 독재체제 아래에서 투쟁했던 진보세력이 일구어낸 민주적 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시점을 통과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에 대한 우려 역시 만만치 않다. 그것은 ‘잃어버린 10년’ 내내 집권에 성공했던 진보를 향해 ‘친북좌파’, ‘용공’이라는 정치적 수사를 아끼지 않았던 보수가 ‘실용’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하더라도 과연 패자인 진보에 대해 어떠한 ‘공세’를 펼칠지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이는 10년 전 보수가 권력을 상실했을 때 들었던 불안감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가 서구 민주주의와 같이 좌(左)와 우(右)가 경쟁적으로 공존하는 구도가 제대로 정립되기도 전에 보수로 권력이 넘어감으로써 보수 일변도의 사회, 나아가 보수 일변도의 정치지형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시 말해 건국 이래 50년간 보수세력의 헤게모니가 사회 저변에 깊이 뿌리를 내렸는데, 이러한 보수의 헤게모니를 견제할 수 있는 진보의 대항 헤게모니가 뿌리내리기에 10년이란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는 얘기다. 기존 지지층조차 보수로 떠나 여기에서 진보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다시 말해 독재체제하에서의 진보가 반독재를 의미하였다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하에서의 진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지하다시피 1997년, 보수로부터 건국 이래 처음으로 권력을 쟁취한 진보적 집권세력의 출범은 1997년 경제 위기 여파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처방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개입 국면 아래에서 출범하였다. 그러기에 1기 민주정부는 민주주의의 얼굴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협약, 복지 등과 같은 개념이 정책 영역에서 등장하였다. 이 때문에 1기 민주정부에 대한 평가는 ‘과소시장론’과 ‘과잉시장론’으로 매우 상반되게 엇갈렸다. 1기 민주정부, 즉 ‘국민의 정부’를 과소시장론자들은 좌파로, 과잉시장론자들은 신자유주의로 각각 몰아붙였다. 이로써 1기 민주정부는 좌와 우에 포위되는 ‘샌드위치 상황’이 되었다. 샌드위치 상황은 2기 민주정부 시기에도 계속되었다. 일부 보수세력은 2기 민주정부의 중간 평가 시점에서 ‘참여정부’가 갈지 자 정책을 펴고 있지만 실상 좌파정책을 일관되게 지속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좌에서는 2기 민주정부 역시 1기 민주정부의 뒤를 이어 신자유주의 경향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장의 반응을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론을 펴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처리한 ‘참여정부’의 처사가 바로 그러했다. 이들에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조차 월권행위로 받아들여졌다. KTX 여승무원 문제에 대한 냉담한 반응도 같은 맥락에 있었다. 그렇지만 보수에 2기 민주정부는 여전히 반기업·반시장적이었다. 경기 침체는 현 정부의 반시장 정서에서 파생한 기업들의 소극적 투자에서 비롯했다는 것이 보수의 일관된 논리다. 심지어 2기 민주정부가 시민사회진영에서 그토록 반대한 한·미 FTA를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에 2기 민주정부는 여전히 반시장적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렇듯 평가가 엇갈리는 정책하에서 삶의 질의 추락을 체감한 유권자들이 ‘더 많은 시장’을 삶의 질 개선의 해법으로 내놓은 보수의 이데올로기에 호응했다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시장’이 ‘더 많은 눈물의 계곡’을 만들 수 있음에도 대다수 국민이 이를 지지한 것이다. 특히 이 와중에 보수의 부패와 연관된 윤리적 허점과 진보의 남북평화정착 성과는 뒷전으로 밀렸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하에서 ‘시계추 효과’의 관건은 절차적 정당성에서 수행능력 정당성으로 이동한다. 집권세력의 위기는 수행능력 정당성의 위기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그러한 면에서 이번 대선에서 진보의 참패는 수행능력 정당성의 위기와 연관된 것이다. 그러나 진보의 더 큰 위기는 진보가 집권시기에 대안의 조직화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특히 집권세력은 한편으로는 보수로부터 좌로 낙인찍히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사회와의 소통까지 단절하면서 더 많은 시장을 통해 경제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정체성 부재의 정치가 기존의 지지층조차 정치적 냉소나 심지어 보수진영으로 밀어냈다. 결국 진보의 위기는 어설픈 대안에서 비롯했다. 그것은 ‘현실’을 빙자한 신자유주의로의 자발적 투항의 결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신자유주의의 압력 속에서 출범한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제약의 결과로도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분명한 것은 대안의 조직화 없는 진보의 위기 탈출은 상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진보-보수의 권력 교환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꽃인 바, 보수로부터 권력을 되찾아올 수 있는 대안적 프로젝트가 없는 진보의 수행능력의 문제야말로 진보의 진짜 위기인 것이다. 박은홍〈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정치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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