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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 [滿洲族, Manchu]
중국의 동북지방 만주지역에 거주하는 퉁구스계 민족의 하나.
중국 최후의 왕조인 청(淸)을 세우고 그 지배층이 되었던 남방 퉁구스계를 가리키는 용어로, 역사상 숙신(肅愼)·읍루(婁)·물길(勿吉)·말갈(靺鞨)·여진(女眞) 등으로 불렸다. 부여·고구려·발해·요(遼)·고려 등 주변 민족이 세운 나라의 지배와 영향을 받다가 12세기에 이르러 아구다[阿骨打]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금(金)을 세워 한때 만주와 북중국을 지배했다. 금이 몽골에게 멸망한 뒤 다시 부족단위로 반농경·반유목 생활로 돌아갔다가 16세기말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1616년 누루하치(奴爾哈齊)의 주도로 후금(後金)을 세웠다. 국호를 청으로 바꾼 뒤 중국의 신해혁명(辛亥革命) 때까지 중국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200여 년에 걸친 중국 지배기간 중 중국내륙으로 이주한 만주족은 절대다수의 인구와 높은 문화수준을 가진 한족(漢族)에 동화되어 고유의 풍속과 언어를 잃고 한족의 일부가 되었다. 오늘날의 만주족은 청의 지배기간중 만주지방에 남아 있던 자들의 후손이다. 최근 연구에 의해 만주족들이 퉁구스로 알려진 거대한 인종집단의 일부임이 밝혀졌다. 1세기경에 북동부 만주지역에 살던 많은 퉁구스족들이 북부와 서부로 이주하여 예니세이 강과 태평양 사이의 시베리아 대부분을 점령했다. 만주족의 인종적 형질은 몽골로이드 계통으로서 키는 비교적 작고 머리는 단두형(短頭形)이다. 그러나 다른 종족과 섞였으므로 여러 만주족 집단들 사이에도 신체유형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중국 역사기록에 의하면 만주족의 퉁구스 선조인 이로우인은 주로 사냥·어업·채집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며, 그들의 후예인 주센인과 만주인들은 원시적인 농경생활과 가축사육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몽골족이나 돌궐족과는 달리 만주족들은 돼지를 길러 식용했다. 초기부터 만주족에게는 머리를 변발하는, 즉 돼지꼬리 모양으로 만드는 관습이 있었다. 그들이 중국을 정복했을 때 충성의 표시로 중국인들에게 변발을 강요했다. 1920~30년대에는 모쿤이라고 불리는 부계 씨족을 단위로 사회생활을 영위했다. 모쿤은 어느 한 남자를 시조로 하는 5~9대 정도까지의 부계친과 그 가족이 하나의 씨족을 이루어 상호 군집하면서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생활했다. 모쿤의 씨족장은 씨족 내의 가벼운 범죄나 소송을 직접 관장했다. 중국을 정복한 후 대다수의 만주족들은 중국 본토로 이주했으며, 자신들의 옛 영토는 휴가철에 사냥을 즐기는 지역으로 남겨두었다. 결국 이 지역은 황폐해졌고 중국 본토에서 이주해온 농민들에게 판매되었다. 이로 인해 1900년 만주에는 만주족보다도 중국에서 이주해온 농민의 수가 더 많았다.
만주족 정복자들은 중국 예술과 학문, 문화를 수세기 동안 추앙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한족에게 흡수되는 것을 막았다. 또한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했으며 자녀들에게 고유의 전통을 교육시켰다. 혈통을 순수하게 유지하기 위해 한족과 만주족의 결혼을 금했고 두 민족간의 사회적 교류는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청조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문화적·인종적 분리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국 중국의 관습과 언어를 채택했으며, 양 민족간의 결혼도 허용되었다. 그러나 현 중국정부는 만주족들을 분리된 민족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1982년에 429만 9,000명), 이들은 랴오닝 성[遼寧省], 지린 성[吉林省],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후베이 성[湖北省], 베이징[北京],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自治區]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금,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