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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국가보안법위반 무죄판결, 그 의미와 뒷이야기들

by 마리산인1324 2008. 2. 20.

 

 

<비폭력평화물결>2008년 02월 04일 (월) 10:44:45

http://peacewave.net/bbs/zboard.php?id=F01&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3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국가보안법위반 무죄판결, 그 의미와 뒷이야기들



이정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 이시우 변호인)


2008년 1월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7형사부(재판장 한양석)은 평화사진작가이자 『민통선 평화기행』의 저자인 이시우씨의 국가보안법위반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작년 1월 하순, 서울지방경찰청의 내사사실이 알려지고 이시우 작가가 십여년 넘게 창작해온 필름 2000여장의 원본이 모두 압수된 뒤로 꼬박 1년 만에 내려진 무죄판결이다.

공소사실 5가지 모두 무죄 판결

이번 사건의 공소사실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이시우 작가가 공군 방공포대, 민통선 지역, 미군 기지를 사진촬영하고 메모와 스케치를 작성해 군사상 기밀을 탐지 수집하였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공소사실이다. 하지만 사진, 메모, 스케치는 기지 외부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지 않는 장소에서 촬영.작성한 것이어서, 기밀의 요건인 비공지성(非公知性)이 인정되지 않고, 내용상 기밀로 보호할 가치도 없다는 것이 판결이유이다. 판결은, 이시우 작가가 열화우라늄탄 보유 의혹을 제기한 유엔사 경비대대 캠프 보니파스의 탄약고 사진은 군사기밀에 해당하지만, 이시우 작가는 대인지뢰매설 실태조사, 핵무기 및 화학무기 감시 등 평화운동을 위해 관련 정보를 수집한 것이고, 메모 등은 제3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고자 작성한 것이 아니라 조사활동의 편의를 위해 작성한 것이므로 북한을 지원할 목적이 없어 무죄라고 보았다.

둘째, 이시우 작가가 자신의 홈페이지와 통일뉴스에 미군기지 지도, 내부 도면, 사진, 기지 설명을 게재하여 군사상 기밀을 누설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판결은, 미군기지 지도나 내부 도면, 사진, 설명은 대부분 미국 국방부 공식 사이트나 미국의 민간 군사전문사이트 글로벌 시큐리티 www.globalsecurity.org 에 공개된 것이거나 언론, 인터넷에 공개된 것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것이어서 비공지성을 인정할 수 없어 무죄라고 보았다.

셋째, 이시우 작가가 유엔사, 한국전쟁의 역사, 주한미군의 핵무기·화학무기 등 주제에 관하여 통일뉴스에 기고하여 이적표현물을 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들의 주요 주제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남북의 화해.협력, 통일에 있고 북한을 찬양하거나 북한의 주장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내용이거나 적극적.·공격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없으며, 미국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전제되어 있더라도 이 역시 헌법상 표현의 자유로 보장되는 범위 내에 있어 무죄라는 것이 판결이유이다.

넷째, 이시우 작가가 통일학연구소 소장인 한호석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북한 원전과 국내에서 출판된 이적표현물을 보관하여 이적표현물을 소지.반포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기소된 북한 원전 중 『임제.권필 작품집』, 『임진의병장 작품집』은 고전문학작품 번역일 뿐이고 국내 출판물 중 『쿠바혁명사』, 『한국공산주의운동사』는 학술서적으로서 이적표현물이 아니라고 판결하였다. 다른 글들은 내용상으로는 이적성이 있지만, 남북관계가 활성화되고 북한 출판물 등에 대한 국민의 수요도 늘어나면서 이런 출판물들도 공공도서관이나 정부기관에서 자유로이 열람, 대출, 등사할 수 있고, 이시우 작가는 북한 원전들이 연구, 자료수집 목적으로 소지하고 집필에 활용하였으므로 이적목적을 인정할 수 없어 무죄라는 것이 판결이유이다.

다섯째, 이시우 작가가 한통련, 조총련 구성원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인사를 나누고 인터넷 댓글에 답글을 달아 회합·통신하였다는 것이다. 판결은,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죄에 해당하려면 목적수행을 위한 일련의 활동과정에서의 모임.연락으로 인정되어야 하는데, 이시우 작가가 사진전, 주일미군기지 실태조사 등 합법적 활동과정에서 만난 것은 의례적, 사교적인 차원에 불과하여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이시우 무죄판결, 법이론적으로도 주목
‘평화운동 위한 정보수집’, 헌법상 권리로서 합법성 인정받아

이번 판결은 그 결과 뿐만 아니라 법이론 측면에서도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정보의 비공지성 판단기준을 정립하였다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뜨인다.
대법원은 그동안,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의 요건을 ①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실.물건 또는 지식에 속하지 아니할 것(비공지성), ②기밀로 보호할 실질적 가치가 있을 것(要非匿性)으로 정하고 있었다. 공지된 것인지 여부는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나 통신수단 등의 발달 정도, 공표의 주체 등 여러 사정에 비추어보아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가 더 이상 탐지.수집이나 확인.확증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인지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고, 한정된 범위의 사람만이 참관할 수 있는 세미나 내용이나 구할 수 있는 서적의 내용은 공지의 사실이 아니라는 판결을 통해 일반인이 제한 없이 취득할 수 있는지 여부를 공지성 판단의 기준으로 삼은 일이 있다.

인터넷에 방대한 정보가 올려지고 누구나 인터넷에 쉽게 접근하여 약간의 검색만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금에는 공지의 사실의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없는데,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어떤 경우 공지의 사실로 볼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선례가 없었다. 이 판결은 과거에 일반에 널리 알려져 공지의 정도에 이르지 않은 사실이라도 누구든지 원할 경우 자격이나 신분의 제한 없이 용이하게 접근하여 검색 등 어느 정도의 노력만 들이면 국내외의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경우 비공지성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보아, 기밀의 요건인 비공지성을 인터넷 기반의 정보사회로 변모한 우리 사회 현실에 맞게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고, 비공지성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좀 더 발전시켰다.

판결은 군기지를 들여다보고 촬영하는 행위도 이런 기준에 따라 판단하였는데, 기지 외부의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지 않은 장소에서 아무런 제한 없이 일반인이 관찰할 수 있는 군사시설물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라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누구든지 원할 경우 자격이나 신분 제한 없이 용이하게 접근 가능하므로 비공지성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보았다. 실제로 미군기지의 상당수가 도심에 있어서, 기지 내부를 보고 촬영할 수 있는 건물로 둘러싸여있고 기지 외곽에서 누구나 제한 없이 일정 부분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군 자체로도, 일반인에게 감추어야 할 시설은 별도의 보안조치를 취하는 것이 당연해진 것이다.

오키나와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망원렌즈로 미군기지를 들여다보고 촬영할 수 있는 전망대를 관광지로 개발하고, 시민단체가 늘 감시하는 것이 아무 제한 없이 허용되고 있을 만큼, 출입이 제한되지 않은 장소에서 기지를 들여다보고 촬영한 것이라면 이를 군사기밀 탐지 수집으로 볼 수 없다. 이 판결은 비공지성 판단기준을 일반인의 접근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정립하는 합리성을 보여주었다.

이적표현물 소지죄를 판단하는데 있어, 이 판결은 남북교류가 활발해지고 북한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면서 북한 원전에 대한 국민의 수요가 늘어나고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이 이른바 이적표현물을 소장하고 일반인에게 제한 없이 대출하고 등사를 허용하고 있는 현실을 판단에 반영하였다.

법원이 늘 유의해야 할 판결의 구체성과 현실성을 잘 살려낸 지점이다. 법해석은 법전의 문구를 현실에 맞게 다시 쓰는 작업이다. 현실이 널리 허용하는 것을 법률 조항을 들어 금한다면 말 그대로 고루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판결이 되고, 사법부의 권위는 더욱 떨어질 뿐이다. 이 판결은 변화하는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북한이 적이면서 대화의 상대방이기도 하다는 이중지위론을 고집하는 등으로 국가보안법 해석에서 시대와 동떨어져 자기모순에 빠진 사법부의 인상을 바꿀 의미있는 판결이다.

국가보안법사건에 대한 무죄판결이라는 제목에 감추어지기 쉽지만, 이번 판결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평화운동의 필수 요소인 정보수집의 합법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군 관련사항, 안보문제 관련사항은 정부와 군의 비밀주의에 따라 감추어지고 정부와 군의 이해관계에 맞는 일부 사항만 공개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감시란 있을 수 없다. 정부와 군이 언론과 시민사회의 의견을 무지의 소산이라고 몰아세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언론이나 시민사회의 평화운동은 무엇보다 정부와 군에 대한 감시와 정보 수집.분석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 판결은 정부나 군에 대한 정보의 수집.분석을 헌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권리로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이시우 작가가 평화운동을 위해 정보를 수집 분석할 목적으로 군사시설을 촬영하였다는 점을 이적목적을 인정하지 않는 근거로 들었으며, 정보 수집이 평화운동의 필수 요소로 합법적인 것임을 시인하고, 나아가 헌법상 권리임을 인정하였다.

이 판결이 법률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헌법에 입각한 판단이라는 점을 내보이는 핵심 대목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평화적 생존권을 국가에 대한 개인의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바 있다. 평화운동을 위한 정보수집권 역시 평화적 생존권의 한 내용으로 포섭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앞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평화적 생존권, 평화롭게 살 권리의 내용과 범위는 더욱 풍부하게 넓혀져 갈 것이다.

3년여 수사, 50일 구속기간도 짧다는 무능한 검찰

무죄 판결을 놓고 보면, 이 사건 수사와 기소과정에서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굳이 뒷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이런 문제가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가장 큰 문제는, 검사가 무리하게 공소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한국군과 주한미군 모두 현실감각이 완전히 결여된 채 비밀주의에 입각하여 그 공소제기의 근거를 제공하고, 경찰과 검찰의 방대한 수사인력은 기초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공소사실 중 국가기밀 탐지와 누설 부분의 내용은, 이시우 작가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일본 자위대 전력표, 민통선 내 초소 사진, 한미연합군사훈련 사진, 미군기지 사진과 내부 지도, 한국군 공군부대 항공사진 등 여러 사진과 그림을 올리고, 여러 기사에서 작전계획 5027의 작전단계와 작전목적 등 군사사항을 누설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자위대 전력표는 2000년 국방백서에 실려 있는 도표를 그대로 옮겨다놓은 것이었다. 국방백서는 국방부가 발행, 배포하고 국방부 홈페이지에 전자책으로 올려놓기까지 한 것이다. 그렇지만 군은 경찰에 이것 역시 군사기밀사항이라고 회신했다. 민통선 내 초소 사진은 경기도청에서 운영하는 경기도-DMZ 사이트에 올려놓은 것과 같았다. 경기도-DMZ 사이트에는 관련 사이트 화면에 당당히 이시우 작가의 홈페이지가 링크되어 있었다. 검사는 이시우 작가가 글을 퍼담아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그 출처로 통일학연구소 홈페이지 주소를 써놓은 것도 이적목적을 나타내는 한 징표로 들었는데, 경기도-DMZ 사이트의 링크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나보다.

미국 국방부가 공개하고 있는 사진자료 홈페이지 www.dod.mil 에서 “RSOI"라고 치면 2006년 만리포 한미연합군사훈련 사진들이 수십 여장이나 나오는데, 함정 번호까지 다 보일 정도로 이시우 작가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훈련사진보다 훨씬 자세하다. 미군기지 도면은 글로벌 시큐리티에 있는 그대로이고, 미군기지 사진은 미국 국방부와 주한미군의 공식 홈페이지, 주한미군 근무자들의 개인 홈페이지들에 셀 수 없을 만큼 널려있다.

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는 구글 어스(Google Earth)는 미군기지의 건물은 물론, 내려앉은 헬리콥터 모양까지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시우 작가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한국군 공군부대 항공사진을 구글 어스의 깨끗한 화면에 비하면 답답할 정도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이시우 작가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사진을 두고 ”테러리스트들의 침투에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는 회신을 경찰에 보내왔다. 한국 공군 역시 ”적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고 회신했다.

이시우 작가가 쓴 글 가운데 '작전계획 5027'의 작전단계는 1994년 보도된 일간지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법정에 나온 합참 관계자는 글 가운데 어느 부분이 기밀인지 말하는 것 자체도 기밀누설이라고 하였다. 심지어 장교들도 자기 부대의 임무에 관련된 것만 알 뿐 작전계획의 작전단계를 알지 못하고 제대한다는 것이다. 그 증언이 사실이라면, 우리 군은 군 관련 사항이 얼마나 언론에 보도되는지도 전혀 모르고 국민이 신문에서 본 내용조차 모르는 채로 현실에는 눈감고 귀막고 지내는 셈이다.

설령 군이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의견을 보내오더라도, 경찰과 검찰은 판례상 기밀의 요건이 갖추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당 사항이 이미 언론에 보도되거나 인터넷에 공개된 내용인지를 확인했어야 했다. 그러나 서울지방경찰청 보안과와 서울지검 공안부는 2004. 7. 이시우 작가에 대한 감청과 미행을 시작하여 2007년 1월 압수수색, 2007년 6월 기소까지 3년여가 넘는 기간 동안 이시우 작가를 수사하면서 이런 점을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 도리어 검사는, 법정에서 “구속기간이 짧아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가보안법사건의 구속기간은 50일이다. 일반 사건보다 20일이나 길다. 이것 자체가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한 훼손이자 신체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인 침해이다. 하지만 검사의 입장에서는 50일의 구속기간도 짧은 것이었던가. 과연 구속기간이 얼마나 되어야 충분하다고 할 것인가. 이들이 국민의 인권보호임무를 저버린 채 국가보안법과 공안수사기구 존속을 위해 편향된 시각에 사로잡혀 수많은 인력과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검사, “이렇게 끝까지 진술거부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변론과정에서 공소사실 각각이 공지의 사실이라는 점이 밝혀지자, 검사는 공지의 사실도 모아놓으면 기밀이 된다는 이른바 모자이크 이론을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모자이크 이론은 독일 형법에서 1960년대까지 적용되던 개념으로, 독일연방헌법재판소로부터 처벌범위가 확대되고 일반인에게 알려진 개별 사실과 그로부터 형성되는 전체 형상 사이에 정확한 한계를 그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여러 차례 비판받아왔고, 1968년 독일 형법 개정시 폐기되었다.

아직 국내에서는 이와 관련된 판례가 없지만, 우리 형법이 전범으로 삼았던 독일 형법에서 이미 수 십 년 전에 폐기된 이론을 새삼스럽게 주장한 것은 무리한 공소제기이다. 이 판결에서는 이 주장에 대해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않았지만,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모자이크 이론을 배척하였다고 볼 수 있다.

무리한 공소제기라는 점은 이적목적에 관한 부분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검사는 이시우 작가에게 이적목적이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이시우 작가가 친구와 한 농담, 대화 내용이 전혀 밝혀지지 않은 제3자와 만난 사실 자체,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에 관련하여 유엔사의 권고에 따라 이루어진 북한 측과의 협의 등을 거론하였다. 이렇게 증거가치가 전혀 없는 사실들을 근거로 열거하여야할 만큼 이적목적을 입증할 증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기소한 것이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는 인터넷 댓글에 대해 이시우 작가가 공개리에 의례적인 내용의 답글을 달고, 재일 민단.한통련.총련 동포들이 함께 만든 ‘삼천리 철도’단체의 초청 강연 뒤에 참석자들과 인사 나눈 것 가운데 한통련.총련 관계자들 것만 떼어 회합 통신으로 기소할 정도로, 공소사실 자체가 극단적으로 편향된 시각에서 구성된 것들이 상당수였다.

이런 무리한 기소로 인하여 이시우 작가는 5개월 이상 수감되고 1년 가까이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공소제기의 권한은 검사의 뜻에 달려있는 것이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고인이 감당해야한다. 그 피해가 무엇으로 구제될 것인가.

많은 국가보안법 수사과정의 인권침해와 경시는 이 사건에서도 여전하였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004년 1월 이시우 작가가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해외담당자의 소개로 히로시마 조선학교 교장과 메일을 주고받은 사실(회합.통신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무죄 선고됨)을 들어, 이시우 작가가 국가보안법위반 전력이 있으며 분단과 전쟁을 소재로 한 사진작업을 하고 있고 과거 다른 사건 관련자들의 월북 장소인 강화도로 이사하였다는 점을 근거로 발부받은 감청영장에 근거하여 짧게는 10개월에서 길게는 1년 6개월까지 이미 발부받은 감청영장을 기간연장해가며 2년 10개월 동안이나 전화와 전자우편을 감청하고, 이시우 작가를 미행하였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제한조치의 기한을 2개월로 하고 2월의 범위 안에서 연장할 수 있다고 정하지만, 실제로 1년 6개월까지 연장된 것이다. 결국 통신비밀보호법의 입법취지는 완전히 상실되어버렸고, 감청대상자에게 헌법으로 보장된 사생활의 자유는 과도하게 침해되었다.

검사는 재판의 첫 절차인 기소요지진술에서는 물론 마지막 절차인 의견진술에서까지도 이시우 작가가 진술을 거부하고 단식한 것을 사건의 중대성을 나타내는 징표로 거론하고 징역 10년의 중형을 구형하였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헌법교과서를 되풀이 읽고 사법연수원을 거쳐 여러 해 동안 법전을 바로 옆에 두고 일해 왔을 검사가 헌법을 읽지 않았을 리 없다.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이 헌법상 아무런 제한 없이 보장된 권리라는 점을 들어보지 않았을 리도 없다. 검사 스스로 “이렇게 끝까지 진술거부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할 만큼 진술거부권이 실제로 쓰여지지도 않고, 법문과는 달리 아직도 진술거부권이 무시되고 진술을 거부한 것이 피고인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자료가 되는 것이 수사기관의 현실인 것이다.

최대 파란, 제성호 교수의 반대신문 답변거부 퇴장

이 사건 재판에서 당사자와 변호인들을 경악하게 한 일이 있다. 검사가 이시우 작가 저술이 이적표현물임을 입증할 유일한 증거로 제출한 것이 경찰 수사단계에서 작성 제출된 자유민주학회장 제성호 교수의 감정서들이었는데, 그가 법정에서 보인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제성호 교수는 “애초부터 법정에 나가지 않는 것을 전제로 감정하였다”, “내가 쓴 것이라는 점만 확인하고 30분이면 끝난다고 해서 나왔다”, “이렇게 하면 아무도 감정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며 변호인의 반대신문 도중에 답변을 거부하고 퇴정하였다.

제성호 교수는 이시우 작가의 글 내용이 학계에서도 토론되는 내용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시우 작가의 저술은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선동문건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판결은 이시우 작가 저술은 모두 우리 사회 일각에서 논의되는 것으로 헌법상 용인되는 범위 내에 있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제성호 교수는 국제법 전공으로 법학박사학위를 받은 법학과 교수이다. 학술토론회는 물론 TV 토론의 단골 토론자로 유명하다. 피고인과 변호인의 반대신문권이 형사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아야 하는 지위에 있고 알 수 있는 학식을 소유한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결과에 대해 상대방의 반론에 답변할 자세도 없이 이시우 작가에게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를 씌우는 내용의 감정서를 공안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것은 학자로서 기본자세를 결여한 무책임한 처사이다. 국제법학자나 정치학자의 저술과 같은 내용이더라도 이시우 작가의 저술은 학문적 성과물이 아니라 선동문건이라고 단언하는 근저에는, 학위도 받지 않은 사진가가 고상한 국제법 저술들을 인용하며 분석하는 것이 될 법이나 하냐는 엘리트 의식이 깔려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제 교수는 이 작가의 글의 사실관계가 잘못되었다며 선동문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 교수의 증언에도 사실관계와 다른 것이 있었다. 유엔총회 결의상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역에서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된 것인지에 대해, 제 교수는 국제법학자 중에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호히 대답했다. 하지만 2003년에 이미 제 교수는 국제법학자인 이근관 서울대 교수가 유일합법정부론의 오류를 지적한 세미나에 발표자로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다. 그 자신이 유엔사 문제에 대해 학술논문을 여럿 저술하였는데도, 유엔사 해체에 대한 유엔총회 결의에 해체시기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서 해체시기를 1976년 1월 1일로 명시한 결의문과 정반대로 답변했다. 법학교수인 자신의 오류는 실수이고 사진가의 오류는 선동인가? 수사기관이 계속 이런 무책임한 학자의 편향된 감정에 의존하는 한, 국가보안법은 남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큰 피해는 구금이 아니라 필름훼손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깨끗한 마음을 지닌 동료

이 사건이 이시우 작가에게 가져다 준 가장 큰 피해는, 구금이 아니라 필름 훼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007년 1월 이시우 작가가 보관해오던 사진 필름 원판 2,000여점을 압수하였다. 이시우 작가 측에서 필름이 쉽게 손상될 수 있는 것임을 여러 차례 경찰에 알리고 필름의 상당수는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한 것이니 손상되기 전에 하루 빨리 반환해줄 것과 계속 압수할 필름은 안전한 보관방법에 따라 보관하거나 전문기관에 위탁 보관할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경찰이 이를 무시하고 필름 전부를 청사 내 장소에 특별한 안전조치 없이 보관하였다가 필름에 곰팡이가 피고 변색되고 먼지가 달라붙는 등의 손상이 일어났다.

이는 명백히 압수물 보관에 중과실이 있는 경우로, 어떤 방법으로도 필름을 손상 전 상태로 복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보안법이 예술가의 예술작품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다. 이시우 작가는 대한민국을 피고로 하여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앞으로 경찰에 엄중히 책임을 추궁하게 될 것이다.

3년 가까이 계속된 감청과 미행에 놀랐다면 너무 순진한 것일까. 언제나 국가보안법 사건 수사에 막대한 인력과 경비와 시간을 투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공안수사기관이 존재하는 한, 우리 현실에서 국가보안법의 남용과 인권침해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사건 재판에서 얻은 결론이다.

재판에서 얻은 또 하나의 결론은, 무죄판결을 이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힘은 당사자와 가족, 그 동료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위반혐의의 딱지가 붙은 사람이 위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공소장 모두사실이 흔들릴 수 없는 명제가 되어버린, 기껏해야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것이 최대의 기대치인 현실에서, 고통과 불안이 없을 수 없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조차도, 국가보안법에 정면으로 맞서기 어렵다. 이시우 작가가 국가보안법에 대항하여 자신의 양심을 굽히지 않고 진지하게 세상과 대화하고 가족과 동료들이 꾸준히 그 곁을 지키고 지지해준 것이 무죄판결이 나오게 된 가장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형사사건 변호인에게 첫 번째 목표는 무죄를 선고받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사건에서, 그보다 앞서는 목표는 고통과 곤란 속에서도 당사자가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세상과 계속 대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이념도, 법이론도 아닌, 바로 깨끗한 마음을 지닌 동료 그 자체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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