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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생태환경

걱정이 앞서는 대운하 사업(프레시안 080115)

by 마리산인1324 2008. 3. 11.

 

<프레시안> 2008-01-15 오후 6:57:19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115152452

 

 

"이명박 대운하 공약, 농담인 줄 알았는데…"

경부운하, 걱정이 앞선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화제다. '걱정이 앞서는 대운하 사업'이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이 교수는 이명박 당선인의 대운하 공약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민자 유치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당선인 측의 계획에 대해 이 교수는 "정부 돈을 들이지 않고 민간이 조달한 자금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으니 국민이 염려할 바 아니라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민간 업자는 사업을 위해 자신이 직접 지불하는 비용만 고려하기 때문에 환경파괴를 비롯 사회적 관점에서 본 비용은 이보다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라고 반박했다.
  
  또 편익-비용비율이 2.3으로 표기된 이 당선인 측의 보고서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평가 결과가 이렇게 좋게 나온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 평가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 사업이 환경에 미칠 예기치 못한 악영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그런 장밋빛 전망을 할 수 있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과거 개발연대에서는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이런저런 사업을 밀어붙인 사례가 많았다"라는 것.
  
  이 교수가 1만 5000자가 넘는 긴 글을 통해 당선인의 대운하 공약을 비판한 이유는 뭘까? 글의 마지막 단락에 단서가 있다. 이 교수는 "대운하 사업이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농담 정도로 받아들인 것이 사실이다. 경인운하사업도 중도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데 국토를 세로로 질러가는 운하를 판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겠느냐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밝혔다.
  
  당선인의 대운하 공약은 농담이 아니라고 믿기 힘들 만큼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 이 교수의 홈페이지는 현재 방문이 폭주해 접속할 수 없는 상태다. <프레시안>은 이 교수의 허락을 얻어 '걱정이 앞서는 대운하 사업' 전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머리말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신의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약속 어기고 말 뒤집기를 밥 먹듯 하는 정치인은 경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은 반드시 지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치인의 올바른 자세다. 당선되었다고 마음이 바뀌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정치인이 될 자격조차 없다. 국민과 정치인 사이의 신뢰관계가 대의민주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은 상식 중에서도 상식에 속하는 사항이다.
  
  그런데 한 가지 역설적인 점은 당선된 정치인이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을 '모두'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마지막 하나의 공약까지 모두 지키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선자가 공약을 적당히 깔아뭉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꼭 지켜야만 할 공약이 있는 반면, 지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공약도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 2006년 독일 뉘른베르크 운하를 방문해 '한반도 대운하' 건설의 필요성을 주장한 이명박 당선인. '대운하는 반드시 한다'는 이 당선인의 의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연합뉴스

  요즈음 새 정부의 출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징후를 관찰해 보면 이 점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표를 얻기 위해 끼워 넣은 선심성 공약, 예컨대 신용불량자 구제나 이동통신료 인하 약속을 지키겠다고 부산을 떨다가 여론의 포화를 맞고 주춤거리는 모습이 그 단적인 예다. 그 선심성 공약들은 자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시장주의와 상반되는 성격의 것들이다. 스스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공약이니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은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 점과 관련해 한층 더 염려스러운 것은 소위 '대운하사업'이라고 부르는 공약이다. 수에즈 지협이나 파나마 지협에 운하를 판다면 아무도 이상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길쭉한 반도의 지형을 가진 나라에서 긴 쪽을 따라 운하를 판다면 그것은 정말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동안 서울과 부산을 잇는 육로, 해로가 없어 국민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이 공약으로 인해 표를 얼마나 얻었는지 모르지만, 한마디로 말해 상식을 벗어난 발상임이 틀림없다.
  
  대운하사업이 핵심적 공약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이것을 원하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사태의 진전 여부에 따라 심각한 국론 분열까지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명확한 다수의 반대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든다면 그것은 대단한 만용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않고 밀어붙인다면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엄청난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민심에 비추어 볼 때, 대운하 반대론자들을 설득하는 일이 그리 쉬울 것 같지 않다. 대운하를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그리 절박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국론 분열이란 도박을 하지 않고 이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적절한 구실을 붙여 차후의 과제로 미루는 모양새를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려면 퇴로를 마련해 놓고 있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스스로 퇴로를 막고 덤비는 모습을 보이니 걱정이 클 따름이다.
  
  이 당선자와 주위 사람들이 과거에는 야당이었으니 아무 말이나 해도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국정을 책임지게 된 상황에서 체면이나 사소한 이득을 위해 위험스런 도박을 감행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다. 냉철한 자세로 돌아가 대운하사업이 정말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다시 한번 짚어보아야 한다. 만약 이 일로 인해 국론 분열이란 비극이 초래된다면 앞으로 임기 내내 이 문제로 발목을 잡힐 것은 물론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수결에 기초한 대의민주제의 문제점
  
  무엇보다 우선, 당선된 정치인이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을 모두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하겠다. 어떤 후보가 내건 공약의 모음을 정강(plat)이라고 부르는데, 정강은 가장 많은 표를 끌어모은다는 관점에서 만들어진다. 쉽게 말해 가장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는 정강이 가장 성공적인 정강이 되는 것이다. 투표자가 이 정강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공약을 모두 지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투표자가 어느 한 후보에게 표를 던질 때 그의 공약 전체를 완벽하게 지지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흔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어떤 공약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른 더 중요한 공약을 지지하기 때문에 표를 준다는 차원에서 표를 던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투표자들의 성향을 미리 짐작하고 가장 많은 표를 끌어모을 수 있는 공약의 조합을 만들려고 노력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후보가 전 국민의 50% 이상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각 개별공약에 대한 지지도는 50% 수준을 훨씬 더 밑돌 수 있다. 그런 공약이 한, 두 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많을 수도 있다. 그와 반대로 선거에서 진 후보의 공약 중에도 지지도가 50%를 넘는 것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선거에서 이겼다는 사실이 모든 공약을 그대로 실천해도 좋다는 백지수표가 발행되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제는 대통령이 되는 데 국민 50% 이상의 지지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투표율이 어떤 수준이든 간에 다른 후보보다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으면 대통령으로 뽑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국민 중 아주 적은 비율의 지지를 얻고서도 대통령으로 뽑힐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이 당선자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고 하지만, 투표율까지 감안해 생각해 보면 고작 전 국민의 30% 내외의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그나마 이 30% 수준의 지지율이라는 것도 이 당선자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100% 흔쾌한 마음으로 표를 던졌다는 것을 전제로 한 수치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찍었다는 사람이 섞여 있다면 실질적인 지지율은 더 내려갈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 이런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되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일반인의 상식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 비율이 아주 낮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이 당선자가 내건 공약 전반이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말하기는 힘든 형편이다. 개별적인 공약의 차원으로 내려가면 국민의 지지도가 정말로 낮은 수준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선거에 이겼기 때문에 모든 것을 우리가 말한 대로 실행에 옮기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각 개별 공약에 대한 지지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결과에 기초해 정책 수행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지난 선거의 결과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한 가지 점이 있다. 그것은 이 당선자의 '경제 살리기' 공약에 대한 기대가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그 밖에도 사회, 경제, 교육의 측면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공약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대운하사업에 대한 기대가 미친 영향은 지극히 작았을 것이 분명하다. 예컨대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에서의 표 쏠림현상이 대운하사업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운하사업이 이 당선자의 공약 중 국민의 지지도가 낮은 중 하나일 것이라는 심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짐작일 뿐이며, 이처럼 정확한 진상을 모르는 것은 이 당선자 측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요구하는 것이 대운하사업의 즉각적인 포기는 아니다. 국민의 소리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도록 노력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일부 인사들이 대운하사업에 대한 국민적 승인이 이미 난 것이라도 되는 듯한 언행을 보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 힘들다.
  
  경제적 타당성 평가의 문제
  
  요즈음 언론에서 대운하사업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이 당선자 측이 선거 전에 작성한 평가보고서에 주로 기초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후보의 캠프가 선전용으로 만든 평가보고서가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만으로 평가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평가보고서가 대운하사업 관련 찬반논쟁의 기초로 사용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당선자 측의 평가에 따르면 대운하사업에서 기대되는 편익이 소요 비용의 2.3배에 이른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 땅을 파기 시작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렇게 수익성이 좋은 공공사업을 즉각 시작하지 않는 것은 범죄적 행위에 해당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평가 결과가 이렇게 좋게 나온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 평가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편익을 부풀리고 비용을 줄여서 계산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만약 대운하사업에 관한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하기를 원한다면 이해관계를 갖지 않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에 평가 작업을 다시 맡겨야 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작성된 평가보고서 없이 찬반토론을 시작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선거가 모두 끝난 이 시점에서 선거용으로 작성한 보고서가 갈 곳은 휴지통밖에 없다. 지금은 생산적인 찬반토론 그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타당성 검토에 들어간다고 해도 과연 그 평가 결과가 얼마나 신빙성을 가질 것이냐는 계속 의문으로 남는다. 과거의 굵직한 국책사업들, 예를 들어 경부고속철이나 새만금 같은 사업의 타당성 평가결과를 보면 그런 의문을 갖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내가 그와 같은 사업의 평가과정에 간여하면서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정부가 원하는 사업이면 반드시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할지 모르지만,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analysis)이라는 것은 그다지 과학적인 분석방법이 아니다. 편익과 비용을 제 맘대로 조작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드러나는 수법을 쓴다면 모를까 교묘한 방법으로 편익과 비용을 조작하면 아무리 전문가라도 쉽게 잡아내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업이 타당성을 갖는다는 결론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다.
  
  예를 들어 경부고속철사업의 경우, 나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이 그 사업의 타당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그 사업의 심의과정에 참여할 때는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테니 제발 심의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러나 첫 번째 회의에서부터 정부가 그 사업의 추진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는 낌새를 눈치챘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문제점은 번번이 묵살되었고, 모든 것은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적자투성이 경부고속철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새만금사업의 경우에는 왜곡 평가의 정도가 그보다 한층 더 심했다. 정부가 주도해 작성한 평가보고서는 수많은 명백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왜곡 평가에 사용되는 수법의 전형적 사례로 교과서에 실릴 만한 것들도 상당히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그 타당성 평가가 적합한 것이라고 최종적인 판결을 내렸다. 불행하게도 비용-편익분석을 둘러싼 싸움은 누가 진리에 가까이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힘이 세느냐에 의해서 그 승부가 결정된다.
  
  대운하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도 겉으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내막에서 평가 결과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경부고속철사업이나 새만금사업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벌써부터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할 평가보고서의 망령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길 수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
  
  대운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대운하사업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어떻든 간에, 나 자신은 이 사업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 내가 반대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대운하를 만든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데 있다. 과거에는 산을 깨부수고 물길을 돌려 국토를 개조하겠다고 난리법석을 치면서 그것이 바로 경제개발이라고 떠들어대던 적이 있었다. 이렇다할 공장 몇 개도 변변히 없던 나라에서 급격한 산업화를 추진하다 보니 그런 일들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하천의 물길을 똑바로 만들고 시멘트 둑을 쌓아 놓는 것이 개발이라고 여겼던 때도 있었다. 여기저기에 인공시설물을 만들어 놓고 이제는 여기까지 문명의 손길이 뻗치게 되었다고 자축하던 때도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자연상태를 파괴하는 것이 바로 개발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청계천을 복개하고 그 위에 고가도로까지 설치한 장면을 찍은 사진을 서울의 발전상으로 선전하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환경을 개발의 대상으로 보던 것에서 보존의 대상으로 보는 것으로 그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자연은 원래의 상태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새로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버리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 당선자 자신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원래의 상태로 복원시킴으로써 시민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는 사실이 바로 이와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입증해 주고 있다.
  
▲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 대운하 공사가 시작되면, 이 주위는 온통 파헤쳐지게 된다. ⓒ프레시안

  멀쩡한 강에 갑문을 만들고 멀쩡한 산에 수로 터널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강은 자연 그대로 흐르게 놓아둘 때 가장 건강할 수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홍수 조절이나 용수 확보를 위해 부득이 손을 댈 수는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건강한 자연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대운하사업이 구상하고 있는 정도의 대규모 개조가 주변의 자연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없다. 과거라면 운하에서 나오는 경제적 이득만을 따져 그것을 건설할 지의 여부를 결정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 사업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경제적 이득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그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 당선자 측의 평가보고서에서 편익-비용비율이 2.3이나 되는 높은 수치로 계산되어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고 본다. 이 사업이 환경에 미칠 예기치 못한 악영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그런 장밋빛 전망을 할 수 있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과거 개발연대에서는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이런저런 사업을 밀어붙인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개발에서 보존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지금 그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접근방법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대운하사업을 통해 환경이 더욱 개선될 것이라는 이 당선자 측의 주장은 가소롭기 짝이 없다. 자연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대로의 상태에서 가장 건강할 수 있다. 이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운하사업이 하수도 처리장을 건설하는 일이라도 되는 듯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없던 물길을 새로 만들고 멀쩡한 산을 깎아내리는 일일 뿐 아니라, 그 주변에 건물이나 도로 등 수없이 많은 인공구조물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대운하사업이 주변 생태계에 심각한 교란을 가져오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은 새로운 여건에 적응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할 것이다. 교란된 생태계가 새로운 균형을 이루었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아무도 자신 있게 예언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기상이변 같은 예기치 못한 사태와 결합하는 경우에는 주변 생태계에 미증유의 대재앙이 닥칠 가능성까지 있다. 강 밑바닥을 준설하고 육상 물동량을 운하로 돌림으로써 환경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태연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구조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대운하를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이제는 경제의 무게 중심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점차 옮아가고 있다.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벌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지식의 창출과 유통이 새로운 부의 원천으로 떠오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제조업 내부에서도 반도체처럼 작고 가벼운 물건의 생산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결과 물자의 유통이 거북이걸음으로 늘어나는 반면, 지식과 정보의 유통은 토끼걸음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물류 그 자체의 성격도 비용보다 시간이 점차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제무역의 경우에도 운임이 해상운송보다 몇 배나 비싼 항공운송 쪽을 선택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대운하사업을 추진하는 측이 아무리 애를 써도 감출 수 없는 하나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운하를 통한 운송에 소요되는 시간이 다른 수단에 의한 소요시간보다 엄청나게 더 클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업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운하로 인한 비용절감 효과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물류 촉진을 위해 운하를 판다는 것은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운하를 파는 토목사업은 그 자체로 구시대의 냄새를 풍긴다. 경제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역점 사업 중의 하나로 이런 구시대적인 토목사업을 들고나오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경제구조 선진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착수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상황에서 운하 파는 일에 집착하는 것은 경제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민자유치의 허구성
  
  대운하사업이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이 당선자 측에서는 '민자유치'라는 편법으로 예봉을 피해가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부문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운하사업에 참여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수익성이 좋다는 것을 뜻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정부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전부 민간이 조달한 자금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으니 국민이 염려할 바 아니라는 말도 나온다. 보수언론도 여기에 가세해 대운하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궁극적 평가는 민자유치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는 논조를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가소로운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경제학의 '경' 자라도 아는 사람이면 그런 무식한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운하사업을 반대하는 사람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그것이 가져올 환경피해다. 그러나 대운하사업에 참여하는 민간업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환경피해가 발생해도 자신의 수익성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업으로 인해 아무리 큰 환경피해가 날 것이 예상된다 해도 민간업자의 참여 여부의 결정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민간업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그 사업이 사회적 이득을 가져온다는 것이 자동적으로 입증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간업자가 대운하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할 때는 그 사업의 수행을 위해 자신이 직접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만을 고려한다. 아무리 사회적 의식이 높은 기업이라도 자신이 직접 지불하지 않는 비용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운하사업으로 인해 환경피해가 발생한다면 누군가는 이와 관련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관점에서 본 비용은 민간업자가 인식하는 비용보다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대운하사업이 공공사업의 성격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면 당연히 사회적 관점에서 파악한 비용에 기초해 그 사업의 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민간업자가 이 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그들의 개인적 관점에서 볼 때 이득이 예상된다는 것을 뜻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사업을 수행할 가치가 있는지의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개인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 사이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면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할 수 있다. 그러나 대운하사업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은 그 본질상 개인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 사이의 격차가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업자의 참여 여부로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방법이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
  
  다음과 같은 예를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정부가 수도권의 상수원으로 쓰는 저수지를 유료 낚시터로 개발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하자. 이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이 문제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100% 민자사업으로 진행시키겠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업자는 낚시터로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만 부담하면 되고 수질오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이 제시되었다.
  
  그 후 이 사업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민간업자가 그 낚시터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을 것이 분명한데, 이 사실 하나만으로 그 사업이 사회적 이득을 가져온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알 수 있다. 대운하사업과 지금 예로 든 유료 낚시터 사업이 그 기본골격에서는 아무런 차이도 갖지 않는 쌍둥이 사업이라는 점에 주의하기 바란다. 유료 낚시터 사업의 민자유치가 갖는 의미를 대운하사업의 민자유치에 대입해 보면 내가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사실은 그 저수지를 유료 낚시터로 개발하자는 아이디어를 민간업자가 먼저 냈다 하더라도 정부가 이를 말려야 한다. 정부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개인적인 이익만을 따지는 민간업자의 행동을 감시하고 규제할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원론 책을 보면 외부성(externalities)이 존재할 때 시장의 실패가 일어난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어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을 방출하는 행위가 해로운 외부성을 만들어내는 행위의 대표적 사례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대규모의 환경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정부가 앞장서 추진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외부성으로 인한 시장의 실패를 교정해야 할 책임을 맡은 정부가 스스로 외부성의 존재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민간업자의 참여 여부로 그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하자는 제의는 무지와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경제학의 기초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감히 이런 터무니없는 제의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의 상황을 관찰해 보면 대운하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업자들은 '잿밥'에 더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 같다. 운하를 건설하고 주변 지역의 개발권을 따내 돈을 벌겠다는 심산인 모양이다. 이것은 운하 자체의 수익성이 별로 좋지 않다는 무언의 증거일 수 있다. 지금까지 주장해온 것처럼, 민간업자에게 운하사업이 수익성 있는 사업이라 할지라도 그 타당성이 의심되는 터다. 주변 지역 개발권이나 수익성 보장 같은 당근으로 민간업자를 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사업이 아닐까.
  
  이 당선자 측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행정도시, 혁신도시 등을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전국의 지가를 올린 참여정부를 비난해 왔다. 그러나 대운하사업을 추진하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 그런 비난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관광진흥이나 지역개발 같은 잿밥에 군침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대운하사업을 계기로 전국의 지가가 또 한 번 크게 뛰어오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 예감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닌데, 사업에 참여할 민간업체의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지가 상승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민자유치에 성공했다고 대운하사업의 타당성이 자동적으로 입증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민자유치는 사업의 진정한 타당성을 평가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림막이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민자유치에 급급해 주변 지역의 개발권을 주는 방식으로 대운하사업을 추진한다면 우리 경제에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싶다.
  
  동기의 순수성은?
  
  많은 전문가들이 대운하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해 상당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 당선자 측은 지난 대선에서의 득표율을 보고 대운하사업에 대한 지지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대단히 큰 오해다. 최소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운하사업이 터무니없는 발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이 당선자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었으리라고 짐작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 당선자의 맹목적 추종자들만이 대운하사업의 타당성을 강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광범한 반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대운하사업을 강행할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친 다음 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하지만, 반대의견에 허심탄회하게 귀를 기울일 자세는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이 사업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반대 분위기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눈과 귀를 틀어막는다 하더라도 이렇게 명확한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할 리 없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이 과연 어떤 생각에서 사업 추진의 의욕에 불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로 우리나라에 두고두고 이득을 가져다줄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하는 순수한 열정에서 그런 태도가 나왔을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나 개인적으로 이런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고 보지만, 설사 이와 같은 동기가 밑에 깔려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지금 취하고 있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 사업이 가져올 진정한 편익과 비용을 계산하는 일이 무척 어렵다는 점을 자각하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야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된 일이 좋지 못한 결과를 불러온 사례가 너무나도 많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당선자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밀어붙이고 있을 가능성이다. 정치인으로서 한번 공약한 것은 마땅히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이라 해서 반드시 지키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지난 대선 결과가 대운하사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찮은 자존심 때문에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에 정치적 운명을 거는 것은 이 당선자가 내걸고 있는 실용주의와도 정면으로 상반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는 단기적 경기부양이라든가 지역민심을 얻으려는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깔려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당선자 측에서는 대운하사업을 통해 수십만 명에 이르는 고용창출 효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고 있는 고용창출 효과 중 절반을 넘는 부분이 공사진행 단계에서 창출되는 한시적 성격을 갖고 있다. 막대한 공사비를 풀어 경제가 일시적으로 흥청거리고 고용이 창출되는 듯이 보이게 만들 수 있지만, 이것은 자신들이 말하는 진정한 '경제 살리기'가 될 수 없다.
  
  또한, 운하 건설로 인해 개발이 될 지역 주민들의 표심을 사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일반의 예상과 달리, 여론조사에서 사업에 대한 지지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불순한 동기가 아닐 수 없다. 지역개발이 촉진된다는 것 그 자체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개발 열기가 지나쳐 투기붐이 일어나고 이것이 전국으로 확산된다면 우리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 수 있다.
  
  단기적 경기부양이나 지역민심을 얻으려는 동기에서 대운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 당장 폐기해야 마땅하다. 이렇게 근시안적인 동기에서 추진되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런 사소한 이득을 얻기 위해 대규모의 환경파괴나 토지투기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이 있는 대운하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것은 바로 이런 어리석은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맺음말
  
  대운하사업이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농담 정도로 받아들인 것이 사실이다. 경인운하사업도 중도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데 국토를 세로로 질러가는 운하를 판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겠느냐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당선자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조차 당선이 되면 운하를 파겠다는 말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리라고 기대한 경우가 많았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당선이 되자마자 당장에라도 땅을 파기 시작할 듯한 태도로 나오고 있으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당선자 측이 대운하사업과 관련해 계속 강경한 태도로 나오는 것은 스스로에게 불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일종의 정치적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인데, 그 도박의 승산이 지극히 낮기 때문이다. 운하의 건설과정에서는 물론 건설된 후의 운영과정에서 숱한 문제점들이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그때마다 그 사업을 강행한 정부에 비난이 쏟아질 것이고, 이에 발목을 잡혀 다른 일조차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질 가능성까지 있다. 이 당선자 측의 정치적 이익을 근시안적으로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도 걸어볼 가치가 없는 도박이라는 말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임기만 채우면 무대의 뒷면으로 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이 남겨둔 유산은 두고두고 국민이 안고 살아야 할 운명이 되고 만다. 특히 대운하사업처럼 국토의 지형을 크게 바꾸게 되는 사업은 긴 시간에 걸쳐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앞날에 예기치 못한 재앙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섣불리 사업에 뛰어드는 것 같은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민자유치를 통해 대운하사업을 수행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이 사업의 수행을 위해 얼마의 돈을 투입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설사 정부의 돈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 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사업이 갑자기 바람직한 사업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다. 민간업자들은 개인적 관점에서 이윤을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사회적으로 이득이 되느냐의 여부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민간업자들이 서로 이 사업을 맡겠다고 나선다고 해서 이 사업이 우리 사회에 이득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대운하사업을 통해 환경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는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생태계의 균형을 교란시킴으로써 그것의 건강이 증진될 수 있는 가능성은 지극히 작다. 긴 세월에 걸쳐 자유롭게 흐르던 강줄기를 계속 자유롭게 흐르도록 놓아두는 것이 그것을 가장 잘 사랑하는 길이라는 상식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지극히 사소한 경제적 이득을 위해 두고두고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환경을 훼손하는 일은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실제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무엇을 따로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준구/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