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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류영모

다석 류영모(오강남)

by 마리산인1324 2006. 12. 20.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

http://www.gigabon.com/bbs/board.php?bo_table=c009&wr_id=63

 

<예수는 없다> 오강남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
 

예수님의 신성,인성에 관하여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과는 좀 다르게 예수님을 본 몇 분을 잠깐 소개하려 하는데, 그 전에 일종의 서론 격으로 폴 틸리히의 다음 글을 인용하고 싶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 여러분, 저를 믿어 주십시오. 기독교를 가르치는 것이 다만 기독교만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가르칠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고 기독교와 상관이 없는 여러분,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제가 오늘 이 시대를 위한 예수님의 초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여러분을 종교인이나 기독교인으로 만들 목적에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가 하나의 새로운 종교를 가져다 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종교와 비종교, 기독교와 비기독교를 넘어선 종교의 끝(the end of religion)이시기 때문입니다.(The Shaking of the Foundations, 108.)

 

처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분은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 선생님이다. 이 분은 함석헌 선생님의 선생님이시다. 20여 년 전에 함석헌 선생님이 캐나다 우리 집에 오셔서 주무시고 가실 때 류영모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분의 『늙은이』라는 도덕경 풀이 책 한권을 주고 가셨다. 그 후 관심을 갖게 되어, 10여 년 전 한국에 가서 이 분에 관한 논문 발교회에 참석하기도 했는데,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 한국 학생으로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에서 이 분에 관해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이를 통해서였다. 지금 예일 대학에서도 이 분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이가 있다고 한다.


 

마침 다석 선생님에 관해 박영호님(다석사상연구회 연구지도위원)이 쓴 그이 있기에 다 같이 한 번 생각해보고 싶어, 저자의 승낙을 받아 여기 옮긴다.

 

1975년 3월 13일은 류영모(柳永模)의 85번째 생신날이었다. 음식 잔치 대신 말씀 잔치를 마치고서 류영모는 자신이 일생동안 읽던 신약전서를 닮지 못한 제자인 이 사람에게 주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귀중한 유품을 지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받기를 사양하자 "이렇게 주고받을 수 있을 때가 좋은 거요. 받아두시오."라고 하면서 이 사람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렇게 주고받을 수 있을 때가 좋다는 것은 자신은 죽을 때가 지나 내일 일을 모르는데 이렇게 살아있을 동안에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 사람이 받은 그 신약전서는 1909년 판으로 스승님이 한국전쟁 동안 부산까지 피난 갈 때도 몸에 지녔던 수택(手澤) 짙은 보물이었다. 다른 값진 동양고전도 없지 않았는데 그 신약전서를 가장 귀중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류영모와 성경(예수)의 관계를 헤아리고도 남는다.


 

류영모가 말하기를 "내가 열여섯 살(만15세) 때부터 예수교를 믿기 시작하여 스무세 살 때까지는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보혈로써 속죄 받는다는 십자가 신앙이었다." 라고 하였다. 23살이면 20살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갔다가 물러나고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동경물리(東京物理) 학교에서 유학하던 대이다. 교회주의 정통신앙을 회의하게 된 것은 정주(定州) 오산학교에서부터였다. 정주 오산학교에 처음으로 기독교 정통신앙을 시 뿌린 이가 류영모이다. 1910년 류영모가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교단에 서기 전에는 오산학교와 기독교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정주 오산학교를 세운 남강 이승훈(李昇薰)이 기독교 신자가 되어 3 1 운동 33인의 기독교 대표가 된 것은 류영모가 정주 오산학교에서 기독교를 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류영모가 열성으로 다니던 교회를 안 나가게 된 것은 개인적인 작은 일로 덮어둘 수만은 없다. 류영모는 교회를 학교처럼 졸업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학교 졸업생이 이따금 모교를 찾듯 모교회(서울 연동교회)를 찾기도 하였다. 연동교회가 불탔을 때는 일부러 담임목사를 찾아 위로하였으며 예배에 참석하였다.


 

류영모가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된 것은 예수가 싫어진 탓이 아니었다. 예수의 가르침과 교회의 가르침이 어긋나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된 것은 내가 예수를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집에서 혼자 성경을 보고 싶어서이다. 일본의 우치무라 간죠(內村鑑三)는 사도신경에 입각한 정통신앙인이지만 톨스토이나 나는 비정통이다. 예수가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린 것을 믿으면 영생한다는 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 소위 교회본위의 교회주의 기독교 교인은 이 사람을 대단히 싫어하는 줄로 안다. 이 사람이 생기어 먹은 것이 내가 생긴 대로 하는 것이지 억지로 어떻게 만들어서 지어 가지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류영모가 오산학교 교사로 있던 그 때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류영모가 22살 때 20살의 아우 영묵이가 죽었다. 아우 영묵과 함께 서울 YMCA에 우국지사의 연설을 들으러 다니다가 김정식(金貞植)의 권유로 예수교 신자가 되었던 것이다. 아우의 죽음은 교회신앙에 회의를 일으켰다. 마침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시당 여준과 단재 신채호의 권유로 노자(老子)와 불경을 읽게 되었다. 그리하여 진리의 말씀은 성경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춘원 이광수가 가지고 온 톨스토이의 저서를 탐독하게 되었다. 마치내 류영모는 사도신경에 입각한 교의신학이 예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류영모가 교회에 안 나간다고 예수를 아주 버리거나 개종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불경을 알고 싶어서 어느 스님을 찾아가 화엄경을 배운 일은 있었다. 류영모는 동서양의 사상을 넓게 깊게 다 섭렵하고서 예수의 위대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생각은 이미 많이 달라져 있었다.


 

60대에 들어와서 한 말이다.


"이 사람에게도 뜻 가운데 인물이 있다. 내가 잘못할 때 나에게 잘하라고 책선(責善)하는 벗이 의중(意中)의 사람이다. 내게 책선하는 이는 예수다. 예수는 나의 선생이다. 그러나 예수를 선생으로 아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다르다. 예수라고 우리하고 차원이 다른 게 아니다."

"예수, 석가도 혈육으로는 우리와 똑같다. 예수가 말하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5)라 하였다고 예수가 우리보다 월등한 것은 아니다. 몸으로는 예수의 몸도 내 몸과 같이 죽을 껍데기지 별것이 아니다. 예수만이 혼자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이 주신 얼의 씨를 키워 로고스의 성령이 참나라는 것을 깨달아 아는 사람은 누구나 모두 얼의 씨로는 하나님 아들이다. 내가 로고스의 얼로 하나님 아들인 것을 알고 이것에 매달려 줄곧 위로 올라가면, 내가 하늘나라로 가는지 하늘나라가 내게로 오는지 그것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하늘나라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씨인 로고스의 얼이 하늘나라이며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사람마다 이것을 깨달으면 이 세상은 그대로 하늘나라이다.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씨(얼)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을 얼의 나로 깨달으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 그러면 누구나 몸으로는 죽지만 하나님 아들인 얼로는 죽지 않는다. 몸나에서 얼나로 거듭나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다. 얼나((靈我)가 참나임을 깨닫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얼나)은 예수가 오기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어내려 오고 있다. 예수는 단지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이 사실을 똑똑히 깨달아 가르쳤다."


"우리가 예수의 삶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아들 노릇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의 아들 노릇을 하는 데 아주 몸까지 희생하였다. 처음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거룩한 제물이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날마다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이 생각이 나와야 한다."

류영모는 예수를 비롯하여 석가, 노자, 공자를 좋아하여 그들의 가르침이 쓰여 있는 경전을 읽었으나 이 종교 저 종교로 개종(改宗)한 일은 없다. 그렇다고 무교회주의자처럼 가정에서 예배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혼자 기도 명상을 할 뿐이었다.

 

류영모가 자신을 기독교 신자라고 하지 않는 까닭을 밝혔다.

"이 사람은 몇 십 년 전에 예수를 믿었는데, 요새 사람이 나를 보고 당신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래서 나도 이 세상 사람이 알아듣기 쉽게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요새 여러분이 내 말을 듣고 저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무슨 기독교신자인거라고 하면서 답답해 할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나는 예수를 안 믿는 무종교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가볍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더구나 나는 요새 부끄러워서 예수 믿는다고 할 수 없다. 나는 늘 이단이라고 해서 안 믿는다고 하는 것이 차라리 좋지만 이제는 그나마도 믿는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믿는다면 무슨 외래 무당처럼 보인다. 참으로 섭섭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류영모는 예수의 말과 같이 예수가 주는 말씀의 물을 받아 마시고는 류영모 자신의 마음속에서 영원한 생명인 생수가 샘솟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남에게 물 얻으러 다닐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누가 류영모에게 동네 우물에 물 얻으러 오지 않는다고 나무랄 수 있겠는가. 모든 사람이 류영모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라고 예수가 가르친 것이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2)." 류영

모는 멸망의 생명인 제나(自我)로부터 자유하는 영원한 생명인 얼나로 솟난 사람이다.

류영모는 톨스토이, 간디와 더불어 가장 우수한 예수의 제자가 되고 예수의 영우(靈友)가 되었다. 얼나로 한 생명이 된 것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극히 높은 데 계신 완전한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자는 게 예수의 인생관이라고 생각된다. 나도 이러한 인생관을 갖고 싶다. 이런 점에서 예수와 나와 관계가 있는 것이지 이밖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걸 신앙이라 할지 어떨지 예수 믿는다고 할지 어떨지 나는 모른다. 예수 석가 노자는 정신적으로 영생한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그들의 말을 듣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하고 상관이 없다."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를 믿었다. 그리고 개종한 일은 없다. 그러나 간디에게 힌두교 냄새가 나지 않는다. 류영모는 기독교를 믿었다. 그리고 개종한 일은 없다. 그러나 류영모에게 기독교 냄새가 나지 않는다. 간디나 류영모는 모든 종교를 초극하는 구경각(究竟覺)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예수, 석가가 보여 준 가장 바람직한 신앙생활인 것이다. 사람이 예수 석가처럼, 간디 류영모처럼 종교에 매이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 땅 위에서 자기가 믿는 종교만이 유일절대한 구원의 종교라면서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이른바 종교근본주의(Fundamentalism)가 가는 곳마다 증오와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진리되시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다. 얼나(靈我) 아닌 제나(?性) 탐 진 치(貪瞋痴)의 짐승 노릇(惡業)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