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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관념론 [觀念論, idealism]

by 마리산인1324 2006.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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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론 [觀念論, idealism]

 

경험을 해석할 때 관념적인 것 또는 정신적인 것이 중심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는 견해를 가리키는 철학용어.

 

 

개요

 

관념론은 실재의 관념성을 주장하는 형이상학적 관념론과, 인간은 인식할 때 마음 안에 있는 것만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인식대상은 지각할 수 있는 것에 한정된다는 인식론적 관념론의 두 형태로 나타난다(→ 형이상학, 인식론).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관념론은 유물론과 대립한다. 유물론은 세계의 근원적인 실체가 물질이고 이 실체는 일차적으로 물질적 형식과 과정을 통해서 인식된다고 주장한다. 인식론의 영역에서 관념론은 실재론에 대립한다. 실재론은 인식대상들이 우리의 의식 외부에 의식과 독립하여 실제로 존재한다는 관점이다. 관념론의 본질적인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관념론의 전형적인 명제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리는 전체이며 절대자이다", "있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다", "실재의 궁극적 본성은 실재의 가장 낮은 차원인 물질적인 것보다는 가장 높은 차원인 정신적인 것 속에서 더 충실히 드러난다", "자아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객체이다" 등이 관념론의 대표적인 명제이다.

 

관념론의 원리

 

관념론을 특징짓는 공통원리는 6개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관념론은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의 통일을 주장한다. 관념론은 개별자들의 공통된 본성이나 본질을 표현하는 추상적 보편보다는 구체적 보편을 강조한다(→ 보편자). 고정적이고 형식적인 추상적 보편과는 반대로 구체적 보편은 본질적으로 역동적이고 유기적이며 발전한다. 이리하여 보편성과 개별성은 하나가 된다. 둘째, 관념론은 시대성과 영원성을 대비한다. 관념론자는 어떤 시대에 얽매이기보다는 여러 시대를 포괄하는 넓은 관점을 추구한다. 17세기 합리론자 스피노자의 표현을 빌면 관념론자는 지금의 세계를 '영원의 시각으로' 바라보려 한다. 그래서 관념론자는 문화의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관념론이 특정문화의 편협함을 넘어선다고 주장한다. 셋째, 관념론은 관계내재론(關係內在論)과 진리정합론(眞理整合論)을 주장한다. 관념론자가 아닌 사람들은 관계라는 것을 서로 관계맺는 두 사물에 덧붙여진 어떤 것, 즉 외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이를 근거로 진리를 명제와 사태 간의 대응관계로 정의한다. 그러나 관념론자는 관계를 내적인 것으로 본다. 관계항들은 서로를 논리적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궁극적 실재는 판단이나 명제의 체계이고 진리는 이 명제들 사이의 정합성에 의해 정의된다. 예를 들어 어떤 유능한 스파이가 영웅인가 악한인가는 국제관계, 전제된 역사철학, 관련된 도덕판단 등의 전체적인 체계와의 관련 속에서 판단된다. 즉 한 판단의 진리성은 그 판단에 대응하는 사태가 아니라 전체체계 안에서 그 판단의 위치가 결정한다. 넷째, 관념론은 변증법적 방법을 사용한다. 관념론은 진리를 정합성으로 보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지식을 이전의 지식체계와 통합하려 한다. 따라서 관념론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변증법적 추론방법을 사용한다. 모순된 두 명제를 종합한 새로운 명제는 종합하기 이전에 두 하위명제가 가지는 진리의 정도를 더 고차적인 진리 속에서 통합한 것이다(→ 변증법). 다섯째, 관념론은 인식면에서나 존재면에서 정신의 우위를 주장한다. 관념론은 정신을 물질과 동일시하거나, 높은 수준의 정신을 낮은 수준의 물질로 환원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오히려 물질을 정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섯째, 거의 모든 관념론자들은 인간이 겪고 있는 악(惡)이 더 큰 전체 안에서는 선(善)이 될 수 있다는 원리를 받아들인다.

 

근본문제와 대답

 

철학적 관념론을 정교한 형이상학 이론으로 다듬으려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몇 가지 매우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는 형이상학적인 질문으로 "인간의 경험에 주어지는 궁극적 실재는 무엇인가?"이다. 철학사를 보면 이 문제에 대한 극단적인 2가지 대답을 발견할 수 있다. 한 극단은 18세기 경험론자 데이비드 의 회의론이다. 그는 궁극적 실재가 어떤 고립된 지각자의 순간적인 감각경험이라고 주장하여 유아론(唯我論)의 관점을 취했다. 이와 반대되는 다른 한 극단은 17세기 합리론자 스피노자이다. 그는 궁극적 실재로서의 실체를 자기자신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인식될 수 있는 것이라 정의하고 범신론적(汎神論的) 관념론의 관점에서 신(神), 즉 자연이 실체라고 보았다. 이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관념론자들은 양극단인 흄과 스피노자 사이의 어느 한 지점에 서 있다.

 

기본논증

 

관념론자들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전통에 따라 논증을 중요시했다. 관념론자들이 제시한 4가지 근본적인 논증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버클리의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다'라는 논증

이 논증에 따르면 대상에 속하는 모든 속성은 감각속성이다. 단단함은 두드리는 행동에 대한 저항을 감각하는 것이고, 무거움은 손으로 물건을 들 때의 근육작용에 대한 감각이고, 푸르다는 것은 시각경험에 대한 감각이다. 그러나 이런 속성은 감각기관을 갖춘 어떤 주관이 지각하고 있는 동안만 존재한다. 18세기 영국의 고전적 경험론자 조지 버클리는 물질적 실체가 감각지각의 원인이라는 생각을 거부했고 그결과 물질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주장도 부인했다.

 

상호의존적 논증

주관과 객관이 서로 의존한다는 논증이다. 객관없는 주관은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주관이다'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객관을 인식하고 있다'라는 뜻이고, 또 '객관이다'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주관에 대한 객관이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자의 관계는 절대적·보편적으로 상호의존적이다. 결국 모든 완결된 현실은 항상 주관과 객관의 통일체이다.

 

신비주의적 논증

이 논증에 따르면,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주관적인 깨달음 속에서 자아는 직관을 통해 궁극적 실재를 직접 알 수 있는데, 이것은 궁극적 실재가 정신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형이상학적 탐구에서는, 감각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지각 사이에 개입하는 사고의 세부절차들이 오히려 정상적 인식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보다 직관적 파악과 신비적 이해가 더 중요하다.

 

존재론적 논증

유명한 이 논증은 원래 11세기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인 캔터베리의 성 안셀무스가 자신의 개인적인 종교경험에 근거해서 직관적으로 통찰한 신(神) 존재 증명으로 시작되었다. 이 논증에 의하면, 완전하다고 생각되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존재는 완전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들 가운데 하나를 결여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신이 완전하려면 존재해야만 한다. 몇몇 관념론 철학자들은 관념론을 증명하기 위해 이 논증을 일반화했다. 그들은 지성 속에만 존재하는 개념적 본질과 사물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범주적 본질을 구분한다. 따라서 모든 실재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범주적 본질과 존재의 통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실재가 비물질적인 관념성을 가진 구체적 보편임을 의미한다.

 

관념론의 유형

 

관념론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앞서 말한 버클리의 관념론은 주관적 관념론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그는 실재를 주관과 주관이 가지는 관념으로 환원했기 때문이다. 버클리의 철학에서 주관 바깥 세계의 명백한 객관성은 지각대상이 신의 마음 속에 있는 관념이라는 주장에 의해 주관주의와 모순없이 조화된다. 더 객관적인 관념론이 나타날 수 있는 토대는 18세기말 이마누엘 칸트가 마련했다. 그는 획기적인 저작 〈순수이성 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ft〉(1787)에서 인식의 형식을 부각시킨 선험적(transcendental) 관념론을 제시했다. 칸트는 '선험적 자아'인 주관이 감각인상을 질료로 삼고 이 질료에 어떤 보편개념을 부과함으로써 지식을 구성해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관념론을 선험적 관념론이라 이름붙였다. 그리고 이때 우리가 부과하는 보편개념을 범주라고 불렀다. 19세기초 J.G. 피히테, F.W.J. 셸링, G.W.F. 헤겔은 칸트 철학에 기초하여 각각 특유한 관념론 체계를 구성했는데 주관적 관념론자인 버클리와 대립한다는 의미에서 이들을 객관적 관념론자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 명칭들이 일관성있게 사용되지는 않는다. 버클리와 대비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때는 피히테를 주관적 관념론자로도 부른다. 왜냐하면 "자아는 자신을 정립한다", "자아는 비아(非我) 즉, 자연를 정립한다"라는 유명한 두 명제에서 볼 수 있듯이 객관보다 주관에 우위를 두었기 때문이다.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대비할 때, 셸링의 철학은 객관적 관념론, 헤겔의 철학은 절대적 관념론이라 부른다. 대부분의 현대 관념론도 이런 구분을 배경으로 하여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비판과 평가

 

관념론에 대한 비판은 철학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중 대표적인 몇 가지 경우를 보면, 우선〈관념론 논박 Refutation of Idealism〉이라는 유명한 글을 쓴 케임브리지 철학자 G.E. 무어와 이와 비슷한 입장을 가진 버트런드 러셀은 주관의 지각작용 자체와 이 작용의 대상인 '감각자료'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에 근거해서 관념론을 비판했다. 이 비판에 의하면 버클리의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다"라는 명제는 이 구분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모든 참인 명제는 감각경험을 확인함으로써 검증되어야 한다는 경험적 검증가능성을 원리로 삼고 있는 논리실증주의는 관념론의 근본적인 약점이 바로 이 원리를 거부한 데 있다고 주장한다. 언어철학은 관념론의 중요한 용어들을 자세히 분석하여 그것들의 의미가 모호해서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관념론의 존재론적 주장과 신비적 주장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카를 마르크스와 그 추종자들은 헤겔의 변증법적 관점을 이어받아 관념론에 대항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발전시켰다. 많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정치적인 성공을 거둠으로써 마르크스주의는 관념론에 대한 확실한 반대입장으로 자리잡았으며 유럽의 비공산주의 국가에서조차도 마르크스주의는 관념론에 대한 중요한 대안이 되었다.

 

관념론자는 앞서 말한 모든 비판을 관념론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비판에 자세히 대답하는 대신 오히려 적절한 대안을 만들어서 비판에 도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적절한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관념론의 주장을 주의깊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관념론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과연 철학적 관념론을 뿌리뽑는 데 성공했는가 하는 질문이 남아 있다. 비록 쇠퇴해가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최소한 서구문화 속에서 관념론 전통은 많은 역사적 혼란기를 거치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사회상황이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대가 되면 때때로 다시 나타났다. 관념론이 다시 관심을 모을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러나 관념론은 분명히 인간정신의 불변하는 어떤 측면을 반영한 것이며, 따라서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D. S. Robinson 글 | 朴正夏 옮김