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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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4(수) 19:36
“종교적 의문 ‘나알알나’로 깨우쳐”
김흥호 목사. 전직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다. 여든 다섯의 나이에 그는 지금도 매주 일요일이면 이화여대에서 동양 고전과 성서를 각각 1시간씩 강의한다. 21일 대학교회 지하 세미나실에는 120여 명의 수강생들이 모여 장자와 마태복음에 대한 그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의 강의는 기독교는 물론 동서양의 철학과 유불선을 넘나들지만 쉽고 재미있다. 이날 마태복음에 대한 강의는 거짓 선지자와 잘못된 종교 행태에 대한 일갈이었다.
“나더러 주여 ! 주여 !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계시도 받지 못한 가짜 예언자, 거짓 예언자가 많습니다. 이들은 면허 없는 의사나 운전자나 마찬가지지요. 지금 세상에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치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헤롯왕이 지은 성전이 치부의 도구였다며 요즈음 교회들의 행태를 꼬집는다. 바리사이파와 제사장은 조선시대 탐관오리와 비유된다.
그는 이날 물과 불의 비유를 들어 종교에서의 중도를 강조했다. “냉담한 사람은 무슨 파다, 무슨 이론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쪽으로 파고 들고, 반대쪽은 오로지 믿습니까, 주님 주님 하는 쪽으로 빠져듭니다. 한 쪽은 도덕이 없고 다른 한 쪽은 철학이 없습니다. 도덕이 없으면 족(足)이 없는 불신이 되고 철학이 없으면 목(目)이 없어 미신에 빠집니다. 종교는 철학과 도덕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김흥호 목사는 ‘양복 입은 도인’으로 알려진 다석 유영모의 제자다. 일일일식(一日一食)을 실천한 스승의 삶을 ‘본대로 받아’ 그도 50년이 넘게 하루 한 끼만을 먹으며 쉼없이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직 교수지만 그는 목사이자 신학자로, 동서양 철학의 대가로 기독교뿐 아니라 유불선을 한데 꿰뚫고 있는 선지식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19년 황해도 서흥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가 젊은 시절에 품었던 화두는 ‘믿음은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스승을 찾아 방황하던 그는 기독교에 대한 핍박을 피해 월남한 뒤 스물아홉 때 이광수의 소개로 다석을 만나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지 6년째. 하지만 그는 칠순 노모의 병수발을 위해 결혼을 하면서 “스승과 헤어지게” 된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로 식(食)과 색(色)의 극복을 강조한 다석은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스승은 깨달을 기회를 잃을까 만류했지만 결혼 뒤에도 깨달을 기회를 얻었으니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깨달은 이들로 예수와 부처도 있지만 소크라테스와 공자도 있지 않나요”
몸은 헤어졌지만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놓지 않았다. 6년 동안 배운 내용을 주역을 통해 정리하면서 매일 주역의 괘를 방에 걸어놓고 깊은 사색에 들었고 그 해 3월17일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해왔던 고민이 태극으로 모아지더니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 위, 신장, 간, 폐 등 오장육부가 성한 데가 없어 네 번이나 죽을 뻔할 정도로 나빴던 몸도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나를 알고 나니 앓던 몸이 나은 거지요.”
그는 이를 ‘나알알나’로 표현한다. 제자들인 운영하는 홈페이지 이름( www.naalla.net)도 여기서 딴 것이다. 이날부터 그도 하루 한 끼 먹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석달 뒤 스승을 찾아갔으나 다석은 냉담했고, 그가 우리 말로 옮긴 <대학>과 <중용>을 보고 난 뒤에 계시라는 뜻을 담은 현재(鉉齋)라는 호로 ‘인가’를 한다.
‘양복입은 도인’유영모의 제자
주역 괘 깊은 사색 뒤 깨달음
‘원각경 강해’등 전집 준비돼
“기독교의 복 정확한 뜻 알게”
이 때부터 그는 12년 동안 불교의 보임(保任)처럼 깨달음을 깊고 완전히 하는 수행기간을 갖는다.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를 3년씩 궁구한 끝에 그는 각각의 사상에 담긴 깊은 뜻을 꿰뚫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서양과 다양한 종교를 넘나들면서 하나의 원리를 설파하는, 원융무애한 경지에서 펼쳐지는 그의 강의는 이런 진리 탐구의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다.
그의 경지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미국에 선불교를 알린 스즈키 다이세쓰 선사의 제자로 미국 시카고 젠센터 소장인 마쓰나가가 70년대초 한국의 선사들을 만나러 왔었다. 마쓰나가는 통역과 안내를 찾다 그를 소개받아 함께 전국의 사찰을 돌며 선승과 대화를 나눴다. 떠나기 전 서울 동국대에서 강연을 했는데 그 때 선문답과 같은 어려운 질문이 쏟아졌다. 그 때 마쓰나가는 김씨에게 대신 답할 것을 요청했다. 함께 다니며 그의 경지를 알아본 때문. 김흥호는 청산유수처럼 법담을 쏟아냈다. 마쓰나가는 뒤에 일본의 불교신문에 한국의 선불교 경험을 쓰면서 목사인 김흥호씨가 구경각의 경지를 노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적었다.
그는 스승 다석의 사상을 일좌천지통(一坐天地通) 일인유무통(一仁有無通) 일식주야통(一食晝夜通) 일언생사통(一言生死通)으로 요약해 일일일생(一日一生)의 삶을 살고 있다. 봄인 새벽에 일어나 꿇어앉아 공부하고, 여름인 낮에는 열심히 일하며, 가을인 저녁에는 한 끼 식사를, 겨울인 밤에는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져 하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는 목사지만 종교에 대해 걸림이 없다. “모든 것이 시대상황에 따른 것입니다. 나도 300년전에 태어났으면 유교를 공부했겠지요. 내 안에 조상들이 공부했던 불교, 도교, 유교가 모두 들어있습니다.” 깨달음에 대해서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소질을 찾는 것”이라며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게 선생임을 알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우리 나라의 기독교가 기복신앙으로 가고 있다고 걱정했다.
“기독교의 복은 하늘의 숭고한 뜻과 하나님을 만나는 데 있습니다. 8복 안에 돈 얘기는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기독교의 복과 한국의 복은 개념이 다릅니다. 목사들이 교인들 늘리려고 거짓말하고 있지요. 신학교에서 바로 가르쳐야 하고 목사들도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지금의 기독교에 대해 의심을 품고 어떨 때는 반항도 해야 합니다.”
김흥호는 유불선과 기독교를 일화(一和)시킨 철학자이자 각자로 평가받고 있다.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자 지난 2002년 아예 출판사를 만들었다. <원각경 강해>와 <주역강해>(1, 2, 3)을 펴내고 지금까지 그가 강의한 내용을 모아 40권짜리 전집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간행위원회에는 강영훈 전 총리를 비롯, 구상, 류달영, 서영훈, 윤후정, 장상, 장회익씨 등이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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